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신력의 싸움 (230/270)
  • 정신력의 싸움

    허망하게 선제골을 내준 후, 쾰른 07은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골 찬스는 누군가 골문 바깥으로 밀기라도 한 것처럼 종이 한 장 차이로 빗나가고, 상대는 행운이 따른 골이 터지자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수들의 마음속에서는 이토록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경기도 있냐며 한탄이 새어나왔다.

    쾰른 07은 그 전까지 밀어붙이던 것이 거짓말처럼 수세에 몰려 상대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고, 골키퍼로 나선 카르도스 보도르의 눈부신 선방이 아니었다면 최소 2골 이상 더 골을 내줬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가 베이포트 FC의 슈팅들을 선방해 내면서 쾰른 07은 더 이상 점수 차를 벌리지 않고 전반전을 마칠 수 있었다.

    “운이 따라주질 않는다는 건가.”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씁쓸한 얼굴로 씹어뱉듯 말했다. 전반전은 양 팀이 서로 격렬하게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분명 쾰른 07이 유리했다. 베이포트 FC가 쾰른 07의 예상치 못한 플레이에 당황하면서 우왕좌왕할 때, 그들은 익숙하진 않아도 분명 위력적인 공격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스코어는 쾰른 07에게 단 하나 부족했던 것이 바로 운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안 카민스키의 슈팅이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에딘 페트로비치의 슈팅이 수비수의 발에 굴절되지 않았다면, 지금 경기를 리드하고 있는 팀은 베이포트 FC가 아닌 쾰른 07이었을 것이다.

    ‘이미 지난 것을 아까워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오늘 경기 전반전은 유난히 더 아쉽네.’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웠다.

    아직 후반전 45분이 남아 있었고, 역전이 불가능한 점수 차이도 아니었다. 운이 따라주지 않은 전반전이었다고 해도, 베이포트 FC를 거세게 밀어붙이던 것을 생각하면 후반전에 충분히 따라잡고 역전까지 할 수 있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경기에 실망하게 되면 이 경기를 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지게 되면 16강 진출은 일말의 희망의 희망도 없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

    그는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며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경기의 양상은 전반전보다도 더욱 뜨거워졌다. 이미 한 골의 리드를 차지하고 있는 베이포트 FC는 수비에 중점을 두고 공격적으로 나올 쾰른 07에게 역습을 가할 준비를 했고, 쾰른 07은 전반전에 벌어진 차이를 따라잡기 위해 자신들의 장기인 속공으로 전술을 변경했다.

    그러나 그 속공의 중심인 에릭 바이어의 부재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빠르고 짧은 패스를 중요시하는 쾰른 07의 미드필더진 중에서도 그만큼 빠른 판단과 창의적인 패스를 하는 선수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격에 치중하는 현재 플레이 스타일상 수비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이를 커버해야 하는 쾰른 07의 센터백들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까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어!’

    쾰른 07의 센터백, 닉 케니는 자꾸만 머릿속에 달라붙는 아까의 기억을 잊으려 애썼다. 상대의 힘없는 슈팅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자신의 발끝을 스치는 감촉, 그것을 보면서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는 카르도스 보도르의 표정, 골문을 스치듯 들어가 작게 출렁이는 골 망까지.

    베이포트 FC의 첫 골에 본의 아니게 지대한 공헌을 한 기억은 마치 악몽처럼 그에게 달라붙었다.

    ‘동료들은 모두 불운한 결과라고 말하고 위로해 줬지만 그 골로 인해 우리가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점만큼은 변하지 않아.’

    닉 케니는 머리 뒤쪽을 계속해서 잡아끄는 듯한 그 기억을 억지로 잊으려 하면서 더욱 발을 재촉했다. 이미 허용한 골은 되돌릴 수 없다. 시간은 다시 전반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미 기록된 스코어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전반전도 최선을 다해서 뛰었던 그였지만 후반전은 그 이상으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다짐은 맹렬한 동기부여가 되어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그 결과 그는 수비진의 최후방에서 맹활약하며 상대의 역습을 막아내고 있었다. 긴 패스를 통해서 에딘 페트로비치의 머리를 노리는 상대 공격을 제공권 싸움에서 승리해 밀어내거나 수비의 뒤 공간을 노리는 패스들을 아슬아슬하게 끊어내는 등, 그야말로 전반전의 실수를 만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반전이 끝날 때까지 다른 녀석들이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막아내야 해. 아니, 가능하다면 내가 직접 내 실수를 만회하고 싶어.’

    닉 케니는 그렇게 바라며 수비에 온 힘을 기울였다.

    ‘경기가 불리한 건 아니지만 꺼림칙한데.’

    동민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후반전도 어느새 30분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양 팀은 어느 쪽도 상대의 골문을 가르지 못하고 있었다.

    쾰른 07은 자신들의 장기인 짧은 패스의 속공을 추구했지만 그 핵심이 되는 에릭 바이어의 공백과 타이트한 베이포트 FC의 수비에 고전하는 중이었다. 반대로 베이포트 FC는 수비에 집중하면서 밸런스가 무너진 쾰른 07의 수비 뒤를 노리려 했지만, 닉 케니의 헌신적인 수비와 미드필더들의 재빠른 수비 가담 때문에 추가골을 노릴 수 없었다.

    경기는 역습에 역습을 거듭하는 빠른 템포의 공략전이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의 체력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었다.

