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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의 싸움(3) (253/270)
  • 절실함의 싸움(3)

    제수스 모레노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하프타임을 맞은 베이포트 FC의 라커 룸은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상대와 공격 대 공격으로 맞붙었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맞불을 놓았지만 전반전 45분의 결과는 실패였다. 그들은 바르셀로나 CF의 골문을 뚫어내지 못했고, 바르셀로나 CF는 마티아스 루비오와 제수스 모레노를 앞세워 그들의 골문을 열어젖히는 데 성공했다. 아까운 기회들도, 골에 근접했던 장면들도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결과적으로 본다면 공격적으로 나서서 골을 만들어내지 못한 그들과 골로 연결해 낸 바르셀로나 CF 간의 차이는 컸다.

    모든 선수들이 그 사실에 침울해져 있거나,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올리비에 나스리의 후회는 더욱 컸다.

    ‘거기서 시선이 끌려서 내가 달라붙는 게 늦지만 않았어도!’

    제수스 모레노의 골 장면에서 본래 그런 침투를 막아내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마티아스 루비오가 드리블과 돌파가 뛰어나고 어느 위치에서든 위협적인 슈팅을 날릴 수 있다지만 그 상황에서 그를 직접 막아내는 것은 올리비에 나스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조나단 케인이 앞으로 나서서 슈팅을 할 수 있는 각도를 없애고, 올리비에 나스리가 뒤로 빠져 들어가는 다른 선수를 잡는다. 그것이 베이포트 FC가 내세운 수비 전술이었다. 그러나 제수스 모레노의 선제골이 터졌을 때, 올리비에 나스리는 그를 잡아내지 못했다.

    ‘마티아스 루비오 그놈의 페이크에 말려드는 바람에…….’

    베이포트 FC 선수 중 바르셀로나 CF와 마티아스 루비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선수는 바로 올리비에 나스리다. 과거 FC 마드리드에서 뛸 때의 경험으로 그는 마티아스 루비오 특유의 슈팅 동작을 알고 있었다.

    제수스 모레노에게 패스를 주기 직전, 올리비에 나스리는 마티아스 루비오가 오른발을 내딛으며 슬쩍 몸을 트는 것을 보고 슈팅을 예상했다. 그 자세는 그가 FC 마드리드 시절 몇 번이나 보았던 마티아스 루비오의 슈팅 동작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나단 케인을 비롯한 베이포트 FC의 선수들로 인해 좁은 각도였지만 마티아스 루비오라면 충분히 슈팅을 시도할 수 있었고, 실제로 과거에 그런 좁은 각도에서도 예술적인 슈팅을 선보이며 골을 넣은 적도 꽤나 있었다.

    그러나 마티아스 루비오의 선택은 제수스 모레노의 움직임을 예측한 노 룩 패스였고, 마티아스 루비오에게 잠시 시선이 끌렸던 올리비에 나스리는 자신의 뒤쪽에서 들어가는 제수스 모레노를 놓치고 말았다.

    그것이 그저 잘못된 판단이었는지, 혹은 계속된 상대의 공격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로에서 나온 실수였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실수로 인해 상대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는 사실이었다.

    ‘이걸로 지난 경기까지 합친 전체 스코어는 2 대 1이다. 잘못하면 이대로 질질 상대에게 끌려다니다가 경기가 끝날지도 몰라. 더 최악의 경우에는 이러다가 더 실점하면서 무너질지 모르고…….’

    올리비에 나스리는 자신의 실수 한 번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느끼며 자책했다. 동민은 그의 경험을 믿고 그를 이런 경기에서 선발로 내세웠는데 팀에 보탬이 되어야 할 베테랑이 구멍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젠장할…….’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그의 행동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은 45분간 극한의 외줄타기를 반복하던 지금 베이포트 FC선수들의 심리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홈이라는 이점을 얻어 먼저 선제 득점을 가져가 경기를 자신들의 페이스로 끌어오려는 노력을 실패했고, 오히려 득점을 허용하며 이제는 유리한 고지조차도 내주게 되었다. 그 생각이 후반전에 집중하려는 선수들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떠올라 그들을 붙잡고 있었다.

    그런 선수들에게 동민은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늦었네요. 전반전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동민의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모습만 보면 조금 전 제수스 모레노에게 선제골을 내주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조금 어리둥절하는 선수들을 마주보며, 동민은 말을 이었다.

    “두 가지만 이야기할게요. 첫째, 우리는 전반전 동안 잘 싸웠어요. 수비진은 부담이 큰 플레이를 거의 무리 없이 해냈고, 공격에 있어서는 거의 골이 될 뻔한 장면들도 만들어냈죠. 그만큼 우리는 바르셀로나 CF와 완전히 동등한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상대도 우리가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몰랐을 거예요.”

    그의 말대로 결과적으로 골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선수들은 몇 수 위라 여겨지는 바르셀로나 CF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악착같이 선수와 공을 쫓아 공격을 막아냈고, 상대의 틈을 날카롭게 노리며 골을 만들어내려 했다. 그만큼 그들의 경기력만 따지자면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모자랐죠. 공격에 있어서 연계가 아주 조금 늦거나, 수비에 있어서 집중력이 살짝 흔들리거나 하는 것들이요.”

    그의 눈이 주현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올리비에 나스리를 거쳐 다른 선수들을 주욱 한번 돌아보았다.

    “그래서 두 번째, 그 디테일한 부분을 살려야 합니다. 더 공격적으로 나서야만 해요. 그리고 서로 더 가깝게 위치하면서 오히려 공을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하죠. 그것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열쇠가 될 겁니다.”

