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넣어 줘, 카일.”
블레어가 작게, 하지만 카일에게는 또렷하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일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한 번에 블레어의 몸 안을 파고 들어갔다.
“헉.”
깜짝 놀란 블레어에게서 짧은 탄성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블레어가 반사적으로 카일을 밀어냈지만, 카일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예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흉흉한 부피감이다. 몸이 갈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언제쯤 익숙해질지 알 수가 없었다. 블레어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숨을 들이마셔서 도독하게 올라오는 가슴을 카일이 다시 입술로 덮었다. 향유로 젖어 질척해진 손으로는 풀이 죽어 버린 블레어의 성기를 자극했다.
몸에 맞지도 않는 드레스까지 입고 재롱을 떨어 댄 보람이 없었다. 다행히도 블레어가 제법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카일이 움직일 때마다 풍성한 치맛자락이 서로서로 비벼지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야하게 들려왔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싶은지, 카일이 무릎으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일의 움직임에 블레어가 쉼 없이 휘둘렸다. 혼이 나간 듯 모든 감각을 자신에게 맡기고 있는 블레어를 본 카일이 씩 웃었다.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카일이 어렵지 않게 알고 있는 블레어의 자극점을 반복해서 찍기 시작했다.
“흐윽!”
블레어가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쾌감 섞인 탄성을 질렀다.
아까 손가락이 오갈 때 들려왔던 찌걱거리는 소리와는 다른 느낌이 치맛자락이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버석거리는 천과, 자신의 판판한 배 위 사이에서 문질러지는 성기와 뒤에서 오는 쾌감이 온몸을 덮쳐 왔다.
“카일, 카일.”
블레어가 카일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블레어는 입안이 무척 약했다.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이럴 때마다 블레어는 항상 카일의 입을 찾아들었다. 혀로 입안을 꾹꾹 눌러서 자극해 주면 어린 짐승이 어미의 젖을 찾듯 따라와 카일의 혀를 빨아 대곤 했다. 카일의 숨소리도 점차 거칠어지고 있었다.
“헉, 헉.”
등이야 모두 드러내고 있어도, 평상시와는 다른 두터운 치맛자락이 제법 더운 게 아니었다. 카일의 등 뒤로 땀이 흘러내렸다. 블레어가 다리를 벌려 카일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땀과 드레스 자락과 맨살이 맞부딪히며 자극적인 소리를 자아냈다.
“아, 아.”
쾌감이 점차 차오르고 있었다. 카일이 입을 떼어 내고 자신의 손을 물려 주어 그의 입 안 여린 피부를 자극했다. 블레어가 점점 적극적으로 매달려 왔다. 카일의 허릿짓도 더욱 속도를 붙여 갔다. 기름이 묻은 안쪽 점막이 외설적으로 기둥에 붙었다 떨어지며 카일을 자극하고 있었다. 뒤로 물러날 때는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달라붙었고, 앞으로 진입해 들어갈 때는 그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카일이 양쪽 어깨에 블레어의 다리를 걸고 상체를 세웠다. 카일의 몸에 의해 다리가 접혀진 블레어의 몸이 더 활짝 열렸다. 한겨울인데도 방 안은 지나치게 후끈했다.
“아, 아, 아!”
몇 번 블레어가 외마디 탄성을 지르더니 배 위에 점액질을 쏟아 냈다. 카일이 빙긋 웃으며 블레어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블레어를 몸 위에 올려 이어 가고 싶었지만, 오늘은 블레어가 힘들어 보이니 봐줄 생각이었다.
마음을 굳힌 카일이 뭉근하게 자극점을 문질러 왔다. 지조 없는 성기가 다시 꺼떡거리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향유 덕에 부드러워진 손바닥으로 예민해진 선단을 자극하자 다시 성기가 완전히 고개를 들었다. 카일이 다시 자극점을 천천히 찧기 시작했다.
“블레어.”
이름을 부르곤 작게 웃은 카일이 쪽, 짧게 입을 맞추었다.
“예쁘다.”
블레어가 카일을 보며 홀린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평상시에는 칼같이 존칭을 사용하는 블레어는 침대 위에서는 조금씩 풀어지곤 했다. 블레어의 말이 짧아진다는 것은 그의 이성이 흐려졌다는 방증이었다. 그것을 알아챈 카일이 씩 웃었다.
그 다음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카일에게 잔뜩 매달려 잔뜩 헐떡거리다 다시 가 버린 기억뿐이었다. 몸을 가르고 있던 거대한 물건이 빠져나가는 것만 혼몽한 정신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블레어가 기절하듯 잠에 빠져 들어갔다. 따뜻한 물을 챙겨 와 뒤치다꺼리를 마친 카일이 곱게 잠이 든 블레어의 어깨 위로 이불을 꾹꾹 눌러 덮어 주었다.
카일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든 블레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카일이 블레어의 이마 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매끄러운 뺨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찔러 보던 카일이 블레어의 뒤척거림에 화다닥 손을 뗐다. 블레어의 표정이 다시 편안해지자 카일이 이번엔 입술을 조심스럽게 검지로 매만졌다. 블레어의 얼굴 이곳저곳을 만지던 카일이 풍성한 속눈썹이 자리 잡은 눈두덩이 위에 천천히 입을 맞췄다.
