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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대가 (232/270)
  • 인터뷰의 대가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발목 인대 손상으로 5주에서 6주 정도는 걸린다더군요. 그나마 예전에 다쳤던 부위는 아니라서 더 심해지거나 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은 확실합니다.”

    동민은 팀 닥터의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은 앞으로 16강 진출을 결정 짓는 AC 로마전뿐만 아니라 연말의 박싱 데이까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없이 치러야만 한다는 이야기였다.

    “알겠습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동민은 차분하게 그렇게 대답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지만 머릿속은 다시금 에버포스 원더러즈와 주심에 대한 분노,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진 침통함으로 복잡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빠지게 되면 2선이 가능한 선수는 박주현, 야야 둠베흐, 피터 아일랜드, 거기에 잭 하워드 정도인가. 문제가 심각한데.’

    동민은 당장에라도 머리를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리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있던 우측 윙 자리를 다른 선수들이 메꿀 수 있다고 해도 그의 플레이 스타일까지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란한 드리블과 개인기로 상대 수비를 흔드는 역할이나, 대각선으로 안쪽으로 파고 들어오면서 수비진 전체의 균열을 일으키는 역할은 현재 베이포트 FC 내에서 그가 독보적이었다.

    야야 둠베흐는 빠른 속도로 상대 측면을 붕괴시키고 낮고 빠른 크로스로 기회를 창출하는 스타일이고, 피터 아일랜드는 안정적인 수비 능력과 정확한 얼리 크로스가 장점인 선수다. 잭 하워드의 경우에는 아예 본래의 포지션이 우측 풀백인 선수다. 그나마 주현이 가장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적합한 인선이 아니었다.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주현이의 특성을 2선에서 기회를 만드는 선수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에 좀 더 맞게 고쳤으니까. 애초에 공을 잡고서 개인기와 드리블로 상대를 혼란시키기보다는 반 박자 빠른 패스나 침투에서 더 장점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고.’

    이번 시즌 동민이 주현을 2선에 기용할 때에는 측면에서 직접 공을 끌고 들어가 상대 수비를 흔들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동민이 주현을 2선에 기용하려는 이유는 2선에서의 침투와 최전방 스트라이커와의 연계를 통해 득점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반대편에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공을 잡고 상대 수비를 혼란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빠진 지금 상황에서는 그 전술도 막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도 발재간이 있는 선수니까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처럼 공을 끌고 수비를 끌어모으는 역할이 가능은 하겠지만 효율이 떨어져. 결국 지공 상황에서는 아예 새로 판을 짜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주현에게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처럼 공을 잡고 상대 수비를 휘저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은 낭비나 다름없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인 침투와 골 결정력을 극대화하지 않고, 그저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괜찮은 수준인 드리블에 기대하는 일은 동민이 바라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결국 AC 로마전과 박싱 데이를 앞두고 공격진에서는 완전히 새 판을 짜야 한다는 거구나. 하이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한 명에게 공격을 의존하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해 내세울 수 있는 공격 전술들이 얼마나 다양했던지 동민은 새삼 깨달으면서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곧 이어질 박싱 데이는 선수들의 체력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박싱 데이를 앞두고 한 선수가 부상으로 이탈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다른 선수들의 출전이 잦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의 체력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해리 맥스웰과 박주현, 조나단 케인의 연이은 부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필립 포덴이라는 신성과 벤 로이터의 노익장으로 고비를 넘겼던 지난 시즌을 떠올리며 동민은 머리를 긁적였다.

    “유스에서 또 기회를 줄 만한 선수를 찾아봐야 하나. 그게 아니면 당장 AC 로마전은 몰라도 곧 이어질 박싱 데이는 진짜 힘들어지는데. 아니, 지금까지 큰 부상 없이 이어진 게 천운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동민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AC 로마전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겠지.’

    동민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부상에 골치를 썩고 있었지만 구단 내부는 도저히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부상에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 일에는 나도 팬으로서, 구단주로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주심이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요. 하지만-”

    레이미 볼든 구단주는 거기서 잠시 말을 끊고 동민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것과 경기 후의 인터뷰는 전혀 다른 문제예요. FA가 심판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에버포스 원더러즈와의 경기가 끝난 후에 동민이 했던 인터뷰는 경기의 태클과 더불어 화제가 되고 있었다.

