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복수전 (260/270)

복수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에 나선 베이포트 FC의 선발 라인업을 본 팬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홈에서 극강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상대에게 반드시 2골 이상을 뽑아내서 승리를 해야 하는 상황, 팬들은 극도로 공격적으로 올라서는 전술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것밖에 답이 없어 보였다. 그만큼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벽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발 라인업은 박주현이 부상으로 빠진 지금 남아 있는 유일한 크랙인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포함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공격 자원이 다 나올 것이란 예상과는 달랐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벤치. 거기에 로날드 조던과 에딘 페트로비치의 투톱에 야야 둠베흐, 해리 맥스웰, 이안 페트로프, 잭 하워드의 구성. 뭐지?’

마르코 알베스는 자신의 예상과도 거리가 먼 라인업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베이포트 FC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공격적인 전술로 나서고,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그것을 능숙하게 막아내면서 자신들의 장기인 역습을 선보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상대의 선발 라인업은 그런 가능성을 적어지게 만들었다.

‘분명 골이 절실한 것은 베이포트 FC다. 어떻게든 우리 수비를 뚫어보려고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지. 그런데 지금 저 선발 명단은 도저히 그런 생각이 안 들어. 박주현이 부상으로 빠진 지금, 그 빈자리까지 뛰어주어야 하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아예 선발에서 제외하다니.’

마르코 알베스는 동민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라인업으로 경기에 나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베이포트 FC가 선발로 내보낸 선수들로 창의적인 공격이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해리 맥스웰이 있다고 해도 그 혼자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진을 뚫어낼 패스를 책임지기는 어려웠다.

“…상관없겠지. 항상 의외의 방법을 들고 나와 보여주기는 하지만 우리를 상대로 이긴 적은 없었다. 우리가 할 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야.”

잠시 고민하던 마르코 알베스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베이포트 FC가 어떻게 나오든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그가 할 일은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역습을 하는 것뿐이다. 또한 역습에는 일가견이 있기에 상대의 방법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어디 한번 최대한 머리를 굴려보라지. 뭘 하든 이기지 못할 테니까.”

그는 경기 전 동민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던 그 얼굴이 패배의 굴욕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상상하니 사나운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로날드! 뛰어!”

해리 맥스웰은 이안 페트로프의 패스를 받아 곧바로 최전방의 로날드 조던에게 찔러주었다. 비록 그 패스는 로날드 조던의 발에 닿기 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진에게 먼저 잘렸지만, 로날드 조던은 해리 맥스웰에게 좋았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2차전이 시작되고 15분, 베이포트 FC의 전술은 간단했다. 지난 경기에서 양 측면의 도움을 받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를 흔들기 위해 움직이던 미드필더진의 모습도, 공을 잡고 안쪽으로 파고들거나 연계를 위해 움직이던 측면의 모습도 없었다.

수비진은 공을 잡으면 팀의 엔진인 해리 맥스웰에게 공을 보냈고, 해리 맥스웰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침투하는 최전방이나 측면 동료들에게 공을 뿌려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단번에 골문으로 향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빠른 공격을 시도했다.

지난 경기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 많은 경기에서 공격적이고 주도권을 지닌 경기를 선보이던 베이포트 FC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을 건 일전에서 철저히 롱 볼을 노리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경기를 우리에게 맡긴다고 했지. 그런데 꼴사납게 여기서 박살 날 순 없어.’

야야 둠베흐는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달리고 있었다. 아직 전반전의 3분의 1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활동량은 놀라울 정도였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측면 역습을 막기 위해 베이포트 FC의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수비 지원을 나갔다가도, 해리 맥스웰의 패스를 받은 에딘 페트로비치가 시간을 버는 사이 어느새 상대 진영 깊숙한 곳까지 달려가서 크로스를 올리는 그의 모습은 팬들로 하여금 경탄이 나올 정도였다. 원래도 성실한 그였지만 이 정도까지 움직이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경기를 앞둔 동민은 선발 11명을 모두 과거 앨런 휴즈 시절의 선수들로 채웠다.

그가 베이포트 FC가 챔피언십에서 잔류를 위해 싸웠던 때를 경험한 선수들로 선발 명단을 채운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주현이 빠지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집이 무거워지면서 좌우의 밸런스가 붕괴된 지금, 아예 선 굵은 축구를 노리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 축구에 익숙한 이들이 바로 앨런 휴즈 시절 베이포트 FC에서 뛰었던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는 그들의 정신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뛸 수밖에 없게 만들었잖아.’

