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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야만 하는 두 번째 경기 (218/270)
  • 이겨야만 하는 두 번째 경기

    챔피언스 리그 조별 경기는 2, 3주일이라는 간격을 두고 빠르게 진행된다. AC 로마와의 첫 경기가 끝나고 그 사이에는 리그 경기들이 있으며, 2주일이 지나면 또다시 다음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이어진다. 이는 시즌 초반이지만 꽤나 강행군이 되는 것을 의미했고, 동시에 선수들의 로테이션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쾰른 07과의 홈경기에는 당신들에게 휴식을 부여하려 합니다. 전술상의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그다음 경기 상대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인 만큼 쾰른 07과의 경기에 전부 쏟아 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동민의 말을 선수들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동민은 훈련이 끝나고 세 명의 선수를 따로 그의 사무실로 불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컨디션이나 경기에 따라 벤치에서 시작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아예 한 경기의 명단에서 제외하겠다는 말인 이상, 동민은 어느 정도의 항의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다음 경기에서 빠지는 선수들이 시즌 초의 핵심 멤버에 가까운 세 명이라면 더욱 그랬다.

    선수들은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동민이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을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그것이 그다음 경기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님, 그러면 그 말은 저희 셋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전에서 선발로 뛰게 될 거라는 말인가요?”

    가장 경기 출전에 대한 욕심이 많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물었다. 그는 이번 시즌 베이포트 FC에 합류한 이후 대부분의 경기에서 활약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동민이 그를 영입하며 기대하던, 우측에서의 창의적인 공격과 개인 능력을 살린 돌파는 현재 베이포트 FC의 큰 무기이기도 했다.

    “큰 변동 사항이 없다면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세 사람을 명단에서 제외하면서까지 휴식을 부여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동민은 차분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쾰른 07과의 경기에서 빠지는 세 선수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해리 맥스웰, 그리고 박주현이었다. 동민은 베이포트 FC에서 창의적인 패스와 공격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세 명을 쾰른 07과의 경기에서 빼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다음 경기인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그들을 선발로 기용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들을 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저는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경기를 가리지 않고 뛰고 싶기는 하지만, 쉬는 만큼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면요.”

    동민의 대답에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에 대한 욕심이 큰 그였지만 쉬는 만큼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가 고집을 부릴 이유는 없다.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한 경기를 쉰다고 해도 그다음에 나설 경기 상대는, 지난 시즌 스톡포트 시티의 압도적인 경기력에 밀리기는 했지만 리그 2위를 차지했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다. 경기에 나서는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강팀을 상대로 선발을 확정 지을 수 있다면 한 경기 정도의 휴식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독님이 그 편이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셨다면 따르는 것이 선수가 할 일이니까요.”

    부주장인 해리 맥스웰 또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말을 따랐다. 감독이 되기 전인 비디오 분석관 시절부터 동민을 봐왔던 그는 동민이 자신들을 빼놓는 이유가 단순히 그다음 경기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쾰른 07과의 경기에서도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가 아는 동민은 단순히 그다음 경기를 위해서 더 승리할 가능성이 적은 방식을 택하는 위험을 무릅쓸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가 동민의 말을 따르는 것도 당연했다.

    “…저도요. 감독님 생각에 따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주현 또한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주현까지 세 사람 모두가 동민의 말에 동의하자 동민은 그제야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세 사람 모두 쾰른 07과의 경기에서는 휴식을 취하는 걸로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동민은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이라는 듯 고개를 돌렸고, 선수들 또한 그의 사무실을 뒤로하고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모두가 사무실을 나선 것은 아니었다.

    “…왜?”

    동민은 수첩을 뒤적거리던 얼굴을 들어 마지막까지 나가지 않고 그를 기다리던 사람을 마주 보았다.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형 이대로도 괜찮겠어?”

    주현은 단둘이 되자 아까와는 다른, 편안한 말투로 물어왔다.

    “뭐가?”

    동민은 주현의 질문에 정말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그런 동민의 반응에 주현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쾰른 07과의 경기가 끝나면 그다음 챔피언스 리그 경기는 FC 마드리드와의 연전이잖아. 만약 지기라도 했다가는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니야? 나는 상관없더라도 세르히오나 해리까지 빠지는 건 너무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 해서.”

