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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커라는 미끼 (239/270)
  • 스트라이커라는 미끼

    베이포트 FC와의 경기를 앞두고 버턴 유나이티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절대 중앙에서 기회를 내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부상으로 잃은 이후의 두 경기에서 측면 찬스를 만든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었던 탓이다.

    AC 로마전에서 만든 골은 모두 중앙에서의 영향력이 큰 골들이었다.

    첫 골은 중앙에서 볼을 돌리면서 수비를 포함한 대부분의 AC 로마 선수들의 시선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빠르게 측면으로 내주면서 만들어낸 골이었다. 마지막 크로스는 물론 좌측면에서 에두아르도 산체스에 의해 이뤄졌지만 그 전까지 시선을 끄는 대부분의 공격 작업 자체가 중앙에서 일어났음은 분명했다.

    두 번째 골은 후방에서 이어진 롱패스를 박주현이 개인의 센스로 침투해 밀어 넣은 골로 이 또한 중앙에서 단번에 만들어낸 골이었고, 세 번째 골은 마지막에 골키퍼까지 나와 있던 AC 밀란의 빈 골문에 차 넣은 장거리 골이었다.

    노팅힐 AFC전에서는 아예 PK를 제외한 기회는 거의 만들지 못했다. 수직으로 빠르게 움직이던 베이포트 FC의 양쪽 윙은 크로스 시도는 많았지만 중앙에 밀집되어 있는 노팅힐 AFC의 수비에 틀어막혔고, 중앙에서의 패스 또한 그리 원활하지 않았다.

    이를 가장 중요시한 버턴 유나이티드의 수비진은 측면을 내주되 크로스만은 막는다는 생각으로 중앙에 밀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만치니의 계획은 경기 전의 선발 명단에서부터 혼란에 빠졌다.

    “전문 윙어가 선발 명단에 한 명도 없다고?”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베이포트 FC의 선발 명단에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경악했다. 베이포트 FC는 분명 지난 두 번의 경기에서, 특히 노팅힐 AFC전에서 측면에서의 공격 작업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측면에 큰 비중을 둘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베이포트 FC의 선발 명단에 전문 윙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박주현과 로날드 조던은 중앙 공격수다. 박주현을 지난 시즌에는 측면으로 많이 활용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중앙에 기용하는 게 대부분이었어. 그리고 미드필더는 해리 맥스웰, 크리스 러셀, 자크 피레스, 이안 페트로프. 모두 중앙 미드필더로밖에 기용하지 않던 선수들인데……’

    지금껏 동민이 이 선수들을 기용한 경우를 생각하면 전부 중앙에 집중되어 있었다. 전문 측면 자원이 없이, 오직 중앙에서 뛰던 선수들만으로 구성된 것이다.

    ‘아예 측면은 양 풀백에게만 맡기고 중앙에 더 집중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막무가내식의 경기를 할 리가…….’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베이포트 FC가 중앙에만 집중하는 경기를 할 거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노팅힐 AFC를 상대로 밀집된 수비는 중앙 공격만으로 뚫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텐데 또다시 그것에 올인한다는 생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그는 머릿속 한구석에서 베이포트 FC의 감독인 강동민을 상대로 물어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선발 명단을 보고 한참 동안이나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프란체스코 만치니가 결국 선택한 것은 처음과 같이 중앙에 밀집된 수비 전략이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저런 선발 명단을 꾸렸는지는 알 수 없어. 경기 직전에 전문 윙어가 부상을 당했을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할 일은 변하지 않아, 오히려 측면 공격에서의 위력이 더욱 떨어질 뿐이다.’

    그는 여전히 베이포트 FC와 강동민이라면 뭔가를 숨기고 나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의도를 알아챌 순 없었다. 그렇다면 원래 계획한 대로 나아갈 뿐이었다.

    “뭘 생각하든 이기는 쪽은 우리가 될 테니까.”

    그는 그렇게 속삭였다.

    베이포트 FC와 버턴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앞두고 심형만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지난 첫 번째 경기에서 그는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팀이 패배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공을 내줄 곳도 없었고, 동료들이 측면으로 빠질 때까지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자신에게 악연과도 같은 동민의 늪에 빠져 제대로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없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부상의 여파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그에게 베이포트 FC와의 경기는 특별했다. 국가 대표 팀의 후배인 박주현과의 맞대결도 분명 의미 있는 것이지만, 그보다도 강동민을 상대한다는 것이 더 컸다.

    그가 수원 블루 데빌즈에 있던 시절, 그와 수원 블루 데빌즈를 FA컵 결승전에서 벼랑 끝까지 밀어 넣었던 사람도 동민이었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에 와서도 강동민은 지난 시즌 그를 완벽히 봉쇄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그를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번에는 꼭 이기고 싶어.’

    벌써 그의 나이도 서른둘. K 리그의 슈퍼스타에서 버턴 유나이티드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은 그도 어느새 슬슬 은퇴를 고민해 볼 시기가 왔다.

    그가 신체 조건을 최대 장점으로 삼았다면 더욱 은퇴는 빨라졌겠지만, 패스와 플레이 메이킹을 주 무기로 삼는 그는 32살인 지금까지 크게 경기력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국가 대표는 내년 아시안 컵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고, 선수 은퇴도 그리 멀지 않았다. 앞으로는 큰 부상이라도 당할 경우 예전처럼 시간만 지나면 복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자칫하다가는 그대로 선수 생활의 은퇴도 고려할 수 있는 나이였다.

