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기 전의 신경전 (256/270)
  • 경기 전의 신경전

    베이포트 FC와의 결전을 준비하는 마르코 알베스의 마음은 가벼웠다. 지난 시즌에 베이포트 FC가 승격한 이후로 지금껏 세 번의 맞대결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베이포트 FC가 AC 로마나 바르셀로나 CF와 같은 강팀들은 연이어 꺾으며 8강까지 올라온 시점에서도 그와 선수들에게 큰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물론 첫 승리 이후 두 번이나 무승부를 기록한 것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긴 리그 경기에서 단 한두 번도 미끄러지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스톡포트 시티와의 승점을 따라잡기가 점점 더 힘든 이상 차라리 챔피언스 리그에 더 집중하는 편이 낫겠어.’

    사실 마르코 알베스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이번 시즌은 그리 만족스러운 시즌은 아니었다. 리그에서 지난 시즌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이번 시즌 리그 내에서 너무나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스톡포트 시티 덕에 꽤 큰 차이로 밀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제 여섯 경기가 남아 있는 리그에서 1위인 스톡포트 시티와의 승점 차이는 11점이나 벌어져 있었기에 스톡포트 시티가 연패라도 하지 않는 이상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다른 컵 대회 또한 이상하리만치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만약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하게 된다면 그의 커리어에는 드물게도 이번 시즌을 무관으로 마무리 짓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의 상대가 베이포트 FC라는 것은 마르코 알베스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라 할 만했다.

    ‘베이포트 FC가 어떤 팀들을 꺾고 올라왔든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들에게 진 팀이 우리가 아니고, 지금까지의 상대 전적이 우리가 앞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 때문에 그는 베이포트 FC의 경기에 대해 거의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껏 이긴 적은 있어도 져본 적은 없는 상대이며, 자신이나 선수들이 실수하지 않는 이상 베이포트 FC가 그들의 역습 축구를 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베이포트 FC와 동민을 앞설 자신이 있었다.

    마르코 알베스는 반드시 베이포트 FC를 꺾고 준결승에 오르겠다는 생각이었다.

    마르코 알베스의 자신감은 경기를 앞두고 양 팀 감독의 기자회견에서도 확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베이포트 FC는 16강전에서 바르셀로나 CF라는 거함을 침몰시키고 올라온 팀입니다. 혹시 이번 경기를 앞두고 걱정되는 점이 있으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평소의 표정 그대로 대답했다.

    “아뇨. 그들이 이긴 팀은 우리 팀이 아니고, 우리는 경기를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베이포트 FC를 무시하는 발언도, 그들에게 패배했던 바르셀로나 CF를 모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는 지금까지 강동민 감독의 베이포트 FC를 세 번 만났고, 1승 2무를 거두었습니다. 우리가 질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습니다.”

    평소대로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이었다. 그의 말에 기자들이 다음 질문을 찾으려 할 때 마르코 알베스는 말을 이었다.

    “베이포트 FC의 강동민 감독은 자신들이 목표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고 말했다던데, 그러려면 우리를 꺾어야 할 겁니다. 우리 또한 목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며 그것을 위해선 베이포트 FC를 꺾어야 하니까요. 아, 아직 말하긴 이를지도 모르겠군요. 아직 8강전에 불과하니까요.”

    지난번 꽤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동민의 말을 슬쩍 언급하면서 그는 미소를 지었다.

    팀을 확실히 휘어잡아 이끌고, 좋은 전략을 구상하는 것 이외에도 마르코 알베스가 가진 최대의 장점은 언변에 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날아드는 화살과도 같은 질문들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유도할 수 있었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도 있었다. 패배한 경기에서 일부러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언변으로 팀의 패배로 인한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에게 집중시키기도 했고, 경기 전부터 상대 감독이나 선수를 자극하면서 심리전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방금 아직 이르다는 말씀은 지난 바르셀로나 CF와의 경기가 끝난 직후 목표는 우승이라고 말했던 강동민 감독의 발언을 겨냥하신 건가요?”

    기자는 그가 바라던 대로 덥석 그의 말을 물었다. 경기를 앞두고 다른 감독들을 자극하며 심리전을 이용하는 마르코 알베스는 이런 기자들의 기질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예상한 대로 그 부분을 물고 늘어진 기자를 바라보며 그는 시치미를 떼듯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다른 감독이 어떤 발언을 하든지 별로 딴지를 걸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저는 챔피언스 리그가 16강전 이후로도 꽤 긴 일정이 있다는 것 정도는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이 있어서요.”

    그렇게 말하며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는 마르코 알베스의 모습을 기자들은 빠르게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의 발언의 의미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실했다. 16강전을 이겼다고 우승을 입에 담은 동민의 행동은 경험 부족에서 나온 실수였다며 꼬집은 것이다.

    마르코 알베스가 바랐던 대로 경기 전부터 동민과 마르코 알베스의 대립 구도는 빠르게 이뤄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라니까.”

