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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손아귀에 쥐는 방법 (248/270)
  • 괴물을 손아귀에 쥐는 방법

    ‘좋아, 아직까진 괜찮아. 생각한 것에서 크게 밀리지 않고 있어.’

    전반전도 반 이상 지난 30분, 동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베이포트 FC는 미리 준비했던 것처럼 바르셀로나 CF의 중원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상대 공격의 시작점을 노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티아스 루비오의 미드필드 지역 가담이었다.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에 마티아스 루비오가 미드필드 지역까지 내려와 패스를 이어주면서 경기를 풀어나간다는 사실은 동민 또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동민이 미드필드 지역에 대한 강한 압박을 주문한 이유였다.

    ‘이걸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성공한 거야. 남은 건 선수들이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고 밀어내는 것뿐.’

    동민이 바르셀로나 CF와의 경기를 앞두고 가장 경계한 것은 역시 마티아스 루비오와 제수스 모레노, 루테로 알론소로 이어지는 공격진 트리오였다. 한 사람을 막으면 다른 두 사람이, 두 사람을 막으면 다른 한 사람이 활로를 찾는 공격진은 세 선수 모두 정상 컨디션이라면 막을 방도가 없는 창과 같았다.

    그리고 동민이 꺼낸 해답은 그 공격진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었다.

    세 명보다는 두 명, 특히 화려한 공격진 중에서도 핵심인 마티아스 루비오가 빠진 공격진은 비교적 무게가 줄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동민은 바르셀로나 CF의 미드필더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마티아스 루비오가 최전방과 미드필드 지역 사이의 위협적인 공간을 두고 내려서게 만들었다.

    ‘미드필드진이 강력한 과거의 바르셀로나 CF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다행히 지금 바르셀로나 CF의 미드필더들은 예전만큼 탈압박에 능하지 않아. 선수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간격을 좁힌다면 가능성은 있어.’

    그리고 동민은 오늘을 위해 특별한 공격 조합을 짜냈다. 좌측에 박주현, 우측에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최전방에 크리스 러셀을 두면서 빠르게 상대의 골문을 노리는 것 보다는 간격을 좁히고 중앙을 압박하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그들은 아직까지 동민의 기대에 부응하며 본인들의 공격 의지보다는 강한 중원 압박에 도움을 주면서 예정대로 잘 뛰어주고 있었다.

    ‘마티아스 루비오가 내려가면서 미드필드 지역이 조금 더 활기를 되찾을 수는 있겠지만 공격진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맞으니까.’

    동민의 생각처럼 바르셀로나 CF의 미드필더들은 마티아스 루비오의 합류로 숨통은 트였지만, 그렇다고 공격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밑으로 내려선 자크 피레스와 이안 페트로프가 수비진들과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공간을 막아내고 그들을 바깥으로 몰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제수스 모레노와 루테로 알론소라고 해도 단둘이서 골을 만들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티아스 루비오가 최전방 바로 아래에서 압박을 나눠 받거나 공간을 만들어낸다면 훨씬 쉬울 테지만, 그는 미드필드 지역까지 내려가서 그 역할을 해주기 쉽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공을 잡고 개인 기량으로 골문 근처까지 향해도 완벽한 찬스를 만들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나온 슈팅은 골문을 벗어나거나 골키퍼의 정면으로 향하기 십상이었다.

    ‘이 경기를 위해서 몇몇 선수들의 특성도 바꿔놓았으니까. 개인 기량과 순간적인 번뜩이는 움직임에 대한 대책은 나름대로 해뒀어.’

    이 경기를 앞두고 동민은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수비를 속이는 제수스 모레노와 자주 충돌할 이안 페트로프에게 침착함이라는 특성을, 수비진의 틈으로 파고드는 루테로 알론소를 막아내야 하는 올리비에 나스리에게 절묘한 위치 선정을 주었다.

    그 결과 이안 페트로프는 제수스 모레노에게 순간적으로 뒤처지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쫓아가 방해했고, 올리비에 나스리는 루테로 알론소에게 뒤 공간을 내주는 조나단 케인을 커버하는 위치를 고수하며 슈팅을 막았다.

    ‘이렇게만 이어간다면 분명 원정 팀에겐 지옥과도 같은 에스타디오 데 바르셀로나에서 이른 선제골은 내주지 않을 수 있어. 그리고 바르셀로나 CF의 수비진이 조금씩 집중력을 잃기 시작하는 70분까지 버틸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찬스는 나올 거야.’

    동민은 실점 없이 전반전을 마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CF가 이전 경기들처럼 자잘한 실수를 저지르기만 하면 이 승부를 승리로 끝낼 수도 있다는 자그마한 바람을 안았다.

    ‘마지막에 자꾸 막혀 버리는데.’

    마티아스 루비오는 전반전이 끝나가는 시간까지 골이 터지지 않는 상황에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홈에서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골이 터지지 않는 상황은 많았다. 하지만 그런 때에는 상대 골키퍼의 환상적인 선방이나, 골대를 맞추는 등 운이 따르지 않아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 경기는 조금 달랐다. 재빠른 침투나 순간적인 발놀림 등으로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키고 골을 만들어내는 제수스 모레노와 루테로 알론소가 끈질긴 상대 수비에 확실한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베이포트 FC라는 팀이 수비가 이렇게 좋은 팀이었던가?’

