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화. 무릉도원 병원 (2)
순간적으로 들고 있던 소시지를 화단에 툭 떨어뜨리고 양 손을 쭉 내밀고 기지개를 펴는 건우. 좋아 자연스러웠어.
“으으, 버스를 오래 타서 그런지 몸이 좀 굳어서요.”
건우가 일어나며 붉어진 얼굴로 팔을 빙글빙글 돌린다. 힐끔 보니 병원 입구에 선 간호사가 보인다. 한 40대 후반쯤 되는 것 같다.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얼굴의 간호사가 물었다.
“처음 보는 분인데. 병원 오신 건가요?”
“아.”
건우가 주머니를 뒤졌다. 하, 신분증도 가방 안에 있구나.
“잠깐만요.”
고양이에게 소시지를 주느라 헤집어 둔 가방이라 그런지 더 찾기 힘들다. 이게 어디 있더라. 한참 가방을 뒤지고 앉은 건우를 기다리는 아줌마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진다. 게다가 아까부터 자신의 왼쪽 눈을 자세히 바라본다. 뭐, 처음 보면 생소하긴 할 것이다. 마침내 옷가지 사이에 숨어 있던 신분증을 찾아낸 건우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여기, 내일부터 여기서 일할 의삽니다.”
신분증을 내미는 건우를 보곤 깜짝 놀란 간호사가 호들갑을 떤다.
“어머나! 죄송합니다, 선생님.”
간호사가 얼른 뛰어내려와 가방 밖으로 삐쳐 나온 옷들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우와, 사람이 어떻게 옷을 저렇게 빠르고 반듯하게 접을 수가 있지? 옷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인가? 순식간에 가방 정리를 마친 간호사가 가방을 닫은 후 세웠다. 그거 무거울 텐데.
“안내해 드릴게요, 이 쪽입니다.”
“제가 들죠.”
간호사는 가방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배시시 웃는다.
“좀 무겁네요.”
“주세요.”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로비로 들어온 건우가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일단 환자가 단 한 명도 없다. 로비에 구름 같이 몰려 있는 환자 떼거리를 보아온 건우는 환상과도 같은 이 장면이 너무도 생소하다. 속도 모르는 간호사가 여행가방을 빼앗아 ‘원무과’라고 쓰여있지만 달랑 책상 두 개 있는 자리 옆으로 밀어 넣는다.
간호사가 얼른 손을 털며 말했다.
“원장님이랑 과장님은 잠깐 출타하셨거든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음, 자신은 도시의 큰 병원에서만 근무해서 해본 적 없지만 시골 의사들은 house call(왕진, 往診)을 가기도 한다고 들었다. 원장선생님이 그걸 나가신 모양이군.
“누가 아프신가 봅니다?”
“네?”
간호사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치를 챘는지 또 배시시 웃는다.
“아뇨, 요 앞 소 키우시는 전씨 아저씨네 가셨어요. 오늘 소 잡았다고 막걸리 한잔 자시고 오신다고 했어요.”
“…………………….”
황당한 소리다. 지금이 몇 신데, 아직 오후 다섯 시인데. 아직 근무시간인데 나가서 한우에 막걸리나 빨고 있다고? 원장 선생씩이나 된 양반이? 한숨이 푹푹 나온 건우가 습관적으로 가운 주머니를 찾다가 사복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허공을 휘젓는 두 개의 손. 간호사가 뭐 하냐는 듯이 쳐다 본다. 하, 씨발 쪽 팔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손을 내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건우가 재빨리 화제를 돌린다.
“직원은 몇 명입니까?”
간호사가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저까지 열 명이요.”
“……………………….”
“의사 선생님이 원장님까지 네 분이시고, 간호사가 저 포함 셋, 과장님 한 분, 병원 일 도와주시는 청소 아주머니랑 경비 아저씨가 전부예요.”
뭐냐, 이 조합은. 간호사 숫자보다 의사가 더 많은 건 또 뭐야?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의사가 달랑 넷이라고? 동네 병원도 이거 보단 크겠다. 간호사가 로비 옆에 있는 문을 눈짓한다. 저 쪽으로 가란 건가? 문 앞에 잠시 섰다가 다시 걸으려던 건우가 열리지 않는 문에 머리를 부딪힐 뻔 한다.
“어…….”
간호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자동문 아닌데.”
“…………………….”
하, 그래. 시골 병원이니까. 건우가 유리창이 있는 알루미늄 문을 밀었다. 그래도 기름칠은 잘해뒀는지 부드럽게 열리는 문. 여긴 뭐야, 응급실인가?
“ER입니까?”
“네, 일단은요. 근데 외래도 여기서 봐요.”
