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닥터 프랑켄슈타인-1화 (1/230)

#제 1 화. 돌아온 펠로우 (1)

시리아 북동부 하사카(Al-Hasakah), 국경 없는 의사회 캠프.

사막의 모래바람을 하도 오래 맞아 외벽이 누렇게 굳어버린 간이 병원 건물에서 젊은 동양인 의사가 터벅터벅 걸어 나오고 있다. 피 묻은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피가 튄 안경을 의사 가운에 닦으며 건물 뒤로 돌아간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털썩 주저앉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

뽀얀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하늘. 멀리 구름 낀 하늘이 번쩍거린다. 저건 번개가 아니다. 폭격이다. 헛웃음을 짓는 남자 의사가 입에 담배를 문채 중얼거렸다.

“저 모습도 이제 익숙해졌네.”

바로 그때 그가 나타났던 길로 또 다른 젊은 동양인 의사가 나타났다. 그는 이미 담배를 태우고 있는 남자를 보고는 씩 웃더니 그의 옆으로 걸어와 주저앉아 손을 내밀었다.

“담배 하나만 주라.”

“없어?”

“어, 보급 오면 갚을게.”

안경 쓴 의사가 다시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 개피를 꺼내 건네고 불을 붙여 준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하늘을 보며 담배연기를 뿜어댄다. 늦게 나타난 의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동현아 우리 며칠 째지?”

“날짜는 왜 세냐? 그냥 그 날이 그 날인가 보다 하면 되는 건데.”

“내 인생에 가장 긴 삼 개월이니 그렇지.”

“뭐 그건 동감.”

동현이라 불린 안경 쓴 의사가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 후 말했다.

“아직 한 달 남았어.”

“하… 씨발 삼 년은 있었던 거 같은데 아직도 두 달 밖에 안 지났어?”

“킬킬. 나도 매일 하는 생각이지.”

동현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키들거리다 물었다.

“석진이 너 한성대 병원에서 왔다고 했지?”

“어.”

“치프(Chief)?”

“미쳤냐, 치프 됐으면 거기 눌러 앉았지. 너도 마찬가지 아냐?”

동현이 턱을 괴며 말했다.

“그래, 나도 전문의 따자마자 왔지. 외국 의사들이야 진짜 봉사하는 마음으로 왔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한국에서 파견 온 의사들은 뻔하지. 전문의는 땄는데 병원에 자리는 없고. 개인병원 차릴 돈도 없으니 봉사라도 다녀오면 임용 때 교원인사 위원회한테 점수라도 더 딸까 싶어 오는 거잖아.”

석진이 허탈하게 웃었다.

“우리 같이 돈 없고 빽 없고 줄도 없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동현이 피우던 담배를 끄고 새 담배를 물며 말했다.

“그래도 시카고에서 온 닥터 저메인 존스랑 프랑스의 닥터 제롬 페르낭데즈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잖아. 잘 보여서 그 쪽 병원에 스카우트 될 기회는 있지.”

석진이 인상을 썼다.

“그게 되겠냐?”

동현이 힘 없이 웃으며 침묵으로 동의한다. 잠시 말 없이 하늘을 보며 신세 한탄을 하던 석진이 물었다.

“그 사람 살아 있을까?”

“…………………….”

“있잖아, 2년 전에 여기 왔었던 너희 병원 펠로우.”

“죽었겠지. 그때 봉사 왔던 의사 전원이 실종 됐는데.”

“하, 나도 이야긴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었어?”

동현이 무릎을 세워 모으며 말했다.

“나도 잘 몰라. 내가 레지던트 1년 차 때 이미 펠로우였으니 감히 말 걸기도 힘든 선배였지. 게다가 과도 달랐어.

“아, 그 이야기도 들었어. 더블보드였다며?”

“음, GS(일반외과)랑 EM(Emergency medicine).”

“으… 도대체 얼마나 공부벌레였길래 펠로우 되자마자 더블보드를 따냐?”

“바로 딴 건 아니야, 2년인가 3년차에 EM 땄어. 다들 대단하다고 난리였지.”

석진이 자신도 담배 하나 더 달라는 듯 손가락을 비비자, 동현이 담뱃값을 통째로 꺼내 놓으며 말했다.

“그냥 가져가고 보급 나오면 한 갑으로 갚아라.”

석진이 담배를 열어보며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 갑도 안 남았는데 무슨!”

“인생 덜 살았네. 이자는 안 치냐?”

“치사한 새끼.”

툴툴거리면서도 가운 주머니에 담배를 넣는 석진이 새 담배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래서 더블보드까지 딴 대학병원 펠로우가 왜 MSF(국경 없는 의사회)에 지원한 거래?”

동현이 눈을 깜빡이며 하늘을 보았다.

“그냥 우리 같은 신세였던 거지. 줄이 없으니 교수임용은 힘들고 더블보드를 따면 병원 입장에서 돈 없고, 빽 없고, 줄 없다고 펠로우 안 시켜줄 수 없잖아. 다른 기수들 눈치도 보이고.”

