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실패한 복수전 (257/270)
  • 실패한 복수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중앙 미드필더인 라이언 네빌은 이번 경기에서의 승리를 자신했다. 단순히 감독인 마르코 알베스의 말만 듣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난 세 번의 맞대결 동안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단 한 번도 베이포트 FC에게 압도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아예 뒤로 물러나 수비에만 집중하는 팀이 아닌 이상, 선수비 후 역습을 내세우는 것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을 내세운다면 분명 볼 점유율이나 패스 숫자 등에서 밀릴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나 더 확실한 찬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었고, 지금껏 그래왔다.

    ‘축구는 결과의 스포츠다. 상대가 공을 더 잡았든, 더 경기를 주도해 나갔든 결국 더 확실한 찬스를 만들어내고 골을 만드는 건 우리다. 제아무리 바르셀로나 CF를 잡고 기세가 오른 팀이라지만 그리 걱정되지는 않아.’

    그것은 라이언 네빌뿐만 아니라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모든 선수들이 가진 생각이었다.

    마르코 알베스의 부임 이후 그들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공격적인 경기 운용에서 수비 밸런스를 중시하며 효과적인 역습을 노리는 팀으로 변했고, 전임 감독 아래에서 붕 떠 있던 라이언 네빌이나 마리크 카민스키 같은 선수들은 팀의 핵심 선수로 발돋움했다. 또한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이던 나이 든 선수단을 빠르게 개편하며 팀의 리빌딩 작업 또한 지체 없이 이어나갔다.

    그 결과, 지난 시즌에 리그에서는 스톡포트 시티와 승점 2점 차이로 아쉬운 2위에 머물렀지만 리그 컵과 FA컵을 들어 올리며 좋은 성적을 냈다. 이번 시즌에는 스톡포트 시티가 너무도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리그 우승컵을 2년 연속으로 내주는 것이 유력했고 FA컵과 리그 컵에서는 불운이 이어지며 탈락했지만, 팀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챔피언스 리그에서만은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것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다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만 유지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라이언 네빌은 그렇게 생각하며 경기장을 활발하게 누볐다.

    ‘확실히 이번에도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수비를 무너뜨릴 순 없어.’

    마르코 알베스는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가 이끄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베스트 11을 내세워 평소와 같은 4231 형태로 베이포트 FC에 맞섰다. 뒤로 물러나 철저하게 정비한 수비 라인 위에 라이언 네빌과 에릭 우드게이트가 포백을 보호하며 확실하게 상대 공격을 방어했고, 좌우 측면의 마리크 카민스키와 애런 허들스톤은 빠르게 많이 움직이며 공격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생긴 공간에서 안드레 벨라스케즈가 역습의 방점이 되는 패스를 연결하면 최전방의 다리오 안드리치가 골로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언제나 그들이 하는 뻔한 방식이었지만 그들의 완성도 높은 역습은 그 뻔한 방식을 가장 잘 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놓았다.

    반대로 베이포트 FC는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와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누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 결과, 경기는 이번에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베이포트 FC가 경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좌우를 오가며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를 흔들기 위해 애를 썼고,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그 공격을 막고 완성도 높은 역습으로 베이포트 FC의 골문을 노렸다.

    ‘패스의 정확도도,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으로 침투하는 동작도 위협적이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런 방식의 싸움이라면 우리에게는 익숙해.’

    마르코 알베스의 자신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갔다. 경기가 베이포트 FC의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은 그도, 선수들도 예상한 바였다. 이곳은 베이포트 FC의 홈경기장인 브리큰돈 스타디움이었고, 그들이 공격적으로 나선 이상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에게 그런 상황은 너무도 익숙했다. 그리고 이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원정 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가장 잘나가던 시절의 재빠른 공격축구에 비해 보는 맛이 떨어졌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팬들도 일부는 있었지만, 마르코 알베스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안전을 추구하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흔들리던 팀을 구해내며 성적을 쌓아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팬들 또한 익숙해져 갔다.

    베이포트 FC 홈팬들의 응원가와 함성이 브리큰돈 스타디움을 가득 채워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선수들은 동요하지 않았고, 베이포트 FC에 비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밀리는 것처럼 보여도 원정 팬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서로 익숙해져 있던 탓이었다.

    이런 상황은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분명 기회는 온다. 베이포트 FC가 경기를 이끌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확실한 찬스는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오히려 더 많이 뛰어다니느라 체력 소모도 심해. 이 점을 생각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해지는 건 우리다. 이대로 계속 0 대 0의 균형을 이어간다면 후반전 중반을 넘어서 우리가 공격에 무게를 두었을 때 상대는 그걸 막기 힘들 거야.’

    마르코 알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마르코 알베스의 미소가 현실로 나타나는 데에는 후반전을 시작하는 휘슬이 울리고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라이언 네빌의 어정쩡한 롱패스를 아르센 디아라가 머리로 처리하려다 실수로 뒤로 흘렸고, 이를 붙잡은 다리오 안드리치가 수비수들을 끌어모은 뒤 가볍게 뒤로 내주었다. 그가 내준 공을 받은 안드레 벨라스케즈는 낮고 빠른 크로스를 골문 반대편으로 달려 나가는 애런 허들스톤에게 연결했다.