    ‘선수를 은퇴하기 전에 한 번은 꼭 잡고 싶어.’

    K리그에 있던 시절 FA컵 결승전에서 성남 페가수스에게 완벽하게 틀어막혔던 이후, 그리고 그 일이 동민이 한 일이란 것을 깨달은 그에게 동민은 복잡한 존재가 되었다.

    상대 팀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보다도 어린 주제에 선수들 개개인에 대한 뛰어난 분석을 토대로 자신을 가로막는 벽 중 하나였다.

    선수의 입장에서는 반대로 자신이 조금 더 어렸을 적에 그와 같은 팀에서, 그의 지도를 받고 뛰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때문에 지난여름 이적시장에서 베이포트 FC로 둥지를 옮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나처럼 너무 늦지도 않았고, 그 사람 밑에서 뛰어볼 수 있으니. 뭐, 내가 그 사람 밑에서 뛰는 일은 오지도 않을 테지만.’

    동민과 같이 뛸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가 가질 감정은 하나뿐이었다. 자신을 자꾸 가로막으려 드는 벽과 같은 상대를 뛰어넘는 것, 그것이 심형만의 바람이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는 꼭.”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경기에 나섰다.

    경기가 시작되자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준비한 대로 선수들을 중앙에 밀집시켜 상대의 세밀한 공격을 방해하고, 공격 상황에서는 곧바로 넓게 펼치며 베이포트 FC의 수비진을 공략하려 했다.

    그러나 경기는 그의 예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박주현하고 로날드 조던? 왜 저들이 저기 있는 거지?’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두 명이서 최전방 투톱을 이룰 거라 예상했던 박주현과 로날드 조던은 베이포트 FC의 양 윙으로 출전했다. 아니, 그들이 윙인지 어떤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저 그들이 위치한 곳이 그라운드의 좌우측 가장자리라는 것만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들 대신 최전방에 있는 선수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선수였다.

    ‘크리스 러셀이 왜 저기에…….’

    처음에는 중앙 미드필더 역할인 그가 오버래핑으로 위로 올라가 있는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크리스 러셀의 움직임은 중앙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그는 전방을 뛰어다니면서 수비진과 미드필더진, 특히 심형만에게 이어지는 패스를 차단하려 했고, 동시에 공격 상황에서는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보자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단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베이포트 FC는, 강동민은 크리스 러셀을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하고 있다.’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대체 누가 전문 스트라이커들을 두고서 중앙 미드필더를 최전방으로 올릴 것이며, 이를 위해 본래 최전방에서 움직이는 선수들을 측면으로 뺄 것인가.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왜…….’

    그는 도무지 동민의 꿍꿍이속을 알 수 없었다. 전문 스트라이커들을 측면으로 빼고, 중앙 미드필더를 공격수로 기용하는 일이 대체 무엇을 노리고 한 일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의문에 답하듯 베이포트 FC는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골! 로날드 조던이 자신의 왼발로 첫 골을 만들어냅니다!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의 주인공은 측면으로 빠져 있던 로날드 조던이었다.

    해리 맥스웰과 자크 피레스, 두 사람만이 중앙에서 패스를 이어갔다면 버턴 유나이티드의 철벽같은 수비진에는 균열조차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최전방에 나선 크리스 러셀이었다.

    크리스 러셀은 최전방에 서고도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만 머물거나 적극적으로 골에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래쪽으로 내려와 해리 맥스웰과 자크 피레스가 공을 내줄 옵션이 되거나, 로날드 조던과 박주현이 있는 양 측면을 오갔다.

    그가 이런 식의 움직임을 하자 혼란스러운 쪽은 버턴 유나이티드의 센터백들이었다. 미드필더 들은 해리 맥스웰과 자크 피레스의 패스 길을 막고, 그들에 대한 압박을 넣느라 바빴다. 그렇다면 자꾸만 내려가서 그들의 숨을 트이게 만들고, 애매한 위치를 오가는 크리스 러셀을 막아야 하는 것은 센터백이었다.

    그를 막기 위해 센터백들은 돌아가면서 전방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중앙에 생기고 마는 공간이었다.

    ‘당했어…….’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주먹을 치켜들고 환호하는 로날드 조던을 바라보았다.

    로날드 조던은 크리스 러셀이 내려가면서 생긴 공간으로 파고들었고, 순간적으로 중앙에서는 센터백의 뒤로 돌아가는 로날드 조던을 막아설 사람이 없었다. 로날드 조던이 파고드는 반대편에서는 박주현이 넓게 벌려 서서 언제든 공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리 맥스웰은 수비진의 머리 위로 살짝 공을 띄워 로날드 조던에게 연결했고, 순식간에 만들어진 1 대 1의 찬스를 로날드 조던은 놓치지 않았다.

    ‘최전방의 크리스 러셀은 완전히 스트라이커인 척하는 미끼였어. 마음껏 뛰어다니면서 수비진을 압박하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그의 역할이었던 거야.’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자신의 실책을 후회했다.

    베이포트 FC와 강동민은 요 근래에 경직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들을 너무나도 얕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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