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겨야만 하는 경기 (240/270)
  • 이겨야만 하는 경기

    베이포트 FC는 자신들의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에서 풀어냈다. 그들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부상 이탈 이후 측면 공격의 단순함 때문에 중앙에만 집중되는 공격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던 문제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팀들이라면 그 점을 위해서 측면에 다른 선수들을 기용하거나, 혹은 중앙에 집중되는 공격을 더욱 강화시킬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베이포트 FC는 달랐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해결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베이포트 FC는 측면에 다른 선수를 넣어서 강화시키거나 중앙에 집중하는 대신, 대담하게 공격전술 자체를 바꾸어 버렸다. 크리스 러셀을 최전방 공격수의 위치로 올리고 그를 미끼 역할로 만들어 수비수를 끌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균열이 생기는 수비의 틈 사이로 로날드 조던이나 박주현이 침투해 들어간다. 두 사람 중 침투해 들어가지 않는 선수는 일부러 사이드라인 쪽으로 넓게 벌리고 수비를 더욱 벌리고 또 다른 패스의 선택지가 되어준다. 그 세 가지 움직임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이 이번 경기에서 베이포트 FC가 노리는 공격 방식이었다.

    ‘박주현은 몰라도 로날드 조던이 이 방식에 빨리 적응해 줘서 다행이야.’

    동민은 골을 넣고 환호하는 로날드 조던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본래 2선에서 움직이던 박주현과 달리, 로날드 조던은 프로 데뷔 후 최전방 공격수로만 활동했다. 빠른 발과 본능적인 침투, 좋은 골 결정력을 무기로 삼는 그지만, 동민은 짧은 시간 안에 그가 새 위치에서 적응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가진 특성 중에서 단점으로 아둔함도 있었으니까. 전술적으로 복잡한 움직임이나 재빠른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그의 특성인 아둔함은 경기 내적인 판단이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전 감독인 앨런 휴즈는 그에게 에딘 페트로비치가 수비수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측면에서 들어오는 낮은 크로스를 통해 골을 노리는 단순한 역할을 맡겼다. 뒤를 이어 감독이 된 동민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과도하게 복잡한 역할을 맡기지 않았고, 단순하지만 그의 장점만을 가장 부각시킬 수 있는 역할만을 맡겼다.

    동민은 이번 전술을 생각했을 때에도 로날드 조던의 특성을 생각해서 처음에는 그 대신 다른 선수를 기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아둔함을 특성으로 가진 로날드 조던이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탓이다. 그러나 로날드 조던은 훈련에서 훌륭한 움직임을 보이며 동민의 불안을 밀어냈고, 오늘 경기에서 골을 신고하면서 그 걱정이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본인은 원톱으로 뛸 때보다 오히려 간단한 것 아니냐고 했으니… 거기에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스테이터스가 증명해 주고 있고.’

    동민은 자신의 눈에 비치는 로날드 조던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로날드 조던]

    31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5.0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2 / 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특성 :

    장점 - 골게터, 빠른 발

    단점 - 아둔함

    현재 컨디션: 7/10

    ‘분명히 측면에 서는 것은 처음인데도 스트라이커에 섰을 때보다 적합도가 1, 아니 정확히는 1도 채 떨어지지 않았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치인데도 적합도의 차이가 굉장히 적어. 이 정도면 지금껏 저 위치에 서본 적이 없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동민은 훈련에서 그를 처음 측면에 세우고 놀랐다. 로날드 조던은 마치 지금껏 그 자리에 서던 선수처럼 너무나도 훌륭하게 적응하고 있었다.

    ‘어쩌면 로날드 조던은 어릴 적에 자리를 잡은 포지션이 지금의 원톱 위치가 아니라 다른 포지션이었다면 더욱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네. 이미 나이를 생각하면 늦어버렸지만.’

    동민은 그렇게 아쉬워했지만 이미 시간은 지난 후였다. 그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부상으로 공백이 생긴 지금의 상황을 그가 확실하게 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어쨌든 이걸로 가장 문제가 되던 상대 밀집 수비에 대한 답을 찾아냈어. 남은 건 버턴 유나이티드가 어떤 식으로 나설지 지켜보고 조정해 나가는 것뿐이야. 그리고 이 경기의 결과가 우리의 승리로 끝난다면 우리 팀에 대한 유효한 대응 방식이 밀집 수비라고 자신했던 다른 팀들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겠지.”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싸늘한 눈으로 그라운드를 노려보았다. 전반전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 후반전에도 확실하게 승기를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크리스 러셀을 이용해 상대 수비를 끌어내고, 측면에서 침투해 들어가며 그 공간을 활용하는 전술은 단순히 버턴 유나이티드와의 이번 경기를 넘어, 상대의 밀집 수비에 대한 좋은 대응이 될 지도 몰랐다. 그것이 동민이 이번 경기를 더욱 중요시 하는 이유였다.

