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궁지에 몰리는 것은 어느 팀인가 (234/270)
  • 궁지에 몰리는 것은 어느 팀인가

    동민과 베이포트 FC의 선수들, 그리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베이포트 FC 팬들은 동점 골을 간절하게 바랐지만 끝내 동점 골은 터지지 않은 채로 경기는 하프타임을 맞았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16강 진출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던 베이포트 FC 팬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지난날, 그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AC 로마의 홈에서 완벽한 역전승을 거두며 상대 팀 응원단을 잠재웠던 적이 있었다. 마치 그때처럼, 이번에는 반대로 AC 로마가 16강 진출을 확신하던 그들을 좌절시킬지도 몰랐다.

    전반전의 경기 내용이 베이포트 FC의 창과 AC 로마의 방패의 싸움이었던 지난 1차전과는 반대의 대결이었던 만큼, 희망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부 세일러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반대로 지난 1차전에서도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전에 2골을 몰아넣고 역전승을 거두지 않았느냐며 희망을 가지는 팬들 또한 존재했다.

    희망과 불안, 어느 쪽이 이 경기를 정확히 예측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한 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그 골은 프란체스코 줄리오 개인이 만들어낸 걸작 같은 골이었어. 당장 교체를 통해 수비진을 바꿔주거나, 수비 시의 전술을 바꾸거나 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야.’

    실제로 베이포트 FC는 프란체스코 줄리오의 묘기와도 같은 개인기 때문에 허용한 선제골 외에는 노도와도 같은 AC 로마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토마스 스톤스 골키퍼를 비롯한 수비진의 집중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다만 문제는 공격이지. 후반전에 더욱 단단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AC 로마의 수비를 뚫기엔 너무 단조로워.’

    동민은 쓴 약이라도 삼킨 것처럼 표정을 찌푸렸다.

    전반전 내내 베이포트 FC의 역습은 측면으로 치우쳐져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AC 로마의 풀백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막히고 있었다. 이는 동민 또한 인지하고 있는 문제점이었지만 당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쪽 방향에서 공을 끌고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압박감을 준 상태에서 반대편을 넓게 벌려주는 것이 아닌, 그냥 양쪽 전부에서 수직적으로밖에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 막히는 건데… 문제는 내세울 카드가 부족하다는 거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라는 드리블러가 부족해진 이상 베이포트 FC의 전술은 전보다 다채로움이 떨어졌다.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수비의 시선을 끌고 붕괴시킬 수 있는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어 보이지 않았다.

    ‘박주현을 측면에 쓰는 게 유일한 해결책인가. 아니면…….’

    동민은 라커 룸으로 향하면서도 계속해서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느라 고민했고, 그 고민은 라커 룸 바로 앞에 도착해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하는 수가 있던가. 다른 때라면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도박수이긴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

    동민은 그렇게 하고 잠시 눈을 감고서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라커 룸에서 그를 기다리는 선수들을 향했다.

    “전반전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절실하게 필요하던 선제골을 넣을 수 있었고, 상대의 역습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이 골을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면서 상대의 수비가 헐거워지면 역습을 나서면 된다.”

    안토니오 산치스는 현재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선제골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절박해지는 팀은 AC 로마였지만, 비교적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으며 상황을 뒤집었다. 그리고 이제 상황은 반대로 변해서 베이포트 FC가 그들을 뚫어야만 하는 절박한 쪽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일이기도 하다. 단단하게 수비에 집중하면서, 역습은 상대가 완전히 침착함을 잃고 무너진 상황에 경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익숙한 일 아닌가? 평소 우리의 플레이 스타일 그대로다. 우리는 가장 자신 있고,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일대로 경기를 이어가면 된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사납게 미소를 지었다.

    다른 팀들이었다면 벌써부터 잠그는 것은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하면서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동민이 고민했듯이 너무 일찍부터 지키는 것에만 몰두하려 하면 상대가 분위기를 타는 것을 막기 힘들다. 게다가 자칫해서 골을 내줬다가는 지키던 한 골마저 허망하게 날아가면서 완전히 분위기를 탄 상대와 경기를 이어가야 한다.

    그만큼 이른 시간부터 수비에 집중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불안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팀이 AC 로마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수비 위주의 축구를 구사하는 것을 장기로 삼아 리그 최소 실점을 자랑하는 그들에게는 안토니오 산치스가 말한 것처럼, 익숙한 일이자 자신 있는 일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해줄 말은 별로 없다. 그저 이곳까지 너희를 믿고 응원을 하러 온 팬들에게 걸맞은 경기를 하고, 너희가 토너먼트에 올라갈 자격이 있는 팀이라는 것을 보여줘라. 남은 45분이 지났을 때 웃는 것을 우리가 될 거다.”

    그의 말은 AC 로마 선수들의 자신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이겨야만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가장 심리적으로 몰려 있을 타이밍에 선제골을 넣으며 역전하는 것에 성공했고, 이제는 익숙한 방식으로 베이포트 FC를 요리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럼, 나가서 경기의 종지부를 찍어라. 우리는 16강으로 간다.”

    안토니오 산치스의 말에 AC 로마의 선수들은 절박함과 독기 대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16강에 대한 기대를 품고 다시 그라운드로 향했다.