    후반전에도 동민의 선택은 같았다. 바르셀로나 CF의 창에는 창으로 맞서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박주현, 좌우 움직임을 줄이고 수직으로 움직이면서 사무엘 사우티를 집중적으로 노려요. 그 선수의 고질병인 수비 집중력은 쉽게 고쳐질 만한 것이 아니고, 지난 1차전에서의 실수 때문에 당신이 집요하게 노린다면 심리적으로 더욱 흔들릴 수 있어요.”

    동민의 말에 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르히오, 주현이 중앙에 집중하면서 줄어든 활동량을 대신 해줬으면 좋겠어요. 좌우로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측면 공격의 활로를 함께 뚫어주세요. 상대 좌우 풀백은 번갈아가며 오버래핑을 하고 있으니 그 비는 공간을 당신이 함께 공략해 줘야 해요. 그리고 미드필더진, 먼저 해리 당신은…….”

    동민의 이야기는 한참 동안이나 끝나지 않았다. 선수들은 실점으로 인해 상대에게 유리하게 돌아간 경기에 낙담했던 모습이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상황을 반드시 뒤집을 수 있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런 동민의 태도에 선수들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이건 8강 진출을 둔 전쟁과도 같아요. 바르셀로나 CF라는 골리앗과의 싸움이죠. 그만큼 여러분이 고통스럽겠지만 그 고통은 당연한 겁니다. 이것이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고, 전 유럽의 챔피언이 되기를 원하는 팀들의 각축전이니까요.”

    동민은 한 번 숨을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이 경기는 더욱 절박한 팀이 이길 수밖에 없어요. 저 위에서는 팬들이 그들의 절박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한 골을 내주고 불리하게 변한 상황에서도 처음과 똑같이, 오히려 더욱 열정적인 응원을 해주고 있죠.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절박함을 보여줘야 해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것뿐입니다.”

    동민은 그렇게 말을 끝냈다.

    1골을 내주었다지만 아직 경기는 45분이 남아 있었고, 그들이 8강에 진출할 수 있는 확률 또한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가능성에서 끝내지 않고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며 동민은 선수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선수들 또한 다시 힘을 내기로 결심했다. 아직 그들은 그들의 절박함을 모두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반전을 맞은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여전히 열정적인 응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르셀로나 CF라는 강팀에게 먼저 골을 허용하고, 지금껏 조금이나마 유리했던 전황이 단숨에 뒤집어진 것은 분명 팬들에게 불안한 상황이지만 베이포트 FC의 홈팬들은 그렇지 않았다.

    과거의 베이포트 FC라면 지금쯤 이 경기는 틀렸다며 한숨을 쉬는 팬들이나, 시간이 줄어갈수록 불안함을 느끼는 팬들의 수군거림이 늘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요 몇 년간 베이포트 FC는 지금껏 그들에게 기적이라도 느껴질 만한 일들을 해왔다. 프리미어리그 승격, 프리미어리그 4위라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성적,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첫 승, 그리고 16강까지. 그 경험들은 모두 베이포트 FC의 팬들에게 안정감과 믿음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의 베이포트 FC라면 이런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지 모른다. 몇 달 전, 지금 이 장소에서 AC로마를 잡으며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것처럼 이번에도 바르셀로나 CF라는 거함을 침몰시킬지 모른다. 그것이 팬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꽤 이른 시간에 실현되고 있었다.

    -골! 박주현이 다시 경기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바르셀로나 CF의 중앙 수비수인 사무엘 사우티를 집요하게 공략하던 동민은 결국 그의 실수를 이끌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골키퍼인 폴 맥마흔은 최전방까지 공을 길게 연결했고, 사무엘 사우티는 낙하 지점을 잘못 판단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공은 그의 머리를 스치듯 뒤로 빠졌고, 주현은 그 공을 잡아서 빠르게 골문으로 쇄도했다. 그리고 달려 나온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재치 있는 로빙슛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경기의 균형은 다시 정중앙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두 팀은 모두 상대를 무너뜨릴 단 한 골을 위해 남은 시간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연장전으로 넘어가면 체력 손실이 큰 우리가 불리해. 어떻게든 그 전에 끝내야만 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조금씩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억지로 떨쳐내며 달렸다.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팬들 앞에서 지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절박함을 보이라고 했지. 여기서 무너질 순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워져 지금은 무거운 모래주머니라도 단 듯한 발을 움직이며 그는 공을 받았다. 빠르게 경기장 좌측을 보자 그 곳에는 야야 둠베흐가 사이드라인 옆을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그 또한 전반전부터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지쳤을 텐데 이런 늦은 시간까지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제발 야야 둠베흐가 전력 질주를 이어갈 체력이 남아 있길 바라며 상대진영 깊숙이 패스를 찔러 넣었다.

    야야 둠베흐는 그 조금 긴 패스를 상대 골라인을 넘기 직전에 잡아내는 데 성공했고, 넘어지면서도 반대편 페널티박스에서 기다리고 있는 주현에게 공을 넘겼다.

    ‘이게 마지막이다.’

    주현은 날아오는 공을 보면서 이것이 팀의 마지막 공격이 될 거라 확신했다. 연장전에 가지 않고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주위가 천천히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는 날아오는 공을 가슴으로 받아냈다. 바로 앞에 사무엘 사우티가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듯 달려들었지만 주현은 오른발로 떨어지는 공을 다시 띄워 올리며 그를 제쳤다.

    이제 골문과 그 사이에는 골키퍼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주현은 또다시 떨어지는 공이 그라운드에 닿기도 전에 왼발로 강하게 공을 차냈다. 골키퍼는 반드시 슛을 막겠다는 듯 몸을 날렸지만 공은 그의 다리 사이를 지나 골 망을 흔들었다.

    88분에 터진 베이포트 FC의 역전 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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