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음 시즌의 목표는 (201/270)

다음 시즌의 목표는

챔피언스 리그는 유럽 최고의 팀들이 함께하는, 별들의 잔치라 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세계 최고의 리그인 영국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의 프레메라리가, 독일의 분데스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A 등의 상위 리그뿐만 아니라 비교적 하위 리그라는 평가를 받는 다른 리그의 최상위권 팀들도 참가하면서 말 그대로의 각축전을 벌인다.

그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 해당 리그의 팀들뿐만 아니라, 유럽 다른 리그들의 강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는 결국 팀의 퀄리티가 훨씬 더 높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리그 팀들의 경기 스타일에 맞춰서 더욱 유연한 전술 구성을 필요로 하거나, 혹은 더 많은 강팀들을 만나니 더 뛰어난 선수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두 번째, 일정이 더욱 빡빡해지는 것이다.

리그 경기들이 대부분 주말에 몰려 있는 것에 비해, 챔피언스 리그를 비롯한 대륙 대회들은 주중에 경기를 가지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리그와 FA컵, 리그 컵 등 여러 대회들로 많은 경기 수와 연말의 박싱 데이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베이포트 FC의 입장에서는 더욱 체력 관리가 중요시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거나, 스쿼드의 두께가 두껍다고 말하기 힘든 베이포트 FC로는 해결하기 힘든 두 가지의 문제점이었다.

“…그래서 요청드리는 겁니다. 지금 스쿼드로 챔피언스 리그까지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현재 선수들을 모두 지킬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은 마당에 일단 벤 로이터는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싶다는 의견을 고수했고요. 지금으로썬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동민은 레이미 볼든에게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챔피언스 리그라는 훨씬 더 큰 무대까지 준비해야 하는 이상 전력 보강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리고 그것이 동민이 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레이미 볼든을 찾아온 이유였다.

“선수 영입이 필요하다는 점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하고요. 그렇지 않아도 영입에 대해서는 한번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어요. 이번 시즌을 4위로 마무리 지으면서 여러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는 메리트도 생겼고, 자금도 어느 정도…….”

“모든 포지션에 거쳐서 최소한 3명에서 4명 정도는 더 필요합니다. 예상하는 총 이적료는 5천만 파운드 이상이고요. 이적 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5, 5천만이요?”

동민의 말에 레이미 볼든의 눈이 커졌다. 5천만 파운드 이상, 한화로 700억 원이 넘는 이적료가 예상된다는 동민의 말은 그가 생각한 것을 넘어서는 액수였다.

“네. 박주현과 함께 좌우를 오가며 공격을 이끌어낼 선수가 한 명, 중원의 무게감을 더해줄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팀의 뒷문을 단단히 잠가줄 센터백. 이 세 명은 필수적입니다. 세 명 모두 확실하게 실력이 보장된 선수들이어야 하고요. 그리고 된다면 측면 수비수까지도.”

동민은 그의 말에 놀라 경직되어 있는 레이미 볼든에게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그가 보기에 지금 베이포트 FC의 스쿼드는 도저히 챔피언스 리그와 리그를 병행하면서 진행하기에 너무도 부족했다.

“…현재 멤버가 그렇게 부족한가요?”

레이미 볼든은 가늘게 눈을 뜨면서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이미 아까 전과 같은 장난기는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이번 시즌도 FA컵과 리그 컵 등 다른 대회들에서는 최대한 선수들이 무리하지 않게끔 경기를 운용하면서 리그에 전부 걸어 얻은 결과입니다. 그래서 리그에서는 4위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FA컵과 리그 컵에서는 그다지 대단한 성적을 얻지 못한 거고요. 만약 우리 팀의 얇은 선수층으로 더 많은 대회들을 노렸다면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동민은 어디까지나 냉철했다. 이번 시즌의 좋은 결과가 어디까지나 리그에만 집중한 결과이며, 선수들의 연이은 이탈이 있기는 했지만 시즌 전체로 보면 부상자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일 이번 시즌의 결과에 만족하고 큰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챔피언스 리그에 나선다면, 더 많아진 경기 수와 강팀들과의 경기에 리그 순위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것은 좋습니다. 팀이 발전하는 것 또한 제가 바라는 일이고요. 하지만 그렇게 큰돈까지 들여가면서 챔피언스 리그를 준비하다가 만일 다음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예선에서 패하거나, 본선에서 조별 리그에 머무를 경우에는 너무나도 리스크가 클 텐데요.”

레이미 볼든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의 말 또한 타당했다. 그는 팀의 발전을 위해서 돈을 투자하는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팀의 구단주이기 전에 그는 팬이었고, 팀이 더욱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것은 그가 바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큰 투자를 하고도 만에 하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 후폭풍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 경우에는, 이죠. 그렇지 않으면 아무 상관없잖아요? 게다가 그런 투자가 없다면 무너지는 것은 확실해집니다. 투자를 하고 실패할 위험을 감수할지, 투자가 없이 확실하게 무너질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레이미 볼든의 걱정에도 동민은 확실한 어투로 말했다. 동민의 단호한 태도에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한참 동안의 침묵이 지나고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레이미 볼든이었다.

