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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대가 (241/270)

승리의 대가

후반전이 되자 버턴 유나이티드의 움직임은 달라졌다. 대인마크와 수비력이 좋은 미드필더를 빼고 발이 빠른 측면 공격수를 투입하며 더 이상 뒤로 물러나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가장 바뀐 것은 버턴 유나이티드의 전술이 아니었다.

‘지난번처럼 무기력하게 지지는 않겠다.’

그 생각이 버턴 유나이티드의 모든 선수들에게 박혀 있었다. 프란체스코 만치니와 심형만의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싶다는 결의는 그대로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전의 무기력한 경기력은 그들에게도 자존심의 깊은 상처가 되었다. 경기전 그들은 지난 시즌 초반 상승세를 달리던 버턴 유나이티드를 완전히 무너뜨렸던 베이포트 FC의 모습을 잊지 않았고, 이번에야말로 그 빚을 갚아줄 때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전반전은 처음에는 허탈감을, 나중에는 분노를 심어주었다.

버턴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전반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동기부여가 된 상태로 그라운드로 돌아왔고, 그 결과는 곧 경기력의 변화로 이어졌다.

‘어떻게든 경기를 뒤집고 말겠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리고 그 중 가장 구슬땀을 흘리며 경기장을 누비는 선수는 바로 심형만이었다. 32살이라는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갓 데뷔한 어린 선수처럼 열정적으로 베이포트 FC의 미드필더진과 수비진 사이를 휘젓고 있었다. 패스를 내줄 만한 곳이 없을 때에는 직접 공을 끌고 들어갔고, 자신이 공을 받자마자 좁혀지는 공간은 재빠른 몸놀림과 영리한 탈 압박으로 피해갔다. 전반전동안 꽁꽁 묶여있던 선수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베이포트 FC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공격의 핵심인 심형만이 살아나자 버턴 유나이티드의 공격은 덩달아 살아나기 시작했고, 경기는 베이포트 FC의 일방적인 공격에서 양 팀이 공수를 오가는 쪽으로 변했다. 지금껏 압도하고 있던 미드필드 지역에서 심형만이 제 모습을 되찾자 버턴 유나이티드의 수비를 공략하는 것에도 제약이 생긴 것이다.

‘우리 팀의 공격은 나한테 달려 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 무게는 이제 익숙해. 나는 막 팀에 이적해 온 기대 받는 선수가 아니야. 버턴 유나이티드의 핵심이지. 내가 경기를 바꾸면 돼.’

심형만은 그렇게 억지로 자신감을 가지며 자신에게 오는 패스를 왼발 끝으로 살짝 돌리고 몸을 돌렸다. 그의 발끝을 스친 공은 곧바로 공격을 끊어내려던 이안 페트로프의 다리 사이로 빠져 들어갔고 심형만은 가볍게 그 공을 낚아채 중앙으로 달려 들어갔다. 단 한 번의 볼터치로 그를 막으려던 이안 페트로프를 무력화시키고 중앙 돌파를 성공한 것이다. 이안 페트로프를 뿌리치고 수비 커버를 위해 달려오는 자크 피레스가 아직 채 붙기도 전에 그는 이미 슈팅을 할 수 있는 자세를 잡았다. 골문까지는 꽤 거리가 있지만 베이포트 FC의 수비진은 공격수를 내버려 두고 곧바로 그에게 붙을 수 없었고, 자크 피레스와 이안 페트로프는 아직 그와는 거리가 있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심형만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왼발로 차는 척하면서 한번 페이크를 주고 오른발로 골문 구석을 노렸다. 심형만이 주로 쓰는 발이 왼발이라는 것을 동민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베이포트 FC 선수들은 오히려 예상 밖의 그의 오른발 슈팅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골키퍼인 폴 맥마흔 조차 갑작스레 바뀐 심형만의 발 때문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내민 손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공은 골문 우측 구석을 향했고, 그 공의 궤적을 보는 버턴 유나이티드 팬들은 골을 기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아…….”

형만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의 슈팅은 골대를 맞추고 흘러나왔고, 버턴 유나이티드의 공격수가 세컨드 볼을 노리기 전에 조나단 케인이 멀리 공을 차내 버렸다. 모두가 골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약간의 차이로 골에서 벗어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은 비록 골은 아니어도 후반전에 들어선 버턴 유나이티드가 얼마나 전반전과는 다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물론 동민과 베이포트 FC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자크 피레스의 위치를 조금 더 내리면서 중원의 안정감을 더 가져갔고, 선제골을 넣은 로날드 조던을 빼고 야야 둠베흐를 넣으며 속도에서 뒤지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경기는 1 대 0으로 베이포트 FC가 리드하고 있지만 분위기는 큰 차이가 없었다. 버턴 유나이티드가 심형만의 놀라운 플레이로 베이포트 FC가 원하는 플레이를 막아내고 베이포트 FC를 몰아세운다면, 베이포트 FC는 중앙에서 측면으로 빠르게 공격의 화살을 돌리면서 버턴 유나이티드의 뒤를 공략했다.

양 팀의 공격과 공격이 그대로 맞붙는 경기가 되었지만 골은 터지지 않았다.

박주현의 헤딩 슈팅은 크로스바를 넘어갔고, 심형만의 패스를 받은 스콧 맥클린의 슈팅은 폴 맥마흔의 선방에 막혔다. 야야 둠베흐의 크로스는 크리스 러셀의 발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골문을 외면했고, 심형만의 중거리 슈팅은 위로 뜨면서 골문과는 꽤나 거리가 먼 곳으로 날아갔다. 마지막 한 번의 터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두 팀은 모두 상대방의 골문을 열어젖히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거 좋지 않은데…….’

