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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 대상(2) (203/270)
  • 영입 대상(2)

    “센터백에 올리비에 나스리, 측면 수비수에 에두아르도 산체스, 중앙 미드필더에 자크 피레스, 공격진에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라… 정말 잘도 이런 영입 명단을 생각했네요.”

    레이미 볼든은 놀랍다는 듯, 그리고 동시에 질렸다는 듯 말했다. 동민이 말했던 5천만 파운드 이상의 금액은 대부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에두아르도 산체스, 두 사람의 이적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다른 두 명의 선수들은 자유계약으로 풀리거나, 소속 팀에서 이미 자리를 잃고 싼 가격에 영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공격진에 박주현과 함께 좌우 측면을 뒤흔들어 줄 선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를 위해서 가장 알맞은 선수가 바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고요.”

    동민은 차분하게 레이미 볼든에게 설명했다.

    공격적으로 나설 때 개인 능력만으로 잠시라도 상대 수비 진형을 흔들 수 있는 선수는 지금으로썬 박주현, 단 한 명뿐이다. 이는 다시 말해 혼자서 게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선수가 그뿐이라는 말이다. 동민은 주현 없이 치렀던, 지난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를 떠올렸다. 끊임없는 전술 변화로 결국 승리를 가져가긴 했지만, 정말 조금이라도 선수들이 전술대로 움직이지 못했거나 실수를 저질렀다면 승리는 스톡포트 시티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챔피언스 리그에서 또다시 박주현이 부상 등으로 결장하게 된다면 베이포트 FC의 공격은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의 범위가 좁아지고 말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승리를 챙기는 것이 쉬울 리가 없고, 또 한 번 스톡포트 시티 때처럼 운이 따라준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것이 동민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영입을 강력하게 원하는 이유였다. 만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베이포트 FC에 합류한다면 베이포트 FC는 박주현과 함께 양쪽에서 상대를 뒤흔들 수 있는 날개를 얻는 것이다.

    “이 선수들을 영입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긴 하지만… 반대로 지금 이야기한 선수들이 모두 단점도 있는 것도 아시죠?”

    레이미 볼든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명의 선수 모두 실력은 어느 정도 확신이 드는 선수들이지만 제각기 불안한 점이 하나씩은 있었다.

    올리비에 나스리는 FC 마드리드에서 떠나면서부터 가는 팀마다 불화를 일으켰다. 그의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베이포트 FC에 와서 동민과 잘 맞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자크 피레스는 도핑 테스트에 걸려 6개월간의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고, 지난 시즌 내내 1군 경기에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에두아르도 산체스 또한 지난봄에 있던 장기 부상으로 복귀 후의 경기력은 예전만 못하다. 두 선수 모두 이적 후 전만큼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경우에는 다른 세 명과 조금 달랐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모리스톤 타운 AFC와의 경기에서 보았던 뛰어난 모습이라면 충분히 팀의 보탬이 되는 좋은 영입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본인이 모리스톤 타운 AFC에서 우리에게로 이적을 원할까요? 그쪽에서 팔지 안 팔지도 확실치 않은데?”

    이번 시즌 성적은 모리스톤 타운 AFC보다 베이포트 FC가 더 높았고, 베이포트 FC는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이적에 호의적일 거라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베이포트 FC가 지난 시즌 리그 4위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아직 이적 시장에서의 우위를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그저 한 시즌 동안만 반짝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하위권 팀들은 많았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베이포트 FC도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모리스톤 타운 AFC 또한 돈 때문에 급하게 선수를 팔아야 하는 구단은 아니었다. 그들이 납득할 만한 이적료를 내는 것도 베이포트 FC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팀에서 자리를 잃었거나,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린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모리스톤 타운 AFC로서는 자신들이 놓쳐서는 안 되는 선수로 인식할 테고요. 선수 본인도 굳이 우리 팀에 합류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회의적인 레이미 볼든의 말에 동민은 그저 웃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합류할 이유를 만들어봐야죠. 설득해서요. 원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가 우리 팀에 오도록 만드는 것은 감독의 일 아니겠어요?”

    동민의 목소리에는 확실한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베이포트 FC라고?”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그의 형이자 오랜 에이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베이포트 FC 측에서 나한테 접촉을 했어.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네가 베이포트 FC의 공격을 함께 이끌어줬으면 좋겠다고.”

    그는 거기서 잠시 말을 끊고는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만간 너와 한번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던데. 베이포트 FC의 감독이 직접 너와 이야기를 하면서 설득하고 싶다고 했어.”

    그의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팀에서는?”