    로날드 조던의 선제골로 경기는 베이포트 FC의 분위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크리스 러셀은 자신의 장기인 폭넓은 활동량으로 양 날개의 박주현과 로날드 조던뿐만 아니라 미드필더인 해리 맥스웰과 자크 피레스까지 순간적으로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수비진을 들쑤셨다. 박주현과 로날드 조던은 계속해서 크리스 러셀로 인해 생긴 공간을 파고들기 위해 시도했다. 그리고 맨 아래쪽부터 흔들리는 버턴 유나이티드의 수비 블럭을 해리 맥스웰과 자크 피레스가 손쉽게 흔들고 있었다.

    버턴 유나이티드는 수비 라인을 정비하려 애썼지만 계속해서 번갈아가며 수비진을 헤집는 베이포트 FC의 공격진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버턴 유나이티드는 베이포트 FC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골키퍼의 선방과 박주현의 슈팅이 골대에 맞는 행운까지 겹치며 더 이상의 실점 없이 전반전을 마쳤다.

    ‘크리스 러셀 때문에 완전히 꼬여 버렸어. 아니, 크리스 러셀때문이 아니지. 그를 원 톱 자리에 두면서 미끼로 쓸 생각을 한 강동민에게 완전히 당한 거야.’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 시즌 베이포트 FC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부재, 지난 경기부터 이어진 밀집 수비에 대한 효과적이지 못한 공격. 모두가 이번에야말로 강동민과 베이포트 FC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단 45분, 아니 선제골이 들어간 시각으로 그 생각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오만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오히려 변화가 무뎌져 있다고 생각한 그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고, 베이포트 FC는 또 다시 생각지 못한 모습으로 그를 가로막았다.

    ‘어떻게 해야만 하지…….’

    라커룸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프란체스코 만치니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이런 젠장……”

    같은 시각, 또 한명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버턴 유나이티드의 공격의 핵심인 심형만이었다. 전반전 내내 수비진부터 뒤엉켜 무너지는 버턴 유나이티드였지만 공격의 기회가 전혀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동점골을 위해 심형만은 최선을 다해 경기장을 뛰어다녔고, 베이포트 FC의 미드필더진과 수비진 사이를 휘저으려 했다. 그러나 심형만은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찬스를 만드는 것에는 실패했다.

    ‘이번에도 또 막혔어.’

    베이포트 FC는 공격 쪽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었다. 버턴 유나이티드의 공격의 핵심이 심형만이라는 것을 동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애매하게 그를 막으려다가는 도리어 심형만에게 치명적인 찬스를 만들 기회를 내줄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동민은 이안 페트로프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우면서 심형만이 활약할 공간 자체를 줄였고, 번갈아 전방을 오가는 해리 맥스웰과 자크 피레스 두 사람 중 오버래핑을 하지 않는 한명은 비교적 후방에서 역습을 대비하며 언제라도 수비 지원을 갈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수비 라인마저 올리면서 심형만이 공을 잡아도 동료에게 공을 내주기 힘든 상황을 연출했다.

    그 결과, 심형만이 공을 잡아도 패스를 줄 곳이 마땅치 않았고, 내준다고 해도 제대로 된 찬스를 맞기보다는 베이포트 FC 수비진의 그물에 걸려 내시 공을 내주기 일쑤였다. 계속해서 수비에게 막히자 심형만이 직접 슈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전반전 45분 내내 베이포트 FC의 골문을 여는 것은 무리였다.

    ‘그냥 나를 겨냥해서 마크를 붙이는 것이라면 이겨낼 수 있어. 상대가 거칠게 나서기 전에 빠르게 공을 돌리거나 몸을 빼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내가 아니라 공을 줄 공간들을 없애는 건 곤란해…….’

    지난 시즌에도 베이포트 FC의 이런 식의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심형만이었다. 그 고전을 되갚아주고자 그렇게 노력했건만, 이번 경기에서도 그는 침묵하고 있었다.

    ‘또 강동민 감독에게 무너질 순 없어. 나는 지금까지 강동민을 넘어서본 적이 없단 말이야.’

    수원 블루 데빌즈 시절, FA컵 결승에서 골을 넣으며 승리했지만 그때의 감독은 강동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분석하고, 심리적인 틈을 이용해 전반전 동안 그를 무너뜨린 강동민에게 반쯤은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 그는 철저히 막혔다. 버턴 유나이티드 팬들을 열광시키던 그의 드리블도, 찬스와 골을 만들어내던 그의 패스도 모두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비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공을 잡지도 못했고, 공을 잡아도 평소와 같은 섬세한 패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그는 무기력하게 버턴 유나이티드의 패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적어도 전반전까지는 형만은 지난번의 전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지난번과 같이 베이포트 FC의 좁은 공간에 갇혀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심형만은 이를 갈면서 눈을 감았다. 이 경기를 뒤집고 싶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또 다시 이렇게 무너지고 마는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또 한 번 무기력한 패배를 이어갈 순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가 아니야.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싶어. 벌써 몇 번이나 이어진 강동민과의 악연을 끊어내야 해.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또 똑같은 패배를 이어갈 순 없어!’

    심형만은 눈을 뜨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전반전은 베이포트 FC가 노린 대로 그들의 페이스로 움직였지만, 후반전은 달라야만 했다. 자신의 플레이를 살려 베이포트 FC의 의도를 분쇄하는 한방을 날려주는 것, 그것이 버턴 유나이티드 공격의 핵심인 심형만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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