드레스를 입으니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유레호의 인신매매 시장을 덮치려고 여장을 했을 적. 그때는 치맛자락을 잘만 걷어 허벅지에 단도를 꽂아 주었으면서, 오늘의 블레어는 지나치게 부끄러움을 탔다. 덕분에 평상시보다 더욱 감도가 좋았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도록 놓아주고 싶지 않았지만 블레어가 지나치게 피곤해해서 어쩔 수 없었다. 카일이 점액질이 잔뜩 묻은 채로 침대 발치에서 잔뜩 구겨진 드레스를 툭 걷어차 아래로 떨어트렸다. 이걸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간 블레어가 몹시 부끄러워할 것이니 알아서 처리를 해야 했다. 대충 뒷정리를 마친 카일이 블레어의 머리 밑에 팔을 끼워 넣고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후, 정신을 차린 블레어가 사라진 향유와 드레스 한 벌의 처리를 놓고 살짝 골머리를 썩였다는 이야기가 아주 사소한 여담으로 남았을 뿐이다.
Al coda Ⅱ: 육아 일기
블레어가 마차에서 내렸다. 내궁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공손하게 인사해 왔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소백작님.”
블레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케이프까지 확인한 블레어가 기사의 뒤를 따랐다. 테오도르가 아드리아나와 결혼하면서 국서가 되자, 자연스럽게 모네터리 백작가의 후계 위는 블레어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물론 아직 아버지께서 건재하시니 블레어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모네터리가의 후계자로 공표되며 대내외적으로 소백작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 블레어에게 일어난 변화의 전부였다. 과거에는 아예 모네터리 백작가의 상속권을 포기했었는데, 이번에는 돌고 돌아 마침내 그가 모네터리가의 후계자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소백작이라고 불릴 때마다 블레어는 기분이 상당히 복잡미묘해졌다.
기사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자 응접실에 아드리아나와 테오도르가 앉아 있었다. 블레어가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로서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황제 폐하.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잘 지낸 것 같아 보여? 정말? 그대 눈이 좀 이상한 것 아니야? 진찰을 받아 보는 게 좋겠어. 궁의를 불러 줄까?”
아드리아나가 눈 아래로 짙게 내려온 눈그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블레어에게 시비를 걸었다. 괜히 인사 한번 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블레어가 멋쩍게 웃었다. 테오도르가 옆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잘 쉬고 계십니까?”
“아니, 그럴 리가. 힘들어. 난 황제라는 자리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아드리아나가 한숨을 내쉬며 탁자 위로 엎어졌다. 테오도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드리아나의 앞에 찻잔을 밀어 주었다.
“잘 하고 계시는걸요.”
블레어가 잔잔하게 웃었다. 참 보기 좋은 부부였다.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하고 있어도 아드리아나는 꽤 능력 있고 열심히 일하는 황제였고, 테오도르도 옆에서 성심성의껏 그녀를 보필하고 있었다. 지금 크라시아 제국은 어느 때보다도 잘 굴러가고 있었다.
아드리아나가 정신없이 바쁜 만큼, 국서인 테오도르도 오히려 관직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바빠 보였다.
“그러니까 나 좀 도와줄 생각 없니? 곧 졸업이잖아.”
“글쎄요.”
블레어가 말을 애매하게 흐렸다. 아드리아나는 황위에 오른 날부터 블레어를 볼 때마다 같이 일을 하자며 그에게 열렬히 구애하고 있었다. 황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녀가 믿을 만한 사람이 적을 것이었다. 황제가 되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인재를 포섭하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일이다. 아드리아나는 최근 혈안이 되어 쓸 만한 인재를 찾고 있었다.
덕분에 졸업하지도 못한 학생들이 최근 아카데미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옆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이 하나씩 사라지는 모양새였다. 처음 학생들 한두 명이 사라질 때는 아카데미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별의별 이야기와 괴소문이 돌았지만, 황궁에서 관직을 얻어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황궁납치기, 따위의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드리아나는 물론 블레어에게도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블레어는 테오도르의 동생이자 그녀가 황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가장 큰 조력자였다. 그가 보여 주었던 몇 가지 재주도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블레어는 황궁으로 넘어오라는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주제를 피해 가며 간접적으로 거절해 왔다.
조금이라도 믿을 만한 사람을 주변에 두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블레어는 다시 황실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황궁에서 십 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블레어는 아직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는 핑계로 미꾸라지처럼 아드리아나의 청을 거절해 왔다. 하지만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포기도 않고 줄기차게 블레어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
어차피 아버지가 노회하신 후 백작 위를 계승하게 되면 블레어도 자연스럽게 바빠질 것이다. 물론 이미 클라라가 상단 쪽의 일을 분리해서 가져갔다지만, 가주의 최종 결정이 필요한 일은 지금도 지나치게 많았다. 오래지 않아 가문의 일도 슬슬 물려받아야 했다. 그에게 남아 있는 여유로운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금은 쉬어야 할 때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