석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그 선생님도 교수임용 때문에 온 거였어?”

“소문에는 그때 파견된 의사들 때문이란 말도 있었어.”

“음, 그건 설득력 있네. 그때 의사들이 완전 드림 팀이었으니까.”

“이식 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 닥터 카터, 응급의료에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닥터 램지가 왔었으니까.”

“그 분들께 잘 보여서 스카우트 되려는 속셈이었을까?”

동현이 석진을 째려보았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고인이 되신 분이다. 말 조심해.”

석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동현은 자신과 친하지 않았지만 같은 대학 선배를 기회주의자로 만든 석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려 버린다. 석진이 슬쩍 동현의 팔을 건드리며 말했다.

“야, 화났냐?”

“됐어.”

“미안하게 됐다.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왜 비꼬겠냐? 그냥 그걸 빗대서 내 신세 한탄 하는 거지. 너나 나나 그런 행운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잖아?”

“………………….”

“네가 이해해라. 나쁜 뜻은 아니었으니까.”

석진의 말에 슬쩍 표정을 푸는 동현. 석진은 그런 동현의 표정을 살피다 슬그머니 물었다.

“2년 전 그 폭격 말이야. 나도 소문만 들었는데 미사일이었어?”

“RPG – 7이라더라. 반정부군 발표에 의하면 병원 건물인지 모르고 쐈다고는 하는데. 당시 병원에서 정부군 고위 관료가 치료 받던 중인 걸 알고 노렸다는 의견도 있었어. 게다가 반정부군 놈들이 병원이 있던 지역을 먹어 버리는 바람에 구조대 파견도 불가능했었대.”

“그때 뉴스 보니까 건물이 아주 폭삭 주저 앉았던데. 구조대 파견했어도 성과는 없지 않았을까?”

“음, 아마도.”

“파견 의사랑 간호사, 자원봉사자들까지 총 21명이나 사망했었잖아.”

“일단은 전원 실종처리지. 아직 시신을 못 봤으니까.”

“살아 있었으면 벌써 나타났겠지. 참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모건우.”

“모건우 선생님. 음, 그런 이름이었구나. 실력 있었어? 아, 더블보드인데 실력 없는 것도 웃기겠네.”

“나도 들은 이야기인데 엄청난 실력은 아니었지만 대충 자기 몫은 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더라. 짜증이 좀 많은 사람이란 소문도 많았고.”

“짜증?”

“음, 간호사가 환자 처치 지시서 쓰잖아? 근데 글씨가 끝 줄을 조금 넘어가기만 해도 그 면 전체를 빨간 볼펜으로 쭉쭉 그어 버리고 새로 쓰라고 할 만큼 까칠했다고 하더라.”

“음, 더럽게 피곤한 타입이네.”

“뭐 하여간 다른 사람들 감정에 별 관심이 없는 타입이었어. 말 걸기도 힘들었고.”

“킥킥, 야 너 그때 레지던트 1년차였다며. 어디 감히 다른 과 펠로우한테 말을 걸어? 그건 그 사람 성격 문제가 아니라 너랑 그 선생님 사이의 격차 때문이었겠지.”

“음, 뭐 그것도 그러네.”

태우던 담배가 필터 끝에 불똥이 닿을 지경이 되어서야 바닥에 던진 두 사람이 가운을 털며 일어났다.

“또 들어가 보자. 응급 환자 천지다.”

“하, 아직 한 달이나 이 짓을 더해야 한다니 돌겠네 진짜.”

바로 그때 멀리서 다급한 아랍어 외침들이 들려왔다.

“ماذا او ما؟ ما هذا ، تعال هناك؟”

“يمكن أن يكون المتمردين ، يكون عصبيا!”

“تأكد من أن لديك سلاح !!”

2년 전 있었던 폭격의 영향으로 병동을 보호하기 위해 상주하는 정부군 군인들의 외침이다. 자동차 시동을 거는 소리, 총기 장전을 하며 뛰어가는 군인들의 발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석진과 동현은 반정부군이 나타났음을 직감하고 얼른 병동을 돌아 입구로 뛰어 들어가려다 멀리 사막을 걸어 오는 한 사람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동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뭐야? 한 명이잖아.”

“야, 저 새끼가 폭탄이라도 들고 있으면 한 명이라도 우린 다 죽어. 빨리 뛰어 들어가!”

“잠깐만, 가만 있어봐.”

멀리 보이는 남자. 약간 길게 기른 머리, 누렇게 변색된 상의에는 피와 녹이 잔뜩 묻어 있다. 군인이라기 보단 탈출한 포로처럼 보이는 남자. 석진은 빨리 피하기는커녕 병동 입구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관찰하는 동현에게 소리쳤다.

“야! 위험하다고!”

