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기가 끝나고 (250/270)
  • 경기가 끝나고

    ‘왜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소리를 듣는지 알겠어.’

    동민은 거의 다 잡았던 승리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탄탄하게 경기를 준비했고, 그 덕에 바르셀로나 CF라는 거함을 그들의 홈에서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밀어붙였지만 결국 승리를 챙길 수는 없었다.

    단 한 명, 마티아스 루비오의 한 방을 막지 못해서 결국 동점 골을 내주고, 1 대 1이라는 스코어에 만족하고 런던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끝나기 직전까지 바르셀로나 CF를 철저히 패배의 구렁텅이 앞으로 밀었지만 상대는 그 한 걸음 전에 몸을 빼내 탈출하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2차전이 우리한테 유리하게 된 상황만은 맞다는 거지만…….’

    물론 베이포트 FC가 유리한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원정 팀의 무덤이라 불리는 에스타디오 데 바르셀로나에서 원정 골을 넣었고, 이 골 덕에 홈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0 대 0으로 비기기만 해도 원정 다득점 규정에 의해 8강으로 진출할 수 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 CF의 공격진 트리오 중 한 명인 루테로 알론소가 이번 경기에서 퇴장당하면서 다음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바르셀로나 CF는 베이포트 FC의 홈에서 벌어지는 2차전에서 자신들의 막강한 공격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반드시 골을 넣어야만 하는 불리한 위치에 놓인 것이다.

    그 이외에도 몇 수 아래의 팀으로 보고 있던 베이포트 FC에게 홈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며 겨우 패배를 면하면서 자신들의 자존심에 큰 흠집이 난 것 또한, 바르셀로나 CF로서는 한 방 먹은 기분일 터였다.

    그만큼 이번 경기로 인해 베이포트 FC가 얻은 것들은 매우 컸다. 하지만 동민으로서는 이번에 꼭 승리를 거두면서 8강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음 경기는 3주 뒤, 그때 바르셀로나 CF는 정말로 사력을 다해 싸우러 올 테니까.’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번 경기에서 바르셀로나 CF라는 거함을 강하게 몰아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자신들의 경기 준비도 한몫했지만, 바르셀로나 CF가 자신들을 어느 정도 쉽게 보았던 것 또한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라는 무대에서 만난 만큼 바르셀로나 CF가 베이포트 CF를 얕보고 경기를 대충한 것은 아니지만, 쉬운 상대라고 생각한 베이포트 FC에게 거센 반격을 당해 당황한 것은 확실했다.

    ‘FC 마드리드와 같은 강팀들과 치열한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둔 경쟁을 하던 차에 우리 팀을 만난 만큼 꽤 힘이 풀린 건 이해할 만하지.’

    동민 또한 그런 점을 생각하고 경기를 준비했었고, 승리를 노렸지만 결국 마티아스 루비오라는 한 명의 선수에게 막히고 말았다. 브리큰돈 스타디움에서 벌어질 2차전에서는 바르셀로나 CF가 이번 경기처럼 나서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CF에게 단지 운 좋게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까지 올라온 약팀이라는 평가 대신 긴장해서는 안 될 팀이라는 평가를 받게 만든 것은 좋지만, 그만큼 다음 경기는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홈구장에서, 그것도 루테로 알론소가 결장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골을 넣어야 하는 바르셀로나 CF는 죽기 살기로 부딪쳐 올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착실한 준비를 바탕으로 확실한 우위에 서고 싶었는데… 참 마음대로 안 되는군.”

    지난 시즌, 그들이 8강전에서 파리 CF를 상대로 1차전 원정 경기에서 4 대 0의 대패를 당하고도 2차전인 홈경기에서 6 대 1의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두면서 4강에 진출한 것을 동민은 기억했다. 이번에 베이포트 FC가 루테로 알론소의 퇴장이나 원정 골 등 유리한 점들이 있다고 해도, 그때의 파리 CF와 비교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만큼 바르셀로나 CF가 분위기를 뒤집어 승리를 거두기도 쉬웠다.

    베이포트 FC가 유리한 점이 있다고는 해도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가는 너무도 쉽게 8강 진출을 바르셀로나 CF에게 내줄지 몰랐다.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거나 다름없겠어.’

    동민은 모두를 놀라게 한 경기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런던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거의 진 것이나 다름없는 경기였다.’

    바르셀로나 CF의 감독, 마르코스 히메네즈는 표정을 구겼다. 몇 수는 아래라고 봤던 팀에게 너무나도 힘들게 무승부를 얻어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마지막 추가시간에 얻은 골은 팀 적으로 상대를 누르고 만들어낸 골이 아니라 마티아스 루비오 단 한 명의 힘으로 만든 골이었다. 그들이 준비했던 공격진 세 명의 빠르고 확실한 연계와 돌파로 상대의 골문을 노리는 플레이는 실종되었고, 잘나가는 와중에도 불안 요소였던 수비진의 실책은 이번에야말로 재앙을 낳았다.

    베이포트 FC는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욱 경기를 잘 준비했고, 그들의 강약점을 파악해 그들의 맹점을 찌른 것이다.

    ‘우리가 너무 얕본 거였는지도 몰라. 베이포트 FC는 죽음의 조에서 FC 마드리드 덕에 운 좋게 16강에 올라온 팀이 아니라 그만큼 저력이 있는 팀이었어.’