    ‘남은 15분, 아니, 추가시간까지 합치면 20분가량을 지금 이런 상태로 계속해서 뛰게 만들다가는 선수들의 체력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 특히 해리 맥스웰은 지난 쾰른 07과의 1차전 이후로 거의 쉬질 못했는데…그렇다고 다른 선수가 빈자리를 채우기는 쉽지 않고.’

    동민의 본래 계획은 상대의 맹공을 버텨내면서 추가골을 노리거나, 적어도 상대 공격이 한풀 꺾이는 순간 수비에 더욱 치중하는 전술로 바꿀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런 타이밍이 나오지 않았다.

    ‘쾰른 07 선수들은 체력이 마라톤 선수라도 되나. 후반전 30분 내내 거의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엎치락뒤치락 공수를 교대하고 있는데.’

    경기 템포가 늦어질 때를 노려서 완전히 걸어 잠글 생각이었지만 경기 템포는 늦어지기는커녕 경기가 끝날 때까지 빠르게 이어나갈 분위기였다. 일부러 베이포트 FC 측에서 공을 잡았을 때 템포를 늦추려 공을 돌리는 시도도 해보았지만, 거세게 달려드는 쾰른 07의 압박에 숨을 고르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정도면 아예 일부러 저쪽에서 체력과 정신력 싸움으로 붙자는 건데.”

    전반전에 자신들의 장기를 버리고 롱패스를 주로 하는 공격을 이용했던 미하엘 라인하르트 감독은 후반전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베이포트 FC를 시험하고 있었다.

    빠른 템포의 경기와 짧은 패스, 많은 활동량과 거센 압박을 내세우는 쾰른 07과 매 경기마다 서로 다른 전술들을 구사하는 데에 집중하는 베이포트 FC, 누가 더 체력에 자신이 있을지는 따져보지 않아도 명확했다. 쾰른 07은 스톡포트 시티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동민과 베이포트 FC의 한계를 노리는 중이었다.

    ‘미드필더진, 특히 해리 맥스웰이나 공격에서의 속도를 담당하는 야야 둠베흐의 체력이 슬슬 고갈될 거야. 그렇다고 지금 그 둘을 빼면서 수비적으로 나온다면 남은 20분가량은 샌드백 신세를 면치 못할 테고.’

    지금 경기가 공수를 두고 뜨겁게 맞부딪치는 이유는 쾰른 07의 공격에 베이포트 FC의 역습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베이포트 FC가 역습의 비중을 더욱 줄이고 수비에 집중한다면 경기 분위기는 일방적으로 쾰른 07쪽으로 흘러가고 만다. 그렇게 경기가 끝날 때까지 버티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동민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교체를 감행해서 더 이상 골을 노리지 않고 수비에 집중하다가 뒤늦은 동점 골이라도 얻어맞게 된다면 그걸 뒤집을 전력이 없어. 반대로 역습을 유지하려고 지금 이런 체력싸움을 계속한다면 미드필드 지역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나올지도 모르고…….’

    동민은 어느 것을 택해도 달갑지 않은 이지선다에 한숨을 내쉬었다. 역습의 포기도, 체력이 떨어진 선수들의 실수를 감수하는 일도 불안한 방법들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지체되기 전에 그는 선택을 해야만 했고, 결국 동민의 선택은 수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해리 맥스웰이나 야야 둠베흐의 체력 부담을 감안하면서 경기 스타일을 유지하느니 수비에 집중하는 편이 더 실용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대신 걸어 잠근다면 확실하게 해야 해. 만에 하나 동점 골이라도 허용하면 경기가 완전히 틀어질지 몰라.’

    동민은 AC 로마전에서 보았던 그들의 수비를 기억했다. 파고 들어갈 공간하나 없는 빽빽한 밀집 수비는 공격 의욕을 꺾기에 충분했고, 지금부터 20분간 베이포트 FC가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은 그런 철벽같은 수비였다.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베이포트 FC가 해리 맥스웰과 야야 둠베흐를 빼고 자크 피레스와 에두아르도 산체스를 투입하는 것을 보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드디어 마지막 스퍼트를 올릴 타이밍이 왔다!’

    베이포트 FC보다 비교적 체력 싸움에서 우위에 있던 쾰른 07이 체력의 한계까지 느낄 정도로 경기 템포를 올린 것엔 이유가 있었다.

    베이포트 FC가 수비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닉 케니가 좋은 수비로 역습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도 한계는 존재했고, 원활한 공격을 위해서는 그들을 몰아넣을 필요가 있었다.

    ‘남은 시간은 10분 내외, 이젠 선수들의 정신력 싸움이다. 16강 진출의 희망이 걸려 있는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부디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해서 경기를 뒤집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의 바람이 통한 것인지 추가시간 2분, 드리스너 아레나는 홈 팬들의 열광적인 함성으로 뒤덮였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 얻은 파울로 스테판 프리드너가 골 문 앞으로 프리킥을 올렸고, 닉 케니가 머리로 강하게 공을 받아 넣으며 첫 골의 악몽을 날려 버렸다. 오늘 경기에서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을 쾰른 07의 두 선수는 경기의 마지막의 마지막에 골을 합작하면서 경기에 결장한 에릭 바이어에게 16강 진출의 희망을 전달해 줄 수 있었다.

    1 대 1, 16강 진출이 가능한 2위 자리를 둔 싸움은 동민이 가장 바라지 않았던 형태로 계속 이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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