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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패배의 그늘을 벗어나는 방법(2) (227/270)
  • 그들이 패배의 그늘을 벗어나는 방법(2)

    하트풀 FC의 측면 수비수로 출전한 엘리엇 레오나드는 경기장에 서서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감독이 이야기했던 것을 확실하게 기억했다.

    -상대는 며칠 전 홈에서 역전패를 당했던 팀이다. 우리에게 대량 득점을 통해서 지난 경기의 패배로 인해 떨어진 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려 들지, 혹은 반대로 완전히 의기소침해 있을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지난 경기의 영향이 있을 건 분명해.

    감독의 말처럼, 그 또한 지난 경기에서 FC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후반전에만 세 골을 허용하며 무너져 내렸던 베이포트 FC가 정상적인 상태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상대를 괴롭히는 최적의 전술을 들고 나와 냉정하게 게임을 자신들의 페이스로 끌고 가는 베이포트 FC지만, 이번 경기에선 분명 상대가 평소와 같은 냉정함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다.

    ‘고작 4일 전에 역전패를 당하면서 챔피언스 리그에서만 따지면 2연패를 기록한 상태야. 크든 작든 영향이 없을 리가 없어.’

    그의 눈은 오늘 그와 가장 많이 맞붙을 거라고 예상되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향했다. FC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베이포트 FC의 유일한 골을 기록했지만, 후반전에는 침묵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공을 잡지조차 못한 그도 지난 경기의 영향이 남아 있을 거라 예상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아마 지난 경기의 부담감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을 테니까, 그 점만 확실하게 파고들면 되겠지. 그런 모습이 덜 보인다고 해도 경기 중에 부딪치면서 몇 번 살살 긁어주면 분명히 반응이 있을 테고.’

    앨리엇 레오나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경기는 앨리엇 레오나드와 하트풀 FC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베이포트 FC 원정 팬들의 노랫소리는 지금 경기를 주도하는 것이 어느 팀인지 똑똑히 알려주고 있었다.

    ‘뭐야, 지난 경기에서 대패했던 팀이 맞아?’

    하트풀 FC의 감독인 포스코 데 루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라운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기 전 분명히 FC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역전패한 후유증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그였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전반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FC 마드리드와의 경기는 타 팀인 내 입장에서 봐도 선수들의 정신이 무너지는 것이 보이는 경기였어. 자신들의 특별한 실수도 없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기를 펼치고 있는데도 순식간에 경기는 뒤집혔고 마지막에는 쐐기 골까지 얻어맞았다. 분명 선수단 전체의 사기에 영향이 갈 만한 경기였어. 그런데…….’

    베이포트 FC는 지난 FC 마드리드와의 경기 후유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경기력을 뽐내고 있었다.

    대량 득점을 노리고 조급하게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반대로 지난 경기에서 역습을 노리다가 카운터 공격을 얻어맞았던 탓에 과도하게 소극적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들은 아직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냉정한 눈으로 경기 템포를 조절하면서 하트풀 FC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는 다름 아닌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였다.

    모리스톤 타운 AFC에 있던 시절 잦은 부상이 단점으로 지적되던 그였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그에게서 또 한 가지 단점을 지적했다. 대패를 당하거나 경기 중에도 자신의 실수가 나오면 그것을 신경 쓰는지 자신의 플레이를 잃고 헛도는 경우가 가끔씩 있었다. 알베르토 브루노라는 경험 많은 노감독이 그 부분을 빠르고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부상과는 다르게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그 점을 지적했다.

    그 때문에 하트풀 FC나 앨리엇 레오나드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지난 경기의 패배 탓에 정상적인 컨디션을 보여주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젠장할, 저 녀석 완전히 생각한 거랑 다르잖아.’

    앨리엇 레오나드는 또다시 그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고 들어가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보면서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분명 지난 경기에서의 패배로 인해 영향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평소와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측면에서 공을 잡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안쪽으로 파고 들어오는 드리블은 물론이고,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선 에딘 페트로비치나 박주현에게 이어지는 패스 또한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와 충돌하면서 심리적인 부분을 자극해 냉정을 잃게 하려던 앨리엇 레오나드의 계획도, 냉정하게 그를 무시하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태도에 아무런 소득 없이 붕 뜨고 있었다.

    ‘망할!’

    앨리엇 레오나드는 이를 악물고 공을 끌고 들어가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향해 뒤쪽에서 몸을 날렸지만, 그의 의사와는 달리 태클은 이미 공이 빠져버린 상대의 발목을 걸고 말았다.

    계속된 상대의 돌파를 막으려다가 머리에 피가 올라 저지르고 만 실수였다. 태클을 당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페널티 박스 바로 앞에서 크게 굴렀다.

