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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그 이후 (225/270)
  • 패배, 그 이후

    동민은 정확히 어떻게 숙소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상대 감독과 악수를 하고, 선수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경기 후의 기자회견까지 마쳤지만 그의 정신은 마치 전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처럼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같은 상대에게 두 번, 그것도 경기당 세 골이나 내주면서 패배한 것은 그가 감독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어느새 숙소에 돌아와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정말 이길 수 없는 팀이란 건가.’

    동민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상대가 경기를 뒤집었던 후반전, 베이포트 FC 측에서 크게 두드러지는 실수는 없었다. 전반전에 얻은 선제골에도 방심하지 않고 더욱 선수들이 집중하도록 했고, 이미 얻은 선제골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전반전 이상으로 수비라인을 정비하는 동시에 역습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을 빠지지 않고 점검했다.

    그러나 결국 FC 마드리드의 역전승을 막을 수는 없었다.

    FC 마드리드의 첫 번째 골은 말 그대로 다니엘 루이즈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골이었다. 베이포트 FC의 우측면에서 공을 잡은 그는 그를 막으려는 크리스 러셀과 잭 하워드의 수비를 뚫고 오른발로 공을 감아 찼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은 마법처럼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FC 마드리드의 동점 골을 만들어냈다. 지금껏 골문을 사수하던 토마스 스톤스조차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슈팅이었다.

    동점 골 이후 베이포트 FC는 심리적으로 아주 조금밖에 흔들리지 않았지만 FC 마드리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측면에서 올라온 다니엘 루이즈의 크로스를 프랑크 리차드가 환상적인 볼 컨트롤로 꺾어놓으며 역전 골을 만들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기 직전 공격적으로 올라와 있던 베이포트 FC의 수비 라인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패스 한 번으로 쐐기 골까지 만들어내면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어디가 잘못되었던 거지…….”

    선제골을 넣은 이후 수비에 더 집중하면서도 역습을 포기하지 않은 것, 동점 골과 역전 골 이후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적으로 올라가는 수를 던진 것, 모두 그 상황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들이었다. 그러나 패배했다. 컨디션 강화, 상대에 대한 맞춤 전술, 선수들의 특성 변화까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가며 맞섰지만 그는 또다시 FC 마드리드의 벽 앞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이번만큼은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역으로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 어디가 문제였는지 알 수 있다면 고치겠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할 수도 없어.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다시 경기를 한다고 해도 이길 거란 생각은… 들지 않네.”

    동민은 힘없이 침대에 드러누웠다.

    사실은 그도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저 그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그의 팀이, 베이포트 FC가 FC 마드리드라는 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간단한 사실뿐이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동민이지만 결국 마음속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베이포트 FC가 이길 수 있는 팀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하아, 진짜 힘 빠지는구나.”

    침대에 무너지듯 누운 상태로 동민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껏 자신이 목표로 했던 것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그런 기분에 잠겨 멍하니 누워 있자 머리맡에 던져둔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울적한 기분에 받지 않으려던 동민이었지만 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에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동민은 액정에 떠 있는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고 누운 그대로 전화를 받았다. 누구에게서 왔는지, 상대가 어째서 전화를 걸었는지 생각하는 것조차 피곤했다.

    -강, 괜찮아요?

    “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샐리였다. 그녀는 전화가 끊어지길 기다리던 동민에게 탓하는 말 대신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앞뒤가 없이 토막 난 말에 동민은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경기가 끝나고부터 멍하게 있어서 걱정되어서요. 끝나고 나서 말을 걸어도 제대로 듣는 것 같지도 않았고요.

    동민은 그녀의 말에 흐릿한 기억을 더듬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을 마치고 숙소로 나올 때쯤 누군가가 몇 번이나 계속해서 말을 걸었고, 지친 자신은 대충 대꾸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듯했다.

    “아, 미안해요. 경기가 끝나고 정신이 없어서요. 솔직히 알다시피 그리 기분 좋은 결과도 아니었잖아요. 걱정해 준 건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이미 끝난 게임이고, 이젠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할 테니까요. 지금도 집에 와서 곧바로 다음 경기를 준비할 생각이에요.”

    동민은 그렇게 답하고는 얼른 전화를 끊으려 했다. 지금 이렇게 통화를 하는 것조차도 피곤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당장 다음 경기를 준비할 의욕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렇게 이야기해서라도 어서 이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자신이 힘들다고, 그가 지금껏 생각하던 절대 이길 수 없는 팀은 없다는 대전제가 무너졌다고 해서 팀에 소속된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는 없었다. 그것이 감독이 가져야만 하는 태도이며, 그가 감독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껏 배워온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다. 샐리 또한 선수나 코치진이 아니더라도, 그가 이끄는 베이포트 FC의 일원인 만큼 그녀 앞에서 약한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동민의 말에 수화기 건너편의 샐리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듯 말을 시작하려다 마는 듯한 태도만 느껴졌다.

