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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승리를 뺏긴 것은 어느 쪽인가 (242/270)
  • 정말 승리를 뺏긴 것은 어느 쪽인가

    페널티킥에 의한 버턴 유나이티드의 득점으로 경기 막판 분위기는 버턴 유나이티드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심판의 판정에 분노하며 냉정을 잃었고, 80분이 넘은 늦은 시간에 터진 동점골은 지쳐 있던 버턴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다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조금 전까지 막상막하로 충돌하던 두 팀은 페널티킥 판정 한 번에 완전히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동민은 벤치에서 일어나 선수들을 다독이며 그들을 다시 경기에 집중하게 만들려 했지만, 그 것이 쉽지는 않았다.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판정 때문에 한 골을 억욱하게 헌납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페널티킥 전까지 비등비등하게 싸워왔던 터라 더욱 선수들의 심리적인 충격은 컸다.

    그리고 후반 89분, 경기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베이포트 FC가 페널티킥에 의한 동점골의 영향에 아직까지 흔들리고 있을 때, 버턴 유나이티드는 기세를 몰아 승점 1점을 승점 3점으로 바꾸려 했다. 적지에서 더 욕심을 부리다가 승점을 잃느니 승점 1점이라도 챙겨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반드시 이 경기를 잡겠다는 듯 더욱 가열찬 공격을 펼쳤다. 그리고 결국 그 공격을 성공시키고야 말았다.

    이번에도 버턴 유나이티드 공격의 선봉은 심형만이었다. 페널티킥으로 침착하게 동점골을 뽑아낸 그는 자신의 체력을 전부 불태우듯 뛰던 것과는 달리, 냉철하게 공이 가야 할 곳을 짚으며 빠르게 공격을 이끌고 있었다.

    심형만은 자크 피레스의 패스미스를 놓치지 않고 공을 잡아 좌측으로 달렸고, 이에 반응하듯 좌측 윙인 아담 샌더슨은 중앙으로 달려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패스미스로 인해 베이포트 FC는 효과적으로 버턴 유나이티드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심형만은 좌측에서 매끄럽게 휘어져 들어가는 얼리 크로스를 올렸고, 그 크로스의 끝에 있는 선수는 반대편에서 쇄도해 들어가던 리 존슨이었다. 리 존슨은 몸을 날려 그 크로스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그의 머리를 맞은 공을 강하게 골문 한가운데를 갈랐다.

    2 대 1. 버턴 유나이티드의 역전골이 터지고 경기가 끝나자 버턴 유나이티드의 원정 팬들은 브리큰돈 스타디움이 무너져라 소리를 질렀고, 베이포트 FC의 팬들은 침묵했다. AC 로마를 상대로 3 대 2의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고 2경기 연속으로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이겼어! 이겼다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역전골의 주인공인 리 존슨은 심형만에게 달려와 안겼다. 기적같은 역전골이 터져 흥분한 선수들에게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공격의 고삐를 잡았던 그는 이 경기 승리의 일등공신이나 다름없었다. 버턴 유나이티드에 이적한 지 어느새 5년, 그는 버턴 유나이티드 동료들과 팬들에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선수가 되었다. 버턴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오늘 승리를 거둔 것을 가장 기뻐할 형만에게 모여 어깨를 두드리고 칭찬했지만 심형만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동료들은 형만의 표정이 같은 국가 대표 동료인 박주현에게 쓰라린 패배를 맛보게 만든 탓에 일부러 표정 관리를 하는 거라 생각했다. 존중과 겸손을 중요시한다는 한국 국가 대표에서도 오랜 터줏대감인 형만인 만큼 일부러 국가 대표팀의 분위기를 위해 예의를 차리는 거라며 동료들은 천천히 그의 주위에서 멀어졌다. 팬들이나 카메라가 없는 라커룸으로 돌아가 그와 함께 기쁨을 나눌 생각이었다. 하지만 형만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같은 국가 대표 동료인 주현이 아니었다.

    ‘이겼어. 이겼는데… 왜 기쁘질 않지? 내가 1골 1도움을 하면서 확실하게 활약해서 베이포트 FC를, 강동민 감독을 무너뜨렸는데…….’

    분명 달콤해야할 승리의 기쁨은 아무런 감정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버턴 유나이티드가 승점 3점을 추가하면서 박싱데이로 기분 좋게 들어섰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언제나 승리를 거두면 동료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은 나눴지만 지금은 무미건조할 뿐이었다.

    ‘팀의 득점에 전부 내가 관련되어 있는데 이렇게 아무 느낌이 없는 건 처음이야.’

    지금껏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승리와 패배를 겪었던 그다. 하지만 언제나 승리는 짜릿했고, 패배는 다음번을 기약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느낌은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형만이 한동안 그라운드 위에서 멍하니 서있자 그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선배, 수고하셨어요.”

    고개를 돌리자 박주현이 그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었다. 국가 대표팀에서의 인연으로 어느 정도 가까워진 두 사람이지만, 오심으로 인한 페널티킥으로 경기의 흐름이 바뀌어 주현이 형만을 보고 농담을 섞어서라도 원망할 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씁쓸해 보이는 미소이긴 해도 웃고 있었다.

    “…어, 너도 고생 많았어.”

