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30화 (30/230)

#제 30 화. 무릉도원 병원 (4)

잠시 후, 건우가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자, 간호사가 수술장갑을 준비하고 있다 얼른 손에 끼워준다.

“준비 됐습니다.”

응? 벌써 anesthesia(마취)가 끝났다고? 건우가 말년 할머니를 보자, 간호사가 입혀준 수술복을 입고, 새끼 손가락 굵기의 튜브를 입에 물고 곱게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링거 주사 하나에 두 개의 관이 연결된 튜브에서 주사액이 똑똑 떨어지고 있는 평온한 모습도 보인다.

환자 머리 쪽에 있던 오지선이 모니터링 기계 옆으로 고개를 빼며 말했다.

“V/S 모두 정상, 소변도 잘 나옵니다.”

인디언 같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술을 마시고 자서 푸석푸석한 얼굴의 여의사. 외모를 보아선 전혀 믿음이 가지 않던 그녀는 의외로 대형병원의 AN들 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환자의 상태를 안정화로 이끈다. 오지선은 자신을 물끄러미 보는 건우를 보며 싱긋 웃었다.

“Captain(선장), Control Center(관제센터)는 준비됐으니 이제 출항하시죠?”

마취과 의사가 자신에게 선장이라고 불렀다. 수술하는 집도의가 비행기를 끌고 가는 파일럿 혹은 배를 모는 선장이라고 한다면, 마취과 의사는 배나 비행기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하는 관제센터다.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향을 맞춰주는 역할을 그들이 하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수술 중 갑자기 위급해지는 환자를 살리는 것이 집도의처럼 보이도록 편집한다. 하지만 실제 수술 중 심한 출혈이 발생한다거나 하는 긴급사태 발생 시 환자를 살려내는 건 마취과 의사다. 출혈이 난다고 수혈하고 수액만 준다고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생리학적으로나 혈액학적으로 변하는 신호들을 파악해서 추가적으로 약을 주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마취과 의사는 집도의에게 큰 힘이 된다.

건우가 고개를 끄덕인 후 개복하기 쉽도록 복부에 구멍이 뚫린 수술복을 입은 할머니를 보았다.

“수술 시작합니다.”

건우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어쩐지 한참이나 아무 느낌이 안 난다. 뭐지? 건우가 옆을 돌아보자, 수술복을 입은 간호사가 멀뚱히 자신을 본다.

“뭐 합니까?”

“예?”

“메스 안 줘요?”

“아.”

“11번 말고, 20번 주셔야죠.”

“아.”

뭐야, 실력 있는 마취과 의사가 있다고 믿음직스러웠는데 이 멍청한 간호사는? 건우에게 메스를 건네준 간호사가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뭘 달라고 이야기 해주셔서.”

그런 유치한 짓을 하는 의사가 아직도 있다고?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매가 일그러지는 것을 본 오지선이 말했다.

“언니는 전문 PA가 아니라 그래요, 이해하세요. 여기 시설 보면 알잖아요?”

“………………….”

하, 그래. 여긴 무릉도원 병원이었지. 건우가 환부를 보며 말했다.

“다음은 Metzenbaum 준비해 주세요.”

그래, PA가 없으면 직접 지시하면 되지 뭐. 건우가 환부를 소독 후 개복하자, 코를 찌르는 악취와 가스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읍!”

간호사가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푸른 왼쪽 눈을 빛내고 있는 건우의 시선은 개복한 복강 내에 꽂혀 있다.

‘오염된 소장 내용물이 빠져 나오고 있다.’

수술 전에 몸 내부를 보았기에 이건 알고 있었다. 문제는 정확히 말단부 어디에서 천공이 일어났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건우가 손을 내밀었다.

“normal saline(생리식염수), 수술용 패드 주세요.”

다행히 말은 잘 알아듣는 간호사가 재깍 준비해 준다. 오지선이 머리 너머로 환자 개복 부위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 정도인데 어떻게 참으셨지?”

