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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예상과는 다른 결말 (219/270)

누군가에겐 예상과는 다른 결말

동민은 차분한 표정으로 선수들과의 대화를 끝내고 먼저 라커 룸을 나서 벤치로 향했다.

전 경기와는 다른 포메이션, 전 경기와는 다른 선수 명단, 전 경기와는 다른 전술.

모두 그와 베이포트 FC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설령 그 변화가 팀의 주축이라고 평가되는 선수들이 빠지는 것일지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이 익숙한 것은 그들일 뿐, 상대 팀은 달랐다.

“한 대 맞은 느낌이네요.”

통로를 걸어나가던 동민에게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예전에는 익숙했던, 그러나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얼굴 마주하는 건 한국 떠나고 처음 아니던가요?”

동민이 미소 지으며 악수를 건네자 수연 또한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아들였다. 몇 년 만에 보는 그녀의 모습은 그가 기억하던 것과 여전해 보이면서도 달랐다. 꽤 길었던 머리는 어깨에 닿지 않는 단발로 잘려 있었고, 트레이닝복만 입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녀의 외모는 충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는 뉴스 같은 곳에서 일방적으로 많이 보긴 했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수연은 환하게 웃었다. 그녀가 아직 팀에 속하지 않았을 때 뉴스와 잡지에서 그를 보면서 자신도 그에게 지지 않을 만큼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 선발 명단은 꽤나 의외로 잡으셨던데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나 박주현, 해리 맥스웰의 부상 소식은 못 들었으니까요. 아니면 설마 그 세 명을 빼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신 건 아니죠?”

그녀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렸다. 팀의 주축이 된다고 평가할 수 있는 해리 맥스웰, 박주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결장이 급작스러운 부상이 아닌 그의 결정이라면 상대의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선수들 없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이 경기 자체에 그만큼의 중요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그녀는 그렇게 물어온 것이다.

만에 하나, 동민의 선택이 그렇다면 그것은 그녀나, 그녀가 속한 팀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설마요. 전력을 일부러 낮춰놓은 상태로 쾰른을 상대할 만큼 자신감을 넘어 오만하진 않아요. 이 경기가 져도 괜찮을 만큼 가벼운 경기도 아니고요. 전 그저 그 경기에 가장 적합한 선수들로 명단을 짤 뿐이니까요.”

동민은 차분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동민은 그가 내놓은 선발 명단이 수연까지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는 사실에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수연 씨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쾰른의 감독을 포함한 코치진들도 당황한 게 틀림없으니 작전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네요.”

그렇게 말하며 짓궂은 표정을 짓는 동민을 보면서 수연은 새삼 자신의 눈앞에 있는 동민이 예전과 같은 청년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전술을 읽고 그에 따른 승리의 수를 내놓던 그는 이제 상대의 마음을 직접 자극하고 뒤흔들었다. 그는 단순히 승리를 위해 전략을 짜는 코치가 아닌, 팀을 이끌며 상대의 심리까지 노리려 하는 감독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여유 부리다가 경기가 시작되고 후회하게 될걸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돌려 먼저 통로를 빠져나갔다.

동민이 예상 밖의 선발을 내세우면서 쾰른 07이 대비해 두었던 것은 붕 뜨게 되었지만 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그녀와 그녀가 속한 팀은 이겨야만 했다. 1차전에서 FC 마드리드를 상대로 패배했던 쾰른 07은 상대적으로 가장 전력이 약한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일단 승리해야만 16강 진출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하면 AC 로마와의 연전이 더욱 버거워질 수밖에 없다.

‘동민 씨가 어떻게 바뀌었든, 베이포트 FC가 어떤 방식으로 나오든 이겨야 하는 것은 변함없어. 미하엘 감독과 우리 팀이 쉽게 밀릴 거라 생각하지도 않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 경기가 끝난 후, 꽤 오랜 인연을 상대로 웃으며 승리를 축하받길 바랐다.

‘이거 완전히 당했군.’

쾰른 07의 감독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곤란한 표정으로 경기를 보고 있었다. 쾰른 07의 평소 플레이 스타일은 지극히 분데스리가 팀 다웠다. 공을 오래 소유하면서 상대를 압도하기보다는, 빠르고 간결한 패스 워크로 상대의 수비의 틈을 찌르고 무너뜨리는 것을 선호했다.

그만큼 그들은 중원에서 볼을 소유하기보다는 빠르게 전진하는 것을 원했고, 측면을 통한 빠른 공격을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측면에서 창의적인 패스와 돌파가 나오는 베이포트 FC와는 궁합이 좋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아무리 경기에 따라 전술을 바꾸어 나오는 베이포트 FC라고 해도, 이번 시즌 그들을 보면 경기마다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측면에서 서로 다른 타입의 선수들을 이용한다는 것.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박주현, 야야 둠베흐 등 측면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많은 베이포트 FC지만 양 측면에 비슷한 움직임을 가지는 선수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우측에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나오면서 개인 능력과 드리블을 통해 안쪽으로 파고들어 온다면, 좌측에서는 야야 둠베흐가 직선적으로 움직이거나 박주현이 순간적인 중앙 침투로 골을 노리는 등 양 날개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 적은 없다.

