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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해서(1) (195/270)
  • 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해서(1)

    “그의 말이 맞습니다. 베이포트 FC가 우리를 꺾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베이포트 FC는 강한 팀이고, 지난번에는 우리 홈에서 우리를 거의 꺾을 뻔했는데 이번에는 그들의 홈에서 경기를 하니까요.”

    동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다비드 페레즈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 또한 그렇게 상대를 높이 사면서도 작은 도발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저는 우리가 승리를 거둘 거라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은 저 또한 마찬가지고, 베이포트 FC에게 지는 법을 강의받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 말로 기자회견을 끝내고 나오면서 다비드 페레즈는 웃음 짓고 있었다.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이 더 높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니. 역시 참 재밌는 친구야.’

    베이포트 FC의 강동민은 여러모로 그의 흥미를 끌었다.

    처음 경기에서 맞붙을 때에는 꽤나 특이한 전략으로 흥미와 동시에 경계하게 되었다. 매 경기마다 카멜레온처럼 완전히 달라지는 전술은 다비드 페레즈라 해도 대응하기 껄끄러웠고,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빠르게 약점을 찾아 파고드는 모습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 경기 이후, 다비드 페레즈에게 강동민은 위협적인 상대로 인식되었다.

    베이포트 FC가 한창 슬럼프에 빠지고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는 정말로 상대에 따라서 매 경기마다 전술을 맞추는 방식이라는 점에 놀랐다. 동시에 단지 보는 것만으로 어떤 선수가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그 시프트를 성공시킨다는 점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그리고 지금, 다비드 페레즈에게 강동민은 젊지만 재능 있는 감독이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시도하지 않을 방법을 시도하는 미치광이였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매번 상대에 따라 전술을 바꾸면서 선수들이 따라와 줄 거라 생각할 리 없었다. 단순하게 말해서 그런 것을 시도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동민은 그것을 시도하고, 성공했다. 몇 차례 패배와 부진이 있기는 했지만 승격 팀이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실패했다고 평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두 가지의 상반된 평가는 다비드 페레즈로 하여금 강동민과 베이포트 FC와의 대결을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 여러 리그에서 그와 맞붙었던 마르코 알베스와 동급, 아니, 이상으로 동민은 흥미로운 상대였다.

    ‘이번 경기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나설지, 경기 전날인 지금까지도 확실하게는 예상이 잘되지 않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실하군. 그는 틀림없이 정신 나간 방식으로 날 넘어서려 할 테고, 나는 그걸 막겠지.’

    다비드 페레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주전 선수 두 명이 막 부상에서 복귀하고, 한 명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가 어떤 방식을 들고 나올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동민은 그런 상황에서도 이기기 위해서 싸우려 할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

    다비드 페레즈는 진심으로 경기가 기다려졌다.

    베이포트 FC의 홈구장인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평소보다도 많은 관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오늘의 상대는 리그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스톡포트 시티로, 진심으로 베이포트 FC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요 몇 년간 계속해서 강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던 스톡포트 시티지만, 이번 시즌은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공수를 막론하고 상대를 압도했고, 경기마다 평균 2골 이상 터지는 득점은 간판 공격수인 카를로스 모레노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선수들에게 고르게 분포되어서 그들이 얼마나 막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어느새 2위인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10점의 승점 차이를 보이고 있으면서 압도적인 우승 후보인 그들은 리그 최강의 팀, 그 자체였다. 지난 첫 번째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베이포트 FC지만 이번 경기에서 승리할 거라 기대하기는 힘들었고, 심지어 베이포트 FC의 팬들도 비기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저 몇몇 팬들만이 동민이 자신 있게 승리를 말했으니 혹시 모른다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조나단,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절대 눈을 떼지 말아요. 카를로스 모레노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지난번 상대했던 만큼 잘 알 테니까. 그리고 야야, 전반전 내내 당신 발이 멈추는 순간 게임 끝납니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지면 교체해 줄 테니 끝까지 압박해 줘요.”

    동민은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을 한 명씩 지목하면서 중요한 점들을 강조했다. 이 경기를 앞두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고 계속해서 연습한 것이지만, 실수가 나오면 그만큼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동민을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모두들 이 경기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우리가 질 것이 뻔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말했듯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남은 건 그걸 확실히 하는 것뿐이고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이길 수 있다고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이겨야만 한다고 압박감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저 지금까지 연습한 것만 그대로 해내면 이길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면 나갑시다. 이길 수 있는 경기는 이겨야죠.”

    동민은 그렇게 짧게 라커 룸 대화를 끝내고 그라운드를 향했다.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 명단만 보면 저번처럼 강하게 미드필더들을 압박해서 먼저 중원을 장악하려고 하는 건지도 몰라. 크리스 러셀과 해리 맥스웰 모두 벤치에 있긴 하지만 지금 중앙 미드필더로 나온 이안 페트로프나 벤 로이터에게 그런 임무를 맡겼을 수도 있고. 앞선 두 경기에서 꽤나 좋은 활약을 보이던 필립 포덴도 마찬가지야.’