    “아직 명확한 오퍼가 온 게 없으니 구단에서도 이렇다 할 이야기는 없었어. 다만 분위기가 네가 이적을 원하고, 확실히 납득할 만한 이적료가 책정된다면 또 모르지. 네가 정말 원한다면 이적을 성사시키는 것이 내 일이기도 하잖아.”

    가볍게 내뱉듯 툭 던져놓은 에이전트의 말에 그는 또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자신이 이적을 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모리스톤 타운 AFC에 오고 난 뒤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방금 들은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사정없이 뒤흔들고 있었다.

    “조만간 너한테 직접 연락해 올지도 몰라. 구단 측에 제안이 들어간 이적료도 꽤나 좋은 조건 같아서 이야기는 들어보겠다는 식으로 말했거든. 어쨌든 여름 이적 시장은 아직 열리지도 않았으니까 천천히 고민해 봐. 결국 모든 것은 네 선택에 달린 문제니까. 내가 원한다면 가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아닌 거지. 어느 쪽이든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울 테니까 걱정 없이 한번 생각해 봐. 어차피 휴가잖아? 그럼 간다. 푹 쉬고 나중에 연락해.”

    마지막으로 그의 오랜 에이전트로서가 아니라 형으로서 말을 마친 에이전트는 그 혼자만을 두고 자리를 떠났다.

    ‘베이포트 FC가 나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혼자 남아 생각에 잠겼다.

    모리스톤 타운 AFC라는 팀이나 알베르토 브루노 감독이 싫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 새로운 발전의 여지를 주었던 팀과 감독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그러나 베이포트 FC로부터 오퍼가 왔다는 에이전트의 말은 쉽게 내칠 수 없었다.

    ‘2년 동안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팀에서 날 원한다니.’

    그가 잉글랜드 챔피언십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모리스톤 타운 AFC를 리그 1위로 이끌고 승격했던 때에도 그는 베이포트 FC를 상대로는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철저하게 그를 고립시켰고, 결국 그는 리그 MVP와 득점왕이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며 최고의 활약상을 보였지만 베이포트 FC는 그를 가로막는 벽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시즌,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더 큰 무대에서 더 성숙해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며 모리스톤 타운 AFC를 유로파 리그 진출권이 걸린 6위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베이포트 FC를 넘을 수 없었다. 베이포트 FC는 감독이 바뀌면서 오히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승격하자마자 4위를 기록하고 그들을 눌렀다.

    그런 베이포트 FC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는 뛰어넘어야만 하는 벽이면서 감탄을 나오게 하는 상대였다.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베르토 브루노 감독이 그에게 어떤 역할을 맡겼는지 베이포트 FC는 마치 꿰뚫어 보는 듯 예측했다. 마치 그가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그 자신보다도 더욱 잘 아는 듯했다.

    특히 감독이 바뀌고 이번 시즌에 다시 만난 베이포트 FC는 더욱 그랬다. 아무리 자신이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뛰어도, 골 찬스를 만들어내려고 해도 마지막에는 결국 그물 같은 베이포트 FC의 수비에 걸려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이겨야만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반대로 그 팀에 들어와 달라는 요청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이적에 대한 고민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며칠 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울리는 전화기를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선수, 미리 연락드렸다시피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그가 예상한 것보다도 더 젊었다.

    ‘나랑 같은 나이던가, 아니면 나보다 한 살 어렸던가. 그 나이에 감독이라니…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대단하네.’

    목소리의 주인은 베이포트 FC의 감독인 동민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빠르게 말했다.

    “이적 이야기인가요?”

    -그렇죠. 이미 에이전트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할게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선수, 다음 시즌 우리와 함께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동민의 말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치 그 말을 듣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눈에 스스로가 베이포트 FC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는 것이 그려질 만큼 확신이 가득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자신의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을 고개를 저어 지우고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저는 모리스톤 타운 AFC에서 지내는 것을 만족하고 있어요. 다음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는 아니어도 유로파 리그에 참가하면서 유럽 대항전도 치르고요. 그런 제가 베이포트 FC로 갈 이유가 있을까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말은 간단했다.

    지금 자신이 모리스톤 타운 AFC에서 베이포트 FC로 이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확실한 거절의 표시였다. 그러나 그의 차가운 대답에도 동민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유요? 이유라… 몇 가지가 있죠. 첫 번째, 유로파 리그가 아닌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 두 번째, 당신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발전시켜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민은 잠시 말을 끊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을 영입하고 우리는 이번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에 도전할 생각이니까요. 그 주역이 되어줄 선수가 필요하거든요.

    동민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제정신이라고는 믿지 못할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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