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앗!”
차가운 기운에 블레어가 몸을 벌떡 일으켰지만 끈만 팽팽하게 당겨졌을 뿐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당신 정말……!”
블레어가 눈에 힘을 주고 카일을 노려보았지만, 카일에게는 어떠한 위협이 되지 못했다. 카일이 배시시 웃으며 가슴 위에 올려 둔 크림을 핥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술이 들어가 몸이 훨씬 더 예민해져 있었다. 카일의 혀가 닿을 때마다 지나친 감각이 쏟아졌다.
크림은 지나치게 미끌거렸다. 크림을 싹싹 핥아 먹은 카일이 손가락을 세워 그었다. 그 손끝에 새겨진 지문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남아 있는 딸기를 블레어의 입 안에 넣어 준 카일이 이번에는 유두 위에 크림을 올렸다. 지나치게 차가운 크림이 예민한 곳에 닿자 몸이 파드득 반응했다. 크림을 유두 위에 손가락으로 펴 바르자 미끈미끈한 감각이 온몸을 간지럽혔다. 블레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거품이 일어날 때까지 크림을 치대던 카일이 크림을 천천히 핥았다. 어린 강아지가 우유를 핥는 것처럼 순진한 표정이었지만, 그 행동은 지나치게 야했다. 괜히 몸이 속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의 감각이 더 오소소 깨어났다. 크게 한 것도 없는데 괜히 몸이 달았다.
블레어가 무릎을 세워 다리 사이를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눈치 빠르게 블레어의 상태를 알아챈 카일이 다리로 슬쩍 중심을 부드럽게 눌러 왔다. 부드러운 살갗에 피부가 닿자 성기가 완전히 힘을 받아 단단하게 일어섰다.
카일이 부드럽게 성기를 쥐어 왔다. 늘 여유롭고 어른스러운 블레어는 오직 침대에서만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카일은 그 괴리감이 싫지 않았다. 크림이 묻어 있는 손에는 유분기가 흘러넘쳐 있었다. 카일이 미끈거리는 손으로 성기를 쥐고 아래위로 움직이자 블레어의 것이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카일도 사정이 좋지는 않았다. 블레어가 카일의 얼굴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하는 물건에 힘줄이 단단하게 서 있었다. 오늘은 둘 다 조금 반응이 빨랐다. 분위기에 취한 것 같기도 했고, 알코올이 들어간 덕 같기도 했다. 카일이 크림이 묻은 손가락을 블레어의 입에 물려 주었다.
블레어는 입 안이 유달리 약했다. 천천히 손가락으로 입안의 여린 살을 자극하자 블레어가 손가락을 혀로 따라왔다. 블레어가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핥도록 둔 카일이 가볍게 허벅지 안쪽의 여린 피부를 손가락으로 애무했다.
허벅지 안쪽의 부드러운 살을 자극하자 블레어의 다리가 모여 들었지만, 이미 카일이 그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질척질척한 크림에 타액까지 묻자 카일의 손가락이 미끈거렸다. 손가락에 크림을 더 묻힌 카일이 손을 움직여 손바닥에 고루 펴 발랐다. 충분히 손가락에 유분이 묻었다고 판단한 카일이 천천히 블레어의 몸을 이완시켜 들어갔다. 술기운이 오른 블레어의 체온이 평상시보다 높았다.
하나, 둘. 천천히 손가락을 늘려 가자 단단하게 닫혀 있던 구멍이 천천히 풀려 갔다. 카일도 그다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팔이 들려 온몸이 완전히 카일의 시야에 노출되어 있는데다, 다리까지 움직임이 봉쇄되니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블레어의 몸이 사랑스러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도독하게 올라와 있는 유두하며, 군살 없이 떨어지는 허리선과 다리까지. 카일에게 쏟아지는 시각적인 자극도 만만치 않았다. 카일이 뺨을 살짝 붉히곤 배시시 웃었다. 물론 그 순진한 천사 같은 얼굴 밑에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 흉흉하게 고개를 꺼떡거리고 있었다.
찐득한 기름기가 아직 남아 있는 손으로 성기를 몇 번 문지르자, 성기가 배꼽에 닿을 정도로 완전히 일어섰다. 카일이 천천히 블레어의 몸을 가르고 들어갔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질량감이었지만, 오늘은 블레어도 술에 달큰하게 취해 기분이 올라와 있어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안에 자리 잡은 카일이 자신의 상체가 블레어의 몸과 닿을 수 있게 붙여 왔다. 블레어의 상체에 잔뜩 묻어 있는 미끌거리는 기름기가 카일의 몸에도 묻었다. 안 그래도 술기운이 올라서 감각이 더 예민한데, 잔뜩 자극받은 유두가 단단한 가슴에 문질러지자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래쪽의 사정도 매한가지였다. 잘 짜인 복근 사이에 끼어 있는 성기는 몇 번의 허릿짓만으로도 사방에서 자극을 받고 있었다.
“헉, 헉.”
순진한 척하던 카일의 얼굴이 쾌감에 젖어 요염하게 변해 갔다. 블레어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희대의 탕부 같았다. 쾌감에 취해 있던 블레어의 눈이 몽롱하게 풀려 갔다. 그는 카일의 저 표정만으로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정감이 문득 올라왔다.
“카일, 손 좀.”
손을 풀어 주었으면 했지만, 카일은 듣지 못한 척 허리를 움직이는 속도를 올릴 뿐이었다. 블레어는 꼭 사정감이 고양되면 카일의 등을 끌어안거나 긁어내리곤 했다. 오늘은 손이 묶여 그럴 수 없으니 왠지 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블레어가 눈을 질끈 감으며 높은 신음을 내질렀다.
“흐읏, 읏.”