그건 알아서 뭐하게? 건우는 답을 하지 않고 천공이 있을 법한 부위를 찾기 시작했다. 오염된 소장 내용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Ileum(회장). 만약 내용물들이 없었다면 바로 보였을 것이다. 내용물 중 일부를 덜어내 트레이에 올려두기를 몇 번. 드디어 회장이 보인다.

“여기다.”

구멍이 있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소화가 되다 만 썩은 음식물들이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수술용 패드로 천공 부위를 감싸두고 직장과 위장관의 다른 부위에 천공이 없는지 살피는 건우. 다행히 천공은 하나였다.

““Ileum(회장) 말단부 perforation(천공) 확인. Perforation 부위 장벽의 염증성 병변이 심해 일차 봉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회장, 상행결장 문합술로 갑니다.”

오지선이 고개를 내밀었다.

“수술경험은?”

건우가 생리식염수로 복강 내를 씻어냈다.

“Assistant(보조)만 일곱 번이요.”

“집도는요?”

“없습니다.”

오지선이 미간을 좁힌다. 조금 불안한 모양이다. 물론 불안한 건 건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자신 하나인데. 지선이 다시 묻는다.

“배액관 삽입하고 바로 봉합하는 거죠?”

“예, 심각해 보여도 일단은 단순 perforation이니까.”

“오케이,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계속 하세요.”

건우가 손을 내민다.

“drainage tube(배액관).”

“크기는요?”

“200ml요.”

배액관 삽입을 하려는 건우의 손이 멈칫한다. 할 수 있을까? 괜히 다른 곳을 쑤시면 천공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가만히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건우. 떨리는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이 손은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닌 것마냥 잔 떨림조차 없다.

실소가 나온 건우.

‘괜한 걱정이었나?’

빠르게 삽입을 마치고 개복 부위를 닫으려던 건우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복강 내 세척을 진행했다. 혹시 이로 인한 감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지선이 모니터를 본 후 말했다.

“이제 닫기만 하면 되죠?”

“예.”

“수고하셨어요.”

건우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오른다. 마치 자신이 수술했던 첫 번째 환자 같은 느낌. 물론 그땐 급성 충수염이란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그때 느꼈던 수술 난이도는 거의 심장수술과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손이 떨리고 무섭던지. 하지만 그 환자가 밝은 얼굴로 퇴원할 때는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에게도 그런 느낌을 받게 되겠지?

절로 나오는 미소. 다행히도 마스크로 숨겨진 입가는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정성스럽게 세척을 한 후 손을 내미는 건우.

“suture(봉합)하겠습니다. needle holder(바늘집게) 주세요.”

원장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수술을 하게 되어 정신이 없었던 간호사는 거의 마무리 되어 가는 수술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도구들을 넘겨준다.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지, 이 할머니 뱃속이 전부 시뻘개 보여서 얼마나 놀랐는데. 그대로 뒀으면 아마 시뻘건 구름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서 감염이 아주 그냥… 어? 잠깐만.

이상하다. 분명히 천공을 해결하고 배액관 삽입도 마치고, 오염된 소장내용물도 깨끗이 세척했는데. 왜 할머니 복강 내의 핏빛 구름들이 사라지지 않는 거지?

상황을 모르는 오지선이 마무리 준비 중이다.

“언니, Gastrointestinal Intubation(위장관 삽관)해야 되니까, 비장 위장 감압 튜브 준비…….”

바로 그때 간호사 앞에 서서 복강을 노려보고 있는 건우의 왼쪽 눈이 번쩍 하는 것이 보인 오지선이 눈을 크게 떴다.

‘바, 방금 뭐였어?’

술기운 때문에 잘못 봤거니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이사람 한쪽 눈 색이 이상하다. 동양인 눈이 푸른색이란 건 홍채 이색증 증상이 있다는 뜻. 오지선이 조명을 보며 생각한다.

‘조명에 반사된 건가? 사람 눈이 빛날 리가 없잖아?’

한참 건우를 관찰하던 오지선. 그런데 봉합을 하겠다던 건우가 움직이지 않고 복강 내를 쏘아 보고 있기만 한다.

“모건우 선생님?”

“잠깐만요.”

본능적으로 뭔가 있다는 걸 알아챈 오지선이 입을 다문다. 시신경에 온 신경을 집중한 건우.