    형만은 그런 주현의 미소에 딱딱하게 굳은 인사를 돌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형만의 태도를 보고 주현은 그저 그가 자신을 배려해서 표정을 숨기려는 것이라 생각한 듯 빠르게 자리를 뜨려 했다.

    “이번엔 우리 팀이 졌지만 다음번에는 다시 되갚을 테니까 그때 또 봐요. 2차전은 또 금방 있으니까요. 그럼 나중에 뵐게요.”

    “그래. 나중에 또 보자.”

    형만은 마지막까지 앵무새처럼 주현의 말을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가는 동료의 등을 치면서 먼저 라커룸으로 향하는 주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나도 들어갈까.”

    형만은 축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승리가 기쁘지 않았다.

    ‘내가 이기고 싶어 하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기자회견장을 향하는 프란체스코 만치니의 발걸음은 승자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웠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팀 선수들의 의욕을 끌어 올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보였다. 변화무쌍한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먼저 싸움을 걸면서 자신의 전술적인 능력을 보였고, 선수들 또한 그의 열기에 반응한 듯 이번 시즌 최고의 경기력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중 심형만은 평소에도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주던 선수였지만 같은 대표팀의 동료인 박주현을 상대한다는 탓인지, 혹은 지난 시즌 너무나도 허망하게 경기를 내줬던 기억 탓인지 더욱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정작 경기를 결정지은 건 석연치 않은 페널티킥이라니. 이건 우리 선수들에 대한 모욕이야.’

    오심으로 인한 페널티킥이라는 폭탄이 터지기 전까지, 경기는 막상막하의 난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버턴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띠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경기가 이미 결정 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비록 더 지친 쪽은 버턴 유나이티드 선수들이었지만 베이포트 FC의 체력과 집중력의 저하도 없는 것은 아니었고, 아주 짧은 순간, 단 한 번의 행동으로도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것이 스포츠다. 베이포트 FC가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해도 버턴 유나이티드가 절대 따라잡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페널티킥 선언은 그런 가능성을 모두 없애 버리고 오로지 그들이 동점골을 넣은 것은 심판의 오심 때문이라는 듯 이유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던 버턴 유나이티드로서는 오히려 억울한 일이었다.

    ‘선수들이 모두 있는 힘을 다해 싸워서 따라잡던 경기를 운이 좋아서 동점골을 넣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 후 심형만의 마법 같은 크로스와 리 존슨의 깔끔한 헤더로 역전골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페널티킥 이후로 우리에게 기울었으니…….’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아무리 역전골은 버턴 유나이티드의 실력으로 만들어냈다고 해도 심판의 오심 때문에 승점 3점을 가져간 경기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오심이 아무리 버턴 유나이티드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말이다.

    ‘기자들은 심판이 경기를 지배했다며 이 경기의 결과를 모두 심판에게만 초점을 맞추려 들겠지. 정작 그 전까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던 경기를 비등비등한 상황까지 쫓아간 것은 모두 우리 선수들의 공인데도!’

    경기를 승리했지만 프란체스코 만치니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이유는 경기를 승리한 것에 따른 흥분이 아니라 분노였다.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충분히 그들의 힘으로도 경기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던 경기가 오심에 의해 결정된 경기가 되어버리자 허탈할 뿐이었다.

    거기에 가장 화가 나는 이유는 그것을 두고 오심이었다고, 그리고 그 오심이 아니었어도 자신들은 승리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칫 말을 잘못하면 심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겨져 FA의 눈총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결론적으로 오심의 덕을 본 팀이 오심을 탓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기도 하고.’

    분노에 차 손을 꾹 쥐었지만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어디까지나 냉정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심판의 판정에 대해 그게 맞거나 틀렸다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뻔한 이야기 정도였다.

    “제기랄.”

    프란체스코 만치니의 입에서 나온 작은 욕설은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고 조용히 근처를 맴돌다 사라졌다.

    “오늘 경기에서 후반 35분에 나온 페널티킥이 결정적으로 경기를 바꿔놓았다는 의견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마자 동민에게 날아든 질문은 그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주심의 페널티킥 판정은 꽤나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런 기자의 질문에 동민은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입을 열었다.

    “글쎄요. 일단 우리 팀은 그 동점골을 허용하기 전까지 상대의 맹공을 아주 잘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빠른 역습으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하기도 했죠.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오늘 경기 결과가 선수들의 경기력과 비교하여 정당하냐의 질문이라면,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선수들은 패배했어야 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동민은 일부러 기자가 노리고 물어본 것과는 조금 핀트가 어긋난 대답을 했다. 그가 고의적으로 그런 대답을 고름 이유는 간단했다.

    ‘판정이 원망스럽냐, 원망스럽지 않냐… 라고 한다면 물론 원망스럽지만……. 안 그래도 FA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상태인데 한 번 더 성질을 들쑤실 순 없지. 확실히 억울한 면은 있지만…….’

    동민은 어쩔 수 없이 하고픈 말을 입속으로 삼키며 다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기자들은 그 대답에 당연히 만족스럽지 않아했고, 더 나올 이야기가 없는지 파고들었지만 동민은 끝끝내 기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판정에 대한 항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인터뷰를 끝냈다.

    베이포트 FC와 버턴 유나이티드의 경기는 두 팀 감독 모두에게 씁쓸함만은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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