    그가 다른 선수들과 함께 영상으로 보았던 베이포트 FC는 수비가 이 정도로 강고한 팀은 아니었다. 경기마다 다른 전술을 선보이며 꽤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다양함에서 오는 놀라움이었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완벽한 수비와 같은 무서운 장점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적어도 지금까지의 베이포트 FC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생각날 정도로 강고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익숙한 얼굴의 선수가 있었다.

    마티아스 루비오는 한때 자신과 가장 많이 충돌했던 올리비에 나스리를 바라보았다. 바르셀로나 CF와 FC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항상 공을 두고 다투던 창과 방패 역할을 하던 상대는 이제는 베이포트 FC에서 이전에 보여주던 그 강고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야. 이러다가도 한 번에 무너질 수 있어. 아무리 대단한 수비라고 해도 90분 내내 저 두 사람을 막을 순 없어. 여차하면 내가 직접 공을 끌고 올라가면서 공격을 지원할 수도 있고. 게다가 올리비에 나스리는 자극하다 보면 폭발하는 타입이니까.’

    하지만 그가 아는 올리비에 나스리는 그런 견고함을 유지하다가도 몇 번 그 성격을 긁어주면 자연스럽게 머리에 열이 올라 자신의 가장 큰 임무를 망각하고 실수를 하곤 했다. 그리고 루테로 알론소는 그가 아는 선수 중 가장 그런 면에서 뛰어난 선수였다. 가끔 본인이 먼저 인내심이 끊어져 사고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다혈질인 수비수들을 상대로 그들의 실수를 유발하는 일은 그의 장기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유리한 게임인 것은 변함없어. 아무리 튼튼해 보이는 수비라도 그 집중력을 90분 내내 발휘할 수는 없고, 그 단 한 번의 빈틈만 나오면 골을 만들 수 있는 게 우리 팀이야. 단 한 골만 나오면 그때부터는 완전히 우리 페이스니까.’

    그는 초조함을 가라앉혔다. 아직 남은 시간은 많았고, 이곳은 원정 팀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그들의 홈 경기장인 에스타디오 데 바르셀로나였다. 상대가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다고는 해도 손바닥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강물을 막을 수는 없는 것처럼 그들을 계속 막을 수는 없었다.

    ‘지금껏 알고 있던 올리비에 나스리라면 분명 루테로를 상대하다가 폭발할 거야.’

    얼마 남지 않은 전반전, 늦어도 후반전에는 성질을 참지 못한 올리비에 나스리가 무너져 내릴 거라 생각하며, 그는 미드필드 지역을 오가면서 공을 연결시키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티아스 루비오의 예상은 빗나갔다.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되어도 경기의 균형은 무너지지 않았다. 루테로 알론소와 계속해서 자잘하게 충돌하고 있는 올리비에 나스리는 그가 생각한 것처럼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인내심이 깎여 나가는 쪽은 루테로 알론소였다.

    계속 골을 넣기 직전의 찬스에서 올리비에 나스리에게 막히고 마는 루테로 알론소는 평정을 잃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먼저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루테로 알론소를 마티아스 루비오를 비롯한 동료들이 말리고 있었다.

    후반전도 계속해서 골이 들어가지 않은 채로 시간이 지나자 마티아스 루비오의 마음속에선 한번 내리눌렀던 초조함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그의 마음속에 안개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대단한 선수들이 있는 바르셀로나 CF라도, 팀의 에이스는 자신이며 지금껏 이런 상황을 무너뜨린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처럼 그의 위치는 조금씩 위쪽으로 올라갔고, 그가 직접 공을 몰고 올라가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러나 먼저 무너지고 만 것은 베이포트 FC의 수비가 아니라 바르셀로나 CF의 수비였다.

    ‘어?’

    전반전부터 이어진 상대 공격진의 압박에 계속해서 날카로운 긴장을 유지하던 바르셀로나 CF의 수비수인 사무엘 사우티는 잠시 집중력을 잃었다. 그는 상대의 수비가 생각한 것보다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탓에 미드필드 지역까지 올라가 공격을 지원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포지셔닝을 잘못 잡았다.

    크리스 러셀이 달려드는 것을 너무 얕보고 어정쩡한 위치에서 너무 느리게 패스를 시도했자, 그 패스는 크리스 러셀에 의해 간단히 끊어졌다. 크리스 러셀은 공을 소유하자마자 좌측을 맹렬히 달리는 박주현에게 패스를 시도했다.

    너무 긴 듯하던 패스는 어렵사리 박주현에게 이어졌고, 박주현은 공이 라인을 넘기 직전에 잡아내 상대 골문으로 달려갔다.

    예상치 못한 실수로 인한 역습에 바르셀로나 CF의 수비진은 2명이서 3명의 공격진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박주현은 골문 앞으로 뛰어가며 직접 차려는 듯 슈팅을 시도하는 체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수비수가 필사적으로 정면을 막자 중앙으로 공을 흘렸다. 그곳에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달려오고 있었다.

    공을 받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환상적인 칩 슛으로 골키퍼의 키를 넘겨 골문을 갈랐다. 그리고 공이 골 망을 출렁이게 만든 순간, 1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있는 에스타디오 데 바르셀로나에는 베이포트 FC의 원정 팬들의 함성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지난 경기들에서도 잠깐씩 자잘한 실수들을 저지르던 바르셀로나 CF의 수비진은 이번에야말로 대형 사고를 저질렀다.

    경기는 이제 1 대 0이 되었다. 동민이 노리던 후반 25분이 넘자마자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이 터져 나온 상황이 온 것이다. 바르셀로나 CF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않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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