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완패 (222/270)
  • 완패

    상대 팀에게 스스로 엉망진창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완패당하는 것은 어떤 선수나 다 기분 좋을 리가 없다. 하물며 그 상대가 자신이 떠났던 팀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젠장!’

    올리비에 나스리는 자신이 과거에 전성기를 보냈던 FC 마드리드의 홈 경기장, 에스타디오 데 에스파냐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그에게 자신이 예전에 몸담았던 FC 마드리드에게 진다는 것은 마치 길을 걷다가 헤어진 애인이 더 좋은 남자의 팔을 껴안고 가는 것을 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FC 마드리드를 떠나면서 그들이 철저하게 무너지길 바랐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감독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기는 했지만 FC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이 즐거웠던 것은 바뀌지 않았다. FC 마드리드의 팬들 또한 그에게 집중적인 야유를 퍼부을 정도로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가 몸을 담고 있는 베이포트 FC가 지는 것은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이번 경기는 평소보다 훨씬 더 열심히 뛴 그였지만 완패로 흘러가는 경기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움직일지, 어디를 노릴지 알고 있어. 알고는 있는데…….’

    올리비에 나스리가 있을 때하고 몇몇 선수들의 구성은 달라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FC 마드리드 선수들은 그가 기억하는 대로였다. 같은 팀에 있으면서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모두 그가 기억하던 대로였다.

    동민이 FC 마드리드가 어떤 식으로 빌드 업을 하고 상대를 공략하는지 예측하고 전술을 짰고, 상대는 그 전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막을 수 없었다.

    상대 공격수가 좌측으로 한번 페이크를 주고 돌파를 시도하는 경우가 잦다는 사실을 알아도, FC 마드리드가 양 측면과 중앙의 스위칭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내 발이 닿질 않아.’

    올리비에 나스리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이를 갈았다.

    그 누구도 실수하지 않았고, 전술이 잘못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경기가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왜, 대체 왜 안 되는 거지. 어디 하나 잘못된 곳도 없는데…….’

    그는 잘못한 것 하나 없는 경기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다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어째서 이 결과가 나오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들과 FC 마드리드의 선수들 간의 차이가 이렇게 벌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단 한 골, 한 골이라도 좋으니까 만회골을 만들어내야만 해.”

    그를 포함한 다른 베이포트 FC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었지만 심판의 휘슬로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그들은 단 한 번도 FC 마드리드의 골문을 흔들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후, 베이포트 FC의 라커 룸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3 대 0. 그들은 완패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경기 결과에 충격에 빠져 있었다.

    동민이 팀을 맡은 이후, 경기에 패배한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스톡포트 시티를 상대로 했던 첫 맞대결에서 패배한 적도 있었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마르코 알베스를 상대로는 지금까지 3경기 동안 무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또한 그 밖의 팀들에게도 패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무덤과도 같은 침묵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히 패배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경기를 펼쳤음에도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선수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자신들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런 참패를 겪었다고 한다면, 그 탓으로 돌리면서 다음번의 경기에서는 그런 실수가 없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들이 결코 이길 수 없는 팀은 아니라며 마음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경기는 아니었다. 그들이 못한 경기라기보다는 그저 FC 마드리드의 경기력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자신들이 부담감에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면, 동민의 전술이 상대를 확실하게 휘어잡을 수 있다면, 그들이 그 전술을 제대로 따라준다면, 못 이길 팀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경기로 그 생각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동민이 아무리 상대를 핀 포인트로 노리는 전술을 짜고 선수들이 그 전술을 따라 움직인다고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누군가 그들을 본다면 상식적으로 전력 차를 뒤집을 수 없는 상대는 있을 수 있으며, 상대가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경기를 펼친다면 더욱 그렇다고 이야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껏 이길 수 없어 보이는 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온 만큼 베이포트 FC는 이를 잊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그들에게는 그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에 빠져 있는 침묵을 깬 것은 동민이었다.

    “…다들 고생했습니다. 지난 시즌 유럽 챔피언을 상대로 패배하긴 했지만 충분히 좋은 경기를 보여줬어요.”

    동민은 그 말로 선수들을 달랬다. 비록 그 한마디로 완패한 선수들의 마음을 모두 달랠 수는 없겠지만, 감독인 그가 이 상황을 그냥 둘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조금의 실수도 없이 경기를 치렀고, 그런데도 승리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감독인 내 책임입니다.”

    그리고 동민은 패배의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에게 돌렸다.

    이길 수 없는 팀의 존재를 선수들의 머릿속에서 지우고, 자신의 부족으로 끌어들였다. 그래야만 다음번에 있을 FC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선수들이 오늘처럼 주눅 들지 않고 달려들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 실망하기보다는 다음번에 우리 홈에서 있을 2차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주길 바랍니다. 이상.”

