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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무대를 위한 준비(3) (206/270)
  • 더 큰 무대를 위한 준비(3)

    시즌을 앞둔 베이포트 FC는 점점 더 분주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동민은 더욱 그랬다.

    ‘프리 시즌 친선 경기에서부터 확실하게 선수들을 바꿔 나가야 해.’

    동민은 프리 시즌 경기인 오를레앙 OSC와의 대결을 준비하면서 생각했다. 프리 시즌 첫 경기인 이번 경기는 단순히 선수들의 폼을 끌어올리는 것과 사기를 올려두는 것 이외에도 중요한 일들이 많이 걸린 경기였다.

    첫 번째,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박주현의 특성을 제거해야만 한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유리 몸 특성과 박주현의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이 세 가지 특성을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지워야 동민이 바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특성을 제거하는 데에만 총 30포인트라는 많은 포인트가 들긴 했지만 지난 시즌 선수들의 컨디션을 올리는 것 외에는 거의 쓰지 않았던 포인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 시즌과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 전에 선수들과 전술의 초점을 맞춰두어야 했다. 8월 중순이면 리스본 CF와의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가 시작된다. 만에 하나 지기라도 하면 동민의 시즌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져 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경기이기에 동민의 초점은 이미 플레이오프를 향해 있었다.

    ‘특히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부상을 줄이는 일과 박주현의 최전방 공격수화가 중요해.’

    리스본 CF는 지난 시즌 유로파 리그에서도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하는 짠물 축구를 보여준 팀이기에 두 사람의 변화가 중요했다. 지난 시즌과 같은 공격으로도 어찌어찌 그들의 강한 수비는 뚫을지 모르지만,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서도 지난 시즌과 같은 공격이 쉽게 먹히리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큰 기대였다.

    그 때문에 베이포트 FC로서는 플레이오프부터 뒤바뀐 선수들의 전술을 시험해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찍부터 플레이 스타일이 크게 바뀔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의 손발을 맞추는 것이 급선무였다.

    ‘가장 큰 목표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박주현의 특성을 제거하는 일, 그리고 그다음은 그들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과의 합을 맞추는 일이야. 리스본 CF전과의 플레이오프전까지는 확실하게 준비가 끝나 있어야 하니까.’

    동민의 시선은 이미 플레이오프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이번 경기는 단순한 친선 경기가 아닙니다. 이미 말했듯 우리의 시즌은 시작이 가장 중요해요. 시즌 개막전도,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도 있죠. 그때를 위한 확실한 준비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동민은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지금 오를레앙 OSC의 홈인 세모이 스타지움에서의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선수들, 특히 베이포트 FC에서의 첫 선발 경기를 앞둔 올리비에 나스리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에두아르도 산체스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꼭 이겨야 한다, 경기 내내 좋은 모습을 보이라, 같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자신이 어째서 선발로 이름을 올려야 하는지 증명해 주세요. 그리고 교체로 들어가는 선수들도 제가 어떤 플레이를 바라는지 확실히 보여주세요. 이상입니다.”

    동민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서려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 있는 사람은 오늘 베이포트 FC의 데뷔전을 치르는 올리비에 나스리였다. 그는 올리비에 나스리 쪽으로 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올리비에, 당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난 알고 있어요. 그게 당신을 팀에 데려온 이유고요. 다만 그 이상으로 당신이 그라운드 안팎에서 경험 많은 노장으로서 팀을 돕길 바랍니다.”

    다른 선수들이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로 낮고 부드러운 말투지만 안에는 뼈대가 있었다. 전 소속 팀과의 경기라고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과 동시에, 앞으로 그라운드 밖에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말 것을 주문하는 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올리비에 나스리는 조용히 말했다. 베이포트 FC로 이적하면서 동민과 올리비에 나스리가 약속한 것은 하나였다. 동민은 올리비에 나스리에게 충분한 기회를 약속했고, 대신 그의 많은 경험으로 그라운드 안팎에서 다른 선수들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올리비에 나스리 또한 더 이상 팀과의 불화를 계속 이어가다간 더 이상 어디서도 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베이포트 FC는 마지막이 될지 모를 기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당신의 노련함에 큰 기대를 하고 있으니까요.”

    동민은 그의 대답에 만족한 듯 먼저 라커 룸을 나섰다.

    ‘볼수록 어려 보이는 얼굴하고 딴판이네. 특히 경기를 앞두고는 더욱.’

    올리비에 나스리는 걸어가는 동민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평가했다. 그가 베이포트 FC로의 이적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강동민이라고 하는 젊은 감독에 대한 관심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보다도 어린 감독이 프리미어리그 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다음에는 그만큼 미숙한 감독이라면 팀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커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처음 동민을 마주했을 때만 해도 맞아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올리비에 나스리가 예상한 것보다도 젊었고 그를 존중했다.

