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기의 승자는 (235/270)
  • 경기의 승자는

    후반전이 시작된 지 9분 만에 베이포트 FC의 동점 골이 터지면서 경기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AC 로마는 후반전이 시작하기 전에 계획하던 것처럼 골문을 잠그고 상대의 빈틈이 생기길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동점 골이 터지면서 다시 베이포트 FC가 유리한 경기로 변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AC 로마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악재가 덮친 셈이었다.

    베이포트 FC는 더 이상 조금 전과 같은 기습을 이용하기 힘들어졌다. 막시밀리아노 로지아와 같은 실력의 선수가 한 번 의표를 찔리고도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억지나 다름없었다.

    동점 골에서 막시밀리아노 로지아가 에두아르도 산체스를 놓친 것도, 산체스의 침투도 훌륭했지만 막시밀라아노 로지아가 지난 동점 골의 주인공이던 박주현을 신경 쓰다가 실수한 일이었다. 만약 같은 시도를 계속한다면 당연히 그가 에두아르도 산체스를 신경 쓰지 않을 리가 없었고, 조금도 침투를 허용할 리가 없었다.

    결국 두 팀은 이른 동점 골로 자신들의 후반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베이포트 FC가 생각보다 이른 득점에 웃으며 다음 작전으로 넘어갔다면, AC 로마는 불쾌한 얼굴로 머리를 감싸 쥐며 어쩔 수 없이 변화시켰다는 점이 양 팀의 차이점이었다.

    ‘내 실수다. 중앙에서 공을 돌리며 기회를 엿보던 박주현에게 시선을 빼앗겨서 사이드라인을 타고 달려 들어오던 선수를 너무 늦게 알아챘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다니…….’

    선제골의 시작점이라는 천국에서 동점 골의 원흉이라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 막시밀리아노 로지아는 당장 그라운드에 머리라도 들이박고 싶은 기분이었다.

    중앙에서 시선을 끌고 상대 수비를 집중시킨 후, 측면에서 재빠른 크로스의 마무리.

    되돌아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히 자신이 주의했어야 하는 공격이었지만 그는 측면으로 크게 돌아 들어오던 에두아르도 산체스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AC 로마로서는 너무나도 뼈아픈 실점이 되었다.

    ‘프란체스코 주장이나 다른 선수들도 모두 괜찮다며 위로해 줬지만 이 실점은 너무나도 뼈아프다.’

    AC 로마의 입장에서는 힘들게 선제골을 얻은 만큼 그것을 단단히 지켰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베이포트 FC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에 짓눌려 자신들의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틈을 AC 로마가 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동점 골이 터지면서 그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나 때문에 이 경기에서 질 수는 없어. 16강의 문턱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여기서 무너져선 안 돼!’

    막시밀리아노 로지아는 자신 때문에 AC 로마의 16강 진출이 좌절될 순 없다며 이를 악물고 경기에 집중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이런 끔찍한 결과를 만들었다면, 그것을 뒤집기 위해서 몇 배의 노력을 쏟아부을 뿐이었다.

    그는 전반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경기장을 오갔다. 공격 시에는 베이포트 FC의 수비 라인까지 침투해서 측면공 격을 지원함과 동시에 측면 수비수인 에두아르도 산체스를 끌어내어 공간을 만들어냈고, 수비 시에는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달라붙어 공을 뺏으려 했다.

    베이포트 FC의 선제골로 뒤로 눌러앉으려던 AC 로마가 강하게 치고 올라오면서 경기는 양 팀이 엎치락뒤치락 공수를 오가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골이 절실한 AC 로마는 물론, 베이포트 FC조차 전반전처럼 걸어 잠그고 역습만을 노리려고 하다가는 일방적으로 경기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강하게 공격에 나섰다. 그리고 공격에 나선 두 팀 중에서 먼저 웃음을 지은 것은 베이포트 FC였다.

    -골! 역전 골의 주인공은 박주현! 마법 같은 골로 세일러들을 열광시킵니다!

    후반 29분에 터진 박주현의 역전 골에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베이포트 FC 홈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16강 진출 실패의 가능성에 불안해하던 베이포트 FC의 팬들이었지만 이제는 환희하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줄리오와의 볼 경합에서 승리하며 공을 따낸 피터 아일랜드가 중앙에서 깊게 찍어 차준 공은 단숨에 AC 로마 수비진까지 다다랐다.

    AC 로마의 수비진들은 베이포트 FC에서 공중볼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선수가 바로 에딘 페트로비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긴 패스가 날아오자마자 거칠게 에딘 페트로비치를 막아섰고, 그 결과 아무리 공중볼에서 강점을 보이는 에딘 페트로비치라 해도 그 패스에 머리를 대지 못하고 흘릴 수밖에 없었다.

    에딘 페트로비치가 놓친 패스는 골키퍼에게 흘러갔고, 골키퍼는 공을 잡으러 골문에서 나와 공으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에딘 페트로비치를 막아서던 수비수들 사이로 주현이 빠져나와 빠르게 쇄도했고 달려들던 골키퍼가 공을 잡기 직전, 공을 터치하는 데 성공했다. 골키퍼가 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은 공을 붙잡지 못한 채 허공을 허우적거렸고 주현은 깔끔하게 빈 골문으로 공을 넣었다.

    2 대 1, 주현의 무섭도록 예리한 침투와 침착한 마무리가 돋보이는 골이었다.

    이제 경기는 완전히 베이포트 FC가 주도권을 잡은 듯 보였다.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경기를 역전까지 만들어냈으니 이제 16강 진출의 주인공은 정해진 듯 보였다.