이번에는 카일의 사정도 비슷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아까 블레어가 자신의 가슴팍에 등을 기대고 있을 때부터 이어져 온 흥분이었다.
질척한 점액질이 단단한 배 위에 퍼질러졌다. 블레어가 눈을 살짝 감고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몰려드는 쾌감의 강도가 강했다. 하지만 카일은 블레어가 눈을 감고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블레어의 몸에서 내려온 카일이, 사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성기를 입에 물었다. 안 그래도 예민해져 있는 성기가 따뜻하고 질척한 입 안에 들어가니 엄청난 쾌감이 몰아닥쳤다. 블레어가 깜짝 놀라 카일을 걷어차려고 했지만, 그의 행동 정도는 모두 파악하고 있는 카일이 이미 블레어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충분히 농염하고 진득하게 성기를 애무하던 카일이 블레어의 것을 놓아주고는 유순하게 웃었다. 그렇게 야한 어른의 장난을 치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표정만 보면 꼭 성화에 나오는 천사 같았다. 저 얼굴에 그렇게 속아 넘어갔는데도, 블레어는 오늘도 넘어갔다. 블레어의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가자 카일이 뒤로 내려가 블레어를 품에 안았다.
크림이 묻어 미끌거리는 가슴이 등에 닿자 평상시보다도 자극적이었다. 카일이 블레어의 고개를 잡아 돌려 깊게 입을 맞추었다. 아까 먹었던 초콜릿의 맛도, 상큼한 딸기의 맛도 느껴지는 달콤한 키스였다. 카일의 곱슬곱슬한 고수머리가 블레어의 이마를 간지럽혔다.
키스에 신경이 빼앗겨져 있을 때, 다시 기운을 차린 카일의 물건이 몸을 가르고 들어왔다. 몸에 남아 있는 정액과 질척하게 내벽에 묻어 있는 크림이 부드럽게 침입자를 받아들였다. 모로 누운 카일이 엄지손가락으로 질척하게 유두를 문질렀다.
“하아.”
카일이 한숨 같은 신음을 블레어의 귓가에 흘렸다. 귓가의 솜털이 오소소 일어났다. 블레어는 귀가 약했다. 블레어가 파드득 몸을 움직였는데도,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카일의 손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 손까지 아직 묶여 있어 더욱 움직임이 제한됐다.
“카일, 손, 손 좀.”
블레어가 애원하자 카일이 손을 뻗어 손가락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겹쳐 잡았다. 블레어가 카일의 손을 단단하게 쥐었다. 뭔가 붙들 만한 게 생기니까 훨씬 안정감이 느껴졌다.
퍽.
느리게 움직이는 성기가 몸을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블레어가 쾌감을 느끼는 곳을 익숙하게 자극하는 카일도 잔뜩 흥분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예민한 허리선과 유두를 만져 주면 블레어는 무척 충실하게 반응해 왔다. 이럴 때는 그가 항상 가지고 있는 고고하고 초연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물론 카일은 어떠한 블레어라도 좋았지만, 그는 잔뜩 흐트러져 무언가를 갈구하는 블레어 쪽을 조금 더 좋아했다. 그의 목을 타고 땀이 도로록 흘러내렸다. 방 안은 따뜻했고,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열기는 뜨거웠다. 창에 습기가 어렸다.
카일이 블레어의 목덜미를 빨아들였다. 카일은 늘 블레어의 목에 그의 체향이 진득하게 묻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허릿짓이 점점 빨라졌다.
“응, 앗.”
이번에는 성기에 어떤 자극도 가하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쾌감을 이기지 못한 블레어가 파정했다. 사정을 하면서 온몸이 바짝 긴장하자 카일도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퍽, 퍽, 퍽.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고, 블레어는 지쳐서 카일이 이끄는 대로 흔들렸다. 카일도 천천히 사정했다.
블레어가 탈진한 듯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그때서야 카일이 손목을 꽁꽁 묶고 있던 끈을 풀어 주었다. 워낙 고운 천으로 만든 리본이다 보니, 손목에는 별다른 자국도 남아 있지 않았다. 블레어의 손목 안쪽에 쪽쪽 입을 맞춘 카일이 배시시 웃었다.
그 표정을 본 블레어가 뭐라고 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곧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힘이 들어서 별로 타박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기분이 한껏 고양된 카일이 블레어에게 쪽 입을 맞추고 따뜻한 물과 부드러운 천을 가지러 사라졌다.
노곤노곤 잠이 몰려왔다. 배는 불렀고, 방은 따뜻했고, 잔뜩 몸을 움직였으니 당연히 그랬다. 블레어가 가물가물하게 수마에 빠져들었다. 곧 눈이 감기고 숨소리가 편안해졌다. 따뜻한 물에 적신 천으로 몸을 닦아 주던 카일이 블레어를 불렀다.
“블레어? 자?”
그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뒷정리를 마친 카일이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들어가며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 * *
“블레어?”
카일이 음식을 앞에 두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블레어를 불렀다. 카일의 부름에 화다닥 정신을 차린 블레어가 빙그레 웃으며 카일의 작년 기억을 끄집어냈다.
“작년에는 성탄절을 맞아 함께 외출을 했었죠. 그때 갔던 펍도 오랜만에 다시 가 보고 싶네요. 신년이 되면 함께 갈까요?”
“응, 그러자. 어디라도 좋아.”
카일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카일이 블레어의 접시에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듬뿍 덜어 주었다.
“잘 먹을게요.”
블레어의 인사를 들은 카일이 화사하게 웃었다.
음식은 적당한 온기로 식어 있었고, 방 안에는 눈이 펑펑 내리는 바깥과는 다른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평화로운 성탄절 밤이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