두 번째, 어떤 경기에서든 중원에서 패스 플레이의 중심이 되는 선수가 필요하다. 해리 맥스웰, 아르센 디아라, 필립 포덴 등 패스를 뿌려줄 선수가 필요했고, 그중 첫 번째 선택은 대부분 해리 맥스웰이었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는 완전히 달라.’

베이포트 FC는 이번 시즌 들어서 꽤나 정석이 되어 있던, 안쪽으로 파고드는 윙어와 직선적으로 올라가는 윙어 조합 대신, 발이 빠른 야야 둠베흐와 킥력이 좋은 피터 아일랜드로 양 날개를 구성했다.

본격적으로 상대의 수비를 헤집고 다니거나 틈을 공략하기보다는 빠르게 크로스를 올리고, 제공권이 좋은 에딘 페트로비치와 뒤 공간을 노리는 로날드 조던을 이용해 기회를 만드는 것을 노린 것이다. 또한 중원을 이안 페트로프와 자크 피레스로 구성하면서 수비에 집중했다.

‘다시 말해, 공격은 철저하게 측면에 맡기고 중앙은 완벽하게 봉쇄하겠다는 심산인데.’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빠른 패스로 기회를 만드는 것이 특기인 쾰른 07로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측면에서 뚫고 들어오는 선수들을 예상하고 수비 라인간의 간격을 최대한 좁혀놓은 것 또한 반대로 발목을 잡았다.

본래 안쪽으로 파고드는 베이포트 FC의 측면 공격을 끊어내고 중원을 거쳐서 빠른 공격을 이어나가기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하는 수비 라인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달랐다. 오히려 아래쪽에 머무는 머릿수만 많아져 효율적이지 못한 공격을 초래했고, 그에 따라서 틀어막기에 비중을 둔 베이포트 FC의 중원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패스의 핵심이 되는 선수를 잡기 위해 중원에 좁게 포진시킨 미드필더들은 자꾸만 측면으로 빠지는 공 탓에 벌려질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들, 오히려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붕 떠버리고 있어.”

공을 잡자마자 빠르게 공격 루트를 찾고, 상대 수비의 틈을 노리는 것에 익숙한 쾰른 07의 선수들은 오히려 공을 오래 잡고 있을수록 특유의 타이밍과 속도감을 잃고 있었다.

‘한수연 코치한테 들었던 게 이런 뜻이었나.’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수연이 예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베이포트 FC의 감독인 동민을 일컬어 ‘그녀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선수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선수가 자신의 팀인지, 상대의 팀인지는 상관없이.

과거에 함께 일할 때 선수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선수에게 어떤 움직임이 어울리는지, 또 상대 선수라면 그리 오래 보지도 않고 어떤 역할을 맡은 것인지 알아챘다고 했다.

그만큼 선수를 보는 눈만큼은 초능력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평가를 듣고 당시의 그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이내 베이포트 FC의 경기들을 살펴보고, 그들이 AC 로마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자 그의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베이포트 FC는 경기 상대의 강점을 무너뜨리고, 약점을 파고들면서 철저하게 이기는 축구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팀으로서 공을 소유하고 지배한다거나,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을 노린다거나 하는 철학 대신 그 자리에는 승리를 향한 열의 뿐이었다.

‘그래서 상대의 핵심이라고 판단한 양 측면 공격과 중앙 패서를 잡으려고 했는데… 역으로 당한 건가.’

그의 예측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든 선발 명단, 그들이 대비책으로 들고 나온 것을 역으로 공략하는 전술. 모두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름대로 충분히 준비하고 나온 것이라 여겼는데… 역부족이었나.”

상대 우측의 피터 아일랜드로부터 이어진 얼리 크로스를 에딘 페트로비치가 머리로 받아내고, 로날드 조던이 마무리 짓는 것을 보면서 그는 허탈하게 말을 내뱉었다. 베이포트 FC의 두 번째 골이었다.

미하엘 라인하르트와 쾰른 07은 베이포트 FC의 전술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휘말린 것이다.

당했다는 분함보다도 스스로에 대한 허탈감이 먼저 찾아왔다. 그러나 이대로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고, 벌써부터 자신의 준비 부족을 택하며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뛰고 있는 선수들과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그는 이미 패색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미하엘 라인하르트는 심판의 휘슬이 불리는 순간까지 경기를 따라잡으려 애썼다.

상대의 크로스에서 이어지는 공중 공격을 막기 위해서 쓰리백으로 수비 형태를 바꾸고, 중원에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선수들을 공격적으로 올리는 등 베이포트 FC의 노림수를 뒤집으려 했다. 그러나 베이포트 FC 또한 그가 변화를 가져간 지 오래지 않아 대응책을 가져오면서 두 팀의 차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결국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울리고 경기는 2 대 0 그대로 마무리 지어졌을 때, 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조 추첨이 이루어질 때 베이포트 FC를 가장 아래로 보고 있던 기억도, 수연의 경고에도 처음에는 코웃음 치던 자신도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더 확실하게 준비했어야 하는데……. 상대의 전술 변화도, 우리 팀을 잡기 위한 대비책도 좋았지만 내가 처음에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컸어.’

그는 이를 악물면서 주먹을 쥐었지만 이미 경기는 끝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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