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이 될 일전 (269/270)
  • 마지막이 될 일전

    베이포트 FC와 스톡포트 시티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날, 바그너 아레나의 지붕 위로 보이는 하늘은 곧 치열한 경기가 벌어질 것을 예고하듯 맑았다. 경기를 앞둔 양 팀의 팬들은 먼 독일까지 날아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길, 그리고 치열한 90분이 지난 뒤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포효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들의 바람을 담은 응원과 노래는 경기 시작 전부터 경기장을 채웠고,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있는 곳까지 확실하게 닿고 있었다.

    “괜찮아요?”

    선수들이 먼저 기다리고 있는 라커 룸으로 향하는 동민에게 샐리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베이포트 FC의 오랜 팬이며 구단의 관계자인 그녀는 어쩌면 다시 도전할 수 없을 큰 무대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90분 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대항전의 정상에 설 수도 있었고, 그 마지막 벽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쉬움의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다. 직접 경기를 뛰지 않는 그녀조차도 가늘게 떨리는 손을 스스로 움켜쥐며 떨림을 가라앉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동민과 선수들을 걱정했다.

    지금껏 여러 강팀들을 꺾고 올라왔지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가 되어 선수들의 어깨를 짓누를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게 된다면 이 단판의 승부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지도 몰랐다. 그녀는 축구팬으로서 실수를 해선 안 된다는 부담감과 이로 인한 실수의 뫼비우스의 띠에 빠져 완전히 경기를 망치는 경우를 봐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걱정과 염려가 담긴 질문에 동민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그녀 외의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뭐, 안 떨린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내가 긴장했다는 걸 다른 사람들한테 티 낼 수도 없는 거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베이포트 FC를 맡고 첫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4위를, 두 번째 시즌에도 리그 4위를 유지하며,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결승까지 온 동민이지만 이런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우승을 차지한 감독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그에게 또 다른 부담감을 주고 있었다.

    샐리는 동민이 부담감을 전부 혼자 감내하려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그 부담을 줄여주고 싶어서 말을 하려 했지만 그 전에 동민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정말로. 긴장이 되는 거랑 경기에 부담이 되는 거랑은 다른 거니까요. 미리 환호성 지를 준비해 둬요. 이따가 우승컵 드는 거 봐야죠.”

    동민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면서 라커 룸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걸음 걷던 동민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다시 뒤로 돌았다.

    “아, 맞다.”

    “네?”

    무슨 말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샐리는 보며 동민은 말했다.

    “이따가 이기고 나서 할 말이 있어요. 이따가 봐요.”

    동민은 그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빨리해 다시 라커 룸으로 걸어갔다.

    라커 룸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누군가는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고 있었고 누군가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곧 벌어질 경기가 일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를 정도로 큰 경기라는 것을 베이포트 FC의 모두가 실감하고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수없이 빛나는 선수들 중에서도 많아봐야 28명만이 밟을 수 있는 꿈의 무대. 그 무게감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너무 얼어 있는 거 아냐?”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달랐다. 평소와 똑같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서, 평소와는 다르게 조심스러운 말투를 버리고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의 말투로 동민은 말했다.

    “확실히 명성 같은 거야 저쪽이 위지만 실력은 우리가 밀리지 않아. 쫄지 마. 우리가 여기까지 엘리베이터라도 타고 올라왔나? 그리고 우린 이미 저들을 상대로 이겼던 적이 있잖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던 동민의 목소리에 또다시 그들은 힘을 얻었다.

    “나가서 그때처럼 보여주면 돼.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고, 우승컵을 들 자격이 있다는 걸.”

    남자는 힘 있게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라운드에서 벌어질 전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쉽지 않겠는데.’

    결승전이라는 무게감이 선수들의 어깨를 누르는 것을 최대한 줄이려 말투까지 강하게 나선 동민이었지만, 그 스스로도 승리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다비드 페레즈도 다비드 페레즈지만, 저 괴물 둘을 상대해야 하니까.’

    [레오나르도 다 실바]

    31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8.6/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8.3/20

    선호하는 플레이: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특성:

    장점 - 플레이 메이커, 왼발의 마법사

    단점 - 깃털 몸

    현재 컨디션: 7/10

    [마이크 반 데부르]

    25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8.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8.1/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두 개의 심장

    특성:

    장점 - 캐논 슈터,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

    단점 - 불규칙한 경기력

    현재 컨디션: 8/10

    동민은 스톡포트 시티가 자랑하는 두 명의 플레이 메이커를 바라보았다. 이번 시즌에 들어서 작년보다 더욱 향상된 두 사람은 스톡포트 시티의 리그 우승을 견인한 최고의 콤비였다.

    두 사람은 중앙에서 경기를 조율하고 경기를 풀어가는 동시에, 최전방에 위협적인 패스를 찔러 넣어주거나 때로는 직접 공을 끌고 올라가는 등 다채로운 활약을 보였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 만났던 두 번의 경기에서도 두 사람은 베이포트 FC의 중원을 무력화시키며 스톡포트 시티가 비교적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베이포트 FC의 중원은 그들의 영향력을 도무지 막을 수 없었고 그들은 최고의 활약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저 두 사람을 막지 못하면 오늘 경기에서도 승리는 힘들어. 선수들이 이야기한 대로 잘 막아줘야 하는데.’

