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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해서(3) (197/270)
  • 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해서(3)

    벤 로이터의 선제골 직후 울린 심판의 휘슬로 전반전이 끝나고, 다비드 페레즈는 굳은 표정으로 라커 룸을 향했다.

    ‘어떤 전술을 들고 나올지 그 점에 대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전술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런 절묘한 타이밍에 걸다니. 정말로 생각 못 했어.’

    전반전이 10여 분 남았던 애매한 시각에 교체 카드 한 장을 써가면서 도박수를 걸어오는 것은 제아무리 다비드 페레즈라고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경기 전, 베이포트 FC와 강동민이 이번에는 자신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경기를 준비했을지 고민하던 그였지만, 동민이 그가 따라오지 못할 타이밍을 보고 날카롭게 찔러 들어온 것은 예상 밖의 실책이었다.

    ‘전혀 다른 타입의 공격수를 넣으면서 빠르게 대응하기 곤란한 방법으로, 선수들의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전반전 막판에 도박수를 던지다니. 역시 강동민은 제정신이 아니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최전방 공격수의 측면 기용과, 한순간이지만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 중 두 명이 모두 골문 쪽으로 침투하게 만드는 플레이는 도박수라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전반전이 끝나갈수록 집중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은 스톡포트 시티뿐만 아니라 베이포트 FC도 마찬가지이며, 그런 시점에 그렇게 큰 전술 변화를 급격하게 시도하는 것은 되려 실책이 나오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과감한 플레이였다.

    베이포트 FC가 한 일은 마치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브레이크를 없애고엑셀 만을 밟는 자동차와도 같았다.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서 던진 도박수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스스로 무너져 대형 참사가 날 수도 있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 타이밍에 찔러 들어와야만 내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전반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로 마무리 짓고, 후반전에 확실하게 대비할 거라고… 이건 정말로 한방 먹었어.’

    지난 1차전에서 그가 먼저 시도하던 계속된 전술 변화에 거의 뒤떨어지지 않고 따라가던 다비드 페레즈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던 동민은 이번에는 아예 따라잡지 못할 타이밍을 고른 것이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 선수들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배짱, 자신의 전술이 먹혀 들어갈 거라는 신뢰. 다비드 페레즈의 눈에는 베이포트 FC의 움직임에서 그 세 가지가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였다.

    다비드 페레즈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강동민은 그의 전술을 위협하는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한 방 얻어맞은 채로 끝내진 않을 거니까.”

    다비드 페레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눈빛에서는 상대에게 당했다는 당황이나 분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이 경기를 곧바로 원점으로 돌리고, 그를 넘어서 이길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선제골이 터져서 다행이야. 만약 여기서 제대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꽤나 곤란할 뻔했어.’

    동민은 전반전이 끝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전반전 동안 야야 둠베흐에게 지나칠 정도의 활동량을 요구하면서 공수 양면으로 뛰라고 한 이유도 에딘 페트로비치의 투입 후 강하게 상대를 밀어붙이기 위해서였다. 야야 둠베흐가 많이 뛰어줄수록 다른 선수들의 부담이 줄어들고, 체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상대적으로 덜 힘들었던 선수들, 특히 측면 자원의 지원을 받았던 필립 포덴과 벤 로이터가 에딘 페트로비치의 투입과 함께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중앙 미드필더의 적극적인 공격 지원은 결국 선제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선제골로 스코어는 앞서고 있지만 경기력 자체는 스톡포트 시티의 우위야. 게다가 다비드 페레즈는 후반전이 되면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아까와는 다르게 아예 우리를 짓누르려 들 테고…….”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은 30분가량을 방패를 뒤집어쓰고 버티다가 전반전이 끝나기 10분 전 갑자기 뛰쳐나와 상대를 한 방 찌른 정도였다. 한 번 찔린 정도로 스톡포트 시티가 휘청거릴 거라 기대할 만큼 동민은 헛된 기대를 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후반전에도 일단은 계획을 그대로 따라가야지.”

    동민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다비드 페레즈를 떠올렸다. 지금쯤 다비드 페레즈가 한 방 먹은 것에 놀라며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미소가 지어졌다.

    ‘이번 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스톡포트 시티를 일방적으로 끌고 가야 해. 경기력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입장에서. 따라잡히는 순간 끝이다.’

    양 팀 감독들에게 하프타임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다.

    두 사람은 하프타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후반전을 생각하고, 선수들에게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설명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동민은 자신들을 따라잡으려 하는 스톡포트 시티와 다비드 페레즈로부터 더욱 전술 변화의 주도권을 손에 쥐고 끌고 가기 위해서, 다비드 페레즈는 예상 밖의 사태에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서.

    그리고 두 팀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시 그라운드 위로 나섰다.

    ‘후반전에는 다르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레오나르도 다 실바는 이를 갈았다.

    전반전 내내 상대의 강한 수비 때문에 골로 이어지는 찬스를 만들지 못했고, 벤 로이터와의 몸싸움에서 밀리며 그를 자유롭게 둠으로써 선제골의 빌미가 된 사람 또한 그였다. 그에게 전반전은 답답함과 짜증 그 자체였다.

    ‘경기가 잘 안 풀리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오늘은 꼭 아슬아슬한 때에 막히니까 답답함이 두 배는 되는 것 같네.’

