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화. 돌아온 펠로우 (8)
은비가 눈을 크게 뜨고 손짓발짓을 한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 날 정말 난리가 났었대. 소속병동 수간호사 쌤도 불려가고, 관리실 직원들까지 싹 호출.”
“잉? 일개 펠로우가 뭔 관리실 직원에 수간호사님까지 호출을 해?”
“그 간호사가 SN,(Scrub Nurse)이었던 거지.”
스크럽 간호사,
수술실 내 멸균 영역을 관리하는 간호사다. 그들은 환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수술을 할 수 있게 환경을 꾸미고 집도의의 의도에 맞게 보조 하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에서 수술 장면이 나올 때 집도의에게 수술 도구를 전달하는 것도 바로 이들의 역할이다.
지수가 그제야 상황이 이해됐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오프 아니었고?”
“아니, 그 날 오후에도 수술 예약 있었대. 상시 멸균에 힘써야 할 SN이 들 고양이 만지는 걸 본 모건우 선생이 다 뒤집어 엎은 거야. 담당 교수들까지 쫓아 내려왔다가 이야기 듣고 명백히 간호사가 잘못한 일이니 뭐라 말리지도 못했나 봐. 그 사건 때문에 간호사랑 관리인 몇 명도 해고됐어.”
“헐… 고양이 만지고 손 소독 잘하라고 말하면 되는 걸 뭐 그렇게까지…….”
“그러니까. 그렇게 예민한 인간이니까 알아서 잘 하라 그거지.”
“하, 진짜 제발 ER에는 오지 않기를… 만약 오면 진짜…….”
푸념을 하던 지수가 순간 어느 곳을 뚫어지게 보았다. 한참 멀리를 보다가 다시 현수막을 보는 지수. 은비는 그런 지수를 보고 물었다.
“뭐해? 우리 늦었어. 빨리 걸어.”
“은비야.”
“왜?”
“저 사람…….”
“응?”
“저 사람 모건우 선생님 아니야?”
“헉, 어디?”
급히 고개를 돌린 은비가 지수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그대로 몸을 굳혔다. 병원 입구 왼편 맨 끝, 구석진 화단에 쪼그리고 앉은 남자가 보인다. 현수막에 인쇄된 그 인간. 모건우 선생이다. 문제는 그가 쪼그리고 앉아 하는 행동이다.
“저, 저게…….”
소문이 무성한 악당 모건우.
쪼그리고 앉아 앞으로 쭉 내밀고 있는 그의 손 안에 작은 소시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화단의 풀 숲으로 수줍게 고개만 내민 작고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그가 주는 소시지를 받아 먹으며 맛을 음미하듯 귀여운 눈을 꼭 감고 있다.
등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흐르는 걸 느낀 은비가 말을 더듬었다.
“서, 설마. 닮은 사람이겠지?”
지수도 듣던 바와 너무 다른 모습에 동조한다.
“그, 그렇겠지?”
예민 보스, 악당 모건우의 소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하던 지수가 맞은 편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돌아 나오는 의사를 보고는 얼른 인사를 하려다 몸을 굳혔다. 그 의사가 쪼그리고 앉은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하는 소리 때문이다.
“여, 건우.”
눈이 동그래진 은비와 지수. 그녀들의 눈에 살짝 얼굴이 붉어진 모건우가 일어나 머리를 긁는 것이 보인다. 설마 정말 저 사람이 모건우 선생이라고?
**
하, 쪽 팔려 죽겠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거지?
며칠간 집에서 배 터지게 엄마 음식을 먹고, 손 상태에 대해 가감 없이 고백했다. 물론 너무 걱정하시니 눈은 살짝 다쳐서 그렇다고 둘러댔고 심장 이야긴 언감생심 꺼내지도 못했다. 차차 이야기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집이 주는 달콤한 편안함에 몸을 맡기고 며칠 푹 자고 나선 원장이 오라는 일주일 후, 오후 무렵 병원 앞에 도착했다.