    그리고 베이포트 FC가 그런 두 사람을 막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들이 중원에서의 주도권을 가지고 경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지난 시즌에 승리를 거두었던 것처럼 계속해서 스톡포트 시티의 전술 변화를 유도하는 것.

    둘 중 한 가지만 하려 해도 쉽지 않은 일을 동민과 베이포트 FC는 동시에, 그것도 완벽히 해내야만 했다.

    자크 피레스와 트리스 러셀, 해리 맥스웰 세 사람은 유기적인 압박으로 스톡포트 시티의 중원을 상대해야 하고, 박주현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공은 잡으면 측면으로 끌고 들어가며 최대한 스톡포트 시티의 진형을 넓게 벌려야 했다.

    동시에 최전방의 조나단 케인은 주현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중 공을 잡고 있지 않은 사람과 자리를 바꾸어가며 수비를 끌어야 했다.

    단 한 사람만 실수해도 스톡포트 시티에게 쉽게 공이 넘어가고,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 그들의 뜻대로 경기를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잘 되어야 해.”

    동민은 입술을 깨물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할 수 있어.’

    자크 피레스는 이를 악문 상태로 공을 잡고 뛰고 있었다. 팬들의 환호성과 야유가 동시에 그에게 쏟아졌고, 그에게 중압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주고 있었다.

    한 번의 실수로 선수 생활이 끝날 뻔했던, 아니, 끝났던 자신이 이 경기를 뛰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 같았다. 그토록 사랑했던 팀에서 버림받은 그에게 기회를 준 이가 동민이었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라는 무대에까지 서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이 기회를 반드시 잡아 우승컵을 손에 드는 것,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자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달려드는 마이크 반 데부르를 피하면서 그는 아래쪽의 해리 맥스웰에게 공을 패스했다.

    공을 받은 해리 맥스웰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원터치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빠른 패스를 찔렀다. 지금껏 조용하게 팀을 지탱하며 묵묵히 핵심 선수로 뛰던 그인 만큼 결승전이란 큰 무대에서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침착한 모습이었다.

    ‘뚫어낼 수 있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왼발로 공을 살짝 흘리며 수비를 속이고 속도를 유지한 채 사이드라인을 따라 측면으로 달렸다. 그리고 몸의 중심을 슬쩍 좌우로 흔들며 또다시 달라붙는 수비수를 제쳤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라는 생애 최고의 무대에 선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던 예전을 떠올렸다. 과거의 그라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해내야만 한다며 공을 끌고 골문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달랐다. 자신이 팬들의 시선을 독점하고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것보다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베르토 브루노의 밑에서 이를 깨닫고 동민의 지도로 그런 이타적인 플레이를 더욱 늘린 지금의 그에겐 이제 그것이 더 익숙했다.

    수비 두 사람을 뚫어낸 그는 중앙으로 더 들어가지도, 골문으로 크로스를 올리지도 않고 다시 뒤로 내주었다.

    그곳에는 공을 기다리던 피터 아일랜드가 있었다.

    ‘이거야!’

    적지 않은 나이와 떨어지는 기동력 때문에 이제는 자주 경기에 나서지 않는 그였지만, 베이포트 FC에서 7년을 지냈던 그는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느린 발과 떨어지는 활동량에도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아래로 내려섰을 때의 수비 능력, 그리고 정확하게 동료에게 연결시킬 수 있는 크로스였다.

    피터 아일랜드의 눈에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돌파로 우측으로 쏠린 스톡포트 시티의 수비수들과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로날드 조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로날드 조던이 뛰고 있는 골문으로 강하게 공을 차올렸다.

    그의 발끝을 떠나 로날드 조던이 달리고 있는 방향으로 가던 공은 스톡포트 시티의 중앙 수비수인 빈센트 윌리엄스의 머리끝을 스치며 궤적이 바뀌었다.

    ‘안 돼!’

    로날드 조던은 궤적이 바뀌어 달리는 자신의 뒤쪽으로 슬로우 모션처럼 흐르는 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베이포트 FC의 오랜 핵심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번이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 경기에서 생기는 얼마 안 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멀어지는 공을 보면서 필사적으로 몸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속도가 붙은 몸은 멈춰지지 않았고 그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아… 어?’

    로날드 조던의 눈에 있던 희망의 불빛이 꺼지려는 찰나, 흐르는 공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익숙한 흑백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본 그의 눈은 다시 놀라움으로 커졌다.

    측면에 있을 주현이 어느새 안쪽으로 달려오고 있던 것이다.

    주현은 바운드되는 공을 몸을 기울이며 강하게 오른발로 찼다.

    주현의 발을 떠난 공은 제임스 하트도 손쓰지 못할 골문 구석을 향했고, 이내 골 망은 크게 출렁거렸다.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