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내린 전반전
FC 에르푸르트에 맞서는 베이포트 FC의 전술은 단순했다.
전방부터 강한 압박을 내세우는 FC 에르푸르트 공격진을 긴 패스로 무력화시키고 곧바로 최전방으로 공을 옮겨서 그들의 후방을 공략한다. 그것은 비교적 약팀들이 FC 에르푸르트를 만나면 주로 내세우는 방법이었으며, 동시에 효과적이기도 했다.
상대의 높은 수비 라인을 직접 공략할 수 있는 전술이며, 설령 패스가 정확히 연결되지 않아서 공을 내주더라도 후방 빌드 업을 위해 어쭙잖은 패스를 돌리다가 공을 뺏기는 것보다는 위험도가 덜했다. 게다가 선수들의 스테이터스를 보면서 세세한 부분을 조정할 수 있는 동민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것은 최선의 방법까지는 아니어도 분명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상대인 위르겐 뮐러가 그것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좋아. 베이포트 FC가 준비한 것이 이것뿐이라면 이 경기는 확실히 이길 수 있어.’
위르겐 뮐러는 경기 초반부터 수비 라인을 최대한 아래로 내리고 역습을 준비하는 베이포트 FC 선수들을 보면서 주먹을 쥐었다. 베이포트 FC의 움직임이 그가 예상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처럼 FC 에르푸르트 선수들은 곧바로 사냥개 같은 모습으로 베이포트 FC를 물어뜯었다.
베이포트 FC가 후방에서의 긴 패스를 통해 FC 에르푸르트의 수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역습을 진행할 수 있는 빠른 발이나 침투 능력, 혹은 드리블 능력을 가진 공격수들과 그리고 그 롱패스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그리고 전자에는 로날드 조던이나 야야 둠베흐,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같은 선수들이 있는 반면 후자는 단 한 명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리 맥스웰 한 명만 묶어두면 돼.’
위르겐 뮐러가 베이포트 FC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강조한 것은 하나였다. 그들이 긴 패스를 이용하려 한다면 다른 선수들보다도 한 명에 특히 압박을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이 바로 베이포트 FC의 부주장이자 중앙 미드필더인 해리 맥스웰이었다. 위르겐 뮐러는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도 공격진에게 정확히 패스를 전달할 선수는 그뿐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올리비에 나스리 또한 종종 롱패스를 통해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해리 맥스웰만큼의 정확도를 보여주기는 힘들었다.
지난 8강 2차전에서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아예 뒤로 엉덩이를 빼고 수비에 집중하기 전까지 최전방으로 긴 패스를 내주던 선수는 바로 그였다. 그 경기에서 1개의 도움과 여러 번의 찬스를 만들어내며 2골을 넣은 로날드 조던을 제치고 MOM(Man Of the Match, 경기 최우수 선수)을 받은 것을 위르겐 뮐러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뛰어난 활약은 반대로 그를 강하게 압박하며 방해하면 베이포트 FC가 원하던 정확한 롱패스가 공격진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처럼 베이포트 FC의 역습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대비를 해둘 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으로 우리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아예 예상을 해둔 거였나.’
동민은 찡그린 표정으로 경기를 보고 있었다. 베이포트 FC의 역습을 책임져야 할 해리 맥스웰이 상대 압박의 집중적인 타깃이 되어 제대로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FC 에르푸르트의 전방 압박은 어느 한 선수가 주도하고 노리기보다는 모두가 약속한 대로 움직이며 상대 수비 전체를 누르면서 실수를 유발하는 방식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다른 수비진을 압박하는 것보다 해리 맥스웰을 노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수비진들에게 공이 갔을 때에는 해리 맥스웰에게 패스를 줄 루트를 우선적으로 막았고, 해리 맥스웰에게 공이 연결되면 곧바로 여러 명이 동시에 달려들며 마음 놓고 패스를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해리 맥스웰은 제대로 공을 잡기조차 힘들었고, 패스의 중심은 그가 아닌 올리비에 나스리 쪽으로 후퇴했다. 공을 잡고 롱패스를 노리는 위치가 더욱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후방의 패스를 받아 스트라이커와 함께 상대 수비 뒤 공간을 노려야 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야야 둠베흐는 아래쪽까지 내려와 공을 받아주어야 했다.
동민의 구상은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이렇게까지 읽혀 버렸나.”
동민은 자조 섞인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위르겐 뮐러의 전술을 예상하고 그 강약점을 파악해 경기를 준비했어야 하는 자신이 반대로 위르겐 뮐러에게 파악당한 것이다.
반대로 당해 버린 상황에 동민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 그대로 손가락만 빨며 구경할 수는 없었다. FC 에르푸르트에게 완전히 밀리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골은 허용하지 않았고, 전술을 변화시키며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대처법을 내놓는 것과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가 문제지만…….’
동민은 입술을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해리 맥스웰에게 집중되는 패스를 줄이고 양 사이드의 야야 둠베흐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내려와 함께 공을 받도록 말을 해두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여전히 베이포트 FC 선수들은 공을 가지고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수비 라인에서 맴돌다 공을 내주었고, FC 에르푸르트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야야, 더 밑으로! 앞에 있으면 고립될 뿐이에요! 연결 고리 역할에 집중해요!”
동민은 일단 위험한 고비부터 넘기고 선수들에게 충분히 전술을 설명해 줄 수 있는 하프타임에 전체적으로 전술을 손볼 생각이었다. 그때까지 실점만 피한다면 분명 후반전에는 이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FC 에르푸르트의 득점이 먼저 터져 나왔다.