    주현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 경기는 세 팀과 차례로 만나고, 마지막 팀과의 경기가 끝나면 그 반대의 순서대로 다시 경기를 치른다. 이는 마지막에 만나는 팀과는 3번째, 4번째 경기를 연이어 치르게 된다는 이야기다. 쾰른 07과의 경기가 끝나고 베이포트 FC가 2연전을 치르게 될 상대가 지난 시즌 챔피언인 FC 마드리드인 만큼 그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쾰른 07과의 경기에서 패배하기라도 하면 연이어 벌어지는 FC 마드리드와의 경기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고, 토너먼트 진출이라는 목표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경기가 끝난 지금 승점 3점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베이포트 FC지만, 쾰른 07과의 경기에서 지게 될 경우에는 FC 마드리드와 AC 로마와의 경기 결과에 따라 최악의 경우에는 4위까지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당장 FC 마드리드와의 연전을 넘어서 조별 경기 전체의 밑그림이 무너지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그리고 너를 포함한 세 명한테 휴식을 줘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첫째, 경기 수에 여유가 있던 지난 시즌과는 다르게 이번 시즌은 시즌 시작부터 경기 수가 많아. 벌써부터 많아진 출전 시간은 연말, 박싱 데이쯤이 되었을 때 부상으로 터질 수도 있어. 그것만은 피해야 해.”

    동민은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둘째, 네가 말하는 대로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위험성은 안고 가야겠지만 리그 또한 중요해. 한 번의 경기에서 너를 포함한 세 명에게 휴식을 부여하고 리그 경기를 더 확실하게 준비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리스크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그리고 마지막, 너희 셋이 빠진다고 해도 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전술상 세 명이 빠지는 편이 더 승률이 높아. 그게 내 감독으로서의 판단이야. 왜, 믿음이 안 가?”

    동민은 마지막 세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당당한 어투로 물어보는 그에게 주현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어물거렸다. 그러나 그러기를 잠시, 결국 주현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내뱉었다.

    “아니, 쾰른 07에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이 있다면서. 혹시나 그런 것 때문에 신경이 분산된다거나 해서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닌가 했어. 형의 판단을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만에 하나 그런 경우에는…….”

    “네가 나서서라도 이야기해야 한다, 이거지? 그게 나랑 제일 오래 보고 가까운 네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거 잘 아네.”

    동민이 먼저 말의 중간을 끊고 마무리 짓자 주현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동민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야말로 쓸모없는 걱정이란 거야. 네가 날 생각해 주는 건 고맙긴 하지만 감독 결정을 믿지 그래? 아니면 내 판단은 그만큼 못 믿겠어?”

    “아니, 그런 게 아냐. 미안해. 내가 주제넘은 소릴 했네.”

    주현은 고개를 저었다. 가까운 사이인 그와 동민과의 관계라고 해도 선수가 감독에게 이야기할 일과 아닌 일이 있다. 이번 이야기는 그중 아닌 일에 더 가까운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수에 사과했다.

    “아니야. 네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것 같으니까. 어쨌든 난 네가 걱정하는 대로 쾰른을 얕보는 것도, 그 팀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신경이 분산된 것도 아니야. 그 경기와 시즌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때 이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뿐이지. 이야기 끝났으면 나가도 돼. 아무리 다음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돌아가서 푹 쉬는 게 낫지.”

    동민의 그 말을 끝으로 주현은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신경이 분산된다, 라… 그럴 일은 절대 없을걸.’

    주현이 나간 후, 동민은 가만히 생각했다.

    쾰른 07에 수연이 있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다시 만나는 것은 즐겁고, 그녀가 좋은 능력을 가진 코치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메일로 이야기했을 때에도 나나 수연 씨나 서로 자신이 속한 팀이 이길 거라고 확신했고. 그걸 증명해야 하는 경기인 만큼 조금도 방심하거나 할 리가 없잖아. 그때는 둘 다 결국 감독한테 휘둘리는 것으로 끝났으니 이번만큼은 내 능력을 직접 보여주고 싶은걸.”

    동민의 말은 이미 떠난 주현을 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해 하는 말처럼 들렸다.

    “뭐야, 이건?”

    베이포트 FC와 쾰른 07의 경기를 앞둔 시간, 수연은 베이포트 FC의 선발 명단을 보고 의문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번 시즌 들어서 팀 공격의 날개라고 할 수 있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도, 지난 시즌부터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하던 박주현도, 그리고 팀의 엔진이나 다름없는 해리 맥스웰도, 전부 벤치도 아니고 명단 제외라고?’

    그녀는 경악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명단에서 제외된 세 사람은 베이포트 FC의 공격의 시작점부터 마무리까지의 과정을 맡은 선수들이었다. 말 그대로 베이포트 FC 공격의 척추가 되는 세 선수가 모두 결장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는지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명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뭘 노린 거지.”

    수연의 옆에서 그녀와 같이 의문에 찬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쾰른 07의 감독, 미하엘 라인하르트였다. 이 경기를 앞두고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 해리 맥스웰에서 이어지는 정확한 롱패스, 그리고 박주현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개인 능력으로 양 측면에서 공간을 헤집고 다니는 공격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지금껏 이 경기를 앞두고 대비했던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상황에 그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수연은 동민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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