    마틴 로브렌의 태클이 선수끼리의 동업자 정신이 없는 태클이며 주심이 선수를 보호하지 못했던 만큼 동민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반대로 아무리 그래도 공식적으로 심판을 비난하는 일은 잘못되었으며 그런 면면이 잉글랜드 축구라는 의견 또한 적은 수는 아니었다. 일개 축구 팬들부터 기자들, 해설자들까지 그 일을 두고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그 일을 두고 징계가 두려워서 입을 닫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지나간다면 다음번에 또 이런 일로 우리 선수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민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전혀 주눅 든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경기에서 세르히오 단 한 사람만 부상을 당한 게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후반전 내내 위험한 태클에 시달려야 했고, 그건 오로지 심판의 실책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을 이으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레이미 볼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오심으로 경기 분위기가 바뀌거나, 설령 승점을 잃는다고 해도 동민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것도 축구의 일부이며 심판도 사람인 이상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반대로 오심으로 이득을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에 그 점은 단 한 번도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달랐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태클을 당한 부위가 조금만 더 빗나갔다면, 마틴 로브렌의 태클이 더 거셌다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발목이 부러지거나 아킬레스건을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행동이 고작 옐로카드로 끝나면서 베이포트 FC 선수들 전체가 상대의 거친 태클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똑바로 그를 마주 보는 동민을 보면서 레이미 볼든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당신의 말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그 인터뷰로 인해서 당신이 몇 경기 동안 선수들을 지도할 수 없어지고, 그로 인해 이어진 경기에서 패배해 팀 분위기가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무엇이 팀에 더 손해일까요? 이번 시즌 좋은 성적을 장담했는데 그런 일로 팀이 무너진다면 악재밖에 되지 않아요.”

    레이미 볼든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에 하나 동민이 징계로 벤치에 앉아 선수들을 지휘할 수 없게 된다면 베이포트 FC로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동민이 경기 전에 상대를 분석해서 전술을 짠다고 해도, 상대가 지난 쾰른 07처럼 예상외의 전술로 나오거나 변화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

    게다가 선수들의 컨디션을 올리거나 특성을 바꾸는 일 또한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모두 끝낼 수밖에 없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동민의 능력이 강화되어 경기 중이 아닐 때에도 스테이터스를 보고 컨디션이나 특성에 손을 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더욱 참혹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베이포트 FC의 가장 큰 장점인 전술적인 유연성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동민도 레이미 볼든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징계를 각오하고 한 일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징계로 빠지면 그것이 베이포트 FC에게 더 큰 손실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빠지는 순간 베이포트 FC의 가장 큰 장점은 사라지고 ‘어떤 플레이든 보여줄 수 있는 팀’은 ‘어떤 플레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팀’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FA 측에서 징계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건가요?”

    동민은 입술을 깨물고는 작게 물었다. 당사자인 자신에게 아직 연락이나 접촉이 오지는 않았지만 발이 넓은 레이미 볼든은 뭔가 아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 없어요. 이번 일은 FA 측에서 무조건 바일리 주심을 편들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 과열된 경기로 선수들이 위험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잖아요. 그 때문에 FA 측에서도 이번 일로 쉽게 당신에게 징계를 주기는 힘든 것 같아요.”

    레미이 볼든의 말에 동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레이미 볼든은 안도하는 동민을 보면서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

    “다만, 이번 일이 커진 것은 사실이에요. 축구 관련 종사자들이나 팬들이라면 이번 일에 대해서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해대고 있으니까요. 지금껏 오심이나 심판의 자질 관련된 문제에서 권위로 대응하던 FA로서도 골치 아픈 문제가 되었다는 거죠.”

    실제로 동민의 분노에 찬 인터뷰를 계기로 지금껏 심판들의 오심에 관련된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과거에 오심을 직접 지적했다가 경고를 받거나 징계를 받았던 감독들도 다시 입을 열었고, 축구팬들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명성을 이어가던 FA는 다시 한번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번 일로 직접 당신을 처벌한다면 불에 기름을 붓는 일밖에 되지 않아서 건드리지는 않겠지만, 당신이나 우리 팀은 FA에게 미운 털이 박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당장 다른 구실만 생기면 당신이 징계를 당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될 거예요. 물론 그들은 이번 일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요.”

    레이미 볼든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FA는 자신들을 다시금 비난의 대상으로 만든 동민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동민이 조금이라도 징계거리를 만든다면 그들은 이번의 몫까지 전부 괘씸죄로 적용하여 처벌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동민이 아니라 베이포트 FC라는 구단도 마찬가지였다.

    “죄송합니다.”

    동민은 다시 한번 사과했다. 자신의 말에 구단 전체가 FA의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동민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괜찮아요. 당신은 베이포트 FC의 감독이고, 팀의 대표자니까요. 다만 앞으로는 조심해요. FA가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테니까요.”

    레이미 볼든의 말에 동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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