해리 맥스웰이라는 팀 패스의 핵심을 봉쇄당한 베이포트 FC는 이안 페트로프나 올리비에 나스리가 역습을 노렸지만 해리 맥스웰만큼의 정확성을 가지긴 힘들었다. 그리고 그 불안정함은 결국 전반 24분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졌다.
이안 페트로프의 패스가 확실하게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이어지지 않고 상대에게 끊어진 것이 FC 에르푸르트에게는 최적의 찬스였다. 중원에서 패스를 낚아챈 올리버 다이슬러는 중앙으로 파고드는 동료에게 공을 연결했고, 그 공은 다시 우측면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우측면에서 공을 잡은 바스티안 슈나이더는 그림 같은 왼발 슈팅으로 베이포트 FC의 골 망을 흔들었다. 단 세 명의 선수가 다섯 번의 볼 터치만에 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압박으로 상대의 실수를 이끌어내고, 그 찬스에서 빠른 역습으로 마무리를 짓는 위르겐 뮐러와 FC 에르푸르트의 축구를 그대로 보여주는 골 장면이었다.
바스티안 슈나이더의 골로 갈로프엔바흐 파크는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찼다. 경기 초반부터 강하게 베이포트 FC를 압박하며 경기는 일찌감치 FC 에르푸르트의 분위기로 흘렀고, 전반 24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터져 나온 선제골은 그 분위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동민은 선제골로 분위기가 가라앉은 선수들을 위로하고 따라잡을 수 있다고 소리쳤지만 경기는 더욱 힘들게 흘러갔다.
“아…….”
동민은 자신도 모르게 허탈한 한숨을 흘렸다.
선제골이 터진 지 겨우 6분도 채 되지 않아 FC 에르푸르트의 추가 골이 터진 탓이었다. 조금 전 패스 미스로 선제골의 빌미를 만든 이안 페트로프가 적극성을 잃고 직접 앞으로 밀어주기 보다는 주위 동료를 이용하려 하자, 이번에는 그것을 노린 것이다.
이안 페트로프에게 공을 이어받은 해리 맥스웰은 곧바로 따라붙은 FC 에르푸르트의 선수들 때문에 제대로 앞으로 몸을 돌리지 못하고 공을 뺏기고 말았다. 그 공을 빼앗은 스테판 하인리히가 앞으로 길게 찔러준 공을 크리스토프 베르너가 단 한 번의 터치로 토마스 스톤스까지 제치며 골문으로 밀어 넣었다.
단 두 번의 패스로 만들어진 선제골에 이어 공을 뺏기고 한 번만의 패스로 만들어진 상대의 골 찬스에 동민은 할 말을 잃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야야 둠베흐를 아래로 내려오도록 지시하며 패스를 내줄 곳을 늘린 동민이지만, 위르겐 뮐러와 FC 에르푸르트는 그런 상황에서도 착실하게 베이포트 FC를 압박해 추가 골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면 정말로 힘들어지는데…….’
선제골을 내줄 때까지도 아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떻게 공격을 해나갈지 생각하면 동민이었지만, 추가 골이 터지자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경기를 지켜보았다. 1 대 0과 2 대 0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한 골만 넣으면 따라잡을 수 있는 상황과 두 골의 차이가 나는 상황은 심리적으로 너무나 달랐다. 선제골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추가골이 터지면서 경기의 흐름은 전반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완전히 FC 에르푸르트 쪽으로 기울었다. 동민이 소리를 질러가며 선수들에게 손짓을 하고 분위기를 바꾸어보려 했지만 경기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앞선 두 골로 확실하게 승부가 기울어진 탓인지 베이포트 FC 선수들은 집중력 자체가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반 34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우측 사이드라인에서 홀로 두 명을 끌고 돌파하며 중앙으로 내준 크로스는 허망하게 골대 위로 날아갔고, 37분에는 올리비에 나스리의 패스가 또다시 끊어지면서, 토마스 스톤스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세 번째 골로 이어질 뻔한 장면이 이어졌다. 너무나도 쉽게 허용한 두 골이 선수들의 멘탈을 무너뜨린 것이다.
물론 베이포트 FC는 지금 이대로 쉽게 경기를 내줄 생각은 없었다.
베이포트 FC 선수들은 더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뛰며 경기를 뒤집으려 했지만 그 생각과는 달리 패스나 움직임이 모두 조금씩 서로 엇나가고 있었다. FC 에르푸르트 선수들은 베이포트 FC 선수들의 따라잡으려는 의욕을 역으로 이용하며 손쉽게 경기를 풀어나갔고, 베이포트 FC 선수들은 제대로 된 성과 없이 체력만 소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반 43분, 이안 페트로프의 패스를 끊어내면서 선제골의 일등공신이 되었던 올리버 다이슬러가 이번에는 중앙에서부터 혼자 공을 끌고 들어와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은 빨랫줄처럼 뻗어나가 골문의 오른쪽 구석을 꿰뚫었다.
토마스 스톤스가 몸을 날려 손을 뻗어보았지만 그의 손은 허공을 헤집었을 뿐이었다.
FC 에르푸르트의 세 번째 골이었다.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경기의 마침표를 찍는 듯한 FC 에르푸르트의 세 번째 골에 동민은 말을 잊고 멍하니 그라운드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