    애런 허들스톤은 빠르게 달리던 속도를 못이겨 자세를 무너뜨리면서도 그 크로스에 발을 가져다 대는 데 성공했고, 그 슈팅으로 베이포트 FC의 골문을 갈랐다.

    폴 맥마흔이 공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몸을 날렸지만 공은 그의 손끝을 스치며 골 망을 뒤흔들었다.

    1 대 0.

    예상치 못한 아르센 디아라의 실수로 인해 경기는 마르코 알베스가 기대한 것보다 더욱 빠르게 변했다. 브리큰돈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한순간 싸늘해졌고, 반대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원정 팬들은 소리 높여 그들의 응원가를 불렀다.

    “아…….”

    동민은 원정 팬들에게 달려가 환호를 받으며 골 세레머니를 하는 안드레 벨라스케즈와 애런 허들스톤을 보면서 동민은 허탈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전반전 내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를 공략하기 위해 활발하게 돌아다니면서 틈을 찾았던 것이 모두 무색해지는 실수였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에게 선제골, 그것도 우리 홈에서 원정 골을 내준 이상 후반전이 끝날 때까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조금이라도 공격에 힘을 쏟거나 위로 올라오는 일은 없을 거야.’

    동민은 머리가 지끈대는 것만 같았다.

    이번 경기를 두고 동민이 준비한 것은 그저 공격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반전과 후반 중반까지 경기의 주도권을 잡고 공격을 하되, 그 이상으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0 대 0의 균형에서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조금은 앞으로 나설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수비 밸런스를 주시하는 마르코 알베스라 해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역습만 붙잡고 있진 않을 거라는 것이 동민의 생각이었다.

    원정 골 우선 규칙 때문에라도 베이포트 FC가 틈을 보인다면 언제든 빠르게 공략하려 들 것이고, 그런 마르코 알베스가 전반전 동안 더 많이 뛴 베이포트 FC의 체력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동민은 그때 오히려 선수 교체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고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골문을 위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된다면 급한 쪽은 우리야.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조금이라도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전혀 없어. 라이언 네빌이나 에릭 우드게이트가 포백 위를 이중으로 커버하면서 우리가 무너지기만을 바라겠지.’

    동민으로서는 최악의 사태나 다름없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무너뜨리며 자신의 자존심을 긁었던 마르코 알베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계획을 전부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이 한 골 차의 거리를 유지하느냐 혹은 더욱 골을 내줄 위험을 무릅쓰고 이 경기를 뒤집으려 들 것이냐,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해.’

    비록 예상치 못한 실수라고는 해도 지금의 골로 상황은 완전히 바뀐 상태였다. 동민은 다음 원정 경기에서 더욱 어려운 경기를 하게 될 것이고, 지금의 선택이 준결승 진출을 좌우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냥 지금의 포메이션을 조금 더 유지하면서 선수들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를 뚫어내길 바라야 하나? 아니면 뒤 공간을 내줄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빠르게 대처해야 하나?”

    동민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지만 당장 머릿속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는 힘들었다. 단판 경기가 아니고 원정 경기에서 다시 맞붙을 수 있는 이상, 이 경기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2차전에서 경기를 뒤집는 것이 더 나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선제골을 내주고도 지금의 전술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더욱 안전을 추구할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수비진을 선수들이 뚫어주기만을 바라는 작전이었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이 존재했고, 어느 쪽이든 위험성이 존재했다.

    동민은 골을 내주고도 5분이 넘도록 고민을 거듭했고,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는 선제골의 빌미가 된 아르센 디아라를 빼고 야야 둠베흐를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했다.

    그리고 그의 도박을 빛을 보는 듯했다.

    -골! 로날드 조던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경기의 균형을 다시 맞춥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로날드 조던에게 공을 내주고 골문으로 달려가는 과정에서 발이 걸려 넘어졌고, 그 반칙으로 나온 페널티킥을 로날드 조던이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동점 골을 만들었다.

    그러나 베이포트 FC의 반격은 거기까지였다. 후반 32분, 주현이 공을 잃으며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역습이 나온 것이다.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다리오 안드리치가 강한 헤딩으로 연결시키면서 다시 역전 골을 만들었고, 경기는 또다시 2 대 1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측으로 기울어졌다.

    베이포트 FC로서는 역전 골도 역전 골이지만 공을 잃고 난 뒤 주현이 허벅지 뒤쪽을 감싸안고 부상으로 교체가 되면서 더욱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끝내 베이포트 FC는 다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골문을 열지 못하며 2 대 1로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경기 결과로도, 그리고 공격의 핵심 선수인 박주현의 부상으로도 베이포트 FC는 결코 웃을 수 없는 경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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