    동민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마르코 알베스가 그를 겨냥해 말한 것을 안 동민이었지만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그것을 그대로 되갚아줄 수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마르코 알베스가 원하던 그림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탓이다.

    동민은 마르코 알베스의 발언을 가지고 자꾸만 자극적으로 질문을 해오는 기자들의 앞에서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면서 질문들을 돌렸다. 그는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다는 마음을 힘들게 눌러 참아야만 했다.

    ‘날 자극시키고 이 경기를 단순히 나와 그의 자존심 싸움처럼 만들 생각이겠지. 그러면서 내가 냉정을 잃고 말려들길 바랐을 테고. 내가 굳이 받아주지 않아도 자신에게 문제 될 것은 없으니까. 여우 같은 자식.’

    동민은 뻔히 보이는 노림수를 쓰는 마르코 알베스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 쉬운 노림수에 걸려들지 않은 것은 동민 스스로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마르코 알베스의 말이 전혀 불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 말보다 더 열받는 건 그런 말로 날 낚으려고 했다는 사실 그 자체지만.’

    그런 속이 뻔히 보이는 말로 자신을 도발하려 하는 마르코 알베스의 행동은 동민을 경험 부족한 젊은 감독으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경험 부족한 그의 신경을 긁어 평정을 잃게 만들고, 그로 인해 선수들의 경기 집중력까지 떨어지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마르코 알베스의 발언보다 그 안에 깔린 그의 의도가 동민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반드시 이번 경기에서 그 망할 자식의 얼굴을 잔뜩 찌푸리게 만들어주겠어. 어디 이번에 한 방 먹고도 그런 태도가 유지되나 두고 보자고. 도발이고 뭐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뉴 퍼스우드로 돌아가게 해줄 테니까.’

    동민은 이번에야말로 지금껏 마르코 알베스에게 받았던 수모를 되갚아줄 것을 다짐했다.

    베이포트 FC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이 열리는 날,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꽤 이른 시간부터 북적이고 있었다.

    지난 16강전에서 바르셀로나 CF를 잡아내며 팬들의 기대를 잔뜩 올렸고, 리그 내에서도 아슬아슬한 4위 싸움을 이어가는 베이포트 FC이기에 이번에도 베이포트 FC의 홈팬들은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반대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원정 팬들은 리그 우승컵이 스톡포트 시티 쪽으로 크게 기운 상황에서 챔피언스 리그에서만은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승리가 간절했고, 이번 시즌 리그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을 넘어 오늘은 시원한 승리를 챙겨가길 바랐다.

    베이포트 FC의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 유니폼과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여들어 각자의 승리를 노래했다.

    그리고 브리큰돈 스타디움의 원정 팀 라커 룸에 있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선수들 또한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이 경기는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경기다. 상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승리하지 못했던 팀이고, 우리는 간절히 승리를 바라는 팀이다. 상대가 바르셀로나를 이기고 올라왔든 뭘 했든, 우리가 못 이길 이유가 없다. 저들은 지금껏 이기지 못한 것을 되갚겠다고 하겠지만, 반대로 우리는 운이 없어서 놓친 승점 4점을 되찾을 기회다.”

    마르코 알베스는 그만큼 승리를 자신했다.

    베이포트 FC와 동민은 얕보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자신과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그들에게 지는 일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면 결코 패배할 일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생각은 지금까지 여러 팀들을 거치면서 수많은 트로피들을 들어 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예전에 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에겐 더 뛰어난 선수들과 더 뛰어난 감독이 있다. 더 많은 유럽 대항전의 경험도 있고,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서 승리를 취할 수 있는지도 안다. 여기가 상대의 홈인지는 관계없다. 겨우 이 정도의 야유에 위축될 선수는 우리 중에 없으니까.”

    그의 말에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선수들은 모두 이목을 집중했다. 그의 말처럼 그들은 베이포트 FC 선수들과는 비교하기 힘든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챔피언스 리그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그저 꿈같은 무대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큰 무대였다. 그만큼 이 자리에 대한 부담은 적었다.

    “지난 1차전에서 그들이 운 좋게 무승부를 거두긴 했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운이 좋진 않을 테고, 그렇다면 승리는 우리 차지다. 나가서 저 어중이떠중이들의 챔피언스 리그 산책을 끝내주도록.”

    마르코 알베스는 그렇게 말을 끝냈다.

    다른 팀의 감독들과 선수들에겐 끊임없는 자극과 의구심을, 자신의 선수들에게는 끝없는 신뢰를 보내는 그다운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리그 우승컵을 라이벌에게 넘겨줄 위기에 처하며 조금은 가라앉아 있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선수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들은 상대가 지금껏 그들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승리한 적 없는 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기며 경기에 나섰다.

    동민과 마르코 알베스의 네 번째 맞대결이자,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을 건 베이포트 FC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첫 번째 대결이 그렇게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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