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지는 결승전까지의 거리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을 앞두고 FC 에르푸르트의 감독인 위르겐 뮐러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이번이 첫 출전이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비교적 약체인 베이포트 FC라고 해도, 준결승까지 오른 만큼 절대 상대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베이포트 FC는 그가 준결승전에서 내심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팀이기도 했다. 그들이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이겼던 상대들을 생각하면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AC 로마를 상대로 모두 이겼고 쾰른 07과는 1승 1무. FC 마드리드에겐 두 번 다 3골이나 허용하면서 무너졌지만 그다음 연이어 바르셀로나 CF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무너뜨렸어. 경계를 안 하는 게 이상하지.’
바르셀로나 CF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모두 FC 에르푸르트가 상대한다 해도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팀들이었다. 그런 팀들을 모두 밀어내고 이 자리까지 올라온 베이포트 FC는 경계를 할 수밖에 없는 팀이었다. 게다가 그가 준결승전에서 베이포트 FC를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아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전술 때문이었다.
‘차라리 스톡포트 시티를 만나길 바랐는데…….’
강한 전방 압박으로 상대의 빌드 업을 방해하고 실수를 일으켜, 최대한 위쪽부터 빠른 원터치 패스들로 역습을 전개하는 것이 그와 FC 에르푸르트의 방식이었다. 그 방식에 가장 잘 먹히는 상대가 바로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상대의 빈틈을 찾아 공을 돌리는, 다비드 페레즈가 이끄는 스톡포트 시티와 같은 팀들이었다.
상대가 차근차근 공격을 풀어나가기 전에 상대 수비진을 강하게 조여서 그들의 실수를 이끌어내면 공격을 위해 위로 올라왔던 수비진에는 치명적인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구멍들을 만들어내면 빠르게 공을 주고받으며 상대 골문으로 행하고 골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가 원하는 발 빠른 역습이었다.
8강전에서 FC 마드리드를 상대로, 모두를 놀라게 한 승리를 거두었을 때에도 FC 에르푸르트의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강한 미드필더진과 세계 최고 중 하나인 공격진을 가진 FC 마드리드지만 수비진에서의 빈번한 실책은 그들의 공격 의지가 계속 힘이 빠지기에 충분했다.
상대의 창끝이 날카롭다고 해도 결국 창대를 부러뜨리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결국 FC 마드리드는 FC 에르푸르트와의 경기에서 골은 골대로 허용하고 공격은 공격대로 답답함을 느끼며 패배하고 말았다.
반대로 그 전술은 깊숙이 내려앉아 롱 볼을 이용하는 상대 팀에게는 비교적 효과적이지 못했다. 부지런한 압박으로 상대의 후방 빌드 업을 방해하는 것이 FC 에르푸르트의 공격이자 방어이며 경기를 이끄는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 후방 빌드 업을 생략하고 앞으로 길게 공을 전달하는, 소위 말하는 ‘뻥축구’ 같은 방식은 위르겐 뮐러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베이포트 FC가 그런 축구를 기본으로 삼는 팀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를 상대로라면 충분히 들고 나올 수 있어.’
위르겐 뮐러는 베이포트 FC가 지금까지 챔피언스 리그에서 얼마나 다른 전술들을 들고 나왔는지 기억했다. 그들은 최대한 상대의 약점을 노리고 강점을 흘리는 방식을 고집했고, 그들이 선보이는 전술의 폭은 상상할 수 없이 넓었다. 어떤 때에는 수비 라인까지 공격적으로 나서며 계속해서 공을 가지고 상대의 빈틈을 찾고 안으로 파고들었고, 어떤 때에는 완전히 내려앉아 긴 패스로 확실한 역습을 추구했다.
어떤 팀이든 상황에 따라 다른 전술을 선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베이포트 FC의 경우에는 그 변화의 폭과 선수들의 적응력이 문제였다. 고작 며칠 만에 전혀 다른 팀처럼 극과 극을 보여주는 전술 변화를 감독은 주문했고, 선수들은 익숙하다는 듯 그 변화를 따랐다.
베이포트 FC의 감독인 강동민은 마치 선수들이 어떤 역할에서 어떤 역할까지 익숙하게 해낼 수 있는지 아는 것처럼 명확하게 그들이 해낼 수 있는 역할만을 부여했다.
위르겐 뮐러는 그 것이 얼마나 간이 큰 행동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선수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할을 맡겼을 때 그들이 적응에 실패한다면, 그 경기의 승패는 물론 혼란스러워하는 선수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쳐서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데 강동민과 베이포트 FC는 그런 외줄타기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것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그들보다 객관적인 우위의 전력을 가진 강팀들을 상대로 해냈다.
위르겐 뮐러가 보기에 그들의 그런 행동은 완전히 정신 나간 짓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문제는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하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거지.’
위르겐 뮐러는 그런 베이포트 FC의 충동적일 정도로 과감한 선택을 가장 경계했다. 상대하는 팀들의 강약점을 파악하고 전술을 짜는 이상, 베이포트 FC가 FC 에르푸르트와의 준결승전에서 후방 빌드 업을 줄인 롱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갈 확률이 높았다.