    전반전 동안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좌우 측면과 전방으로 공을 내주던 그였지만 정작 키패스가 되어야 할 중요 패스들은 닿기 직전에 끊기거나, 달려드는 상대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전반전 동안 도핑 검사가 필요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달리던 야야 둠베흐는 이상하리만치 그의 템포를 끊어댔다. 퍼스트 터치 한 번에 가볍게 제치나 했더니 뒤에서부터 달려와 마지막 순간에 슬라이딩 태클로 패스를 막아내는가 하면, 공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에 한 끗 차이로 그의 발끝에 걸려서 원하는 터치를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랬던 야야 둠베흐도 없고, 상대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페널티 박스로 침투를 노린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 우리는 그 빈 공간만 확실하게 노리면 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끊어낸 벤 리차즈가 내준 패스를 잡으며 전방을 훑어보았다. 최전방에서는 카를로스 모레노가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려 달리기 시작했고, 양 측면에서는 두 윙어가 전반전과는 달리, 넓게 벌리면서 공간을 열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레오나르도 다 실바는 우측면으로 빠르게 패스를 찔러 넣었다. 측면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이 아닌 로널드 조던이 윙인 이상, 측면을 막고 있는 것은 닉 베손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패스는 빠르게 우측면의 데이비드 존슨에게 연결되었고 원터치로 데이비드 존슨의 발을 떠난 크로스는 곧바로 중앙으로 쇄도하는 카를로스 모레노에게 연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새!’

    그 공은 카를로스 모레노에게 닿기 직전, 중앙에서 빠르게 측면으로 수비 지원을 나온 이안 페트로프의 발에 걸려 골라인을 넘어가고 말았다.

    ‘마이크 쪽으로 붙은 게 아니었나?’

    데이비드 존슨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안 페트로프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만 해도 약간 뒤에서 쇄도하던 마이크 반 데부르의 앞쪽에서 뛰고 있던 그를 보고, 데이비드 존슨은 마이크 반 데부르 대신 카를로스 모레노에게 패스하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이안 페트로프는 마이크 반 데부르를 마크하는 대신 중앙에 올라올 크로스를 경계하러 내려온 것이다.

    ‘거기에 분명히 이안 페트로프는 발이 그리 빠르지 않았는데 어느새…….’

    경기 전, 다비드 페레즈는 베이포트 FC 선수들의 특징을 말하면서 이안 페트로프가 수비적인 면에서는 단단하지만 그만큼 속도나 반응이 느리다는 점을 언급했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카를로스 모레노 쪽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방금 이안 페트로프의 모습은 다비드 페레즈가 언급하고, 그가 예상한 모습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중앙으로 올라가는 땅볼 크로스를 몸을 던져 막아내는 것은 반응 속도나 발이 느린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코너킥을 준비하러 중앙으로 달리면서도 데이비드 존슨의 머리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휴, 이안 페트로프가 살렸구나.”

    그 모습을 보면서 동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처럼 중원을 거쳐 순식간에 이어지는 패스는 후반전 베이포트 FC가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 공격 중 하나였다.

    ‘이안 페트로프의 컨디션이 강화되지 않았거나, 마이크 반 데부르에게서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언제든 안쪽을 커버할 수 있게, 하란 말을 안 했더라면 방금도 굉장히 위험했어.’

    전반전 시작 직후, 동민이 컨디션을 강화한 사람은 둘이었다. 전반전 초중반 동안 상대의 기를 꺾고 분위기를 가져갈 야야 둠베흐, 그리고 오늘 경기 전반전으로 팀플레이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이안 페트로프.

    평소 그런 역할이 아니던 그에게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부담스러울 수 있었지만, 오늘 경기에선 어쩔 수 없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가 흔들리는 순간 마이크 반 데부르와 레오나르도 다 실바는 더 날뛸 테니까.’

    동민은 그 생각으로 2명밖에 할 수 없는 컨디션 강화의 대상 중 한 명으로 이안 페트로프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방금 빛을 발했다.

    ‘후반전에 시간이 흐를수록 스톡포트 시티의 공격은 더욱 강해질 테니까 이안 페트로프가 있는 자리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져갈 거야. 다른 선수가 아닌, 그의 컨디션을 손본 것은 확실히 좋은 선택이었어.’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베이포트 FC가 스톡포트 시티의 코너킥을 걷어내는 것을 보았다. 동민의 생각처럼 스톡포트 시티는 후반전 시작부터 중원을 짧게 거치는 빠른 패스들로 베이포트 FC를 몰아치기 시작했고, 베이포트 FC는 이안 페트로프의 활약으로 힘겹게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를 보는 관객들은 지금 상태로는 스톡포트 시티의 동점 골은 시간문제라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상대가 저 약점을 찌르기 전에 슬슬 손을 볼 차례야.’

    동민은 상대의 공격이 점점 거세지는 후반전 시작 10분 만에 두 번째 교체 카드를 빼어 들었다.

    “해리 맥스웰?”

    대기심이 교체를 위해 손에 높이 올려든 것을 보고 한 관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톡포트 시티가 완전히 가둬놓고 두들기는 상황에서 로널드 조던을 빼고 해리 맥스웰을 투입한 것이다.

    부상으로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던 베이포트 FC의 부 주장은 그렇게 홈 팬들의 환호를 들으면서 교체로 경기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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