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무대를 위한 준비(1)
이적 시장이 열리자마자 빠르게 진행된 베이포트 FC의 영입은 다른 여러 EPL 팀과 팬들, 전문가들에게 큰 충격과 흥미를 가져다주었다.
첫 번째, 지난 시즌 4위를 기록하면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지만 베이포트 FC는 명문 팀이 아니었다. 동시에 돈 많은 구단주를 뒤에 두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뿌리면서 선수들을 그러모을 팀 또한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난 시즌의 성적으로 얻은 돈의 많은 부분을 이번 이적 시장에 투자하면서 여러 선수들을 보강했다. 다른 거대 팀들의 영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자본 규모도, 팀의 규모도 작은 편인 그들에게는 꽤나 큰 투자였다.
이는 도박에 가까울 정도로 위험한 수였다. 만일 돌아오는 시즌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들은 완전히 무너질지도 몰랐다.
두 번째, 그만큼의 투자를 하면서 데려온 선수들 중 대부분이 의문점을 가진 선수들이라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자유계약으로 데려온 자크 피레스는 도핑 의혹을 받고 6개월 출장 정지를 당하면서 무려 한 시즌 내내 1군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런 선수가 실전 경기 감각이 그대로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뒤로 영입한 에두아르도 산체스도 성장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지만 무릎 부상 이후 예전 같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였고, 올리비에 나스리는 가는 팀마다 감독들과 불화를 일으키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지난날의 명성을 모두 깎아먹고 있었다.
모리스톤 타운 AFC에서 3,5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주고 데려온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경우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잦은 부상을 당하며 빅 클럽에서 노리기엔 부적합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어딘가 한 군데씩 빠지는 점이 있는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은 좋게 말해서 위험한 도박 수, 나쁘게 말해서 돈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성장 가능성이 있거나 예전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경기력이 좋지 않은 이상, 좋은 영입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 두 가지 이유는 사람들이 베이포트 FC의 영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에 충분했다. 재정적으로 여유롭지도 않은 구단이, 자신들에게는 큰돈을 들이면서 어딘가 한 군데씩 나사가 빠진 선수들만 영입한 것이다.
‘돈도 쓸 줄 아는 구단이 쓰는 거지, 아닌 구단이 써봐야 돈 낭비만 한다. 5천만 파운드가 넘는 돈을 완전히 낭비했다.’
‘총 5천만 파운드가 넘는 돈을 들여서 제대로 된 영입도 아닌 어중간한 선수들만 그러모았다.’
‘이적 시장은 길고, 영입은 더 신중해야 하지만 베이포트 FC의 영입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선수를 사 모으는 것에 마음만 앞선 쓸모없는 영입이다.’
‘도핑 테스트에서 걸렸던 선수에, 부상으로 완전히 폼이 다 죽은 선수에, 다 늙어빠진 트러블메이커에, 툭하면 다치는 유리 몸까지. 돈을 내다 버린 거나 다름없다.’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동민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좋았어. 이걸로 다가올 시즌에 대한 준비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어. 이거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동민은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자마자 발 빠르게 움직여서 데려온 선수들에게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이적 시장이 열리고 긴 시간을 들이지 않은 영입에는 선수의 이적료를 협상할 시간이 적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장점도 있었다.
‘선수들이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팀에 더 녹아들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는 점이지.’
선수들이 경기마다 다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동민과 베이포트 FC의 특성상 팀에 녹아드는 시간은 다른 팀보다 더욱 필수적이었다. 아무리 동민이 선수들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맡긴다고 해도 처음 만나는 선수들과 발을 맞추는 것도, 경기마다 뒤바뀌는 전술에 발맞추는 것도 모두 영입 선수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동민은 서둘렀던 지난여름 이적 시장처럼, 이번 이적 시장에서도 이적료가 더 들더라도 빠르게 움직이면서 이른 시간 내에 선수 영입을 마친 것이다. 그래야만 영입 선수들이 베이포트 FC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데려온 선수들 모두 역할이나 상황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니까. 선수들을 그렇게 만드는 게 내 일이고.’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다른 이들이 그들의 단점을 볼 때에 동민은 그들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자크 피레스는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기는 해도 소속 팀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려난 선수이며, 자신의 실력만 되찾으면 은퇴 후 코치를 준비하는 벤 로이터의 공백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 클래스를 가진 선수다.
‘게다가 2군 연습 경기에 나섰을 때에도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차원의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듯 번뜩이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고.’
