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난 경기의 복수를 위해 (224/270)
  • 지난 경기의 복수를 위해

    경기에 나선 베이포트 FC는 지난 경기에서 얻은 교훈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능한 한 일대일의 구도를 피할 것’

    그것이 동민이 이번 경기의 제1원칙으로 앞세운 것이었다. 공격 상황에서 혼자 돌파를 시도하면 공을 뺏길 위험성만 커지고, 수비 상황에서 혼자 FC 마드리드 선수를 막으려 했다가는 손쉽게 뚫리고 공간을 내주기 십상이었다.

    특히 측면에서 그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베이포트 FC의 입장에서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최대한 위쪽에서 시작하는 역습을 위해 라인을 올리고 선수들 간의 간격을 좁혀놓은 상황에서 그런 상황이 나왔다가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난 경기에서 허용했던 세 골도 대부분 그런 상황에서 시작되고 말았다.

    ‘공격에 나서는 선수는 최전방의 세 선수에 한하며, 다른 선수들은 수비 공간을 지키는 것에 집중하라.’

    그것이 두 번째 원칙이었다. 이전 경기에서는 최대한 앞쪽에서 FC 마드리드 공격의 시작점을 방해하고 역습으로 나아가려 했던 베이포트 FC지만, 철저하게 무너졌던 결과를 아는 이상 다시 한번 그 상황을 반복할 순 없었다.

    그 두 가지 원칙을 기본으로 이번 경기에서의 베이포트 FC는 철저하게 역습에 치중하고 있었다.

    ‘지금 내줄 수 있는 곳은…….’

    골키퍼로부터 패스를 받은 해리 맥스웰은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패스를 줄 곳을 찾았다. 공을 가지고 있는 이상 상대의 압박을 주의해야 했지만, 그의 시야는 오직 전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평소의 위치보다 훨씬 더 아래쪽으로 내려선 만큼 다른 선수들이 그가 패스를 줄 곳을 찾고 내줄 때까지 그를 지킬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야 쪽인가.’

    해리 맥스웰은 사이드라인을 따라서 질주하기 시작하는 야야 둠베흐를 보고 그 앞쪽으로 길게 패스를 찔러 넣었다.

    ‘또 이쪽인가!’

    FC 마드리드의 풀백인 다니 카르발류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아드는 패스를 머리로 걷어냈다. 상대는 지난 경기에서 앞쪽으로 나와 방어하려다 실패한 경험 탓인지 이번에는 뒤쪽에 눌러앉아 롱패스만 날리고 있었다.

    물론 거기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상대가 눌러앉는다고 해도 뚫어내지 못할 FC 마드리드가 아니며, 이런 롱패스에 뒤 공간을 내줄 그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롱패스 때문에 자신이 공격 가담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예 대놓고 나가지 말라고 발을 붙잡는구먼.”

    다니 카르발류는 상대의 드로잉이라는 부심의 손짓을 보면서 씹어 내뱉듯 말했다. 지난 경기에서도 풀백들의 공격 가담을 막으려다 실패했던 베이포트 FC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그가 있는 우측만큼은 확실하게 봉쇄당하고 있었다.

    ‘필이 좌측에 가담해야 하는 상황을 억지로 만든 이상 내가 막을 수밖에 없지만, 역시 별거 아니라도 이렇게 발목이 붙잡혀 있는 느낌은 짜증 나네.’

    반대편인 좌측에는 베이포트 FC에서 가장 개인기가 좋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언제든 공을 잡고 안쪽으로 파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앙공격수로 나선 박주현도 계속해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자리를 바꾸며 수비가 분산되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수비 형 미드필더인 필 콜슨은 좌측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사이드라인을 따라 달리는 우측의 야야 둠베흐에게 시선을 빼앗겨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나 박주현을 프리로 두는 것보다는, 속도로 승부하는 야야 둠베흐를 다니 카르발류가 막고 필 콜슨이 좌측에 주로 머무르면서 그들을 붙잡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처럼 다니 카르발류가 야야 둠베흐에게 이어지는 패스에 발이 묶여 공격 가담을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풀백이면서도 오버래핑을 통해 올리는 양질의 크로스나 갑작스러운 중거리 슈팅으로 더 두각을 드러내는 그로서는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안 올라간다고 공격이 아예 안 되거나 하는 게 아닌 이상 무리해서 올라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확실히 답답하긴 답답하네.’

    FC 마드리드의 공격이 다니 카르발류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올해의 선수상 수상이 유력한 다니엘 루이즈와 지난 시즌 36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프랑크 리차드가 속해 있는 공격진은 다니 카르발류의 오버래핑이 없다고 베이포트 FC의 수비를 뚫어내지 못할 선수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공격을 맡기고 다니 카르발류가 수비에 집중한다고 해서 공격이 무너질 일은 없었다.

    ‘공격 가담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 괜히 저 녀석을 프리로 놔두었다가 예상외의 일격을 얻어맞느니 답답하더라도 내가 마크하는 편이 안전하니까.’

    자신이 바라던, 그리고 하려했던 플레이를 하지 못해도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된다면 상관이 없었다. 그것이 다니 카르발류가 프로로서 가지는 생각이었고, 스타플레이어들이 모인 FC 마드리드가 단순히 선수들의 개인 능력 합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이유였다. 각 포지션 별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그들은 투철한 프로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책임이 막중한 약팀의 에이스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빛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단은 저 녀석을 막는 것에 집중해야겠어.’

