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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점이 없는 패배 (258/270)
  • 긍정적인 점이 없는 패배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는데. 젠장.’

    경기 후, 동민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무너지면서 준결승에 올라갈 수 있는 확률이 크게 낮아지고 만 것이다.

    상대에게 두 골의 원정 골을 내주며, 다음 2차전에서 무조건 두 골 이상을 기록하면서 승리해야만 준결승에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은 결코 베이포트 FC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2차전이 벌어지는 뉴 퍼스우드는 바르셀로나 CF의 에스타디오 데 바르셀로나만큼은 아니어도, 이번 시즌 원정 팀들의 무덤이라 할 만했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이번 시즌 홈경기에서 스톡포트 시티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패배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런 뉴 퍼스우드에서,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하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에게 두 골 이상을 기록하며 승리를 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민이 탄식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번 경기의 패배 때문이 아니었다. 경기는 언제나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는 데다 그와 베이포트 FC는 뉴 퍼스우드보다 더한 원정 팀의 무덤이라 불리는 에스타디오 데 바르셀로나에서 홈 팀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경기력을 선보였던 것이다.

    ‘보통 5주에서 6주, 빨라 봐야 3주에서 4주 정도라…….’

    주현의 햄스트링 부상 소식에 동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에서의 패배도 패배지만, 그보다는 주현의 부상이 더 뼈아프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주현의 부상 이탈은 동민과 베이포트 FC로서는 너무나도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어떤 선수든 부상으로 인해 빠지는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주현의 부상은 더욱 큰 문제였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촘촘하고 강한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서는 크랙이 필요했고, 베이포트 FC에서는 박주현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크랙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없다면 2차전에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를 뚫어내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2차전뿐만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리그 경기들에서도 베이포트 FC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주현이라는 공격 옵션 없이, 리그 4위 자리를 두고 경쟁을 펼쳐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좋은 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도록 여러 면에서 꼬여 버린 경기였네.’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준결승 진출은 어려워졌고, 주현의 부상으로 다음 2차전을 비롯한 이후의 경기에서 한동안 공격 옵션이 부족해졌으며,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마르코 알베스에게 또다시 패배함으로써 3연속 무승 기록을 4연속 무승으로 갱신하게 되었다.

    경기가 끝나고 한쪽 입꼬리를 올린 특유의 웃음을 짓고 있는 마르코 알베스를 보면서 동민은 화를 꾹 눌러 참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경기에서 패배한 쪽은 그인 탓이었다.

    동민에겐 최악의 경기가 되었지만 그 것을 표출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 더욱 이 결과를 참담해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

    주현은 입술을 깨물고 한참을 침묵을 지키다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공을 뺏기는 바람에 상대에게 역전 골을 내주었고, 거기에 원정 골을 2골이나 내주면서 다음 2차전에서 반드시 골이 필요한 와중에 부상을 당했다. 그가 빠지면 베이포트 FC의 중요한 공격 옵션이 없어진다는 것 정도는 주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에서 2차전을 치른다는 사실은 역전 골과 더불어 주현에게 큰 죄책감을 주고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는데.”

    동민은 그런 주현의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 주현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조금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거기서 공을 뺏기는 바람에 역전 골을 내주고… 거기에 다음 경기에도 못 나오도록 이렇게 되어버렸잖아. 정말로 미안해.”

    주현은 굳은 얼굴로 다시 한번 그렇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울음을 삼키는 듯 젖어 있었고, 역전 골의 빌미가 되었던 자신의 턴 오버가 계속해서 마음에 남은 표정이었다. 한번 뒤로 공을 돌리면서 템포를 늦춰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직접 돌파를 택했던 그의 선택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고 있었다.

    “넌 그때 일부러 뺏기려고 드리블했어? 아니잖아. 그럼 됐어. 착실히 회복해서 복귀할 생각이나 해. 게다가 그런 공격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는 선수들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고, 나는 그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했지. 그렇게 말한 이상 그 행동의 책임을 지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야.”

    동민은 퉁명스러워 보이는 목소리지만 진심으로 주현을 위로했다. 그는 이미 지난 경기가 속이 쓰리기는 했지만 주현에게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동민이 오히려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실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스스로였다.

    상대의 선제골이 아르센 디아라의 실수에서 나왔고, 역전 골 또한 주현이 볼을 뺏기면서 나온 것은 맞다. 하지만 선수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지금껏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어서 그들에게는 이번이 첫 챔피언스 리그 무대라는 것을 반쯤 잊고 있던 동민의 문제였다.

