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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246/270)

괴물들

동민이 최전방 세 명을 보면서 한숨을 쉴 무렵, 경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르셀로나 CF가 기회를 잡았다.

제수스 모레노가 좌측 사이드라인 근처에서 잡은 공을 몰고 들어가며 수비진의 밸런스가 망가졌고, 너무나도 빠르게 맞이한 위기에 레알 알바세테는 가장 위협적인 위치에 있는 루테로 알론소의 움직임을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골문 근처의 루테로 알론소에게 향한 패스 루트가 레알 알바세테의 중앙 수비수들에 의해 막히자 그의 패스가 향한 곳은 조금 뒤쪽에서 공을 기다리던 마티아스 루비오의 발밑이었다. 제수스 모레노는 감각적으로 왼발로 공을 툭 띄워 차서 수비들 사이로 마티아스 루비오에게 연결했다. 마티아스 루비오는 왼발 뒤꿈치로 공을 받아 돌리며 자신에게 거칠게 밀어닥치는 레알 알바세테의 선수들을 가볍게 제치고 몸을 돌렸다.

단 한 번의 볼 터치로 순식간에 두 명의 사이로 몸을 빼낸 마티아스 루비오는 약간 멀어 보이는 거리에서도 지체 없이 오른발 슈팅을 시도했다.

‘저 거리에서?’

놀라는 동민의 생각과는 달리 공은 너무나도 매끄럽게 휘어져 골문 구석을 향했고, 필사적으로 몸을 날린 레알 알바세테의 골키퍼 손에 걸리며 골문을 스쳐 날아갔다. 전반 시작 2분 만에 바르셀로나 CF는 거의 골과 다름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바르셀로나 CF의 홈팬들은 골과 다름없는 기회가 날아갔지만 크게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운이 따라주지 않아 기회를 놓쳤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수스 모레노의 돌파와 개인기, 루테로 알론소의 수비를 끌어당기는 능력, 마티아스 루비오의 양발과 센스, 슈팅 능력. 짧지만 저 세 명의 장점이 완벽하게 드러난 상황이었어.’

동민은 그 짧은 순간 세 선수가 모두 자신의 장점을 완벽하게 드러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세 선수가 마치 한 몸처럼 매끄럽게 공격을 마무리 지은 것 또한 동민의 눈길을 끌었다.

제수스 모레노가 측면 돌파를 할 때부터 루테로 알론소와 마티아스 루비오의 움직임은 약속된 플레이였다. 루테로 알론소는 일부러 중앙에서 공을 받을 것처럼 손을 들면서도 수비들을 끌어당기기만 했고, 마티아스 루비오는 자신에게 공이 언제 올지 알고 있었다는 듯 공이 오기 직전에 순간적으로 속도를 붙였다.

한 팀의 선수들인 이상 호흡이 맞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호흡이 맞는다는 것 이상으로 서로가 어떻게 움직일지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 사람이 결코 자신들의 개인 능력으로만 공격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서 약속한 플레이를 만들어 나간다는 증거였다.

‘차라리 개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인 만큼, 개개인의 능력에만 집중해서 공격한다면 그걸 노릴 수도 있어. 하지만 개인 능력도 뛰어난 선수들이 팀으로서 공격해 들어온다면 그걸 막아내기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민은 입술을 깨물며 관람하고 있었다.

전반 18분, 결국 바르셀로나 CF의 선제골이 터져 나왔다.

미드필드 지역에서 마티아스 루비오에게 내준 패스는 그의 발을 통해 최전방의 루테로 알론소에게 이어졌다. 루테로 알론소는 수비가 바짝 달라붙어 있는 상황에서도 오른발로 공을 잡고 자연스럽게 옆으로 흘렸다.

그가 직접 해결하리라 예상하던 수비진은 예상 밖의 그의 행동에 당황했고, 그 공이 이어진 곳은 제수스 모레노의 발밑이었다.

수비의 빈틈을 파고든 제수스 모레노는 조금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가볍게 공을 찍어 찼고, 공은 골키퍼의 손끝을 넘어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으로 들어갔다. 지금껏 좋은 활약을 보이던 레알 알바세테의 골키퍼도 그 슈팅만은 막지 못한 채 허망한 눈길로 출렁이는 그물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뒤로도 경기는 일방적인 바르셀로나 CF의 공격 일변도로 흘러갔다. 전반 18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내준 선제골에 의해 레알 알바세테는 제대로 된 반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미드필더진은 적절한 패스는커녕 우왕좌왕하다가 공을 뺏기고 허둥댔고, 수비진은 바르셀로나 CF의 공격진 트리오를 막지 못하고 엉망이 되었다.

그 결과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레알 알바세테는 세 골을 내주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이게 바르셀로나 CF인가. 역시 단순히 공격력만 놓고 보자면 FC 마드리드 그 이상이야.’

동민은 그 광경을 보면서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 바르셀로나 CF의 경기력은 그저 영상을 보았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미드필더진에서 이어지는 패스는 매끄러웠고, 공격진은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파괴적이었다.

특히 마티아스 루비오는 어째서 그가 다니엘 루이즈와 함께 세계 최고의 선수라며 칭송을 받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제수스 모레노와 루테로 알론소에게 치명적인 패스들을 뿌려주는가 싶다가도 직접 공을 몰고 나가서 어느샌가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는 그는 공격의 마스터키와도 같았다.

