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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행방 (261/270)
  • 승부의 행방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이 전반전에 터지면서 경기는 완전히 형태를 바꾸었다.

    후반전을 맞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전반전보다도 더욱 뒤로 물러서 단단히 문을 걸어 잠갔다. 측면에서 빠른 발을 이용해 역습을 끌고 올라가는 마리크 카민스키를 빼고, 수비 가담이 좋은 에릭 로버트슨을 투입시키며 상대의 측면 공격을 더욱 확실하게 막아서겠다는 뜻을 보여주었다.

    지난 1차전의 2 대 1의 스코어와 합산해서 2 대 2의 동률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원정 골 우선 규칙이 있는 이상 유리한 쪽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골을 허용하지 않는 이상 준결승전에 올라갈 수 있는 팀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남은 45분 동안 철저하게 수비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한 골이 더 필요한 베이포트 FC는 더욱 공격에 집중해야만 했다.

    창과 방패의 대결,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대결하는 팀들은 대부분 모두 그런 경기를 치러야 했지만 오늘 베이포트 FC와 그들의 대결은 평소보다도 더욱 무거웠다.

    ‘어떻게 운이 좋게 한 골은 넣었지만 그 운이 더 이어지게 해선 안 돼.’

    마르코 알베스는 분노에 찬 눈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은 해리 맥스웰의 좋은 패스나 에딘 페트로비치의 집중력, 그리고 로날드 조던의 결정력이 만들어낸 골이지만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실수가 만들어낸 골이기도 했다.

    해리 맥스웰이 공을 잡자마자 그 패스를 가장 먼저 차단하거나 방해했어야 하는 라이언 네빌을 비롯한 미드필더들이 간발의 차이이긴 하지만 결국 늦었고, 에딘 페트로비치의 제공권을 봉쇄했어야 할 리오 파커가 볼 경합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공에 집중했어야 하는 다비드 알바레즈가 공을 놓쳤다.

    ‘확실하게 선수들의 정신무장도 다시 시켰고 수비에 있어선 착실하게 준비했다. 후반전에 다시 한 번 그런 우스꽝스러운 골을 허용하는 일은 없어야 해.’

    아직 후반전의 45분이 남은 지금부터 경기를 틀어막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큰 선택이었다. 4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비에 임하면서 선수들이 집중력을 제대로 갖출 수 있는가가 첫 번째 문제였고, 더 나은 수비 가담을 위해 마리크 카민스키를 빼고 에릭 로버트슨을 투입한 지금의 교체카드 이용이 두 번째 문제였다.

    만에 하나 베이포트 FC가 한 골을 더 넣기라도 한다면 빠른 역습의 엔진이 되어줄 마리크 카민스키 없이 골을 노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마르코 알베스의 판단은 상대가 한 골이라도 더 넣을 경우에 완전히 악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있었다.

    ‘우리가 확실하게 수비에 집중한다면 45분이 아니라 450분이라도 저 녀석들에게 골을 허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수비에 중점을 두는 실리 축구를 표방했고, 그만큼 수비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마리크 카민스키가 없다고 역습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공을 잡고 혼자서도 두세 명의 선수들을 뿌리치면서 찬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안드레 벨라스케즈의 존재야말로 마르코 알베스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역습의 핵심 선수였다. 그런 그가 그라운드에 남아 있는 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역습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두고 보자고. 한 골은 어쩌다가 내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될 거다.’

    마르코 알베스는 사나운 눈으로 후반전이 시작되는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걸어 잠글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너무 빠른데.’

    동민은 살짝 찌푸린 얼굴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진영을 바라보았다. 최전방의 다리오 안드리치만 앞쪽에 서서 역습을 준비하고, 안드레 벨라스케즈까지 밑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 진형은 보는 이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뚫을 공간이 없어 보였다.

    ‘홈에서 우리를 상대로 걸어 잠그는 건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도 이 방법을 택했다는 건 확실하게 이기겠다는 뜻이겠지.’

    동민은 마르코 알베스의 생각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 마르코 알베스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딱 한 가지 부분만은 흡사했다. 승리를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내버릴 수 있다는 점, 그 점이 동민과 마르코 알베스의 공통점이었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 홈팬들의 야유를 받을지도 모르는 선택을 내리는 마르코 알베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든 이기는 축구를 원하는 동민의 대결은 다비드 페레즈와의 맞대결과는 다른 의미로 돋보이고 있었다.

    “상대는 벌써 승부수를 던졌어. 그렇다면 나는…….”

    동민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눌러앉았다면 더욱 공격에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쨌거나 골이 필요한 것은 베이포트 FC측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공격에 힘을 쏟았다가는 지난 1차전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멸할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했다.

    물론 측면의 속도감을 살려주는 마리크 카민스키가 교체로 아웃되긴 했지만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역습 위험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 40분가량이 남아 있는 경기, 상대 역습의 위험성, 반드시 골이 필요한 상황, 그 세 가지가 동민의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마음을 정했다.

    ‘그래, 지금 이 선발 멤버들을 선택하면서 저들을 믿는다고 말했지. 그렇다면 조금 더 시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최대한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도록.’

    동민은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조금 전까지와 다르게 차분하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거의 공간이 없어.’

