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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무대를 위한 준비(2) (205/270)

더 큰 무대를 위한 준비(2)

선수들의 휴가도 모두 끝나고, 다가올 시즌을 위한 팀 훈련이 시작되자 동민을 포함한 베이포트 FC의 모두는 더욱 바빠졌다.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해야 하고, 휴가를 보내면서 풀어진 선수들의 몸과 마음도 다잡아야 했다.

“다들 모였나요? 모두들 휴가를 즐기고 복귀해서 즐겁네요.”

동민의 물음에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민이 선수들이 복귀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선수들을 모두 소집시킨 것이었다. 시즌을 앞두고 다음 시즌의 목표나 초점을 맞춰야 할 점 등을 말해주기 위해 감독이 선수들을 소집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 탓에 선수들 또한 마음을 다잡고 다음 시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다잡던 선수들은 동민의 예상을 뛰어넘은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린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릴 겁니다. 이는 추상적인 바람도, 기적을 바라는 기도도 아닙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명확한 목표죠.”

그의 말은 선수들 사이에서 조용한 파문을 가져왔다.

선수들의 1차적인 반응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겨우 지난 시즌에 막 승격한 팀이었다. 승격 팀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4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겨우 한 시즌의 일일 뿐이었다. 그런 자신들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노리겠다는 말은 꿈보다도 더욱 말이 안 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네?”

조나단 케인이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자신이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이라면 자신이 잘못 들은 것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런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목표 따위는 듣지 못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릴 거라고요. 앞으로 플레이오프만 넘으면 본선 진출이 확정 나는 이상, 이왕 참가한다면 우승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동민은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주장인 조나단 케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수들의 표정은 멍하니 동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동민은 도발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왜요, 못할 것 같나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농담이 아니냐, 아무리 허세라도 너무 심하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그들의 입속을 맴돌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충격에 빠진 침묵만이 선수들 사이에서 맴돌았다.

“지난 시즌 우리가 4위에 오를 거라 예상한 사람이 있었나요? 스톡포트 시티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거라 생각한 사람은요? 아무도 없었죠. 그렇지만 해냈잖아요.”

“그것과 챔피언스 리그는……!”

“다르다, 라고 말하는 건가요?”

선수들 사이에서 문득 튀어나온 말을 동민은 잡아챘다. 선수들 사이에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맴돌던 말을 붙잡기 위해 계속해서 그들을 자극하던 결과가 드디어 나온 것이다. 동민은 기다리던 약점을 잡은 양 곧바로 말을 쏟아냈다.

“둘 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일이었고, 우린 해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난해 이 시기에 스스로가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우린 4위는커녕 강등권을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자신이 먼저 마음을 꺾어 포기해 버리면 결과가 따라올 리 없으니까요.”

동민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선수들의 태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일부러 유도하긴 했지만 직접 선수들로부터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자니 화가 났던 것이다. 날카롭게 갈아둔 칼 같은 그의 말에 선수들은 다시 침묵을 지켰다. 동민은 다시 입을 열고 말의 온도를 바꾸어 이제는 호소하듯 뜨겁게 말했다.

“할 수 없다고,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쉽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난 시즌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사람들에게 전부 한 방 먹여주던 우리가 이젠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자신을, 저를 믿어주세요. 우린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즌을 보고 기적이라 떠들던 사람들에게 더 큰 기적을 보여주면 됩니다.”

동민의 말이 끝나고,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불가능해 보이던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해낸 그들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휴가를 거치면서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려던 마음이 조금씩 다시 뛰기 시작했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더 강한 상대를 이기고, 더 큰 무대에서 뛰기를 갈망하던 지난 시즌의 자신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선수들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이번 여름에 둥지를 옮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였다.

“…나는 분명히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고 들어서 이적을 결정했는데, 정작 그 팀에 있던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네. 이런 새가슴 팀이 어떻게 지난 시즌 4위까지 올라갔나 몰라.”

비꼬는 말이 섞인 간단한 도발, 유치해 보일 정도로 뻔한 말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지난 시즌 동민과 함께하며 프리미어리그의 새 역사를 썼던 자신들보다 얼마 전 팀에 들어온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동민의 말을 더욱 믿는다는 상황은 그들의 마음을 긁기에 충분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말은 기폭제가 되었고, 선수들은 한두 명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까짓것 감독님 말대로 이왕 나선 거 목표를 우승으로 잡으면 좋죠. 어디 한번 해보자고요.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하다 보면 결과가 어떨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지난 시즌에도 전문가라는 사람들 입을 떡 벌려놨는데 이번 시즌에는 더 스케일을 키워도 상관없겠지. 우리가 먼저 설레발치면서 된다, 안 된다, 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그렇게 입 밖으로 말을 내자, 그들은 그 말이 다시 힘이 되어 자신들을 지탱해 주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동민에게서 시작되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거치며 퍼져 나간 술렁임은 결국 모든 선수들을 뒤덮었다. 한동안 선수들의 말이 지나가고, 동민은 그제야 그들을 바라보면서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다들 기죽고 꽁무니를 빼지 않아 다행이네요. 그러면 이걸로 다음 시즌 우리의 목표는 확실해졌네요. 우리는 다음 시즌 빅 이어(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의 별칭)를 손에 쥐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동민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여우같이 변하네.”

