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구라는 이름의 전쟁 (233/270)

축구라는 이름의 전쟁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부상이라…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건가.”

안토니오 산치스는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조금 전 베이포트 FC와 AC 로마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발목 부상을 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현재 E조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팀은 4승 1무로 승점 13점을 기록 중인 FC 마드리드였고, 그 뒤로 승점 7점의 베이포트 FC, 각각 4점의 AC 로마와 쾰른 07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와 베이포트 FC의 승점 차이는 3점, 다가올 경기에서 이기게 되면 따라잡을 수 있는 범위다. 같은 승점이라면 골득실에서 순위가 결정 나니까 충분히 해볼 만한 차이야.’

현재 AC 로마의 골득실은 -2, 베이포트 FC의 골득실 또한 -2로 이번 경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확실하게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AC 로마와의 1차전에서 2 대 1, 쾰른 07과의 경기에서는 2 대 0의 승리를 거두었던 베이포트 FC지만, FC 마드리드를 상대로 연이어 큰 패배를 거둔 것이 골득실에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된 것이다.

예상외로 조별 리그에서 고전하면서 16강 진출이 불투명해진 AC 로마에게는 이번 베이포트 FC와의 경기가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이 경기에서 이기게 되면 베이포트 FC는 골득실로 따라잡을 수 있다. 만에 하나 쾰른 07이 우리보다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골득실에서 밀릴 수도 있겠지만 쾰른 07의 마지막 상대가 FC 마드리드인 이상 그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아무리 1위자리가 확정 났어도 FC 마드리드가 쉽게 질 것 같진 않아. 결국 이기기만 하면 우리가 2위로 16강에 진출할 확률이 가장 높다.’

안토니오 산치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쥐었다. FC 마드리드와 1위 다툼을 하며 어렵지 않게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긴 했지만, 어떻게든 진출을 하는 것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이 경기에 16강이 달려 있어.”

그는 그 말을 되뇌며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라고 자신의 마음에 새겨 넣듯 속삭였다.

베이포트 FC와 AC 로마, 쾰른 07이 16강 진출을 위해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는 사이, 어느새 경기 날짜는 빠르게 다가왔다.

“토너먼트 진출까지 남은 경기는 이제 이 한 경기뿐입니다. 이기거나 비기면 진출, 지게 된다면 AC 로마나 쾰른 07에게 2위 자리를 내주게 되죠. 그러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유로파리그로 가거나 탈락하게 됩니다.”

동민의 차분한 말에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경기에 16진출이 걸려 있다는 말은 그들에게 무거운 울림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얼어 있을 것 없습니다. 우리는 첫 챔피언스 리그 본선 경기에서 저들을 꺾은 바 있습니다. 그것도 상대의 심장인 스타디오 디 로마에서요.”

그 말에 선수들은 스타디오 디 로마에서 있었던 짜릿한 역전극을 떠올렸다. 그 경기에서 느꼈던 흥분, 달성감, 짜릿함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전반전에는 챔피언스 리그 첫 경기라는 부담감과 홈팬들의 강렬한 응원에 짓눌려 헛돌았지만, 후반전에는 그 부담을 이겨내면서 2 대 1로 역전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이번에 경기가 벌어지는 곳은 우리의 홈입니다. 처음 와보는 곳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팀은 이제 우리가 아니라 AC 로마죠. 우리가 상대 홈에서 진땀을 흘렸던 것 이상으로 상대를 힘들게 만들 수 있어요.”

동민은 확신에 차 있었다. 선수들에게 경기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하고, 부담이 되기 전에 재빨리 그들을 끌어올려 주는 것이 동민의 역할이었다. 16강 진출이 걸린 이번 경기에서 부담감에 너무 얼어 있지도, 방심으로 풀려 있지도 않은 채로 선수를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민은 말을 이었다.

“지금 이 경기장에는 2만 명에 가까운 관중들이 경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중 대다수는 우리 팬들입니다. 그들에게 16강 진출의 기쁨을 주고 함께 나누길 바랍니다. 오늘 승리해서 구단의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깁시다.”

베이포트 FC 선수들은 그 말에 주먹을 꾹 쥐었다.

같은 시각, 브리큰돈 스타디움의 원정팀 라커 룸에서는 안토니오 산치스가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의 패배는 깨끗이 잊어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고, 그 경기를 놓치는 순간 16강 진출은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만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명문 팀의 귀환이라는 목표를 내세웠던 AC 로마였지만, 막상 조별 리그가 시작되고 나자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첫 경기인 베이포트 FC와의 경기에서 2 대 1로 역전승을 당하면서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고, FC 마드리드라는 조 내 최강 팀을 상대로는 원정 길에서 2 대 0으로 무력하게 패배하는 굴욕을 맛보았다. 거기에 베이포트 FC와 함께 승점 자판기가 될 것처럼 보였던 쾰른 07을 상대로도 1승씩을 나눠 가지면서 3위라는 실망스러운 순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팀은 16강 진출이 유력해지고, 반대로 패배하는 팀은 토너먼트 진출은커녕 자칫하다간 조별 순위 최하위로 떨어질 수 있다. 난 그게 우리 팀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AC 로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원정경기에서의 큰 부진이었다. 홈 성적만 따지면 1승 1무 1패로 현 시점 유럽 최강 팀으로 꼽히는 FC 마드리드마저 몰아붙이며 무승부를 따냈지만, 두 번의 원정경기는 두 번 모두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

만약 이번 원정경기조차 패배하게 된다면 AC 로마는 조별 리그 원정 전패라는 팀 명성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우린 이겨야 한다. 이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우리는 16강에 진출할 수 있고, 시즌 초에 목표로 하던 유럽 무대 탈환을 노릴 수 있다. 졸전이어도 좋고, 꼴불견이어도 좋다. 이겨야만 한다. 아름다운 패배 따위는 허울 좋은 허상이다. 우린 이 곳에서 승리하고 돌아간다.”