이안 페트로프는 입을 비죽대며 투덜거리는 체했지만 입가에 있는 미소는 그의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동민은 그들이 이 중요한 경기에 나서서 제대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해 주길 바랐다. 단 3 시즌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베이포트 FC는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챔피언십에서 강등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과거와 달리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권 경쟁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진출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같은 강팀과 준결승을 다투고 있었다.

그런 달라진 팀의 위상만큼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도 달라졌다. 과거 붙박이 주전으로 경기에 나서던 선수가 다른 선수의 영입으로 지금은 경기 출전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었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출전 시간이 줄어든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그들이 할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팀의 고참 선수로서 이적해 온 선수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고, 계속해서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들은 과거 베이포트 FC를 기억하는 일원으로서 이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과거 베이포트 FC의 방법으로, 더 나아갈 길을 열어야만 하는 것이 오늘 경기에 나선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죽어라 뛰어서 할 수밖에 없어.”

조나단 케인은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옆에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주로 그와 짝을 이루었던 올리비에 나스리 대신 예전과 같이 롭 코튼이 자리하고 있었다. 완전히 2년 전과 똑같은 라인업을 맞추려는 동민의 결정이었다.

어린 센터백과 함께 팀의 얇은 수비진을 이끌고 상대 공격을 막아내던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그가 서 있는 경기는 그때의 챔피언십 경기가 아닌,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이었다. 그는 새삼 지금이 꿈만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 꿈을 더 오랫동안 꿀 수 있기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 생각은 베이포트 FC의 모든 선수들의 생각이었고, 이를 위해서 그들은 경기장이 좁아 보일 정도로 헌신적으로 뛰고 있었다.

‘선수들한테 생각한 것만큼 자극이 된 거라면 좋겠는데… 아직까진 그래 보이지만.’

동민은 굳은 표정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전술적으로 최적의 모습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상 상대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뛰면서 정신력 싸움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옳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과거 베이포트 FC에게 익숙했던 442 포메이션의 빠른 속공이었다. 그의 그런 생각은 지금까지는 매우 잘 들어맞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선제골이 나와야만 해.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는 볼을 돌리려 들 테니까.’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볼을 돌리고 점유율을 높이며 상대 공격의 템포를 늦추는 것이 익숙한 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시간이 흐를 경우 그들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을 막으려면 빠른 선제골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동민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전반전 안에는 나와야만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아예 문을 걸어 잠그려 드는 걸 막을 수 있을 텐데…….”

동민은 선수들이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과,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준결승행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길 기도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오래 지나지 않아 사실이 되었다.

“야야!”

전반 38분, 해리 맥스웰은 또다시 공을 잡고 줄 곳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는 전반전 초기와는 다르게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그의 롱패스를 대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생각과 다른 베이포트 FC의 공격 방식에 당황했지만, 이내 모든 공격이 해리 맥스웰을 통하고 양 측면과 최전방으로 이어지는 롱패스가 유일한 공격 방식이라는 것을 안 이상 당황할 리가 없었다. 미드필더진은 빠르게 그를 압박했고, 수비진은 달리는 선수들을 철저하게 마크하고 있었다. 베이포트 FC와 동민이 바랐던 것처럼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결국 그는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측면을 쇄도하는 야야 둠베흐에게 공을 건네지 못했고 타이밍을 놓쳤다. 짧은 순간 어디로 공을 줘야 할지 고민하는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상대 수비수들 사이에서도 버티고 서 있는 에딘 페트로비치였다. 해리 맥스웰은 제발 자신의 패스가 그에게 정확히 가길 바라며 공을 찼다.

‘온다!’

에딘 페트로비치는 해리 맥스웰의 패스가 자신 쪽으로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 온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의 옆에서 거칠게 어깨를 밀어붙이는 상대 수비수도, 뒤쪽에서 소리를 치는 골키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온 정신은 날아오는 공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받아내야 해.’

이미 몇 번이나 해리 맥스웰의 패스를 놓치거나 상대 수비수에게 뺏긴 그는 이번에야말로 공이 날아오는 곳을 정확히 보고 몸을 날렸다. 그의 머리에 맞은 공은 강하게 바운드되면서 골문을 향했다.

이를 로날드 조던이 놓치지 않고 골문 구석을 향하는 슈팅으로 마무리 지었다.

전반전 40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각 베이포트 FC가 추격의 불길을 지피기 시작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마르코 알베스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상대의 공격 루트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선수비 후 역습을 표방하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지만 공격 루트가 아예 고정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베이포트 FC는 해리 맥스웰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대에게 다 알고서도 당했다는 것이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원정 골 우선 규칙으로 우리가 우위다. 후반전에는 더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겠어.”

그는 이를 갈면서 씹어 뱉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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