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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을 건 단두대 매치(1) (228/270)
  • 16강을 건 단두대 매치(1)

    ‘독일인가… 경기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니까 가슴이 더 뛰네.’

    한 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 끝에 쾰른 공항에 도착한 동민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와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은 쾰른 07과의 경기를 위해 독일에 온 것이다.

    “다들 빠르게 버스로 이동합시다. 벌써 외국 원정도 세 번째니까 들뜨는 일은 없을 거라 믿어요.”

    동민의 장난기 섞인 말에 선수들은 웃음을 지었다.

    시즌 초반, AC 로마와의 경기를 위해 로마로 날아갔을 때 많은 베이포트 FC 선수들이 외국 원정이라는 상황에 들떴던 일을 떠올린 것이다. 그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금 베이포트 FC는 그때와는 달랐다.

    AC 로마의 수많은 홈팬들에게 주눅 들어 자신들의 플레이를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적도 있었지만, FC 마드리드 원정에서 비록 3 대 0이라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쳤다. 챔피언스 리그라는 그들에게 생소한 큰 무대에서 얼어 있던 적도 있었지만 베이포트 FC는 빠르게 적응해 냈다. 뼈아픈 패배였던 지난 FC 마드리드와의 2연전도 그들에게는 경험이 되었다.

    ‘첫 원정 경기라는 무게에 눌려 공회전하던 때나 FC 마드리드라는 거대한 벽에 막힐 때와는 달라. 홈에서 이겼던 팀이고, 16강 진출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야.’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이렇게 쾰른 07의 전술에서 중요한 점은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빠른 속도와 압박, 좁은 간격을 이용한 패스플레이로 우리 수비를 무너뜨리려 할 겁니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파는 순간 그들은 빠른 원터치 패스들을 통해서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내겠죠.”

    동민은 내일 있을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선수들에게 경기에 나설 전술을 설명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홈경기인 이상 그들에게 익숙한 템포의 경기를 펼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겠죠. 지난 1차전에서는 우리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지만 내일은 까딱하면 경기가 뒤집어질지도 모릅니다.”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선수들에게 절대 방심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선수들 또한 AC 로마와 FC 마드리드전을 거치면서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의 원정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원정 경기를 치르는 것은 같은 프리미어리그 내에서 원정 경기를 떠나는 것과는 아주 달랐다. 단순히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축구 스타일과 홈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뿐만 아니라, 경기장 자체도 그들에게는 장해물이 될 수 있었다.

    각 팀들이 선호하는 경기 스타일마다 적합한 경기장의 크기는 조금씩 다르다. 선수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경기장을 좁게 사용하는 팀은 비교적 좁은 경기장을 선호하고, 선수들 사이의 간격을 넓게 유지하면서 긴 패스로 빠른 공격을 원하는 팀들은 큰 경기장을 선호한다. 이처럼 경기장의 크기는 선수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플레이 스타일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반대로 익숙하지 않은 경기장의 크기는 선수들에게 적응할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쾰른 07의 홈 경기장인 드리스너 아레나는 경기장 폭이나 길이가 다른 경기장에 비해 좁아. 지난 홈경기 때처럼 내려앉아서 측면을 이용하는 플레이는 힘들지도 몰라.’

    지난 1차전에서 베이포트 FC는 중원에서의 짧은 패스를 이용해서 공격을 진행하는 쾰른 07의 플레이 스타일을 의식해서 중원을 수비적으로 구성하고 측면을 발 빠른 윙어들에게 맡겼다. 그 결과 짧은 패스로 공을 빠르게 전진시키면서 수비를 허물던 쾰른 07의 플레이는 제동이 걸렸다.

    자신들이 공을 오래 소유하고 천천히 공격을 진행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쾰른 07의 선수들은 아래로 잔뜩 내려서 있는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평소의 빠르고 날카로운 패스를 선보일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한 채로, 베이포트 FC가 유도한 방향으로 끌려가면서 경기에 패배했다.

    ‘드리스너 아레나의 폭이 좁은 이상 지난번처럼 측면을 활용하려다가는 제약이 많아질 거야.’

    경기장이 좁아진다는 것은 측면에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준다는 의미다. 중앙에서 측면으로 긴 패스를 연결할 때에도 다른 경기장이라면 이어질 패스가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나가거나, 기껏 공을 잡아도 치고 나갈 공간이 부족해진다. 이는 결국 긴 패스와 측면 크로스로 공격을 진행하려는 팀에게는 크나큰 악재였다.

    지난번과 같은 전술을 택할 수 없는 베이포트 FC와 반대로 쾰른 07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중원에서의 빠른 패스를 위주로, 측면에서 안쪽으로 침투를 즐기는 쾰른 07에게는 오히려 좁은 경기장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결국 우리는 결코 상대가 원하는 대로 플레이하게 두어선 안 됩니다. 그게 우리가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거죠. 평소에도 상대의 강점을 누르고, 약점을 찔러야 했지만 오늘은 더더욱 그래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쾰른 07은 F1에 나서는 자동차와 같아요. 빠르게 움직이고, 그 속도로 상대를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니까요. 공이 선수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선수들이 움직이는 것도 빨라요. 그런 자동차를 교통체증에 빠뜨리는 게 우리가 할 일이죠.”

