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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해야 할 대상 (243/270)
  • 경계해야 할 대상

    ‘크리스 러셀의 가짜 9번이라니, 경기에는 졌어도 꽤나 재미있는 걸 했어.’

    다비드 페레즈는 버턴 유나이티드와 베이포트 FC의 경기 영상을 지켜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공백을 다른 측면 자원이 아닌, 크리스 러셀을 최전방으로 올리고 스트라이커들을 양옆으로 돌리면서 채운 것은 꽤나 재미있는 해결 방식이었다.

    ‘예전에 바르셀로나 CF 시절 내가 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이라… 지난 맞대결에서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없어 보여서 실망했었는데 또 이런 방식으로 기대를 하게 만드네.’

    바르셀로나 CF를 이끌며 감독 다비드 페레즈의 시작을 알렸던 시절, 그가 상대 팀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을 때 사용했던 전술과 이번 경기에 베이포트 FC가 들고 나선 전술은 비슷한 점이 있었다.

    당시 다비드 페레즈는 최전방에 전문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던 마티아스 루비오를 두면서 전문가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티아스 루비오는 미드필더 지역까지 내려오면서 수비를 끌어내고 플레이 메이킹까지 하면서 다른 동료들의 침투를 도왔고, 때로는 혼자서 공을 끌고 들어가며 놀라운 골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의 놀라운 활약은 지금도 역대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라는 말을 듣는 다비드 페레즈의 바르셀로나 CF를 구성하는 핵심 중 하나였다.

    ‘물론 다른 점도 많아. 나는 마티에게 동료들이 나설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과 동시에 골을 만들어내는 임무를 맡겼지. 하지만 베이포트 FC가 내세운 크리스 러셀 시프트는 골을 만드는 목적이 아니었어. 철저하게 조력자로서 움직일 것을 요구했지.’

    다비드 페레즈는 영상을 보면서 크리스 러셀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었다. 크리스 러셀은 최전방 공격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움직였고, 그의 역할은 철저히 수비를 끌어내고 양 측면의 공격수들이 순식간에 파고드는 것을 돕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가 이끌던 바르셀로나 CF에서 순간적인 침투로 골을 만들어내던 이들은 주로 중원의 미드필더였지 양 측면의 윙어가 아니었다. 양 측면에서 풀백들을 최대한 양 사이드로 끌어내야만 공간이 더 쉽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비드 페레즈 전술의 핵심인 점유, 압박, 패스를 더욱 극대화하면서, 상대가 정신없이 패스를 돌리고 있다가 틈을 보인 순간 날카로운 침투로 골을 만드는 것이 그의 가짜 9번 전술이었다.

    하지만 베이포트 FC는 달랐다. 양 측면의 선수가 때에 따라 한 명은 안쪽으로 침투하고, 다른 한 명은 반대로 사이드라인에 붙으며 풀백을 끌어당겼다. 이는 바르셀로나 CF가 하던 방식보다 더욱 수비진의 공백을 만들 수는 없지만, 중원의 미드필더들이 더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아 언제든 다시 뒤쪽으로 공을 돌리기도 수월하고 역습에 대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상대가 의도를 알아채더라도 순간적인 속도로 이겨내는 것, 그것이 동민이 지난 버턴 유나이티드전에 보여준 전술의 핵심이었다.

    ‘리그의 차이점 때문인가, 아니면 팀의 특성 탓인가.’

    이는 다비드 페레즈가 추구하던 전술과 동민이 추구하는 전술의 차이점이었다. 다비드 페레즈가 이끌던 바르셀로나 CF는 전 유럽에서도 손에 꼽히는 빅 클럽이며, 소속된 선수들은 대부분 유럽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그런 이들로 할 수 있는 전술과 지금 베이포트 FC 소속 선수들로 펼칠 수 있는 전술은 염연히 다른 것이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이어질 경기들을 보면 더 알 수 있을 테고, 나중에 만난다면 확실해질 테니까.’

    다비드 페레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굳이 정확하게 알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동민과 베이포트 FC가 새로운 전술을 선보였고, 그게 어떤 방식인지 정도만 알면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빙그레 웃는 다비드 페레즈를 보면서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듯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어… 다비드?”

    “응? 무슨 일이죠?”

    다비드 페레즈에게 말을 건 사람은 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스톡포트 시티의 수석 코치 미켈 고메즈였다. 미켈 고메즈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베이포트 FC를 지금 분석할 필요가 있어요? 그것도 당신이 직접?”

    미켈 고메즈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이포트 FC와 리그에서의 두 번째 맞대결은 아직 한참 남아 있는 2월 말이다. 벌써부터 시간을 투자해서 다비드 페레즈가 그들의 경기를 분석할 이유는 없었다.

    리그 컵은 베이포트 FC가 챔피언스 리그를 위해 어린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탈락했고, FA컵에서도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날 일은 없었다. 그들이 우승권을 두고 경쟁하는 강팀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번 시즌 베이포트 FC가 스톡포트 시티와 비교될 만큼의 강팀도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촉박한 박싱 데이를 맞이하는 와중에 베이포트 FC의 경기를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를 담은 미켈 고메즈의 질문에 다비드 페레즈는 매끈한 그의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그러니까 왜 바쁜 박싱 데이를 앞두고 베이포트 FC 정도의 팀에 시간을 쏟느냐는 물음인가요?”