‘거기에 원정 경기의 분위기가 이 정도라는 건 영상에서는 확인하지 못하는 일이었으니까. 미리 알아둬서 다행이야. 선수들이 대처를 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동민의 시선은 그라운드에서 관객석을 향했다. 바르셀로나 CF의 홈팬들은 전반전 3 대 0이라는 스코어에도 경기가 끝났다며 만족하지 않았다. 더 많은 골과 더 좋은 경기력이 나오길 바라며 그들은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1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의 함성은 그 자체가 바르셀로나 CF 선수들에게는 힘이 되었고, 반대로 원정 팀 선수들에게는 발과 몸을 잡아 묶는 사슬이 되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결과를 확신할 수 없고, 그런 짓이야말로 감독이 해서는 안 되는 짓이지만, 이 경기를 레알 알바세테가 뒤집기는 정말 힘들어 보이네.”

동민은 자칫하면 지금 이 상황이 베이포트 FC가 겪을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굳이 입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말로 꺼내지 않아도 이미 동민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CF와 레알 알바세테의 경기는 바르셀로나 CF의 6 대 0의 승리로 끝났다. 동민이 생각했던 대로 레알 알바세테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분위기를 단 한 번도 뒤집지 못했다. 후반전에도 마치 복싱 선수 앞에 놓인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기 바빴고, 바르셀로나 CF의 공격진 트리오는 6골 중 5골을 합작하며 왜 자신들이 전 유럽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진인지 증명했다.

‘내가 봤지만 진짜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어.’

동민은 런던에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고 한숨을 쉬었다.

바르셀로나 CF를 꺾기 위해서는 마티아스 루비오와 제수스 모레노, 루테로 알론소의 공격진을 막아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 경기에서 본 그 세 명을 막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세 선수는 한 명을 막으면 다른 두 명이, 두 명을 막으면 남은 한 명이 경기를 풀어내어 결국 골을 만들어냈다.

‘그나마 팀으로 보자면 약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가 본 바르셀로나 CF라는 팀은 약점이 아예 없는 팀은 아니었다.

첫째로, 과거 다비드 페레즈가 이끌며 6관왕을 차지하고 유럽 최고의 팀으로 군림하던 때와는 달리 미드필더 라인이 비교적 부실했다. 다비드 페레즈가 감독으로 있을 때에 그의 전술 철학의 핵심인 점유, 압박, 패스,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통제하던 미드필더들은 나이로 인해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떠났다.

지금의 바르셀로나 CF의 미드필더가 약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경기를 지배하는 역할이 미드필더에서 공격진으로 넘어간 느낌이었다.

두 번째는 수비진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생각보다 잦다는 것이었다. 나와서는 안 될 장소에서, 나와서는 안 될 실수들이 눈에 띄는 경우가 있었다. 가끔 있는 실수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한 장소에서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수비진의 집중력 부족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후반전에 이미 레알 알바세테의 전의가 거의 꺾여 있지 않았다면 충분히 위험한 실수가 두어 차례 나오기도 했다. 만약 레알 알바세테가 전반전에 공격진 트리오를 막기 위해서 체력을 빠르게 소진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른 시간에 터진 선제골과 이어진 골 폭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흔들리지 않았다면 충분히 만회 골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만큼 바르셀로나 CF의 뒷문이 불안하다는 것은 베이포트 FC로서는 노릴 만한 약점이긴 했다.

‘그 약점을 노리려 공격적으로 나서다가는 그 한 대를 때리려다 두들겨 맞고 뻗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지.’

동민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약점이 있는 팀이지만 그 약점을 누를 만큼 강점이 너무나 큰 팀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랬듯 동민은 그 강점을 피하고, 약점을 노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랑 다른 점은 피해야 할 강점이 너무나도 크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 돌아가서 좀 더 고민해 보면 그나마 나은 해답을 구할 수 있겠지. 직접 바르셀로나 CF 선수들을 보면서 그들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한 것만 해도 수확은 충분하니까.”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비행기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때, 가만히 앉아 고민을 거듭하던 동민의 귀에 익숙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응?’

동민은 텔레비전에서 들리는 한국어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시안 컵 8강전 탈락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던 한국 국가 대표 팀 감독이 물러난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이번 아시안 컵에서의 성적 부진은 모두 제 탓이며 그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국가 대표도 복잡하겠네. 주현이가 이번에 안 나간 게 다행인가.’

동민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부상으로 베이포트 FC의 공격진에 비상이 걸리자 아시안 컵에 나가지 않고 남아준 주현을 떠올렸다.

‘심형만도 이번이 마지막으로 국가 대표로서 경기를 뛰는 거라고 했던가. 아쉽겠어. …아니, 내가 다른 곳 보고 아쉽니 뭐니 할 때가 아니지.’

뒤이어 얼마 전에 상대했던 형만을 생각했지만 이내 그의 주의는 바르셀로나 CF로 돌아갔다. 당장 발등의 불 정도가 아니라 초대형 운석이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다른 곳을 생각할 여유는 그에게 없었다. 바르셀로나 CF와의 16강 1차전이 벌어지기 전에 그는 그들의 최대 무기인 공격진 트리오를 침묵시키고 수비진을 공략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매번 그랬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전부 끌어 써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어.”

동민은 미소로 불안함을 감추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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