박주현은 동민의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눕듯 기대고는 동민에게 야유하는 체하며 말했다.

“뭐가?”

“아까 다음 시즌의 목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고 말한 거. 그 직전까지 형이 한 말이 헛소리라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는데 형이랑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도발에 다들 넘어가 버렸잖아.”

퉁명스럽게 되묻는 동민에게 주현은 말했다.

처음 동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주현조차도 그런 헛된 망상을 버리고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동민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어쩌면 헛된 희망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싹트고 있었다. 지난 시즌 여러 강팀들과 순위 경쟁을 하면서도 당당하게 4위를 차지했던 일도 되돌아보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 와서 현실적인 목표니, 비현실적이니 따지는 것만큼 웃기는 상황도 없었다.

“자신 없으면 이야기해. 너 없이 빅 이어에 도전해 볼 테니까.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가두는 선수들을 이끌고 경기하는 건 성격상 안 맞거든. 못한다는 사람들 끌고 같이 하자고 해봐야 어떻게 되겠냐.”

주현은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농담을 담은 장난에도 동민은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럴 리가. 경기 시작 전부터 질 게 뻔하다는 둥 말하던 사람들의 콧대를 누르고 다녔는데 이젠 내가 그럴 순 없잖아.”

주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텔레비전 쪽을 보며 사납게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껏 그가 뛰었던 어느 대회보다도 강한 팀들을 만나고, 상대하는 일은 그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그렇다면 됐어.”

동민은 그런 주현의 미소를 보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동민의 입에도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동민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생각났다는 듯 주현을 보고 말했다.

“아, 맞다.”

“뭐가? 빨래하는 거라도 잊었어?”

주현의 장난 섞인 말에 동민은 고개를 저었다.

“너 다음 팀 훈련 때부터는 최전방 공격수로서 뛸 준비하는 게 좋아. 앞으로 네 주 포지션이 그쪽이 될 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번 시즌부터 계속. 그러니까 너는 훈련 과정이 다른 선수들과 다를 수도 있어.”

“응?”

동민의 말에 주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를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쓰겠다는 동민의 말 자체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지난 시즌 중 몇 번 정도는 로날드 조던이나 에딘 페트로비치를 대신해서 중앙 공격수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모두 상대의 약점을 노리고 변칙적인 전술을 기용하거나 상황상의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했다. 그런데 동민은 다음 시즌부터는 주현을 최전방 공격수로 분류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제로 톱이나 상대에 대한 맞춤 전술 등의 임시방편이 아니라는 말에 주현의 목소리는 빠르게 높아졌다.

“내가 최전방 스트라이커라고? 하지만 지난 시즌까지 나는 계속 측면으로…….”

“너한테서 새로운 가능성을 봐서 그래. 아마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동민은 주현의 말을 허리부터 끊어내고 말했다.

“너 자신을 못 믿겠다면 내 안목을 믿어. 돌아오는 시즌엔 그 자리에서 최고로 빛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빠르게 그 자리에서 적응하는 거나 생각해.”

동민은 이미 그렇게 되기로 확정이라도 되어 있다는 듯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주현은 동민의 말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당황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측면은…….”

“야야 둠베흐도 있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도 있으니까. 지난 시즌 어디서든 괜찮게 활약했지만, 너도 알고 있잖아. 지금 이대로 애매하게 포지션을 오가며 경기에 나서면 네 플레이가 모순이 된다는 거. 그래서 아예 공격수로 못 박아둘 생각이야.”

동민의 말에 주현은 지난 시즌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스로 말하기는 어색하지만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즌 치고 자신의 상상 이상의 대활약이었다. 그러나 동민의 말처럼 최전방에서는 볼을 끌고, 후방에서는 동선이 너무 공격적인 점도 분명히 있었다.

“하아, 정말 자기 마음대로라니까. 마음대로 해. 단, 제대로 지도해 달라고.”

주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웃고 있었다. 자신도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을 동민은 너무나도 확신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하지. 날 믿어.”

그렇게 말하는 동민의 모습은 그가 본 어느 때보다도 믿음직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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