    ‘예전에 누가 말했던 것처럼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야. 이번에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원한다면 실수가 나오는 것까지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전략이 필요해.’

    동민은 주현을 위로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동민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주현이 대신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감정이 솟구치고 있었다.

    한참을 고개를 떨어뜨리고 침묵을 지키던 주현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시울은 아직 붉었지만 확실히 아까보다는 진정이 된 표정이었다.

    “…고마워.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침울해졌었나 봐. 분명히 우승을 목표로 달린다고 했는데 결정적으로 내 실수 때문에 멈추게 된다면 너무 스스로한테 화가 난다는 생각이 나더라고.”

    주현은 그렇게 말하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수비가 강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상대로 그들의 홈에서 2골 이상을 득점하며 승리를 거두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특히 이번 시즌 들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홈 경기장인 뉴 퍼스우드에서 2골 이상의 득점을 하는 것은 이번 시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스톡포트 시티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만큼 베이포트 FC가 준결승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주현은 더욱 자책을 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동민은 주현의 말에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추켜올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끝나긴 뭘 끝나. 준결승전 뛰어야지. 네 복귀전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으로 생각해 둘 테니까 그때까지는 복귀할 수 있게 준비해 둬.”

    동민은 단호한 태도로 그의 말을 부정했다. 동민의 말은 주현이 다음 2차전에 뛰지 못해도 절대 그 경기가 올 해 베이포트 FC의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지금의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베이포트 FC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상대로 준결승전에 진출하는 기적을 직접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응?”

    주현은 처음에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멍청하게 동민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듣고 눈을 크게 떴다.

    “어쨌든 약속할게. 네 복귀전은 늦어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정도로 생각해 둘게. 그러니 그때까지 확실하게 몸 상태 회복해서 돌아오기나 해. 책임지고 그 경기까지 챔피언스 리그에 남게 할 테니까.”

    동민은 그렇게 말하고 주현과 헤어졌다. 그가 조금 전 했던 말이 그저 허풍이나 거짓말이 아닌, 약속으로 남게 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경기의 패배 원인은 내 전략의 미스였어. 골을 내준 상황들이 모두 선수들의 미스에서 나왔다고는 해도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효과적으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따랐어야 해.’

    주현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 동민은 조용히 혼자서 틀어박혔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에게 또 다시 패배를 당하고 선수들에겐 정신적인 충격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휴식을 주었지만, 그는 달랐다. 지난 경기에서의 패배 원인을 찾기 위해 경기 영상을 다시 확인했고, 어떤 점에서 베이포트 FC가 결국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를 제대로 뚫지 못하고 그들에게 역습을 허용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동민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전반전에 스톡포트 시티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상대로 승리했던 것을 참고했었는데 그게 제대로 맞지 않는 옷이었어.’

    동민은 그것이 자신들의 패인이라고 생각했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를 준비하면서 그들의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 여러 경기들을 확인했고, 그중 스톡포트 시티가 집요한 템포 조절과 공격으로 결국 상대의 수비를 뚫어내고 결승 골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참고로 이번 경기를 준비했다.

    스톡포트 시티의 레오나르도 다 실바나 마이크 반 데부르와 같은 수준의 미드필드에서의 탈 압박과 패스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박주현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전술적 유연성과 중원 가담으로 충분히 비슷한 방식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결국 베이포트 FC는 그 방식으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를 열어젖히지 못했고, 그들이 골을 넣은 것은 이미 수비 쪽에서의 미스로 선제골을 내주고 공격적으로 나선 이후였다. 즉, 동민이 처음에 생각한 전술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스톡포트 시티의 움직임을 모방한 것으로는 저들의 수비를 뚫을 수 없었다는 거지, 결국은.’

    동민은 조용히, 그러나 철저하게 자신의 미스를 곱씹었다.

    그러나 절망이나 분노는 조금도 없었다. 자신의 실수를 떠올리고 어떻게 그 것을 고칠지 생각할 뿐이었다.

    ‘이미 늦긴 했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떤 면에서 실패했는지는 알아. 그렇다면 남은 건 그걸 토대로 다음 2차전을 준비할 뿐이야. 아직 경기는 한 번이 남아 있고, 우리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어.’

    동민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래, 아직 한 번 더 남아 있어. 거기서 충분히 뒤집을 수 있어.”

    동민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의 눈은 이미 다음 주로 넘어가 뉴 퍼스우드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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