    그러나 경기는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았다. AC 로마는 박주현의 역전 골에도 결코 물러서거나 주저앉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2 대 1로 패배하든 3 대 1로 패배하든,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AC 로마는 공격에 모든 것을 건 채로 경기에 임했고, 그 결과 베이포트 FC에게 급격히 기울 거라 예상되던 경기는 여전히 양 팀이 비등비등하게 다투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후반 43분, 어느새 AC 로마의 분투도 점점 힘이 빠져가는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던 AC 로마였지만 정규 시간도 어느새 끝나가는 시간이 되자 조금씩 기세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골은 두 골. 그러나 남은 시간은 추가시간까지 합쳐도 7, 8분에 불과했다.

    광적으로 응원을 하던 AC 로마의 원정 팬들까지 점차 기세가 줄어들 무렵, 크리스 러셀의 파울로 AC 로마는 우측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기회를 잡게 되었다. 직접 슈팅을 노릴 수도 있는 위치에서, 경기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찬스가 온 것이다.

    AC 로마의 프리킥을 맡은 프란체스코 줄리오가 공을 차기 위해서 공 앞에 자리를 잡았으나 그 옆에서 그를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줄리오, 내가 차게 해줘.”

    선제골의 시작점이나 동점 골의 원인이 된 막시밀리아노 로지아였다.

    “…네가?”

    막시밀리아노 로지아 또한 오른발을 잘 쓰는 키커로, 깔끔한 감아 차기로 몇 차례 프리킥 골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프란체스코는 프리킥 찬스를 내주기를 망설였다. 우측 페널티 박스 앞쪽이란 위치 자체가 오른발잡이인 막시밀리아노 로지아에게는 골을 노리기 쉽지 않은 위치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양발잡이인 프란체스코 줄리오가 왼발로 골문을 노리는 편이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막시밀리아노 로지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아까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줘. 책임지고 골로 만들 테니까.”

    눈에서 불길이라도 이는 듯한 막시밀리아노 로지아의 표정을 보고 고민하던 프란체스코 줄리오는 결국 자리를 내주었다. 그의 표정을 보자 도저히 자신이 프리킥을 찰 수가 없었다.

    “…마음대로 해. 단, 네가 책임지겠다고 말한 이상 반드시 골로 만들어라. 네가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양보하는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갑자기 바뀐 프리키커에 잠시 웅성거리던 AC 로마의 선수들과 팬들이었지만 이내 소란은 잦아들었다. 프란체스코 줄리오가 별 이유 없이 자신의 프리킥 기회를 내줄 리가 없다는 믿음 탓이었다.

    막시밀리아노 로지아는 프란체스코 줄리오의 양보로 프리킥 위치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골문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각도는 그리 넓지 않았다. 특히 오른발잡이인 그는 직접 골을 노리기보다는 골문 앞에 크로스를 붙여주고 동료들의 머리를 노리는 것이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것을 아는 베이포트 FC의 수비수들은 단단히 벽을 세우고, 들어가는 선수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완벽하게 AC 로마의 공격을 틀어막겠다는 생각이었다.

    막시밀라아노 로지아는 혼란스러운 페널티 박스를 보면서 뒤로 몇 걸음 걸어가 주심의 휘슬을 기다렸다.

    이윽고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마자 그는 도움닫기를 하며 강하게 공을 찼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은 빠르게 수비벽 사이의 좁은 틈을 뚫고 골문을 향했다. 직접 슈팅보다는 동료를 위한 크로스가 될 거라는 예상을 완전히 져버리는 강한 슈팅은 좁은 각도와 수비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확히 골문 구석을 노렸다.

    지금까지 선방을 이어오던 토마스 스톤스 골키퍼조차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슈팅이었다.

    골 망이 찢어질 듯 출렁이는 것을 보면서 AC 로마의 원정 팬들은 경기장이 무너져라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골의 주인공인 막시밀리아노 로지아는 골 셀러브레이션도 없이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센터 서클로 달려갔다.

    2 대 2,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AC 로마의 팬들은 다시 자그마한 희망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추가시간은 5분, 5분 안에 한 골을 더 넣을 수 있다면 16강 진출은 그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베이포트 FC의 팬들은 다시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경기는 끝나기 직전까지 박빙으로 흘러갔다.

    선수들은 몸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해 달리고, 공을 찼으며 상대를 막아섰다. 이제 경기는 정신력의 싸움이라 할 만한 난타전의 양상을 띠어 도저히 추가시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추가시간 4분, 마지막이 될 AC 로마의 코너킥 공격이 돌아왔다. 이 찬스에서 골을 넣는다면 AC 로마의 승리로 경기는 끝날 테고, 넣지 못한다면 시간상 다음 찬스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실질적인 마지막 찬스였다.

    AC 로마는 골키퍼까지 골문을 비우고 올라와 공격에 가담하며 총공세를 펼쳤다. 이윽고 올라온 코너킥은 프란체스코 줄리오의 머리에 걸렸지만 크리스 러셀의 뒤꿈치에 걸리며 막혔다.

    그 공은 곧바로 해리 맥스웰에 의해 멀리 차내어져 버렸다. AC 로마의 마지막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거기에 공교롭게도, 해리 맥스웰이 걷어낸 공은 빠르게 굴러가 AC 로마의 골문을 통과해 버렸다.

    3 대 2.

    16강 진출을 건 두 팀의 혈투는 베이포트 FC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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