    토너먼트 진출을 둔 두 팀의 싸움은 아직 45분이 남아 있었다.

    후반전이 시작된 후, AC 로마의 측면 수비수, 막시밀리아노 로지아는 자신이 담당하는 우측에/는/ 당장 아무도 자리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 의문이 들었다. 그가 있는 우측뿐만 아니라 토마스 레들리가 지키는 좌측에도 전반전처럼 역습을 위해 깊숙이 들어와 있는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베이포트 FC는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야야 둠베흐를 빼고 박주현을 투입했지만, 박주현이 측면으로 올 거라는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박주현은 측면이라기보다는 중앙에 더 가깝게 위치하면서 그가 마크하기 애매한 곳을 쏘다니고 있었다.

    ‘뭐야, 아예 측면을 그냥 두고 중앙에서 경기를 풀어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비기기만 해도 2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던 전반전과는 달리, 선제골을 허용한 상황인 후반전에는 베이포트 FC의 전술이 달라지리라는 것을 그는 예상하고 있었다. 감독인 안토니오 산치스도 그 점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가뜩이나 급한 베이포트 FC가 넓은 측면 대신 중앙에 집중하는 것은 예상 밖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얼마나 공격적으로 나오든 AC 로마 특유의 든든한 수비라면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자부심 또한 있었다.

    ‘가뜩이나 골이 급한 상황에 안 그래도 비좁은 중원에서 복작대겠다고?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저 여우 같은 놈들이 또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막시밀리아노 로지아는 지난 1차전에서 후반전에 접어들자 급격히 몸놀림이 변했던 베이포트 FC 선수들을 기억했다. 라커 룸에서 상대 감독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전반전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도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주현은 지난 1차전에서도 동점 골을 넣으며 오늘 결장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함께 AC 로마를 침몰시켰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것을 떠올리며 막시밀리아노 로지아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도 신중하게 주현을 주시했다.

    ‘좋아,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패스는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어.’

    동민은 생각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들을 보면서 긴장한 듯 손을 만지작거렸다.

    베이포트 FC는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두 장의 교체카드를 사용했다. 한 장은 야야 둠베흐 대신 박주현을 투입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좌측 풀백으로 출전한 닉 베손을 에두아르도 산체스로 교체시킨 것이다.

    그러고는 우측 윙이었던 피터 아일랜드를 중앙에 가깝게 이동시키고 해리 맥스웰과 아르센 디아라, 크리스 러셀의 중원에 힘을 실어주었다. 중원에만 네 명의 선수가 집중되면서 상대의 밀집된 수비를 패스로 풀어나가겠다는 동민의 의도가 보이는 진형이었다.

    덤으로 주현을 에딘 페트로비치와 투톱으로 세우면서 중원과 공격진의 연결 고리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동민이 생각한 대로 중원에 밀집된 베이포트 FC 선수들의 영향으로 AC 로마의 수비도 중원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비좁은 중앙에서 짧은 패스로 공을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주현이 조금 전 교체된 선수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경기의 흐름을 읽어가며 필요한 때에 중원에 지원을 내려가면서 패스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 결과, 경기장 중앙은 양 팀 선수들로 빽빽이 들어찼고, 상대적으로 경기장의 양 측면은 텅 비어갔다. 처음에는 베이포트 FC가 언제든 다시 경기장을 넓게 가져갈 것을 경계함과 동시에 역습을 위해, 바깥쪽에 있던 AC 로마의 풀백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안쪽으로 위치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중원에서 공을 뺏기지 않고 계속해서 패스를 이어가는 베이포트 FC의 플레이에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곧 측면이 순간적으로 활짝 열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

    동민은 공을 잡은 주현이 좌측면으로 수비수들 사이를 절묘하게 파고드는 패스를 찔러주는 것을 보면서 주먹을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전방 공격수인 에딘 페트로비치도 중앙에 위치했고, 그 공을 받아줄 야야 둠베흐는 주현과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렇다면 그의 패스는 누구를 향하는 것인가. AC 로마의 수비수들은 뒤늦은 불안감이 등골을 따라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좌측 사이드라인 바로 옆, AC 로마의 수비라인 깊숙한 곳에서 그 패스를 받은 사람은 베이포트 FC의 좌측 풀백, 에두아르도 산체스였다. 지금껏 뒤쪽에 머물던 그는 중앙에서 공이 돌며 공간이 열리자 빠르게 사이드라인을 따라 달려 나왔다. 박주현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막시밀리아노 로지아는 그 탓에 뛰어나오던 에두아르도 산체스를 놓치고 만 것이다.

    막시밀리아노 로지아가 달려와 그를 방해하기도 전에 에두아르도 산체스의 발끝은 떠난 낮은 크로스는 몸을 던진 에딘 페트로비치의 발끝에 걸려 아주 살짝이지만 궤도가 틀어졌다.

    그리고 골대를 맞은 공은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민을 비롯한 베이포트 FC의 벤치는 벌떡 일어서며 환호했고,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홈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경기 스코어는 다시 1 대 1, 후반 9분 만에 터진 베이포트 FC의 동점 골이었다.

    경기는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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