지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2차전에서도 그들은 해리 맥스웰을 이용한 롱패스 플레이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무너뜨리며 준결승에 합류했다. 그런 선 굵은 축구에 약점을 보이는 FC 에르푸르트를 상대한다면 이번에도 충분히 그런 작전을 들고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런 팀들을 상대했던 경험이 결코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정확히 어떻게 나올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은 큰 불안 요소였다.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최전방을 향할지, 혹은 측면으로 이어줄지, 그것도 아니라면 위르겐 뮐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유령하고 싸우는 느낌이 이런 건가.”
FC 에르푸르트를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의 단골손님으로 만든 그라도 어떻게 나올지 상상할 수 없는 상대와의 싸움은 골치가 아팠다. 결국 그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골머리를 썩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역시 아직인가.”
동민은 팀 닥터에게 전해 받은 보고서를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주현이 며칠 전부터 팀 훈련에 복귀하긴 했지만, 다음 주에 있을 FC 에르푸르트와의 준결승 1차전에 선발로 복귀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는 것이 팀 닥터들의 소견이었다. 교체 멤버로 벤치에 둘 수는 있지만, 그 또한 긴 시간을 뛰게 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마음이 급해져서 일찍 복귀시켰다가 괜히 부상이 재발하기라도 하면 더 골치 아파지니까.’
동민은 조금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주현의 복귀는 베이포트 FC로서 반가운 결과였지만 너무 급하게 복귀를 서둘렀다가 부상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뭐, 처음부터 빨라야 한 달 정도라고 했으니 처음부터 크게 기대할 순 없던 거였지. 어쩔 수 없어.”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 혼잣말에는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선발 멤버로 주현이 나설 수 있다면 베이포트 FC의 입장에서는 상대에게 내밀 수 있는 카드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동민은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주현의 복귀가 무위로 돌아서자 결국 맨 처음 생각했던 대로 전술을 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처음에 생각한대로 지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전처럼 아래쪽으로 수비 라인을 내리고 긴 한 방을 노려야 하는 건가. 근데 그 한 가지만 들고 나서기엔 불안한데.’
FC 에르푸르트가 선 굵은 축구를 상대로 고전하는 것은 동민도 잘 알고 있었다. 후방 빌드 업을 생략하고 최전방과 측면으로 바로바로 공을 뿌려주는 것이 정확하기만 한다면 앞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FC 에르푸르트는 순식간에 수비 뒤 공간을 내주며 위험을 맞는 것이다. 그것이 FC 에르푸르트의 경기를 보면서 동민이 느낀 것이었고, 그들을 상대하는 분데스리가 팀들이 종종 들고 나왔던 전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민은 그 한 가지만 믿고 경기에 나서기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본인들도 그 점이 자신들의 약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 점을 계속 안고 있을 리가 없어. 어떻게든 그 약점을 막으려 들 텐데.’
동민이 FC 에르푸르트의 경기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위르겐 뮐러가 생각보다 굉장히 조심스럽고 섬세하다는 것이다.
그의 팀과 전술은 굉장히 공격적이며 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자신도 190㎝에 가까운 덩치와 수염 가득한 겉모습을 가졌지만, 경기에 나서는 위르겐 뮐러의 태도는 굉장히 섬세했다.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공격을 하고 수비를 하는지, 공략해야 하는 선수가 오른발잡이인지 왼발잡이인지도 파악하며 디테일한 점까지 파고들었다. 또한 강한 전방 압박에서도 선수들에게 정확한 간격을 유지하고 방향을 지시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바로 그런 점이 바로 FC 에르푸르트가 좋은 성적을 얻은 원동력이었다.
동민은 그런 사내가 자신들의 약점으로 알려진 점을 준결승전까지 감수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도 지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전에서 우리가 롱 볼 축구로 나선 것을 봤을 거야. 그렇다면 그 대비를 안 했을 리가 없어.’
그가 FC 에르푸르트의 경기를 보면서 어떻게 상대를 이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위르겐 뮐러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세밀하게 경기를 준비하는 사람이 앞으로 결승전까지 한 발짝 남은 곳에서 허술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주현이를 에딘 페트로비치와 함께 투톱으로 세우면서 좀 더 전술적인 유연성을 높이고 싶었는데…… 안 되는 이상 어쩔 수 없지.’
동민은 결국 전술의 큰 틀 자체를 바꾸기보다는 경기 시작 후 상대의 대응을 보면서 빠르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동민과 위르겐 뮐러, 두 사람은 각자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 고민했고, 그에 자신이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했다. 두 사람의 고민을 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FC 에르푸르트의 홈 경기장인 갈로프엔바흐 파크는 양 팀 팬들의 결승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렌 OSC와 FC 마드리드를 차례로 꺾으며 올라온 FC 에르푸르트의 팬들은 이번에야말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기회가 왔다며 홈에서의 대승을 바랐고, 바르셀로나 CF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죽음의 대진 운을 뚫고 올라온 베이포트 FC의 팬들은 이번에도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길 바랐다.
베이포트 FC의 팬들은 이제 FC 에르푸르트만 꺾으면 결승전이 열리는 바그너 아레나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지금의 이 꿈만 같은 상황이 더욱 이어지길 바라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챔피언스 리그 처녀 출전에서 우승컵을 따내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애써 마음을 비우려 해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팬들의 기대는 선수들에게도 충분히 전해지고 있었다.
두 팀의 팬들 중 단 한쪽만 바그너 아레나로 갈 수 있는, 각자의 염원을 담은 준결승전의 1차전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서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