    동민은 그렇게 말하고 굳은 표정으로 라커 룸을 나섰다. 라커 룸을 나선 그의 발걸음은 기자회견장을 향했다.

    ‘오늘 패배로 언론에서의 호들갑이 좀 줄어드는 게 유일한 좋은 점인가.’

    E조 최약체로 꼽히던 베이포트 FC가 본선 시작 후 2연승을 달리면서 그들은 여러 언론들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4위라는 결과에 이어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동민의 마법이 발휘되는 거냐며 호들갑을 떨던 것이 이제는 줄어들 거라는 생각을 하자, 가슴속 무게가 그나마 줄어드는 듯했다.

    그리고 믹스 존에 들어서자마자 그에게 날아드는 질문들은 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늘 경기에서 3 대 0이라는 완패를 경험하셨는데 이후 선발 명단에 변화를 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뇨. 오늘 경기는 우리 선수들이 부족했거나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FC 마드리드가 아름다울 정도로 완벽한 축구를 한 결과니까요. 그런 축구를 보여준 그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동민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기의 패배를 선수들 탓으로 돌릴 탓은 없었다. 오늘 경기에 나선 선수들은 그가 FC 마드리드를 상대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이들뿐이며, 그들이 실수를 저지른 것 또한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동민에게 이죽대는 듯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오늘 경기에서 큰 차이로 패배하셨는데 이제 서서히 유럽 무대와의 전력 차이가 드러나는 것일까요? 또한 다음에 있을 2차전에서의 승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과 말투에서 동민은 기시감을 느꼈다.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있는 목소리와 말투에 동민은 목소리가 날아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몇 번 보았던 얼굴의 기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시즌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 전에 비꼬던 기자인가. 잘도 여기까지 따라왔네.’

    지난 시즌,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그를 무시하던 기자는 그때의 일로 완전히 동민과 베이포트 FC의 안티로 돌아선 듯 종종 이런 식의 꼬인 질문을 할 때가 있었다. 게다가 오늘 경기 결과는 베이포트 FC의 완패인 만큼 그가 신나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동민은 웃음을 제대로 참으려 하지도 않는 표정을 보면서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아뇨. 비록 오늘 경기가 완패로 끝났고, 세 골이나 실점했지만 우리 팀은 충분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상대는 지난 시즌 유럽 챔피언이었고, 여기는 그들의 홈 경기장이죠. 비록 지기는 했지만 우리 선수들의 경기에 만족합니다.”

    동민은 그렇게 대답하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질문을 했던 기자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을 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음 경기가 어떻게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경기에서 FC 마드리드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다음 경기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게 축구고, 그게 이 스포츠가 사랑받는 이유죠. 다음 경기에서도 우린 이기기 위해 싸울 겁니다. 그게 팬들을 위한 당연한 일이니까요. 오늘 경기에서 완패했다고 홈팬들 앞에서 비기기만을 바라는 소극적인 경기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동민은 이번 경기에서 완패했다고, FC 마드리드와 팀으로서의 격의 차이를 느꼈다고 한숨을 쉬고 포기하긴 싫었다. 아무리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상대라도 그저 손 놓고 승리를 바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은 그의 고집이며, 그가 감독이라는 꿈을 꾸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동민은 그 말을 끝으로 기자회견장에서 일어났다.

    “괜찮아요? 벌써 며칠째 밤새우고 있는 것 아닌가요?”

    “괜찮아요. 잠깐씩 자고 있으니까요. 이따가 팀 훈련에 참여할 정도의 체력은 충분하고요.”

    동민은 커피를 들이켜며 억지로 잠을 깼다.

    FC 마드리드와의 경기가 끝난 후, 그는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FC 마드리드의 경기들을 확인했다. 지난 경기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전술이 결코 오답은 아니었지만 그들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측면 수비가 더 전진하지 못하도록 양측 윙을 깊게 올리고 1대1 상황을 자주 만들어내는 것이 나쁜 전술은 아니었어. 하지만 분명히 박주현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두 사람으로는 상대 수비진에 위협이 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야. 내가 너무 상대와의 실력 차를 얕본 거지.’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더욱 그들의 경기를 분석하는 것에 몰두했다. 결코 이길 수 없는 팀은 없다는 것을 홈경기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더불어 그에게 말로 도발하던 기자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 졌던 상대에게 연속으로 진 적은 없다. 지난 패배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어.’

    그는 이를 갈면서 다음번에 있을 FC 마드리드와의 2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