순환버스에서 내려 시간을 보니 오후 한 시 반. 너무 일찍 와 버렸다. 오랜만에 병원 주변이나 둘러 보자는 생각에 화단 근처를 지나다 풀숲 사이에 있던 새끼 고양이를 본 건우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아직도 병원 근처에 고양이가 있다고? 저 병균 덩어리를 병원 근처에 둔다고? 이 새끼들이 다 빠져 가지고!’
간만에 나타나 한바탕 뒤집게 생겼다. 바로 그때 고양이를 쏘아 보던 건우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아니 아프게 콕콕 찌르는 것 같다.
가슴을 부여 잡은 건우가 몸을 앞으로 숙이자 고양이는 살짝 몸을 움찔거리더니 도망갈 준비를 하는 듯 하다. 순간 이식 받은 심장에 뭔가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다. 자신의 시선이 어쩐지 고양이에게서 떨어지질 않는다.
‘귀엽잖아!’
자신의 생각이 생경한 건우가 스스로에게 놀랐다. 본래 자신에게 고양이는 그저 병균 덩어리 그 이상은 아니었다. 비단 고양이뿐 아니다. 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알레르기 질병 중 상당 수는 애완동물에서 온다는 걸 아는 건우는 평소 동물들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심장이 연속해서 두방망이질 친다.
당장 저 귀여운 생명체를 만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든다. 하지만 자신은 의사다. 아무리 진료를 보지 않는다 해도 ER에서 근무하다 보면 위급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자신이 근무 전에 고양이를 만진다? 평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건우는 결국 감성에 져버리고 말았다.
콕콕 찌르는 듯 아픈 가슴을 붙잡고 자세히 들여다 보는 고양이.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무척 말라 있다. 아직 어린 고양이 같은데 저리 못 먹으면 분명 발육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다른 손으로 가방을 뒤져 보았지만 먹을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던 건우는 결국 병원 1층에 있는 편의점에 가 소시지를 사 왔다.
다행히 아직 그 장소에 그대로 있는 고양이. 남자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는지 풀숲에 납작 엎드려 경계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고양이가 보인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소시지 포장지를 풀고 쪼그리고 앉은 건우.
“이거 먹을래? 맛있는데. 냠냠. 이거 봐. 먹는 거야.”
진짜 맛있다고, 이거 한번 먹어보라며 직접 먹는 시늉까지 해대는 자신이 놀랍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할 수 없다. 지금 자신의 행동은 제어 불가한 상태다. 당장 저 귀여운 고양이가 소시지를 먹는 모습을 봐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고양이는 한참 경계를 하다 조심스럽게 풀숲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경계심보다 굶주림이 앞섰던 모양이다. 조금씩 소시지를 먹는 고양이. 소시지를 잡고 있는 손을 통해 전달되는 고양이의 작은 떨림이 무척 가슴 아프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춥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니, 씨발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게 뭔 짓을 하고 있는 거냐고?
난리를 치던 심장이 차츰 진정되는 느낌이 든다. 손바닥을 펴 가슴을 문지르던 건우가 인상을 썼다. 자신의 모습이 병원 건물 유리창에 비쳐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한심해서 인상을 쓴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모습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설마.”
닥터 카터는 자신의 왼쪽 눈과 양 손이 닥터 램지의 것이라 말했다. 심장도 당연히 그의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얼마 후 자신의 심장은 램지의 것이 아닌 혜영 이모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건우는 병원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동물들만 보면 자신이 먹을 것도 나눠줘 버리던 동정심 덩어리 자원봉사자.
‘혜영 이모!’
두근두근! 다시 심장이 빠르게 뛴다. 마치 그래 맞아. 나야 라고 답하는 듯하다. 아니 젠장, 이게 문제가 아니고. 지금 이 상황이 말이 되는가?
사람의 감정 변화는 대뇌 변연계(limbic system) 깊숙한 곳에 위치한 편도체(amygdala)에서 발생한다. 변연계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 분노와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망이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 편도체야 말로 '감정의 관문'이다. 감정이 발생하는 지점은 결코 심장이 아니다. 남의 심장을 받았다고 그의 감정을 가져온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건우가 다시 고양이에게 시선을 준다. 귀여운 고양이는 이제 좀 안심이 됐는지 눈까지 꼭 감고 소시지 맛을 음미 중이다.
“뭐 이런…….”
이건 내가 아니다.