    심판의 휘슬로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다비드 페레즈는 자신의 가슴이 기대감으로 두근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어릴 적에 마음에 드는 여자와 데이트를 갈 때처럼 상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자신은 어떻게 할지, 기대되고 동시에 긴장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리그에서 대치했던 마르코 알베스와의 경기에서 기대되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느낌이 달랐다. 마르코 알베스와의 대결에선 단단한 수비진을 구축하고 자신들의 경기를 계속하려는 그들을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뚫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베이포트 FC를 상대하는 것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대를 어떤 방식으로 누를지가 포인트였다.

    ‘마치 어릴 때로 돌아가서 크리스마스트리 밑의 선물 박스를 여는 것 같단 말이야. 어떤 게 나올지, 내가 생각한 것이 맞을지 하는 두근거림은 꼭 닮았어.’

    다비드 페레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선수 시절부터 그에게 매 경기는 짜릿한 흥분과 승리를 향한 열망을 주는 존재였고, 이는 감독이 된 후 더욱 커졌다. 경기를 준비하고, 선수들과 훈련하고, 상대 팀들을 이겨서 팀을 우승컵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런 그에게 동민과 베이포트 FC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그 즐거움을 증폭시켜 주는 존재였다.

    ‘자, 이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줘. 깜짝 놀랄 만큼 이상한 방식으로 날 놀라게 해달라고. 난 그걸 내 방식으로 붙잡아 눌러줄 테니까.’

    그것이 다비드 페레즈의 틀림없는 본심이었다.

    심판이 휘슬을 불면서 경기가 시작되고, 동민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조용히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 측면에는 야야 둠베흐와 피터 아일랜드, 중앙에는 이안 페트로프가 뒤를 받치고 벤 로이터와 필립 포덴. 원톱에는 로날드 조던, 수비 라인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포백. 이렇게 뻔해 보이는 선수진을 보면서 다비드 페레즈는 어떤 생각을 할까?’

    동민은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보면서 고민에 잠겨 있을 다비드 페레즈를 생각하고 킬킬거렸다. 오늘 동민이 들고 나온 전술은 전형적인 하위권 팀의 선수비 후 역습 전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래로 내려앉아서 수비를 하다가 발이 빠르거나 크로스가 정확한 양쪽 윙에서 빠르게 공을 내주면, 공격수가 그 공을 가지고 직접 골을 만들거나 오버래핑을 나온 미드필더에게 연결해주는 방식. 오늘 베이포트 FC의 전술을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본 바탕은 그게 맞으니까.’

    동민은 다비드 페레즈가 중원 싸움을 염두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 1차전에서 의외의 공략에 제법 골치가 아팠던 스톡포트 시티이고, 상대의 강점을 봉쇄하고 약점을 노리는 자신의 방법을 그가 아는 한 미리 대비를 하리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오늘 스톡포트 시티의 움직임은 정확하게 중원을 겨냥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넓게 벌려서 공격해 들어갈 공간을 넓히고, 패스를 받아 돌파할 준비를 하던 양쪽의 윙어가 모두 중앙으로 좁혀서 중원을 강하게 압박하려 했다.

    ‘생각 자체는 얼추 비슷했어. 어차피 다비드 페레즈와의 수 싸움에서 확실하게 이길 거라 생각한 건 아니고.’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를 앞두고 그는 자신이 다비드 페레즈를 이길 수 있는 점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전술의 창의성? 전술의 천재라는 말까지 듣는 다비드 페레즈다. 자신이 그와 동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선수들의 세세한 개인 전술? 스테이터스로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짜기는 하지만 상대 또한 명장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가 있었다.

    결국 오랜 고민 속에서 그가 떠올린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선수들을 보면서 경기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다는 점. 그 대응책을 짜내고, 그 대응책에 선수들이 따라올 수 있는지가 문제지만 일단 보는 것만은 내가 유리해.’

    다비드 페레즈를 상대로 반칙과도 같은 그의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결국에는 끊임없는 변화였다.

    90분간의 경기를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고, 전후반전을 다시 대략적인 시간으로 나누어 움직임을 달리 한다. 마치 과거로 돌아오기 전, 한창 집에 틀어박혀 있을 적에 했던 게임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을 바꾸어서 상대을 휘말리게 하는 방법이다.

    반칙과도 같은 능력을 가진 동민보다는 아니지만 알아채는 것이 빠른 다비드 페레즈를 막기 위해서는 더 빠르고 끊임없는 변화를 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우리가 스톡포트 시티를 따돌리는 것이 먼저일지, 아니면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먼저일지. 그게 이 경기의 승부를 가르게 될 거야.’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선수들에게 확실하게 준비시키기는 했지만, 그들이 제대로 따라와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듯, 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90분간 단 한 명만 실수해도 무너질 수 있는 필사적인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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