‘천공 부위의 구름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이상해. 회장 부위 점막에 궤양이 있는 건가? 저 구름들은 다 뭐야?’

너무 집중을 해서일까? 땀이 흐른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점점 왼쪽 눈으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질 무렵, 따뜻한 손수건이 자신의 얼굴을 훔친다. 흠칫 놀란 건우가 돌아보자, 간호사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아줌마도 없는 것보단 낫구나.

다시 집중을 하는 건우. 생리식염수로 깨끗하게 세척해서일까? 회장의 내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게 뭐지?

‘회장 내부에 핏빛 줄 무늬가 보인다. 궤양? 아니다, 한 줄이 아니야.’

여러 줄의 핏빛 줄 구름이 꼬여가며 회장을 감싸고 있다. 건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한번도 본 적 없지만 논문으로만 봤던 그것.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건우.

“Crohn’s disease(크론병).”

오지선이 모니터 기기에서 고개를 획 내밀었다. 눈이 왕방울만해진 그녀가 물었다.

“크, 크론병이요?”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에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이다. 궤양성 대장염과 달리 염증이 장의 모든 층을 침범하며, 병적인 변화가 분포하는 양상이 연속적이지 않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원인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며, 난치 희귀질환이라는 점.

개복 부위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우 옆으로 온 오지선이 눈을 크게 뜨고 안을 들여다 본다. 한참을 보던 오지선이 건우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알아요?”

“………………….”

회장을 절개해 보지도 않았는데 내부 염증을 알 수는 없다. 적어도 오지선의 상식으론 그렇다. 하지만 눈 앞의 이 의사는 분명 크론병이라고 했다. 자신이 모르는 시진 방법이 있는 걸까?

“네? 모건우 선생님. 장내시경도 안 했는데 회장 외벽만 보고 어떻게 아냐고요?”

“……………………….”

오해하지마, 네 말을 씹으려고 이런 게 아니라 뭐라고 답해야 될지 몰라서 그런 거니까. 내 눈에 투시 능력이 있소 하면 너 나 정신병원 보낼 거잖아. 잠깐 말을 잃었던 건우가 머뭇거리며 답한다.

“크론병은 대장과 소장이 연결되는 부위인 회맹부에 질환이 발행하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오지선이 계속해 보라는 듯 바라본다. 급히 논문으로 봤던 내용을 떠벌리는 건우.

“병적인 변화가 회장과 맹장에 같이 나타나는 경우가 40~60%로 가장 흔하고, 소장에만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30%, 대장에만 발병하는 경우가 10~25%를 차지합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그게 이 환자가 그 병이란 증거가 돼요?”

하, 집요한 여자. 아니 의사라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당연하긴 한데. 아씨 뭐라고 해야 돼?

바로 그때 간호사가 외쳤다.

“선생님! 튜브에서 분비물이 나와요!”

간호사의 말에 동시에 복강 내로 고개를 돌리는 오지선과 건우. 간호사의 말처럼 방금 연결한 drainage tube(배액관)에서 분비물 배액이 흘러 나오고 있다. 오지선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anastomosis(문합) 제대로 한 거 맞아요?”

“………………….”

설마 손이 제대로 안 움직여 준 걸까? 오지선은 직접 회장을 확인해 본 후 인상을 썼다.

“아닌데. 제대로 했는데 누출이 있네. 궤양이면 이럴 리가 없잖아요?”

“…………………….”

크론병이라고 이 양반아. 오지선이 잠시 고민한 후 말했다.

“병리조직 검사 해서 본원 보내보죠.”

“예.”

“그럼 조직 떼어 내고 일단 봉합하실 거죠?”

오지선이 물러나고 건우가 환자 앞에 섰다. 하지만 건우는 오지선의 말대로 할 생각이 없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뭘요, 크론병이요?”

“아뇨, 장 전체를 촉진(觸診)으로 확인해 누출 부위를 찾을 겁니다.”

말은 그리 했지만 사실은 시진(視診)으로 볼 생각이다. 건우에겐 촉진보다 시진이 더 정확하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