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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의 싸움(2) (252/270)
  • 절실함의 싸움(2)

    이번 경기를 앞두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은 반드시 골이 필요한 바르셀로나 CF의 강렬한 공격을 베이포트 FC가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루테로 알론소가 징계로 인해 결장하지만 원정 골 우선 규칙 때문에라도 바르셀로나 CF는 반드시 골이 필요했고, 지금의 유리한 상황을 이어가야 하는 베이포트 FC는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야 했다.

    그렇기에 이번 경기의 승패는 바르셀로나 CF의 창이 더 날카로울지, 베이포트 FC의 방패가 더 튼튼할지에서 갈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을 포함한 축구팬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경기가 시작되자,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홈이란 이점을 등에 업고 뒤쪽으로 물러나 바르셀로나 CF의 공격을 막으려 할 것이라 생각한 베이포트 FC가 공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베이포트 FC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박주현을 투톱으로 내세워 상대 수비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듯했다.

    ‘틀어막으려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맞불로 나서겠다고?’

    한국 시각으로 아직 새벽, 병렬은 조금은 침침한 눈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베이포트 FC와 바르셀로나 CF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오늘도 늦지 않게 출근을 해야 했지만 아끼는 제자의 경기를 보지 못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언젠가 스스로 늙으면 아침잠이 줄어든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이런 새벽부터 눈을 뜬 채 경기에 집중했다.

    ‘저 녀석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자존심 싸움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그는 아연 질색한 표정으로 동민이 짜온 판을 바라보았다. 베이포트 FC는 수비 라인 자체를 끌어올리고, 미드필더부터 압박하고 빠르게 공을 운반하며 바르셀로나 CF의 수비를 공략하려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있었던 1차전에서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중원 압박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베이포트 FC는 확실하게 공세로 돌아서며 창과 방패의 대결이 아닌, 창과 창의 대결로 만들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의 홈이라지만 1차전의 굴욕으로 잔뜩 독기가 오른 바르셀로나 CF를 상대로 맞불을 놓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만이나 다름없었다. 똑같이 공격적으로 나선다면 루테로 알론소가 빠진 상태라도 바르셀로나 CF가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언제나 강한 공격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에 익숙한 팀이었고, 베이포트 FC는 상대의 강점을 누르고 약점을 찌르는 것에 익숙한 팀이었다. 무작정 서로 공격에 나선다면 누가 더 유리할지는 더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홈경기인 만큼 서포터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혹은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경기 주도권을 내주는 것이 싫어서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병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저 녀석이 그런 것에 얽매일 리가 없어.’

    그는 아직도 동민이 처음 동아리의 감독을 맡고, 결승전 직전에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가 질문을 던졌던 그때, 동민은 이기는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대의 장점을 막고 약점을 파고드는, 상대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모습으로 막아서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 동민이 이제 와서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자존심 같은 것 때문에 위험을 자초할 리 없었다.

    ‘그러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지?’

    병렬이 그렇게 말을 하는 사이에도 바르셀로나 CF는 자신들의 가장 큰 무기인 마티아스 루비오와 제수스 모레노의 돌파와 연계를 앞세워 베이포트 FC의 압박을 풀어내고 공격을 진행하고 있었다. 양 팀 다 자신의 골문을 지키기 다는 상대의 골문을 노리겠다는 것이 확실히 보이는 플레이였지만, 더 효과적인 공격을 하고 있는 팀은 역시 바르셀로나 CF였다.

    베이포트 FC는 중원에서 발 빠른 패스로 공격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그 패스가 한 번 끊기는 순간 계속해서 마티아스 루비오와 제수스 모레노에 의해 더 큰 위기들을 맞았다. 그나마 노련한 센터백 듀오의 수비와 골키퍼의 선방으로 겨우 골문을 지키는 중이였다.

    “…저놈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점점 더 바르셀로나 CF의 분위기대로 흘러가는 전반전을 보면서 병렬은 불안한 눈빛으로 중계 카메라에 잡힌 자신의 애제자를 바라보았다.

    “부담이 클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진짜 이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말이야.”

    조나단 케인과 올리비에 나스리, 베이포트 FC의 두 센터백은 푸념하듯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보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전반전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피곤함이 엿보였다.

    바르셀로나 CF는 그야말로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는 재빠른 돌파와 예리한 침투로 베이포트 FC의 수비를 들쑤셨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올리비에 나스리와 조나단 케인은 그야말로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야만 했다.

    키를 넘기는 로빙 패스로 수비 뒤쪽 공간을 노리는 패스를 어떻게든 몸을 날려 걷어냈고, 예리한 패스와 침투로 골문을 노리는 선수를 몸싸움에서 밀어냈다. 그들의 헌신적인 수비로도 미처 막아내지 못한 슈팅들은 골키퍼인 폴 맥마흔이 몸을 던져서 막아냈다. 그렇게 베이포트 FC의 수비진들은 상대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다.

    몇 번이나 계속된 위기에서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곧바로 실점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침착하게, 그리고 묵묵히 바르셀로나 CF의 공격을 차단했다.