    그러나 올리비에 나스리의 예상은 선수들의 휴가가 끝나고 소집되자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선수들이 모이자 동민은 전에 보였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다. 겉보기만큼 어리숙하고 조심스럽던 태도는 사라지고, 마치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베테랑 감독처럼 선수들을 휘어잡았다. 동시에 다른 선수들마저 당황시키면서 새로 영입된 선수들도 팀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처음 봤을 때에는 꽤나 어리숙한 것 같더니 막상 선수들 앞에 서니까 완전히 달라졌어.’

    젊은 나이에서 나올 거라 생각하기 힘든 동민의 발언과 모습에 그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어린 감독이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만 보면 정말로 이번 시즌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되긴 하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라커 룸 밖으로 향했다.

    심판의 휘슬로 경기가 시작되고, 동민은 지체 없이 주현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눈길을 돌렸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29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8.6/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7.5/20

    선호하는 플레이: 우측면에서 안쪽으로 드리블 선호, 정확한 슈팅 선호,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특성:

    장점 - 트릭스터, 왼발의 마법사

    단점 - 깃털 몸, 유리 몸

    현재 컨디션: 6/10

    [박주현]

    27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7.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5.2/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특성:

    장점 - 타고난 골잡이, 왼발의 마법사

    단점 - 없음

    현재 컨디션: 7/10

    ‘저 특성들을 없애는 게 이번 경기 최대의 목표야.’

    동민이 먼저 특성을 없애기로 한 선수는 박주현이었다.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이 두 가지 선호하는 플레이를 지우면…….’

    [특성 삭제에 필요한 포인트: 20]

    [현재 포인트: 51]

    [20포인트로 삭제 가능]

    동민은 오랜만에 보는 문장을 보면서 반가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민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삭제하겠어.”

    [삭제 조건: 신체 접촉을 통해 강한 충격을 줄 것]

    또다시 눈에 들어온 것도 이미 예전에 보았던 문장이었다. 동민은 맨 처음 주현의 [소심함] 특성을 지울 때에 그의 등을 강하게 후려쳤던 것을 기억했다.

    ‘지금까지 선수마다 모두 삭제 조건이 달랐지. 하지만 한 선수에게 두 번째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인데… 처음이든 두 번째든 삭제 조건 자체는 같은 건가. 그래도 다행이네. 이제 와서 뭔가 괴상한 조건이라도 나왔으면 곤란할 뻔했어.’

    처음으로 그 문장을 보았을 때와 지금 동민의 상황이 너무나도 달라졌음을 생각하니 새삼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와서는 이 정도 조건이야 누워서 떡 먹기니까.”

    동민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는 공이 나간 틈을 타 주현을 불러냈다.

    주현은 마지막까지 상대를 압박하며 공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역시 어딘가 어색했다. 아래쪽에서 플레이할 때처럼 공을 잡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거나, 공을 받으러 3선까지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오랜 시간동안 습관이 된 몸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려 했다.

    ‘동민이 형은 내가 최전방에 더 잘 어울릴 거라고 말했지. 그렇다면 내가 최전방에서 더 확실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해.’

    주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더 빠르게 발을 재촉했다. 전반전이 시작되고 계속된 그의 압박은 오를레앙 OSC의 수비진에게 거치적거리는 장해물이 되었고, 결국 패스 미스를 야기했다.

    ‘좋아, 이렇게 계속 움직이다 보면… 응?’

    공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미소 짓던 주현은 벤치에서 동민이 자신을 부르며 손짓하는 것을 보았다.

    ‘벌써부터 뭔가 전술적인 변화가 있는 건가?’

    동민이 이렇게 부르는 것은 대부분 움직임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전술 변화를 의미했다. 전반전이 시작된 지 겨우 10분이 지난 지금이지만, 동민이라면 이른 시간부터 변화를 노릴 만하고, 그 전술 지시라면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주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빠르게 벤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벤치에서 그를 기다리던 것은 동민의 전술 지시가 아니었다.

    “악!”

    자신의 양어깨를 강타하는 동민의 손에 주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동민은 그의 양어깨를 그대로 붙잡은 채로 급하게 한국어로 말했다.

    “전방에서 네가 압박을 위해서 뛰는 건 만족스러워. 그런데 네 움직임은 계속 그대로야. 멈추지 말아야 할 때 멈추고, 앞에서 수비들을 끌어야 할 때에 뒤로 내려가. 더 경기에 집중해. 넌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어, 네, 네!”

    예상치 못한 동민의 행동에 주현은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그거면 됐어. 가 봐. 정신 차리고 경기에 집중해.”

    동민은 언제 주현을 불렀냐는 듯 곧바로 손짓했다. 주현은 그런 동민의 행동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다음 순간, 주현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복귀하면서 마음속으로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취소했다. 단순히 저런 뻔한 이야기를 위해서 그를 불러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조건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생각은 취소해야겠어. 가끔 저 형은 나도 이해하기 힘들다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주현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동민의 이상한 행동 직후부터 바뀐 점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의 결점이 되고 있던 행동들은 어느새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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