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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결전 (247/270)
  • 다가온 결전

    시간은 동민의 불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빠르게 지나갔다.

    바르셀로나 CF의 경기를 보고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던 동민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고, 곧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동원했다.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동민은 이를 갈면서 경기에 임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원정을 떠나기 전날, 그는 선수들을 앞에 두고 입을 열었다.

    “드디어 곧 결전의 날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만났던 팀들은 많았고, 그중 우리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는 팀도 많았어요.”

    동민은 그렇게 운을 뗐다. 다음 날이면 바르셀로나로 원정을 떠나는 선수들은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FC 마드리드를 상대하던 조별 리그와는 달리 큰 패배를 당하면 다른 경기에서 만회하기 힘들고, 리그에서 스톡포트 시티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등을 만나던 것과는 달리 길게 볼 수 없어요. 단 한 번씩 오가며 승부를 결정짓는 토너먼트입니다.”

    홈과 어웨이를 한 번씩 오가며 승부를 결정짓는 토너먼트는 지금의 베이포트 FC가 거의 경험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토너먼트 방식의 FA컵이나 리그 컵에서는 리그 순위나 챔피언스 리그를 위해 체력 안배를 하느라 그런 상황이 되기 전에 떨어지기 일쑤였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상황이었던 프리미어리그로의 승격을 건 건곤일척을 경험한 선수는 현재 베이포트 FC의 3분의 2 정도였다.

    다시 말해 현재 베이포트 FC의 3분의 1 정도의 선수들은 그런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싸움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여는 바르셀로나로의 원정에서 우리는 1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 앞에서, 철저히 어웨이 팀으로서 경기에 나서야 하고요. 확실히 쉬운 경기는 아닐 겁니다.”

    동민은 에스타디오 데 바르셀로나에서 경기를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지난 원정 경기들에서 관객들의 함성과 야유를 겪으며 유럽 대항전에서 빅 클럽들과의 원정 경기가 어떤 것인지 느꼈던 동민도 이번에는 그 수에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경기에 나설 선수들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한 중압갑을 느끼는 일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우린 준비가 되어 있어요. 원정에서 더 큰 상대를 꺾고, 만일 원정에서 꺾지 못해도 홈에서 상대를 굴복시키고 올라갈 수 있는 준비가.”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선수들을 한 명씩 돌아보았다.

    “누군가는 지금까지의 경험 때문에 이 경기를 더욱 이기고 싶을 테고”

    동민의 눈이 올리비에 나스리를 보았다. 바르셀로나 CF의 가장 큰 라이벌인 FC 마드리드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올리비에 나스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들은 더 높은 곳을 밟고 싶다는 열망으로 승리를 염원할 테고”

    그 말을 들은 박주현이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더 강한 상대들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내고 싶어 하는 두 사람이다. 바르셀로나 CF라는 거물을 상대로도 그 감정은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들은 구단의 새로운 역사를 자신들의 발로 계속 쓰고 싶어서 승리를 바라겠죠.”

    동민은 주장과 부주장인 조나단 케인과 해리 맥스웰을 비롯한 기존 베이포트 FC 선수들을 보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챔피언십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그들은 이제 챔피언스 리그 16강 너머를 보고 있었다.

    “조금씩 달라도 모두 경기를 이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같습니다. 우린 졌어도 잘 싸웠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러 바르셀로나로 가는 거예요. 그리고 8강 진출을 위한 발판을 가지고 이 곳으로 돌아와 승리를 확정 지을 겁니다.”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쥐었다.

    8강 진출을 건 첫 경기가 선수들과 동민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가 할 말은 이미 바르셀로나로 오기 전에 끝냈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대로, 준비한 이상을 보여주세요.”

    동민은 그 말만 남긴 채 먼저 라커 룸을 떠났다. 선수들끼리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으라는 의미였다. 동민이 자리를 뜨고 주장인 조나단 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떨리는 거 알아. 나도 이만큼 많은 큰 경기장에서 이만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기를 하는 건 처음이니까.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올리비에 말고는 다들 그럴 테고. 하지만 감독님 말처럼 우린 이기기 위해 왔어. 그렇다면 이겨야지.”

    조용한 성격이던 그도 올리비에 나스리의 합류 이후로 바뀌기 시작했다. 주장으로서 그라운드 내외적으로 나서야 할 때에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변화는 선수단 전체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니까… 이기자고. 음, 역시 이럴 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는 건 올리비에가 더 잘 맞겠네. 부탁해.”

    물론 아직도 말 한마디로 팀을 휘어잡고 분위기를 들끓게 만드는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이 또한 지금의 베이포트 FC에게는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조나단 케인이 어색한 웃음으로 바톤을 넘기자 올리비에 나스리는 슬쩍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말을 받았다.