그때 정부군 군인들이 차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남자를 포위했다. 총구를 겨눈 군인들이 남자에게 다가가자, 남자는 무언가를 넘겨 주었고, 눈이 왕방울만 해진 군인들이 일제히 석진과 동현 쪽을 보는 것이 보인다. 순간적으로 군인들의 시선을 받은 두 사람이 당황해 뒷걸음질을 친다. 그때 지휘자로 보이는 군인이 고갯짓을 하자, 군인 중 한 명이 차를 몰아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바로 앞에 선 차에 탄 군인. 다행히 프랑스어가 가능한 군인이라 평소 가끔 대화했던 사람이다. 동현이 프랑스어로 물었다.

“카와? 무슨 일 있어요?”

카와라 불린 군인이 뒷좌석을 눈짓하며 말했다.

“두 분 좀 데려오랍니다.”

석진과 동현의 눈길이 저 멀리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군 지휘자에게로 향했다. 정부군 고위 지휘자라 말도 한번 붙이기 힘들었던 무서운 사람. 저 사람이 왜 자신들을 찾는 걸까? 석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저 사람, 다쳤습니까?”

“아뇨, 행색은 좀 그래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럼 저희들을 왜…….”

“대한민국 출신이시죠?”

“예, 맞는데.”

“그래서 모셔 오랍니다. 신원 확인한다고.”

“시, 신원이라뇨? 저희 신원은 확실한데.”

카와가 실소를 지으며 멀리 군인들을 가리켰다.

“아뇨, 의사 선생님들 말고, 저기 저 사람이요.”

석진과 동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와가 내려 뒷문을 열어 준 후 말했다.

“방금 나타난 거동 수상자가 의사 신분증을 제시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의 모건우 선생이랍니다.”

동현과 석진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뭐, 뭐요? 모건우 선생님이라고요?”

카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는 사람입니까?”

동현이 입을 떡 벌리고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양 손을 들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하지만 너무 멀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

“저, 정말 저 사람이 모건우 선생님이란 말입니까?”

카와가 그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다시 물었다.

“그의 신분증을 제시하긴 했습니다, 아는 사람입니까?”

“모, 모건우 선생님이라면 2년 전에 있었던 그 폭격. 그때 실종된 선생님입니다!”

카와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2년 전 국제 의료봉사단체인 MSF의 유례 없는 피해로 인해 시리아 정부는 군 차원의 국제적 사과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카와가 급히 조수석에 있던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

“모건우 선생! 2년 전 반정부군 놈들 폭격으로 실종된 대한민국 의사랍니다!”

처음 한 마디는 프랑스어라 알아 들을 수 있었으나 정신을 차린 카와가 아랍어로 다시 무전을 쳤고 이후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 외침이 무전기를 통해 오간다. 한참 무전기를 들고 있던 카와가 차 문을 탁 치며 말했다.

“빨리 오시랍니다!”

얼떨결에 카와의 차를 탄 동현과 석진. 무전을 들었지만 아직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아 여전히 총구를 겨누고 있는 군인들 사이를 지나 군 지휘관 앞에서 멈춘 차.

석진이 멍하게 양 손을 든 남자를 보고 있는 동현의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맞아?”

군 지휘관과 카와도 동현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동현이 귀신이라도 본 눈빛으로 남자를 살폈다. 길게 기른 머리는 생소했고 턱과 코 밑에 무성하게 자란 수염도 낯설다. 하지만 얼굴은 분명 먼 발치에서 봤던 모건우 선생이 맞았다.

“마, 맞긴 맞는 것 같은데…….”

동현의 말을 들은 카와의 얼굴이 밝아지며 소리친다.

“모건우 선생이 맞습니다!”

군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인 후 손을 들었다. 그러자 모건우를 향해 겨누어져 있던 모든 총구가 방향을 돌린다. 건우에게 다가가 손수 들고 있던 양 손을 내려준 지휘관이 영어로 말했다.

“귀환을 환영합니다, 닥터 모.”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분위기. 석진은 혹시 잘못 본 건 아닌가 불안한지 자꾸 동현을 찔러댄다.

“야, 맞으면 맞는 거지 맞는 거 같은 건 뭐야? 신원확인 잘못하면 우리가 죽는다고. 제대로 다시 봐.”

지휘관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무표정한 남자. 그의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는 동현이 중얼거렸다.

“얼굴은 분명한데… 눈이.”

“눈? 눈이 왜?”

“자세히 봐.”

석진이 눈을 크게 뜨고 모건우를 살피다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홍채 이색증?”

석진과 동현이 바라보고 있는 무표정한 모건우. 그의 눈동자는 일명 오드아이(odd Eye)라 불리는 서로 다른 색깔의 눈동자였다. 한 쪽은 검은색, 다른 한 쪽은 파란색 홍채. 동현이 중얼거렸다.

“원래 저런 눈동자가 아니었어. 그래서 헷갈린 거고.”

“어, 얼굴은? 얼굴은 확실해?”

지휘관과 악수를 마치고 차 쪽으로 얼굴을 돌린 모건우를 본 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모건우 선생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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