이건 죽은 혜영 이모가 시키는 거지 결코 내가 아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 어깨를 건드렸다.
“여, 건우.”
헉, 제기랄.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이 쪽 팔린 모습을 누가 봤다고 생각하니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일어났지만 얼굴이 시뻘개진 상태. 귀까지 빨개졌는지 얼굴에 열이 나는 것이 느껴진다.
응급의학과 치프 최용.
안경을 쓰고 단정한 머리에 175cm 가량되는 키의 젊은 의사가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모건우! 진짜 돌아왔구나!”
“……………………….”
반겨주는 건 좋은데 꼭 이 타이밍이어야 했니?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긁게 된다.
“어.”
최용이 건우의 어깨 동무를 하며 웃었다.
“진짜 고생 많았다. 원장님께 전달 받았어. 너 ER에서 임시 근무한다며? 나중에 소주 한잔하면서 거기 이야기 좀 들려줘라.”
“뭐, 그러지.”
최용이 어깨동무를 한 채로 화단에 떨어뜨린 소시지를 주워 먹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는 인상을 썼다.
“뭐야, 누가 병원에서 고양이 먹이를 줬어? 이러니 자꾸 고양이들이 얼쩡거리지.”
최용이 핸드폰을 꺼내 관리실로 연락을 하려 하자, 다시 두방망이질 치는 건우의 심장. 살짝 인상을 찡그린 건우가 최용의 어깨동무를 한다.
“관리자가 보면 내쫓겠지. 치프가 뭐 이런 거까지 신경을 쓰냐? 들어가자.”
핸드폰을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최용.
“뭐야? 너 고양이 엄청 싫어하잖아? 옛날 사건 분명히 기억하는데.”
“……………………….”
“죽을 위기를 넘기고 오면 사람이 바뀐다던데 너도 그런 거냐?”
“뭐, 그런가 보지. 아무튼 빨리 들어가자.”
최용의 어깨를 꽉 잡고 병원 건물로 급히 들어가려는 건우. 다행이다, 이 녀석이 고양이에게 소시지를 주는 것까지는 못 본 모양이니. 바로 그때 병원 입구 근처에 멍한 얼굴로 서 있는 두 여인을 본 최용이 손을 들었다.
“은비씨, 지수씨. 좋은 아침. 아, 아침이 아니지 참.”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꾸벅 숙이는 두 여성이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젠장, 최용이 아는 척 하는 걸 보니 병원 관계자인 모양인데 설마 소시지 주는 걸 본 건 아니겠지? 하, 첫 날부터 창피해 미치겠다.
팔에 힘을 주고 최용을 끌고 가듯 들어가는 건우.
병원 안으로 들어가 버린 건우와 최용의 뒷모습을 멍하게 보던 은비가 중얼거렸다.
“뭐야,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그건가? 아니, 잠깐만 아까 최선생님이 고양이 싫어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면서 그 사건 기억한다고 했는데? 그럼 그 일이 진짜 있었던 일이란 소린데… 뭐지?”
중얼거리던 은비가 한참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다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지수를 보았다. 그런데 친구 얼굴이 이상하다. 꼭 울기 직전의 표정 같다.
“너 왜 그래?”
“하…….”
“응?”
“방금 못 들었어?”
“뭘?”
“최선생님 이야기.”
“뭐라고 했더라? 헉! E, ER 임시근무! 맞아! 그렇게 말했어!”
“나 어떡하냐, 은비야…….”
“하, 하하… 아냐 방금 봤잖아. 동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어. 봤잖아, 너도?”
지수의 얼굴은 여전히 울상이다.
“살인마들도 살인하기 전에 거지한테 적선도 하고 교회도 간다던데 일종의 의식 같은 건 아니겠지? 레지던트들이랑 간호사들 다 태워버리기 전에 미리 선행을 한다던가 하는.”
“미친, 저 선생님이 의사지 살인마냐?”
“하…….”
은비는 헛소리를 횡설수설 늘어놓으며 울상을 짓는 친구의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하는 중이다.
“괜찮아, 우리 지수. 저 선생님이 갈구면 수술실로 피신 와, 알았지?”
“하… 진짜 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