전쟁에라도 나서는 것처럼 그는 엄숙하게 말을 끝냈다. 아니, 그들에게 이 경기는 전쟁과도 같았다. 반드시 이겨서 살아남아야만 목표에 계속 도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가 되고 있었다.

AC 로마의 선수들은 모두 단단히 독기를 품은 채 라커 룸을 나섰고, 팀의 주장인 프란체스코 줄리오는 어쩌면 이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서 반드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16강 진출을 다투는 두 팀은 각자의 각오와 기대를 안고 그라운드를 향했다.

16강 진출의 마지막 한 자리를 둔 AC 로마와 베이포트 FC의 대격돌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만큼이나 짜릿했다. AC 로마는 그들의 장기인 강한 수비 대신 득점을 노리고 처음부터 강하게 베이포트 FC를 압박했고, 베이포트 FC는 홈이지만 안전한 경기를 우선시하겠다는 듯 뒤쪽으로 물러서 상대의 공격을 막는 일은 우선시하고 있었다.

지난날 스타디오 디 로마에서 펼쳐졌던 창과 방패의 대결이 브리큰돈 스타디움에서 다시금 펼쳐졌지만, 이번에는 그 대상이 서로 뒤바뀌어 있었다.

쾰른 07과의 경기에서 쉴 새 없이 공수를 오가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였던 베이포트 FC는, 이번에도 해리 맥스웰과 아르센 디아라의 정확한 롱패스를 앞세워 빠른 템포의 역습을 선보였다. 그러나 관중들의 환호를 먼저 이끌어낸 팀은 원정 팀인 AC 로마였다.

아르센 디아라의 패스를 받아 측면 공간으로 달리던 야야 둠베흐의 드리블을 막시밀리아노 로지아가 정확한 태클로 끊어내면서 베이포트 FC는 위기를 맞이했다. AC 로마는 공을 뺏자마자 순식간에 반대편의 프란체스코 줄리오에게 연결하며 역습을 이어나갔다. 프란체스코 줄리오는 조금 길게 떨어지는 듯하던 패스를 발을 치켜들며 받으면서 몸을 돌리는,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은 기술을 발휘하면서 베이포트 FC의 수비수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그의 발끝을 떠난 공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반대편 측면에서 침투하던 로렌조 브루노의 머리로 향했고, 이내 골 문을 갈랐다.

1 대 0, AC 로마로서는 간절히 원하던 선제골이 전반 23분에 터져 나온 것이다.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가득 메운 세일러들은 조용해졌고, 반대로 AC 로마의 원정 팬들은 기쁨에 찬 환호로 브리큰돈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그래! 이거야!”

평소 낮은 톤의 목소리밖에 듣지 못했던 안토니오 산치스의 환호에 AC 로마의 벤치에 있던 선수들과 코치진은 놀랐지만, 이내 웃으며 선제골을 자축했다.

만일 AC 로마가 아니라 베이포트 FC가 선제골을 기록했다면 이 경기는 완전히 베이포트 FC 측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이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AC 로마와는 달리, 베이포트 FC는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AC 로마로서는 천만다행히도, 선제골을 넣은 팀은 그들이었고 AC 로마는 전반 30분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경기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거 안 좋은데…….’

동민은 입술을 깨물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비기기만 하면 2위 자리를 사수할 수 있다는 상황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부상으로 수비에 중점을 둔 역습 전술을 택했지만, 상황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상대 수비를 제대로 뚫어내질 못하고 있어. 너무 직선적인 공격 패턴 탓에 AC 로마의 수비가 막아내기 쉬운 거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공백을 야야 둠베흐의 빠른 발과 피터 아일랜드의 크로스로 막아보려던 동민의 계획은 지금까지만 보면 실패에 가까웠다. AC 로마는 베이포트 FC가 측면 공격에 의존할 거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측면에서 이어지는 크로스를 철저하게 대비한 듯 보였다. 그 때문에 해리 맥스웰이나 아르센 디아라의 패스가 이어져도 확실한 찬스는 나오지 않았고, 최전방에 선 에딘 페트로비치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해. 후반전이 되면 AC 로마는 어떻게든 내려앉아서 선제골을 지키려 들 테고, 우리 쪽에서는 그런 밀집수비를 뚫어낼 방법이 부족해. 자칫하다가는 동점골을 넣지 못하고 후반전 내내 끌려가다가 경기가 끝나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야.’

동민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공백으로 공격 전술의 다양성이 줄어든 것이 이리도 빠르게 영향이 생기고 만 것이다.

“어떻게든 상대가 얻은 우위를 다시 되돌려야만 하는데… 어떻게 한다.”

동민의 깊은 고민을 안고 시간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은 채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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