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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의 마지막 경기 (199/270)

시즌의 마지막 경기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 이후로 베이포트 FC는 탄력을 받은 듯 시즌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후 무패 행진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한차례 패배를 맛보았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전에서 0 대 0의 무승부를 거두고 모리스톤 타운 AFC를 다시 한번 잡아내는 등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스톡포트 시티전을 기점으로 성적이 떨어질 거라던 전문가들의 예측이 무색하게 그들은 확실한 집중력으로 경기들을 잡아내며 대중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시즌의 막바지는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 한 경기 남았는데 대패하지만 않으면 4위에 안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시즌에 이 정도 성적인 것도 기쁘지만 이대로만 가면 다음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게 잘 믿기질 않아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 지었다. 승격된 시즌에 쟁쟁한 팀들을 제치고 4위라고 하는 대단한 성적을 거둔 것도, 다음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라고 하는 최고의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동민에게는 꿈만 같았다.

“본인이 한 일을 못 믿으면 안 되죠. 거기다가 그런 이야기를 그저 그랬던 2부 리그 감독 앞에서 말하면 그냥 놀리는 걸로밖에 못 받아들일지도 모르는데요.”

“앨런,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동민은 앨런 휴즈의 장난 섞인 야유에 당황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동민의 반응을 보고 앨런 휴즈는 침상 위에서 크게 웃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렇게까지 반응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무리 내가 2부 리그의 그저 그런 감독이라는 말이 사실이어도 당신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삐뚤어진 쪽으로 알아듣진 않아요.”

그런 앨런 휴즈의 말에도 동민의 표정은 그리 밝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런 이야긴 하지 말아주세요. 진짜로 등골이 오싹하니까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병실 생활이 길어지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거나,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 말을 하면 혹시나 병실 생활 때문에 마음 약해지신 건지 아니면 농담인지 잘 구분이 안 간다고요. 저는 앨런 당신이 좀 더 기운이 났으면 해서 온 건데, 당신이 만약 그렇게 느낀다면 못 올 것 같단 말이에요.”

풀 죽은 듯한, 그렇지만 침착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는 제자의 모습에 앨런 휴즈도 잠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앨런 휴즈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렇게 신경 써주는 건 필요 없어요. 챔피언스 리그에 간 적은 없어도, 프리미어리그에서 당신만큼 좋은 성적을 낸 적은 없어도, 나 스스로를 당신과 비교해서 그렇게 비하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앨런 휴즈의 말에 동민은 속으로 안도했다. 그런 동민의 표정을 보면서 앨런 휴즈는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승격 첫 시즌부터 대단한 성적을 거두었고, 나이, 그리고 다른 팀과 매스컴에서의 주목성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활약도 더 기대가 되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단 한 가지, 당신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을 난 경험했으니까요.”

“네?”

동민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되물었다.

그런 동민의 표정을 보면서 앨런 휴즈는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밑에 있었던 팀의 일원이 자신을 뛰어넘는다는 경험이요. 자신이 팀을 맡아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과도, 자신의 밑에서 성장한 선수가 세계적인 월드 클래스 선수로 커가는 것과도 다른 뿌듯함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짓는 앨런 휴즈를 보면서 동민은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역시 이 사람에게 말로 이기는 날은 오기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렇게 비행기 태워도 아무 것도 안 나와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두 번째 스승이라 할 만한 앨런 휴즈에게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받은 그는 그런 반응밖에 보일 수 없었다. 그런 동민을 보면서 앨런 휴즈는 쿡쿡대며 웃고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중요한 소식이 있었는데 이야기하는 걸 깜빡했네요.”

“뭐가요? 무슨 일 있었어요?”

동민의 표정은 곧바로 변해서 앨런 휴즈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병이 더 악화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닐지 신경이 곤두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들어오면서 간호사들이 내 쪽을 보며 자신들끼리 뭔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설마 병세가 안 좋아졌다든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앨런이야 언제든 아무렇지 않게 뭔가 숨길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동민은 불안한 눈으로 앨런 휴즈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 한마디로 잔뜩 긴장한 동민의 표정을 보던 앨런 휴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얼마 전 수술 후 상당히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해서요. 아마 다음 주 쯤이면 퇴원 후 통원 치료로 넘어갈 것 같아요. 좋은 소식이죠?”

“앨런!”

이번에야말로 동민은 일어서면서 안도의 한숨과 분노의 노호를 동시에 터뜨린다고 하는 신기한 재주를 펼쳐보였다.

“하아, 정말로 한 번 올 때마다 10년 이상씩은 늙는 기분이에요. 다리에 힘이 확 풀리네.”

동민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자신의 첫 스승이었던 병렬은 무뚝뚝하고 입이 험한 구석이 있었다면, 두 번째 스승이라 할 만한 앨런 휴즈는 말 한마디로 그를 들었다 놨다 하는 구석이 있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스승들은 꼭 하나씩 비틀린 부분이 있는 거냐며 동민은 머리를 붙잡았다.