    해리 맥스웰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가는 상황에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진은 결코 전반전과 같은 공간을 내주고 있지 않았다. 그가 공을 잡으면 사납게 달려들기보다는 중앙에 그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밀어내듯 수비했고, 뚫어내려 들어간다 해도 완전히 그들의 포위망에 잡히면 곧바로 달려들어 공을 빼내려 들었다. 바로 뒤의 이안 페트로프나 최후방의 조나단 케인, 롭 코튼이 아슬아슬하게 커버를 해주지 않았다면 전광판의 1 대 0이라는 숫자는 이미 바뀌었을 정도였다.

    그런 상대의 위협적인 역습을 겪으면서 해리 맥스웰은 더 신중해지자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전반전만큼의 공간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선 조금씩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아까처럼 에딘 페트로비치의 제공권을 이용하는 것도, 로날드 조던의 빠른 발로 수비 뒤 공간을 노리는 것도 힘들고…….’

    선제골을 내준 이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에딘 페트로비치의 제공권 위험을 확실하게 깨달은 듯 계속해서 그가 편하게 공을 받을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언제나 한 사람에서 두 사람이 그의 주위에 있었고, 필요하다면 거친 몸싸움으로 그를 막아섰다. 그리고 후방으로 완전히 물러서 있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진에서는 제아무리 로날드 조던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줄어들었다.

    결국 해리 맥스웰은 측면도, 최전방도 패스를 줄 만한 상대와 상황을 제대로 찾기 힘들었다.

    ‘이래서는 지난 1차전의 되풀이가 될 뿐이야!’

    지난 1차전과 아까 있던 전반전의 차이는 간단했다.

    1차전에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공을 적게 가지고, 빠르고 효과적인 역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전반전에 베이포트 FC가 더욱 선이 굵은 축구를 시도하면서 본의 아니게 공을 더 오래 잡았고, 그 결과 오히려 그들에게 익숙한 빠른 역습을 해내지 못하고 꼬여 버렸다.후반전이 시작된 후 마르코 알베스가 더욱 수비진을 뒤로 빼자, 이제야 그들의 페이스를 되찾은 것이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원하는 대로 경기를 진행하도록 두면 결코 그들을 꺾고 준결승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해리 맥스웰은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잘하는 것을 하도록 그대로 둬선 안 돼. 어떻게든 저 철옹성처럼 보이는 수비진에 균열을 만들어야 해.’

    해리 맥스웰은 저런 수비를 뚫는 일이라면 자신 있어 할 동료들을 떠올렸지만 지금 그라운드에 그들은 없었다. 동민이 믿고 경기에 내보낸 것은 과거 베이포트 FC를 이끌던 그들이었고,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후반전 30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교체카드를 꺼내 들지 않고 있었다.

    ‘…단 한번만 뚫어내면 분명 기회는 올 텐데…….’

    해리 맥스웰은 자신들을 향한 동민의 그 신뢰에 부응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튼튼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를 뚫어야 했고, 골을 만들어내야 했다. 해리 맥스웰은 또다시 그물을 치고 그가 들어오길 바라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진을 보면서 가볍게 옆으로 공을 내주었다.

    그 공을 받은 닉 베손은 사이드라인을 따라 돌파를 시도하려다가 멈칫했다.

    보통이라면 뒤쪽에서 다시 동을 받아줄 준비를 하던 해리 맥스웰이었지만 지금은 공을 내주기가 무섭게 상대의 좁은 공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공을 잡는 순간 완전히 상대에게 둘러싸이는 곳으로 향한 그를 보면서 닉 베손은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리 맥스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본 닉 베손은 그가 뭘 하려는지 깨달았다.

    닉 베손은 수비들의 사이로 중앙으로 파고드는 해리 맥스웰에게 어렵사리 공을 연결했고,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해리 맥스웰은 슈팅을 하려는 듯 오른발을 뒤로 뻗었다. 수비수들은 그 슈팅 각을 좁히기 위해 그의 앞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해리 맥스웰의 선택은 슈팅이 아닌 패스였다. 수비수들에게 가려진 채 제대로 동료들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달려든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땅볼 패스를 깔아 찬 것이다.

    그의 패스가 가는 곳에는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로날드 조던이 쇄도하고 있었고, 그 찬스는 그대로 베이포트 FC의 쐐기 골이 되었다.

    총합 스코어는 3 대 2, 경기는 이제 베이포트 FC 쪽으로 기울었다.

    ‘저걸 저렇게 써먹나.’

    올리비에 나스리는 조금 전 해리 맥스웰이 한 행동이 누구에게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알아챘다.

    ‘하필 내가 당한 걸 그대로 써먹다니, 나 참.’

    바르셀로나 CF와의 경기에서 마티아스 루비오가 제수스 모레노에게 주었던 노 룩 패스, 해리 맥스웰은 그것을 모방하여 로날드 조던에게 패스를 건넨 것이다.

    ‘저 녀석들도 오랫동안 함께 뛰었다고 했지. 그러면 익숙해질 만은 하네. 물론 방금처럼 저렇게 정확히 연결된 것은 운이 따른 거겠지만…….’

    올리비에 나스리는 이런 무대에서, 그것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같은 팀을 상대로 불리한 상황에 시도한 해리 맥스웰의 배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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