    “어쨌든 난 괜찮아요. 그러니 굳이 신경 쓰지 말아요. 당장 또 다음 경기 준비에 바쁠 것 같으니까요.”

    동민은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러나 그가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수화기 건너편에서 샐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평소에는 듣기 힘든 그녀의 고함에 동민은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샐리는 둑이 터진 것처럼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아 정말,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나한테까지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게 무슨…….”

    동민의 말에 샐리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강, 당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알아요. 당신이 흔들리는 게 보이면 팀 전체가 같이 약해지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숨기려고 하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동민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그것이 잘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어렴풋이나마 보이고 있었다. 그와 오랫동안 보아왔던 주현이 그랬고, 다른 이들의 심리 파악에 능한 앨런 휴즈가 그랬으며, 멍한 듯 날카로운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가 그랬다. 하지만 샐리에게조차 그렇게 보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동민은 그 사실에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 경기의 패배에 대한 탈력감과 지금까지 그의 방식에 대한 회의감에 또 한 가지의 짐이 내려앉는 듯했다.

    그러나 샐리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선수도 아니고, 코치도 아니에요. 적어도 나한테만큼은 솔직하게 말해주면 안 될까요? 그렇게 담고만 있으면 더 힘들어질 뿐이니까 차라리 좀 쉰다고 생각하고 나한테 말하면 되잖아요. 팀에 해가 될까 봐 그러는 거라면 나한테 이야기할 순 없는 거예요?

    샐리의 이어지는 말을 동민은 조용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당신 힘들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한테 알릴 것 같아요? 아니면 그런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는,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한 건 나뿐이에요? 그것도 아니면… 나는 그렇게 못 미더운가요?

    샐리의 마지막 말은 소리를 지르던 처음과는 다르게 속삭이듯 잦아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길고 긴 침묵이 자리했다.

    샐리는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까 멍하니 있던 태도나 표정을 보면 이번 패배로 복잡한 심경일 텐데 조금 더 정확한 말을 골랐어야 했어.’

    경기가 끝나고 충격이 커 보이는 동민을 위해 한 말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말한다면 아무리 좋은 의미로 말을 했어도 전해질 리가 없었다. 조금 더 신중하게, 더 적당한 말을 골랐어야 했다며 그녀는 조금 전 자신의 행동에 머리를 붙잡고 싶었다.

    ‘어쩌면 이걸로 그와의 사이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자 방금 한 자신의 말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녀와 동민의 사이는 샐리가 레이미 볼든 구단주의 조카라는 사실을 숨겼던 때 이후로 계속 친밀했다. 그녀가 그 사실을 숨겼다는 사실을 들킨 이후 한차례 어색한 사이가 되긴 했었지만 그조차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풀렸다. 그랬던 그와의 관계가 방금 그녀의 말로 인해 다시 벌어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싫었다.

    팀이 좋지 않은 상황이거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숨기려 하는 동민의 태도가 안타까워서 한 말이지만, 결국 그런 자신의 행동이 지난날 그녀에게 왜 말하지 않았냐고 하던 동민과 같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고 사과하려 했다.

    “…미안해요. 내가 말을…….”

    -…고마워요.

    그러나 그녀의 말을 막은 것은 동민이었다.

    -내가 팀에 해가 될까 봐 그런 것을 더 숨긴다고 말한다면, 그건 맞아요.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감독인 이상 그렇게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게 제대로 숨겨지지 않고, 다른 이들 눈에 걱정스럽게 비쳐진다면 그건 실패한 거죠. 당신이 말한 것처럼 답답하게 싸매고 있는 것보다는 좀 풀어두는 편이 나을 테고요.

    동민은 평탄하게, 그러나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만이라도 털어놓아 달라는 말을 하려던 찰나 동민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지금 고집이 헛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샐리, 당신 말처럼 선수도, 코치도 아닌 당신한테라도 털어놓으면서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익숙해지면 지금보다 더 티가 날지도 모르는걸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할수록 자꾸만 주위에서 알아채고 마는 것에는 이제 반쯤 포기한 듯한 인상이었다. 샐리는 그렇다면 동민만 계속 힘든 것이 아니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왔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어쨌든 고마워요. 걱정해 준 거니까. 그리고 당신 말대로 좀 휴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선수들 보기 전에 하루 정도는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건…….”

    -혹시 내일 한가해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동민의 말에 그녀는 잠시 말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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