    에스타디오 데 바르셀로나 원정 경기에서 이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 팀이 얼마나 있었는지 그는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상대적으로 약팀에게 이렇게 완전히 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게임을 한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었다.

    그만큼 베이포트 FC의 경기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마르코스 히메네즈는 이 에스파디오 데 바르셀로나에서 겨우 비겼다며 안도하는 경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굴욕이었다. 그가 아는 바르셀로나 CF는 적어도 홈에서만은 어떠한 상대든 압도해야 했고, 비기거나 지더라도 상대가 운이 좋았다며 안도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 바르셀로나 CF는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고, 오히려 운이 좋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쪽은 바르셀로나 CF였다. 그들이 가장 화려하게 빛나며 상대를 압도해야 하는 곳에서 상대에게 질질 끌려다닌 것이다.

    “이 굴욕은 반드시 갚는다. 다음 원정 경기에서 이 열세를 확실하게 뒤집으면서 8강으로 가주마.”

    그는 이를 악물고 그렇게 말했다.

    베이포트 FC가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뒀다는 소식은 그들이 AC 로마를 상대로 두 번이나 승리를 거둔 것 이상의 충격을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가져다주었다. AC 로마는 과거의 영광에 비해 지금은 꽤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는 팀이지만, 바르셀로나 CF는 지금도 전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바르셀로나 CF가 홈에서 굴욕을 당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베이포트 FC가 놀라운 점은 현 시대 최고의 공격진이라는 평가를 받는 바르셀로나 CF의 트리오를 상대로 단 한 골밖에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그저 경기를 비겼다는 점이 아니었다. 바르셀로나 CF와 그들의 공격진이라도 부진할 때는 있고, 비기거나 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홈에서 바르셀로나 CF가 경기를 지배하지 못하게 한 팀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만큼 베이포트 FC의 플레이는 팬들이 기대한 것 이상을 보여주었다.

    “…다비드, 당신 말이 맞았네요. 베이포트 FC가 8강에 올라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던 내 말이 틀렸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네요.”

    스톡포트 시티의 수석 코치인 미켈 고메즈는 두 손을 들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는 지난 박싱 데이를 앞두고 베이포트 FC의 경기를 보던 다비드 페레즈를 보고 베이포트 FC가 바르셀로나 CF를 꺾고 올라올 확률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지난 베이포트 FC와 바르셀로나 CF의 경기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베이포트 FC는 효과적으로 바르셀로나 CF의 공격을 막았고, 상대의 실수를 유발해 그 기회를 골로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마티아스 루비오 한 사람의 힘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긴 했지만 바르셀로나 CF는 자신들의 홈에서 체면을 구겨야 했다.

    “미켈, 당신이 그렇게 말해주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기쁘군요.”

    다비드 페레즈는 그렇게 말하는 미켈 고메즈를 보며 미소 지었다. 지난날 베이포트 FC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보며 챔피언스리그에서 그들의 가능성을 인정했던 다비드 페레즈는 이번 경기로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베이포트 FC는 그가 생각한 것처럼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팀이었다.

    “물론 당신도 알다시피 바르셀로나 CF 또한 2차전에 이를 악물고 나올 테니 누가 올라갈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이 승리할 가능성이 0퍼센트가 아니라는 건 보여줬으니까요.”

    다비드 페레즈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미 1차전에서 세리에 A의 강팀인 SSC 카타니아를 4 대 0으로 완파하며 8강행 청신호를 켠 상태에서 스톡포트 시티의 눈은 이미 16강전 이후의 상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시즌에야말로 구단 창단 이후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는 그들은 상대가 될 수 있는 팀들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모아가고 있었고, 이제는 그 대상에 베이포트 FC도 포함되어 있었다. 바르셀로나 CF를 상대로 보여준 경기력이 그들에 대한 경계심을 확실히 늘린 것이다.

    “그렇겠죠. 아무리 루테로 알론소가 퇴장으로 인해 나오지 못하고, 원정 골을 내준 상태여서 골이 없다면 떨어지게 되는 불리한 상황이라고 해도 바르셀로나 CF는 충분히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팀이니까요. 다만 베이포트 FC는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더 위에서 만날 수 있는 팀이 될지 모를 가능성을 보여줬고요.”

    미켈 고메즈는 신중하게 말했다. 지난번 베이포트 FC를 무시하던 태도와는 다르게, 확실하게 상대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언제나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분석하며 다비드 페레즈를 돕는 그의 모습 그대로였다.

    “일단 경계하는 편이 좋겠죠. 바르셀로나 CF가 올라오든 베이포트 FC가 올라오든, 쉬운 경기가 되진 않겠어요. 아, 물론 그전에 카타니아 SSC를 상대로 다시 한번 확실하게 승리를 거둘 필요는 있겠지만요.”

    다비드 페레즈와 미켈 고메즈의 생각은 정확히 일치했다.

    첫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서 돌풍을 보여주는 베이포트 FC가 그 돌풍을 이어갈지, 아니면 오랜 저력을 가진 바르셀로나 CF가 경기를 뒤집을지 지금 그들이 예상할 수 없었고 예상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누가 8강전의 상대로 정해지든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만이 그들이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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