    평소 그의 단어 선택에 비해 꽤나 직설적인 되물음이 돌아왔지만 미켈 고메즈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셀로나 CF 시절부터 함께한 그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죠. 솔직히 말해 베이포트 FC를 얕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들과의 경기가 가까운 것도 아니고, 리그 타이틀을 걸고 가장 맞부딪쳐야 할 상대도 아니니까요. 이럴 시간에 다음 경기 상대인 콜링험 와프에 대해 다시 확인하거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같은 우승 경쟁권의 팀들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나요?”

    미켈 고메즈의 말은 대단히 차분했고, 동시에 차가웠다. 아무리 축구가 취미이자 일인 다비드 페레즈라지만 한정된 시간을 베이포트 FC 정도의 팀에 쏟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켈 고메즈가 보기에 지금 다비드 페레즈의 행동은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는 낭비와도 같았다.

    그런 그의 말에 다비드 페레즈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민머리를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미켈, 당신은 언제나 냉철하게 생각하고 나를 도와주죠. 그 점에는 언제나 도움을 받고 있어요.”

    갑자기 자신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다비드 페레즈를 보면서 미켈 고메즈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어요. 챔피언스 리그 위쪽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팀들은 미리미리 분석하면서 그 정보를 기억해 두는 편이 좋다는 거죠. 이미 상대가 정해지고 그때부터 경기를 찾아가며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미리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유리하다는 건 확실한 겁니다.”

    이어지는 다비드 페레즈의 말은 더욱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챔피언스 리그 위쪽? 이미 16강 상대인 FC 모나코에 대한 분석은 스카우트들과 함께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팀을 이야기한다면 바르셀로나 CF나 FC 마드리드와 같은 전통의 강호들을 확인해야만 한다.

    지금 다비드 페레즈는 본인이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전혀 맞지가 않았다.

    그의 말에 더욱 혼란에 빠진 듯 보이는 미켈 고메즈를 보며 다비드 페레즈는 말을 이었다.

    “어차피 다음 경기에 대한 준비는 거의 끝난 지금, 우리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도전하면서 만날 가능성이 큰 팀 중 하나 정도는 미리 확인해도 되잖아요.”

    그 말에 미켈 고메즈는 무슨 소리냐며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니까 다비드, 당신은 베이포트 FC를 챔피언스 리그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는 건가요? 그들은 이번에 처음 출전한 팀이에요. 이런 큰 무대에 대한 경험도 부족하고 조별 리그와는 다른 토너먼트에 대해서는 더욱 그래요.”

    그 침묵을 먼저 깨뜨린 사람은 미켈 고메즈였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말은 곧바로 다비드 페레즈의 말에 가로막혔다.

    “그 큰 무대 경험만은 우리 팀 이상으로 많았던 AC 로마가 두 번이나 잡혔죠. 그중 한 번은 자신들이 자랑하는 스타디오 디 로마에서요.”

    이미 토너먼트에 진출한 이상, 경험이 없다고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다비드 페레즈의 말이었다.

    미켈 고메즈는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전 유럽에서도 명문 팀이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AC 로마가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두 번이나 패배했다. 그만큼 경험 부족에서 나오는 단점을 다른 장점들로 덮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상대는 바르셀로나 CF잖아요. 다비드 당신이 말하는 대로 챔피언스 리그 상위권에서 베이포트 FC를 만난다고 한다면 그들이 바르셀로나 CF를 이기고 올라온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아요.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바르셀로나 CF의 경기를 하나라도 더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역사로 보나, 구단의 규모와 재정으로 보나, 현재 선수들의 경기력으로 보나 바르셀로나 CF는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였다. 미켈 고메즈는 그런 팀을 상대로 베이포트 FC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바르셀로나 CF 출신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바르셀로나 CF와 베이포트 FC와의 차이는 뗏목과 유조선의 차이와도 같았다. 역사도, 구단의 규모와 재정도, 리그에서의 순위와 경기력도, 모두 베이포트 FC가 바르셀로나 CF를 넘어서는 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다비드 페레즈가 베이포트 FC와 감독인 동민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베이포트 FC가 바르셀로나 CF를 이길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다비드 페레즈라 하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비드 페레즈의 대답은 미켈 고메즈의 예상과는 달랐다.

    “…역시 확신은 못하겠어요. 바르셀로나 CF는 지금 우리 팀과 맞붙는다고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팀이니까요. 오히려 바르셀로나 CF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겠죠.”

    “그렇다면…….”

    “하지만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죠.”

    다비드 페레즈는 조금의 과장도, 감정도 없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왜인지 느낌이 그래요. 저 베이포트 FC라면 바르셀로나 CF를 상대로도 의외의 무언가를 통해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다비드 페레즈의 말에 담겨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경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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