    “하긴 뭘 해, 나가서 저 멍청한 놈들을 박살 내면 되는 거지. 나가자고, 10만이든 100만이든 싹 다 닥치게 만들어주면 되는 거야.”

    그다운 한마디에 라커 룸은 쓴웃음으로 가득 찼다.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이 길었던 만큼 그에게 아직도 바르셀로나 CF는 가장 적대적인 상대였고, 지금만큼은 그 말처럼 어울리는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니 뭐니 해도 우리가 이기면 끝이니까. 더 수다 떨면서 시간 끌 필요도 없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그렇게 툭 내뱉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베이포트 FC는 그렇게 바르셀로나 CF와 결전을 치를 준비를 마쳤다.

    ‘여길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진짜 상상도 못 했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그라운드에 서자마자 올리비에 나스리는 쏟아지는 야유를 들으며 생각했다. 바르셀로나 CF의 가장 큰 라이벌 팀 출신인 그에게는 다른 베이포트 FC 선수들과 차원이 다른 야유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도 다시는 안 겪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참 세상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그러나 올리비에 나스리는 그런 야유에도 크게 굴하지 않았다. FC 마드리드에서 뛸 때에는 원정 경기를 올 때마다 듣던 야유였고, 그런 야유 속에서도 그는 팀원들과 함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곤 했다. 바르셀로나 CF가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시절에도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관객들의 야유에 움츠러들 이유가 없었다.

    ‘목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소리에 처음에는 속으로 코웃음 치긴 했지만, 실제로 다신 없을 거라 생각했던 바르셀로나 원정을 다시 오고 보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도 들어.’

    맨 처음 동민에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목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그것이 동민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닿지는 못해도 꿈은 크게 가지자는 의미의 허세, 혹은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한 입 발린 이야기.

    그러나 그들은 FC 마드리드에게 대패했어도 조 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CF라는 거함을 만났어도 그 거함을 침몰시키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 어떤 강팀이라 하더라도 바르셀로나 CF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하물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2부 리그에 있었으며, 챔피언스 리그 첫 출전인 팀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동민은 그런 바르셀로나 CF를 이기고 8강에 진출하겠다며 자신 있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만일 허세라 하더라도 그런 말을 자신 있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감독이 그렇게 자신하고 우리를 믿어준다면 그 기대에 부응해야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승리를 다짐했다. 과거에 FC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고 이 에스타디오 데 바르셀로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베이포트 FC의 선수로서.

    처음 베이포트 FC가 16강전 상대로 지목되었을 때, 바르셀로나 CF의 선수들은 수월한 대진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팀 중 하나였고, 베이포트 FC는 챔피언스 리그 경험조차 없는 약팀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FC 마드리드에게 홈과 원정에서 3 대 1, 3 대 0의 대패를 당하며 무너졌던 팀이다. FC 마드리드의 가장 큰 라이벌인 그들은 FC 마드리드 이상의 점수 차로 베이포트 FC를 이겨서 자신들이 그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이 경기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닌 대승, 공격진만은 FC 마드리드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FC 마드리드보다도 더 많은 골을 넣으며 승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기 초반은 그들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생각보다 압박이 꽤나 거센데.’

    마티아스 루비오는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십 대 후반에 데뷔해 다비드 페레즈의 아래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던 그에게 개인으로 들어오는 압박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순간적인 페인팅으로 압박하는 선수를 제치거나 개인기로 따돌리는 경우가 많았고, 자신이 혼자서 몸을 뺄 수 없는 숫자의 선수들이 몰리면 그만큼 다른 동료들이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상대의 압박이 크게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조금 달랐다.

    ‘나나 루테로, 제수스보다 아래쪽에 더 거센 압박이 들어오고 있어.’

    베이포트 FC의 거센 압박은 그들 공격진보다도 미드필더진에 집중되어 있었다. 베이포트 FC는 그를 포함한 공격진에 공이 가는 일부터 최대한 차단하겠다는 목적으로 중원부터 쥐어짜는 듯한 강한 압박을 펼쳤고, 적어도 경기 초반인 지금은 그것이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를 포함한 공격진 트리오는 위협적인 장소에서 공을 잡지 못하고 방황할 뿐이었다.

    과거 다비드 페레즈 시절의 바르셀로나 CF라면 상대의 압박을 쉽게 빠져나와 곧바로 그 빈 공간을 이용하는 선수들로 미드필더진이 구성되었겠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런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바르셀로나 CF의 미드필더진은 많은 활동량으로 마티아스 루비오를 비롯한 공격진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내려가서 같이 공을 받고 볼 배급을 도와야겠어.’

    마티아스 루비오는 또다시 상대의 압박에 공격의 템포가 끊어지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과거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이었던 그는 전부터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아래쪽으로 내려가 함께 압박을 풀어내고 패스를 내주는 것에 익숙했다.

    “저 두 사람이야 기회만 만들어내면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마티아스 루비오는 치열한 중원 싸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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