“……………….”
하, 응급실에서 외래를 봐? 한숨 나오는 일 투성이다. 어? 그래도 병상이 열 개나 되네? 병원 규모에 비해 병상 숫자가 많다. 텅 비어 있는 병상들을 바라본 건우가 물었다.
“환자 숫자가 꽤 됩니까?”
“음, 여름엔 좀 있어요. 요 앞 계곡에 놀러 왔다가 다친 사람들이 몰릴 때가 있거든요.”
“입원실은 어딥니까?”
“여긴데요?”
“……………………….”
“여기가 응급실 겸, 입원실 겸, 외래진료실이에요, 선생님. 그래도 이 근방 20km 내에는 저희 병원이 제일 커요.”
좋겠다, 이 아줌마야. 건우가 혀를 차며 말했다.
“OR(수술실)은요?”
“저쪽에 두 개 있습니다, 선생님.”
두 개? 어제까지만 해도 수술실만 서른 개가 넘는 병원에 있었는데 고작 두 개란다.
“PA(수술간호사)는요?”
“따로 없는데 여기 간호사들이 대충 자기 몫 해요.”
“하… SN(Scrub Nurse)은 당연히 없겠죠?”
“하하… 뭐 그렇죠.”
“마취과 선생은 있고요?”
“네! 있어요!”
그건 다행이다. 마취과 선생만 제대로 있어도 수술이 필요할 때 할 수 있을 테니.
“아까 의사가 원장님까지 넷이라고 하셨는데. 마취과 선생 한 명 빼고 나머진 담당과가 뭡니까?”
간호사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원장선생님이 내과, 이지훈 선생님이 신경외과, 장치영 선생님이 흉부외과고, 마취과 선생님은 오지선 선생님이세요.”
응? 뭔 이런 병원에 흉부외과 전문의가 있어? 여기서 심장수술 할 것도 아닌데. 그때 품 속에서 전화 벨이 울렸다. 엄마다.
건우가 간호사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준 후, 전화를 받으며 병원 밖으로 나왔다.
“여보세요, 엄마.”
[건우야, 잘 도착했니?]
“네, 좀 전에 왔어요.”
[가는데 힘들진 않았고?]
“네, 버스 타고 자면서 왔는데요 뭘. 좀 전에 병원 도착해서 안내 받고 있었어요.”
[병원은 어때? 일할 만 할 것 같아?]
“아, 뭐…….”
[건우야, 사실 엄마가 아는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엄마의 아는 사람. 그 사람은 엄마가 다니는 교회의 집사 아줌마다. 아빠가 60만원이나 하는 1인실 병원을 거쳐 입원하는 꼼수를 알려준 그 아줌마를 말하는 것이리라. 듣기로는 남편이 제약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 들었다. 그래서인지 업계 정보에 대해 잘 아는 듯했다.
[그 무릉도원 병원 말이야. 그 사람 말이, 연성대학 병원이 강원도 영월에 대규모 암 환자 전용 요양병원을 지을 생각인가 봐. 지역사회 공헌을 위해 8년 전부터 미리 동네 사람들 인심 얻으려 지어둔 병원이라더라.]
제기랄, 그런 이유였냐? 어쩐지 이런데 동네의원도 아닌 연성대학재단 병원이 있는 게 이상하다 했더니. 이 새끼들이 참 장기간 공을 들였구나.
“그래요?”
[응… 그런데 그 사람 말이… 거긴 본원이나 규모가 있는 분원에서 눈 밖에 난 의사들이 가는 곳이라고…]
“………………….”
이사장의 눈 밖에 난 의사. 그래, 난 그런 놈이었구나. 뭐 대충 예상은 했다. 가만, 그렇다면 여기 있는 의사들이 다 그런 사람이란 건데? 잠깐 생각하는 동안 내 침묵이 절망이라 생각한 엄마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건우야, 괜찮겠니? 정 못하겠으면…]
“아, 아뇨 엄마. 전 괜찮아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일 텐데요 뭐.”
솔직히 속은 뒤집어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연봉이 삭감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받았다. 왜 더 주는진 모르겠다만 일단 원래 연봉보다 좋은 조건으로 계약했다. 게다가 입을 막을 생각인지 어제 준다던 2억도 입금 받았다.
“엄마, 돈 확인했죠?”
[어, 맞아. 확인했는데 이거 날 주면 어째? 너 거기서 집 얻어야 되잖아.]
“월셋집 얻었어요. 이따 가서 짐 풀어야죠.”
[기왕 얻을 거 전셋집 얻지, 돈 아깝게.]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뭐.”
[………………….]
아, 이렇게 말하면 금방 그만둘 것처럼 들리겠구나. 엄마 걱정하시겠다.