    곧바로 울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에 앨리엇 레오나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공이 빠져 버린 순간 들어간 늦은 타이밍, 상대의 뒤에서부터 몸을 날린 방향, 공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상대의 발목을 아래쪽에서부터 걷어차듯 들어간 태클, 모두 그냥 넘어갈 만한 수위의 반칙이 아니었다. 자신이 한 태클이지만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그가 카드를 직감하고 달려온 심판을 보자, 심판은 그가 생각한 대로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카드를 꺼냈다.

    ‘제발 옐로카드로 끝나야 하는데…….’

    앨리엇 레오나드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카드의 색은 애석하게도 붉은색이었다. 그것을 보고 하트풀 FC의 다른 선수들이 심판을 둘러싸고 강하게 항의하고, 앨리엇 레오나드 본인도 항의의 뜻으로 두 팔을 벌려보았지만 심판의 결정은 단호했다. 그의 태클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앨리엇 레오나드는 고개를 떨군 채로 그라운드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스스로 직접 만들어낸 프리킥을 차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가 찬 프리킥은 예술처럼 휘어져서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동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선수들에게 휴식도 부여하며 FC 마드리드에게 당한 대패의 후유증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지난 경기를 신경 쓰지 말라 몇 번을 말하기는 했지만 혹시나 영향이 남은 선수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은 동민의 그런 걱정을 말끔하게 치워 버리며 하트풀 FC를 상대로 4 대 0의 완승을 거두었다.

    전반 32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나온 하트풀 FC의 퇴장으로 경기는 너무나도 쉽게 베이포트 FC 측으로 넘어갔고, 곧바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자신이 만든 프리킥에서 선제골을 만들어내며 하트풀 FC의 홈 경기장인 위틀리 힐스 스타디움을 침묵에 빠뜨렸다.

    이후 경기는 1명이 더 많은 베이포트 FC가 수적 우세를 업은 채 일방적으로 하트풀 FC를 두들겼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세 골을 더 폭격하는 결과를 낳았다.

    ‘만에 하나 이번 경기에서도 비기거나 져서 FC 마드리드 경기에서의 패배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다음 챔피언스 리그 경기인 쾰른 07과의 경기까지 차질이 생길 뻔했어. 이걸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기대한 것 이상의 결과에 동민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지난 FC 마드리드 2연전의 패배로 베이포트 FC가 잃은 것은 많았다. AC 로마와 쾰른 07과의 경기에서 이겨 얻었던 2위 자리도 2연패로 인해 유지하기 쉽지 않아졌고, 이로 인해 베이포트 FC의 16강 진출도 불투명해졌다. 각각 1승씩을 나눠 가진 쾰른 07과 AC 로마 중 단 한 팀에게라도 지게 되면 곧바로 2위 자리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조 순위가 밀리는 것을 떠나 남은 두 경기의 부담감이 늘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승리로, 쾰른 07과의 경기를 앞두고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은 동민의 입장에선 다행이었다.

    ‘이제 다시 집중할 경기는 독일에서 펼쳐지는 쾰른 07과의 원정 경기다. 반드시 이겨야만 16강 진출의 희망을 이어나갈 수 있어. 다음 경기에서 지고, 행여나 같은 시간에 AC 로마가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FC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라도 하면 정말로 16강 진출이 힘겨워져.’

    동민의 눈은 이제 독일로 향했다.

    “결국 이겼구나…….”

    수연은 복잡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베이포트 FC가 하트풀 FC를 상대로 4 대 0의 대승을 거두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동민이 이끄는 팀이라는 점에서는 그들이 FC 마드리드에게 연패를 당했던 분위기를 반전하고 경기에서 이기기를 바랐다. 그러나 FC 마드리드가 조 1위 자리를 확정 지은 상황에서 하나 남은 16강 진출 자리를 두고 다퉈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들이 고전하면서 얼마 뒤에 있을 쾰른 07과의 경기까지 흔들리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복잡한 그녀의 심경과는 무관하게 베이포트 FC는 한 명이 퇴장당한 하트풀 FC에게 무자비한 골 폭격을 가하며 4 대 0으로 대승을 거두고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렇게 되면 우리 홈에서 있을 베이포트 FC와의 경기가 더 힘들어지려나.’

    브리큰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지난 맞대결에서 압도당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던 베이포트 FC다. 이번에는 쾰른 07의 홈에서 경기를 한다고 해도 쉬운 경기가 될 리 없었고, 승리를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상대가 흔들리는 편이 더 유리했다. 스포츠맨십을 따지자면 양 팀 다 최상의 상태에서 붙는 편이 좋겠지만, 지게 된다면 16강 진출이 불가능한 쾰른 07의 입장에서는 단두대 매치나 다름없는 경기에서 그런 것을 따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연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이겨야만 하는 경기인걸. 상대가 한풀 꺾였을 때 이겨봐야 김이 빠질 뿐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전의를 다졌다.

    지난 브리큰돈 스타디움에서의 1차전에서 2차전은 반드시 이길 거라며 동민에게 선전포고를 하듯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것을 생각해서라도 베이포트 FC와의 이번 맞대결은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해야겠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승리를 향한 열망이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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