심형만은 굳은 얼굴로 지친 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전광판의 시간은 80분에 가까워졌다. 끊임없는 공격으로 평소 버턴 유나이티드의 모습보다 더욱 활기찬 경기를 해내고 있었지만, 골로 향하는 마지막 한 발자국을 밟지 못하고 그 앞에서 멈추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버턴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체력을 떨어져가고 있었다. 한 골을 앞서나가는 베이포트 FC에 비해 따라가야만 하는 버턴 유나이티드가 더욱 많이 뛰어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이 영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체력의 저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체력의 저하가 큰 사람은 물론 심형만이었다.

‘아예 못 뛸 정도는 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지쳤어.’

그의 발걸음은 후반전에 막 들어섰을 때보다 확실히 무거워졌다. 본래 체력이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고, 32세라는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진 그가 경기 시작 후 지금까지 자기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듯 뛴 결과였다. 후반전이 시작한 직후에는 가벼운 발놀림으로 베이포트 FC 선수들을 제치며 공격을 만들어가던 심형만 이었지만, 지금은 지친 듯 조금은 느려진 발걸음과 힘이 빠져 보이는 개인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안 돼. 난 아직 경기를 바꾸지 못했어. 여기서 무너져 버리면 결국 나는 또 다시 강동민 감독 앞에서 멈추게 되는 거야.’

심형만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쳐버린 자신의 발을 채찍질했다. 이대로 체력의 한계에 부딪쳐 주저앉고 만다면 후회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너지려는 신체 밸런스를 억지로 부여잡으며 다시 한번 자신의 발밑 쪽으로 오는 공을 잡았고 또 다시 몸을 돌리며 질주를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그에게 당했던 이안 페트로프와 자크 피레스는 곧바로 그에게 달라붙어서 돌파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것 보다는 그가 위험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듯 그와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면서 공간을 막아냈다. 심형만이 위험지역까지 돌파하는 것을 막고, 그가 또 다시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려하면 방해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형만의 슈팅과 돌파를 견제한다고 그의 시야를 봉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의 해결 능력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심형만의 가장 큰 무기는 다른 선수들이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패스였다.

‘어디로 주는… 아!’

자크 피레스는 자신의 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공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스콧 맥클린이 달려가고 있었다. 조나단 케인이 함께 달리고 있었지만 패스의 속도를 생각하면 스콧 맥클린이 반 발자국 더 빠를 것이 분명했다. 심형만의 패스는 스콧 맥클린에게 연결이 되었고, 스콧 맥클린은 조나단 케인보다 아주 약간 더 빨리 공을 잡아 슈팅의 기회를 잡았다.

스콧 맥클린이 곧바로 폴 맥마흔밖에 없는 골문을 향해 공을 차려는 순간, 그는 그라운드를 굴렀다. 그가 슈팅을 하려는 순간 조나단 케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태클로 공을 끊어낸 것이다. 스콧 맥클린은 이미 빠지는 공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휴, 천만다행이야.’

동민은 조나단 케인이 페널티킥을 내줄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완벽한 태클로 슈팅을 막아내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동민의 안도는 곧바로 경악으로 바뀌었다.

주심의 휘슬이 경기장을 가로지른 것이다.

“저게 페널티킥이라고?”

어이없다는 동민의 목소리가 멍하니 흘러나왔다. 조나단 케인의 태클은 분명히 스콧 맥클린의 발에 닿지 않고 공을 건드리는 완벽한 태클이었다. 스콧 맥클린은 빠지는 공에 다리가 걸리며 넘어진 것이다. 조나단 케인을 비롯한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이 심판을 둘러싸고 억울하다며 항의했지만 주심은 단호했다. 고개를 흔들며 페널티킥이라는 판정을 고수하는 주심을 보면서 동민은 머리를 감싸쥐어야 했다.

‘페널티킥인가?’

심형만은 패스를 내주고 스콧 맥클린이 넘어지는 광경을 확실하게 보았다. 그가 있던 위치가 조나단 케인의 태클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조나단 케인의 태클은 공만 완벽하게 쏙 빼놓는 태클이었던 것 같은데…….’

그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그 태클이 페널티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백한 심판의 오심인 것이다. 그는 스콧 맥클린 쪽으로 뛰어가 방금 태클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그러나 곧 다른 생각도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오심? 정말 오심인가?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어. 어쨌거나 나는 거리가 있었고, 내 눈이 언제나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본 게 틀렸다면 나는 아무 이상 없는 페널티킥을 가지고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게 되어버려. 거기에 지금 타이밍에 골을 넣지 않으면 우리 분위기는 갈수록 가라앉을 테고…….’

선수로서의 양심과 승리를 향한 과도할 정도의 열망이 짧은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충돌했다. 이건 분명한 오심이라는 생각과 자신이 잘못 보았을지도 모르고, 만에 하나 오심이라도 경기의 일부이며, 이 기회가 아니면 결국 경기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서로를 물고 뜯었다.

그리고 스콧 맥클린을 향하러 가던 그의 발걸음은 점차 느려졌다.

“…내가 본 게 잘못 본건지도 몰라. 어찌됐든 심판의 판정이니까.”

그것이 형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오심에 대한 양심과 패배하고 싶지 않다는 열망의 싸움은 후자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스콧 맥클린은 형만에게 페널티킥을 양보했고, 형만은 무표정으로 공 앞에 섰다.

심판의 휘슬과 함께 그의 발을 떠난 공은 베이포트 FC의 골망을 흔들었다.

버턴 유나이티드의 동점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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