“적응하고 나서 차차 얻을게요, 엄마. 그보다 식당 일 그만두고 가게 하나 차려 보세요. 그 돈이면 가능할 거예요.”
[아들 돈을 어떻게 쓰니…]
“아들 돈이니까 써야죠. 생판 남의 돈 쓰시려고요? 하하.”
엄마랑 통화를 하는 도중 인기척이 났다. 습관적으로 병원 입구에서 한걸음 비켜서며 통화를 계속하는 건우.
“너무 걱정 말아요, 엄마. 주말에 올라갈게요.”
[그래, 전화 자주하고.]
엄마와 통화 중에 나타난 인기척. 그런데 병원 안으로 사라지는 기색이 없고 계속 주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핸드폰을 들고 슬쩍 보니 머리가 하얀 작은 할머니가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할 말이 있으신가?
“엄마,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
전화를 끊은 건우가 어쩐지 안색이 나빠 보이는 할머니를 보며 물었다.
“병원 오셨으면 들어가셔서 수속 밟으시면 됩니다.”
할머니는 살짝 인상을 쓰며 아랫배를 쓰다듬는다.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가 자꾸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할머니? 안내해 드릴까요?”
“저기, 의사 선생인가?”
“아, 뭐. 내일부터긴 하지만 일단은 맞습니다.”
“나 배가 아파서.”
“배요? 언제부터요?”
“한 일주일 됐어.”
“그래요? 그럼 한번 보죠, 들어오세요.”
“저기 이거.”
할머니가 검은 비닐봉투를 내민다.
“뭐예요?”
“감자랑 옥수수 찐 거.”
“하하, 할머니 드세요.”
“그래도.”
설마 이 병원은 감자랑 옥수수를 치료비 대신 받는 건 아니겠지? 의심의 눈초리로 할머니를 바라보았지만 순진한 얼굴의 할머니는 어서 받으라는 듯 봉투를 내민다. 할 수 없이 봉투를 받아 들자 조금 전에 쪄 냈는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래, 시골병원이라 이런 소소한 맛이 있구나. 생각해보니 좀 출출하긴 하네.
할머니와 함께 병원 안으로 들어와 간호사가 안내해줬던 입원실 겸 응급실에 와 병상에 앉힌 건우가 작은 간호사 스테이션 위에 널브러진 청진기를 가져오며 말했다.
“증상이 어떻게 되세요?”
할머니는 속이 거북한지 인상을 쓰고 자꾸만 배를 만진다.
“그게, 자꾸 배가 아파.”
“계속이요?”
“아니,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해. 그래서 병원에 올까 말까 고민했어.”
“다른 건요?”
“추워, 열도 나는 거 같고.”
“열 좀 재볼게요. 아 해보세요.”
온도계를 입에 물리고 잠시 후 뺀 건우의 표정이 달라졌다.
’38.1°C. 정상체온보다 조금 높다.’
그렇다고 아주 위험한 체온은 아니다. 괜히 할머니를 불안하게 만들기 싫었던 건우가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뭐 특별하게 드신 건 없고요?”
“맨날 먹는 거 먹었지.”
“맛이 좀 상한 거 같은데 그냥 드셨거나 한 건 아니고요?”
“응, 그런 건 없었어.”
할머니의 전신 상태는 무척 쇠약하다. 영양상태도 불량해 보인다. 157~8cm 정도 되는 키에 체중은 40kg 초반으로 보인다. 오한, 발열, 복통. 설마 장티푸스(腸typhus)는 아니겠지?
할머니가 쪼글쪼글한 손으로 이마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자꾸 추운데 얼굴엔 열이 나.”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이 보인다. 작고 왜소한 할머니가 가엽게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급격히 뛰기 시작하는 심장. 건우가 왼쪽 가슴을 만지며 살짝 인상을 썼다.
‘제길.’
할머니가 말했다.
“추워, 이불 없어? 화장실도 가고 싶네.”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 괴롭다.
“여기 잠깐 누우세요, 이불 갖다 드릴 테니 눈 감고 좀 쉬세요.”
“응…….”
할머니가 배 위에 손을 올리고 가지런히 눕는 순간 번쩍 빛나는 건우의 왼쪽 눈. 복부를 바라보는 건우의 인상이 와락 구겨진다.
‘이게… 뭐야?’
회장, 맹장 이행부에 가득 찬 이물질들. 이 정도라면 분명 장에 구멍이 난 거다.
‘Ileum(회장) 말단부 perforation(천공)? 장벽에 염증성 병변, 장벽에 심한 부종.’
건우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간호사! 마취과 의사 당장 불러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