    다니 카르발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상대의 드로잉으로 경기가 재개되는 것에 집중했다.

    ‘아직까지는 순조로워.’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또다시 야야 둠베흐에게 이어지는 공을 태클로 끊어내는 다니 카르발류를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전반전이 시작된 지 어느새 반 이상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가 공은 잡은 횟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하지만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그 상황에 전혀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며 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나나 주현이 공을 잡는 횟수는 상관없어. 어떤 상황에서 공을 잡느냐가 문제지.’

    계속해서 서로 스위칭을 해가면서 최전방과 우측면을 오가는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공을 잡는 위치와 상황이었다. 지난 경기처럼 공을 잡는 족족 상대에게 막히거나 공격을 이어갈 타이밍을 놓친다면 몇 번을 공을 잡든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상대에게 역습의 기회만 내줄 뿐이었다.

    그에 반해서 오늘 공을 잡은 때는 정말로 골로 이어질 수 있는 찬스들이 대부분이었다. 전반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 야야 둠베흐의 크로스를 머리에 맞춘 주현의 헤더는 골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고, 해리 맥스웰의 패스를 이어받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중거리 슈팅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저번처럼 수비가 흔들리는 상황도 아니고, 이런 상황 중 단 한 번이라도 성공시킨다면 가능성은 있어.’

    해리 맥스웰의 롱패스나 야야 둠베흐의 크로스에 의존하는 공격 형태이긴 했지만, 기회가 아예 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헌신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좌측면을 뛰어다니면서 다니 카르발류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야야 둠베흐와 수비에 치중하면서도 역습 때마다 정확한 패스를 공급해 주는 해리 맥스웰을 비롯한 선수들의 노력 덕에 자주는 아니어도 위협적인 기회가 나오고는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수비를 우선시하는 전술 덕에 지난 1차전처럼 상대에게 대량 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질 가능성은 적었다.

    ‘이대로 단 한 번만 기회를 살리면 가능성은 있어.’

    실질적으로 베이포트 FC의 공격을 마무리 짓는 두 명의 공격수, 박주현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자신들이 단 한 골만 성공시킨다면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이 43분,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기회가 찾아왔다.

    해리 맥스웰에게서 이어진 롱패스를 필 콜슨이 걷어내려다 공을 흘렸고, 그 뒤에 있던 주현이 텅 빈 측면 공간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공격을 위해 두 명의 센터백과 필 콜슨, 우측 풀백인 다니 카르발류를 제외한 선수들은 하프라인 위로 올라가 공격에 가담하고 있던 FC 마드리드는 급작스러운 역습 상황에 반응이 늦었다.

    ‘지금이라면!’

    좌측 사이드라인 쪽에는 야야 둠베흐가 수비 라인을 따라 뛰고 있었고, 중앙에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파고들고 있었다. FC 마드리드의 두 센터백은 주현의 돌파에 제동을 걸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이어질 패스를 막을지 선택해야 했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한 명은 주현에게 달라붙어 시간을 벌고 한 명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마크하는 것이었다.

    상대 수비수가 달라붙는 것을 본 주현은 망설임 없이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공은 중앙에 있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물론 FC 마드리드 수비수들의 머리 위까지 넘어갔다.

    베이포트 FC의 홈팬들이 타이밍에 맞지 않는 너무 긴 크로스로 모처럼의 역습이 어이없게 끝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사이드라인으로 빠져나가는 듯하던 공은 아슬아슬하게 야야 둠베흐에게 연결되었다.

    야야 둠베흐는 다시 한번 중앙으로 낮고 빠르게 크로스를 올렸고, 조금 전 크로스가 빗나가면서 수비들의 압박이 느슨해졌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골!! FC 마드리드를 상대로 첫 골을 뽑아낸 선수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입니다!

    공이 골 망을 흔드는 순간, 브리큰돈 스타디움이 떠나갈 듯한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메웠다. 현재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찬사를 받는 FC 마드리드를 상대로, 지난 시즌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온, 그리고 팀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올라온 베이포트 FC가 선제 골을 넣은 것이다.

    브리큰돈 스타디움에 모인 베이포트 FC 팬들에게는 희망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길 수 있다. 지지난 시즌부터 그래왔듯이 아무리 강한 팀이라고 해도 우리가 뒤집고 승리할 수 있다.’

    그 생각은 빠르게 경기장에 퍼져 나갔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한 골 차이 패배, 혹은 무승부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승리를 향한 열망이 들불처럼 피어올랐다.

    베이포트 FC의 선제 골로 경기가 1 대 0이 된 채 주심의 휘슬로 하프타임을 맞자, 팬들의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하프타임이 되었지만 화장실이나 마실 것을 사러 가지 않고 자리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팬들도 있었고, 옆자리에 앉은 다른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세계 최고의 팀을 꺾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이 그들에게 가득 차 있었다.

    50분 뒤, 승리에 대한 희망과 노랫소리로 가득 차 있던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침통함과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전광판에 쓰여 있는 스코어는 3 대 1, 전반전이 끝나기 전 선제골을 넣었던 베이포트 FC는 후반전에만 세 골을 얻어맞으며 결국 역전패를 허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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