만약 도핑 의혹이 아니었다면 다른 팀들에서도 충분히 손을 뻗어볼 만한 자원이었지만, 도핑 의혹과 1년간의 공백으로 데려오기에는 애매한 선수가 되었다. 그 점이 베이포트 FC와 동민에게는 다행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를 영입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에두아르도 산체스 또한 부상 후 주춤하기는 하지만, 동민은 그의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면 고작 1,500만 파운드가량에 그를 영입한 것이 거저나 다름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이던 속도나 킥력이 줄었다고는 해도 나이에 맞지 않는 그의 날카로운 감각은 줄어들 수 없었다.
올리비에 나스리의 성격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지만, 그의 챔피언스 리그 경험과 노련한 플레이는 경험 많은 노장이 필요했던 베이포트 FC로서는 그의 위험성을 감수하고라도 데려올 정도로 절실했다. 벤 로이터의 은퇴 이후 조용한 성격의 주장과 부주장을 대신해 어린 선수들을 휘어잡을 경험 많은 선수가 필요했고, 동시에 팀 전체가 처음 마주하는 챔피언스 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그 세 명과도 조금 다르지.’
그의 단점은 잦은 부상과 그로 인해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선수의 부상 자체는 아무리 동민이 상대에 따라 전술을 짜고, 경기를 잘 준비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는 말을 듣는 다비드 페레즈나, 마르코 알베스 등의 명장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민에게는 한 가지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라 있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단점 중에는 유리 몸이 있었지. 그것 또한 특성이라고 생각하면 그 특성을 없애면 부상이 줄지 않을까? 특성이 부상을 만든다면 없애면 부상이 준다는 이야기니까.’
최근 선수들의 컨디션을 올리는 것 외에는 쓸 일이 거의 없던 포인트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한 장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잦은 부상이 유리 몸이라는 특성 때문이라면, 그 특성을 없애면 부상의 횟수가 현저히 줄 수 있다는 동민의 생각이었다.
‘확실하게 가능한지는 아직 모르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야. 지금껏 우리 팀에 유리 몸 특성을 가진 선수가 없어서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특성 때문에 부상이 잦은 거라면 특성을 삭제하면 그만이니까.’
설령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유리 몸 특성을 없애도 그의 부상이 줄지 않는다고 해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충분이 베이포트 FC에게 새로운 공격 옵션을 만들어줄 수 있는 선수였다. 박주현과 동시에 양쪽 윙으로 세우고 스위칭을 시키면서 상대 수비를 좌우로 흔들 수도 있고, 혹은 아예 박주현이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둘 중 한 명을 중앙 공격수로 기용하면서, 나머지 한 명을 중앙에 두고 창의적인 공격 능력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일단 박주현의 부재인 상황에서도 중원의 과부하나 측면의 직선적인 공격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지. 더불어 애매했던 박주현을 어떤 위치에 세울지 고정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있고.’
지난 시즌, 동민이 주현을 경기에 내보내면서 다시금 깨달은 점은 그의 멀티 능력이었다.
자신이 예전에 지도했을 때, 그리고 K2 리그에서도 그가 주로 맡은 자리는 좌측 윙이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재회한 주현은 좌측 윙에 한정되지 않았다. 부천 유나이티드에서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던 그는 좌측 윙에 한정되지 않고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심지어 최전방 공격수까지 맡으며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지난 시즌 스톡포트 시티전 등에서 동민이 주현을 중앙 공격수로 쓸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어디서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어떤 위치에서도 다른 곳보다 더 확실하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진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최전방에 서기에는 공을 잡고 풀어주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잘 맞지 않았고, 아래로 내려와 서기에는 수비 사이로 침투하는 움직임이 아까웠다. 그의 플레이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던 것이다.
결국 지난 시즌의 주현은 어느 자리에서도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지만 어느 자리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동민 또한 개인 능력이 좋은 선수는 주현뿐이기에 그를 확실히 한 포지션에 정착시키기보다는 여러 포지션에 걸쳐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팀에 합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금까지 박주현의 특성인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이 세 가지가 서로 맞물리지 않았다는 점이 걸렸어. 공격의 마무리 짓는 역할을 하기엔 뒤의 두 특성이 방해했고, 풀어주는 역할을 맡기에는 다른 특성이 거치적거렸으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한쪽에 맞출 수 있어.’
주현이 맡고 있던 공격의 마무리 작업이나 시작 지점을 대신할 수 있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합류로 주현이 둘 중 하나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주현의 발전을 넘어서 베이포트 FC의 공격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레이미 볼든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린다고 진지하게 말했던 것이 허풍이 되지 않으려면 확실히 팀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니까.’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면 선수들의 휴가도 끝나고 다시 시즌을 준비하는 훈련이 시작된다. 그때가 되면 자신의 머릿속과 수첩에 있는 구상들은 펼치면서 다음 시즌을 위한 발걸음을 본격적으로 내딛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의 발걸음은 한결 더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