“알겠어요. 구단에서도 최대한의 지원을 해보도록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어떤 것 말씀이시죠?”

레이미 볼든은 진지한 눈으로 동민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선수 영입을 하면서 노리는 것이 어느 정도 수준인 거죠? 그저 단순하게 챔피언스 리그 진출로 인한 전력 보강이라고 보기에는 이렇게까지 빠르게 나에게 와서 이야기를 하진 않을 것 같은 데다가 이야기하는 규모를 보면 너무나도 커요.”

레이미 볼든은 거기서 말을 한 번 끊고 동민을 바라보았다.

5천만 파운드 이상이라는 큰돈은 베이포트 FC와 같은 팀에게 쉽게 나올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그만큼의 이적료가 들 정도의 영입들을 요구하는 동민의 모습은 그가 그저 챔피언스 리그 진출로 인한 전력 강화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이적료에 대한 예상도 했을 정도라면 어떤 선수들을 데려올지도 이미 생각을 마쳤다는 거겠죠. 말해줘요. 무엇을 목표로 하기에 그만큼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거죠?”

그렇게 말하는 레이미 볼든의 모습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 시즌 승격을 하면서 박주현, 폴 맥마흔, 아르센 디아라, 세 명의 선수를 영입하며 시즌을 시작했던 동민이다. 그 세 선수를 영입할 때에는 워크 퍼밋을 위해 천만 파운드 이상의 이적료가 필요한 박주현을 제외하고 모두 싼값에 데려온 선수들이었다. 그런 선수 보강만으로도 프리미어리그라는 치열한 전장에서 4위를 거머쥔 동민이다.

그랬던 동민이 다음 시즌을 앞두고 5천만 파운드 이상의 이적료가 필요하다고 하다니 얼마나 큰 목표를 가지고 있을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목표 말인가요?”

레이미 볼든의 말에 동민은 이상한 것을 물어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챔피언스 리그 꼭대기죠, 우승.”

상식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이 동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말은 마치 기어가듯 천천히 레이미 볼든의 귀로 흘러 들어갔다. 레이미 볼든은 자신이 들은 말이 잘못되었거나, 혹은 그의 말이 농담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을 내뱉는 동민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뭐라고요?”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으니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어느 팀이든 그렇듯이.”

멍하니 되물었지만 동민의 말은 같았다.

유럽 최고의 팀들이 득실거리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챔피언스 리그는커녕 유럽 대항전 자체에 처음 출전하는 베이포트 FC가 우승을 노리겠다니, 미친 소리나 다름없었다. 수학적인 가능성이야 물론 아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르다는 것을 베이포트 FC의 팬인 레이미 볼든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대도 눈앞의 사내는 우승을 목표로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농담이죠?”

“그럴 리가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동민은 답했다.

조금의 농담도, 과장도 없이 그는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레이미 볼든은 그가 진심으로 챔피언스 리스의 우승을 노린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뿐이었다. 지난 시즌까지 2부 리그에 머물던 팀이, 이번 시즌에 처음 4위를 기록하면서 챔피언스 리그 예선 티켓을 따낸 팀이 우승을 노리겠다는 말을 들은 레이미 볼든은 동민의 말을 헛소리라며 무시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난해, 2위로 승격하면서 지금껏 팀을 이끌던 감독이 건강 문제로 바뀌고 그 자리를 20대의 어린 감독이 채웠다. 그때 누군가 그들이 쟁쟁한 팀들을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4위권에 오를 거라고 말했다면 지금처럼 미친 소리라며 일축했을 것이다. 혹은 그들이 스톡포트 시티와 같은 강팀을 잡아낼 수 있다고 했다면 농담은 그만두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모두 해냈다. 상식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을 이번 시즌에 착실히 해왔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나야만 가능한 상황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냈지. 그렇다면…….’

강동민은 이번 시즌 베이포트 FC에서 기적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또다시 이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공은 둥글다는 말처럼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것이 축구다. 가장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세계 최고의 강팀이라고 해도, 그저 동네에서 공을 차는 꼬마들이라 해도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누구나 승자도, 패자도 될 수 있는 것이 스포츠다.

만일 동민의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레이미 볼든은 코웃음을 쳤겠지만, 동민이 이번 시즌 보여준 모습은 그저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화려하게 빛났다.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큰 무대에서 더 큰 기적을 다시 한번 보여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레이미 볼든의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결국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레이미 볼든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래서 영입하고 싶은 선수들이 누구죠?”

레이미 볼든은 동민이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신기루에 속아보기로 결정했다.

이번 시즌에 동민이 만들어낸 빛나는 기적을 본 이상 다시 한번 믿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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