“그렇게 반응이 좋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장난을 그만두질 못하는 게 아닐까요?”

킥킥대는 앨런 휴즈를 보면서 동민은 현재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떠올렸다. 수석 코치인 브라운 키드는 지금껏 그랬듯이 진지함과 농담을 넘나들면서 그를 농락했고, 샐리는 갑자기 쿡 찌르는 말로 그를 당황시켰다. 게다가 예전에는 조용하고 얌전하던 주현마저 요즘 그에게 은근슬쩍 장난을 걸어오고 있으니 앨런 휴즈가 있을 때보다 오히려 그에게 장난을 거는 사람은 늘어난 상황이었다.

‘필립 보고 장난치고 싶어지는 주위 사람들이랑 비슷한 건가. 어쩌면 그 녀석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이 동질감이었을지도 모르겠네.’

동민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더욱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간호사들한테도 그런 소식은 전혀 못 들었는데.”

동민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앨런 휴즈에게 물었다. 그 정도의 소식이라면 자신이 들어오면서 간호사들에게 슬쩍 이야기를 들을 만도 했지만, 전혀 들은 것이 없었다.

꼬박꼬박 앨런 휴즈의 병문안을 오는 그는 어느새 병원의 간호사들에게도 꽤나 알려진 상태였는데 그런 이야기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했거든요.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동민의 의문은 앨런 휴즈의 말 한마디로 깔끔하게 풀렸다. 그리고 동시에 병실로 오면서 그를 보고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던 간호사들에 대한 궁금증도 단숨에 해결되었다. 모두 앨런 휴즈가 간호사들에게까지 부탁해 가며 공들인 탓이었다는 이야기다.

“하아, 진짜. 앨런 당신은 정말이지…….”

동민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어쨌든 좋은 소식이잖아요. 다음 주에 있을 리그 마지막 경기를 보러 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의 말에 동민은 튕기듯 의자에서 일어났다.

“보러 올 거예요?”

“당연하죠. 통원 치료면 어차피 집에 있을 테고, 담당 의사에게도 이미 물어봤으니까 문제없어요. 사실은 이것도 알리지 않고 몰래 가고 싶었지만, 이것까지 그랬다가는 정말로 당신이 화낼 거라고 주위에서 말리더군요.”

“…만약 그랬다면 당신 집에 술 취한 브라운 수석 코치를 보냈을걸요.”

동민은 주책바가지라는 표현을 어떻게 하면 영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 한참 동안 고민하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으르렁대면서 그에게 불평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의 투닥거림이 끝나고,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은 동민은 잔뜩 의욕이 생긴 말투로 말했다.

“어쨌든 만약 그 경기에 온다고 하면 더욱 질 수 없는 이유가 생겼네요. 당신에게 ‘제’ 베이포트 FC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첫 기회니까요.”

동민이 감독을 맡고 시즌을 치르면서 앨런 휴즈가 직접 경기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 입원했을 때 생각보다 건강이 악화되어 있던 탓에 병실 생활이 길어졌고, 때문에 그가 직접 경기장에 나서는 일은 오지 않았다. 그 탓에 그가 올 시즌 베이포트 FC의 경기를 보는 일은 오직 TV나 노트북을 통해서 영상을 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랬던 앨런 휴즈가 직접 경기장으로 찾아온다는 말은 앨런 휴즈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것 이상으로 동민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제야 직접 보여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승격 시즌에 4위도, 다음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예선 티켓을 손에 쥐는 것도 모두 큰 의미가 있었지만 드디어 앨런 휴즈에게 지금의 베이포트 FC를 보여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앨런에게 물려받은 팀을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다고 보여주면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오랜 시간 동안 앨런 휴즈의 밑에서 배우지 못하고 그의 건강 문제로 갑작스레 베이포트 FC를 맡게 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동민은 이제야 직접 그에게 보여줄 수 있다며 한 짐을 털어낸 느낌이었다.

“그렇게 되네요. 그러니 이겼으면 좋겠는데요. 대승까지는 안 바라지만. 그렇지 않아도 홈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니까요. 조용한 병실에만 있다 보니 팬들의 시끄러운 함성이 그리워졌거든요. 특히 경기에 이겼을 때 들리던 열정적인 소리가요.”

어느 정도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결국 앨런 휴즈의 말은 간단했다. 자신이 가는 이상, 마지막 경기는 꼭 승리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하던 것 이상으로 더 좋은 모습을 자신에게, 그리고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열정적인 응원을 해주는 팬들에게 보여주라는 뜻이었다.

그것을 알아들은 동민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맹세컨대 분명히 들으실 수 있을걸요. 관중석에서 고막이 터질 정도로 말이에요. 아, 물론 아쉽지만 벤치에서는 안 됩니다. 이미 저한테 넘겨주신 자리니까 줬다가 뺏는 건 반칙이에요.”

동민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앨런 휴즈 또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사람은 그 말을 끝으로 다음 주 경기 때 보자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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