    경기를 준비하면서 동민이 수비진에게 가는 부담이 적지 않겠지만 잘 버텨달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들은 악착같이 바르셀로나 CF의 파상 공세를 막고 빠르게 역습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는 동민 또한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베이포트 FC는 홈팬들의 성원 아래에서 바르셀로나 CF의 파상 공세를 견뎌내며 계속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무의미하게 끝나지 않고 간간히 상대의 골문 근처에서 좋은 기회를 만들었고, 바르셀로나 CF의 좋은 수비가 아니었다면 골로 연결되었을지 모르는 기회도 있었다. 양 팀 모두 공격에 공격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골문을 노렸다.

    물론 베이포트 FC로서는 처음부터 아예 라인을 내리고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에 집중한다면 이런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도 같은 경기를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동민의 머릿속에는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없었다.

    ‘상대가 마음 놓고 두들기는 분위기로 흘러간다면 그때부터는 완전히 바르셀로나 CF의 페이스야. 그런 상태에서 상대의 무자비한 공격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무실점으로 방어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지.’

    동민은 베이포트 FC가 라인을 내리고 수비적으로 나서는 것이 오히려 바르셀로나 CF에게 승리를 헌납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수비적으로 나오는 상대들을 다루는 것이 익숙한 바르셀로나 CF인만큼 뒤로 물러서서 방어하는 방법은 상대의 기만 살려주는 꼴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 때문에 동민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베이포트 FC 선수들이 그의 지시대로 잘 따라주고 있었다.

    ‘무실점으로 바르셀로나 CF의 공격을 막으면 좋겠지만, 이 경기는 아마 어느 쪽이든 무실점으로 끝날 것 같진 않아. 어느 팀이 선제골을 넣느냐에 따라 경기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거야. 어떻게든 우리가 당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골문을 비집고 열어야 할 텐데…….’

    동민은 입술을 깨물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바르셀로나 CF가 선제골을 넣는다면 그 순간 경기는 완전히 바르셀로나 CF 측으로 흐르고 만다. 조나단 케인을 비롯한 수비진과 폴 맥마흔이 좋은 활약으로 그들의 공격을 막고는 있지만 기세를 탄 바르셀로나 CF의 공격진을 막기는 더욱 힘들어질 테고, 그 결과는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베이포트 FC가 선제골을 넣는다면 그때는 베이포트 FC가 이런 위험한 외줄타기를 그만두고 수비에 집중하며 긴 패스로 상대 수비의 실책을 노려볼 만한 바탕이 될 수 있다.

    두 팀의 치열한 혈투는 선제골이 어느 팀에서 터지느냐에 따라 크게 뒤바뀔 수 있었고, 동민은 부디 거기서 우위를 차지하는 팀이 베이포트 FC이길 바랐다.

    ‘골이 아직 들어가진 않았지만 답답하기 짝이 없었던 지난번과는 확실히 달라.’

    마티아스 루비오는 경기장 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면서도 침착하게 지금의 상황을 정리했다.

    지난 1차전과 같이 골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지난 1차전에서는 제대로 된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았고 기회를 잡아도 슈팅을 하기 직전에 막혔다면, 이번에는 조금 운이 따라주지 않는 정도였다. 베이포트 FC가 예상과는 다르게 공격적으로 나서는 만큼 그들의 수비진은 지난번보다 헐거울 수밖에 없었다. 아직 골이 터지지 않았다고 해도 지난번처럼 확실한 찬스조차 만들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 아닌 이상, 마티아스 루비오 또한 초조함은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만 가면 분명히 상대 골문은 열리게 되어 있어. 지금만 해도 상대 수비는 분명 지친 기색이 완연하니까.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모두 베이포트 FC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에 가깝겠지.’

    양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 바르셀로나 CF의 공격을 막아내고 빠르게 역습까지 시도하느라 베이포트 FC의 수비진의 체력을 너무나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마티아스 루비오는 지난 경기와 다르게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루테로가 없더라도 지친 수비진을 상대로 골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번에 비겼다고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본 모양인데, 바르셀로나 CF를 그렇게 가볍게 보면 큰코다친다는 걸 깨닫게 해주겠어.’

    마티아스 루비오는 우측면에서 이어진 패스를 받으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곧바로 양 옆에 있던 베이포트 FC의 미드필더들이 빠르게 달라붙었지만 이미 공을 가지고 달리기 시작한 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의 돌파를 막으려 이안 페트로프가 급하게 다리를 뻗었으나 마티아스 루비오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왼발로 슬쩍 공을 빼면서 태클을 피해냈다. 그리고는 정확히 보지도 않은 채 페널티박스 좌측으로 공을 패스했다. 빠르게 달려든 수비수들 때문에 제수스 모레노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 곳에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확실하게 보지는 못했어도 그가 아는 제수스 모레노라면 그의 드리블로 수비가 뭉쳐진 틈을 타 그 사이로 침투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그리고 그의 패스를 받은 제수스 모레노가 골문 가장자리로 깔끔하게 슈팅을 밀어 넣는 것을 보면서 마티아스 루비오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경기는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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