    동민이 말하는 것은 간단했다.

    쾰른 07이 가장 잘하는 빠른 공격 진행을 막아라, 그것이 그가 이번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었다. 상대가 공을 가지되, 그 공을 가지고 위험한 상황을 만들게 하지 못하면 쾰른 07은 스스로 무너질 거라며 상대의 속도를 주의시켰다.

    “빠르게 달리는 것이 장기인 자동차가 교통체증에 빠지면 혼자 헛돌다가 답답함에 무너지게 될 겁니다. 우리가 답답하게 만들수록 쾰른은 자멸하게 될 겁니다. 그들의 경기 템포를 늦추는 게 우선입니다. 골을 노리는 것은 그 다음이죠.”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에는 벌써부터 자신들의 경기 템포를 놓치고 무너져 내리는 쾰른 07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제가 아는 강동민 감독이라면 아마 이런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수연은 미하엘 라인하르트 감독에게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신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야기는 끝났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저, 감독님. 그런데 제 이야기가 정말 큰 도움이 될까요? 이번 경기에서 팀으로서 베이포트 FC가 추구하는 것보다는 강동민 감독의 스타일이라면 이렇게 할 것 같다, 에 더 가까운데요.”

    수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미하엘 라인하르트 감독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도움이 충분히 될 거예요. 지난 경기에서 느낀 점은 베이포트 FC는 상대를 분석하고 전술적인 카운터를 준비하는 팀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패배하고 나서 베이포트 FC를 상대했던 팀들을 확인했을 때 느낀 점이 있었어요.”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마치 상대의 패를 뻔히 보면서 게임을 하는 듯한 그들에게 효과적인 노림수는 몇 개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 FC 마드리드처럼 아예 압도적인 개인 능력과 팀의 강력함으로 짓누르기. 이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FC 마드리드 정도의 팀이 아니라면 아예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접었다.

    “둘, 베이포트 FC를 상대하는 많은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그렇듯 자신들의 전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기. 이렇게 하기엔 수연 코치도 알다시피 지금 우리의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어요.”

    그의 말에 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어제 있던 훈련에서 발목의 통증을 느낀 주장 에릭 바이어의 상태 때문이다. 내일 있을 경기에 불참할 것이 확정나지는 않았지만, 경기 출전 자체가 불투명한 것은 확실했다.

    “셋, 상대의 변화를 그대로 맞받아치면서 그들이 경기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저번에 베이포트 FC와 맞붙었던 스톡포트 시티처럼 말입니다.”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10월 말에 있던 베이포트 FC와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를 말하고 있었다. FC 마드리드의 홈에서 충격 패를 당했던 베이포트 FC와 팀의 주축인 레오나르도 다 실바가 개인 사정으로 결장했던 스톡포트 시티의 경기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스톡포트 시티의 승리로 끝났다. FC 마드리드 원정에서 대패를 당했던 이후, 챔피언스 리그에 더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인 베이포트 FC였던 만큼 꽤 예상대로의 결과이긴 했지만 그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 경기에서 스톡포트 시티는 단 10분도 베이포트 FC가 먼저 전술적인 우위를 가져가도록 그냥 두지 않았어요. 오히려 먼저 공격적으로 파고들면서 베이포트 FC가 따라와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죠.”

    다비드 페레즈는 팀의 핵심 중 한 명인 레오나르도 다 실바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풀백 출신인 가엘 패트리를 중원 자원으로 기용하며 매섭게 베이포트 FC를 몰아세웠다. 전술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베이포트 FC는 스톡포트 시티에게 끌려가기 시작했고, 결국 패배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우리가 스톡포트 시티와 같은 팀은 아니지만, 에릭 바이어의 급작스러운 부상으로 곤란해진 우리가 걸어볼 수 있는 도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먼저 상대 감독인 강동민이 어떤 식으로 경기에 나설지 예측해야 하고요.”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스톡포트 시티의 다비드 페레즈처럼 동민을 상대로 수 싸움에서 이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에릭 바이어가 완전한 상태라면 쾰른 07 특유의 플레이로 승부를 볼 수 있겠지만,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그의 출전이 불투명한 이상 도박수를 던져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 경기에서 미하엘 라인하르트가 가장 굴욕스럽게 생각한 것은 2 대 0이라는 점수 차도, 베이포트 FC라는 챔피언스 리그에선 상대적으로 약체라 여겨지는 팀에 패배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준비가 부족했으며, 그 경기에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번 경기를 위해서라면 다른 팀을 모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난번과 같이 허무하게 지진 않겠다. 에릭 바이어가 부상으로 이탈하든,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나오든 홈 팬들 앞에서는 당당하게 승리를 차지하겠어.’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이를 악물며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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