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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킬링, 그 두 번째 (194/270)

자이언트 킬링, 그 두 번째

1 대 0의 승리로 끝난 콜링험 와프전에서 필립 포덴이라는 새로운 보석을 발견한 베이포트 FC는, 힘겹지만 노리치 타운 AFC를 상대로 승리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다음 상대는 그런 식으로 승리를 가져가기에는 앞의 두 팀과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스톡포트 시티라… 다비드 페레즈와의 재대결에서 이번에는 승리를 거두고 싶지만…….’

스톡포트 시티의 홈구장인 우드뱅크 스타디움에서 벌어졌던 양 팀 간의 지난 첫 대결은, 경기 막바지에 터진 마이크 반 데부르의 골로 스톡포트 시티가 3 대 2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스톡포트 시티의 승리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경기는 동민에게는 미소를, 다비드 페레즈에게는 찜찜함을 안겨주었다. 경기 시작 전 스톡포트 시티의 압도적인 승리를 점치던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베이포트 FC가 오히려 근소하게나마 더 앞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민이 한창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의도야 어쨌든 그를 도와준 것도 다비드 페레즈였다.

동민은 저번의 패배와 도움에 대한 답례로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를 거두고 싶어 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닉 베손은 징계가 끝나고 복귀, 해리 맥스웰과 조나단 케인은 복귀전이 되겠지만 부상으로 빠져 있던 선수들에게 선발 풀타임을 맡기는 것도 위험성이 너무 크고, 무엇보다 박주현은 여전히 나오질 못하니까…….”

동민은 수첩에 현재 팀 선수들의 상태를 끼적거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해리 맥스웰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고민하던 중 필립 포덴이라는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두기는 했지만, 스톡포트 시티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스톡포트 시티가 정확히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미드필드 지역에서 밀린다면 승리는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것만은 확실해.’

스톡포트 시티가 자랑하는 두 명의 메짤라, 마이크 반 데부르와 레오나르도 다 실바는 공간이 열리고 자유가 주어질수록 상대팀을 끔찍할 정도로 몰아세울 수 있는 선수들이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패스를 주고받는 그들을 어떻게 막아내는지가 스톡포트 시티전의 열쇠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대를 묶으려면 공격진부터 수비진까지 모두 최고의 상태여도 쉬운 일이 아닌데, 주요 선수들의 상태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해리 맥스웰과 조나단 케인의 상태는 포인트를 써서 컨디션을 올려두면 괜찮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에는 다른 선수들을 올려둘 수 없어. 만약 그 두 사람에게 모든 컨디션 강화를 다 썼는데 다른 누군가가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동민의 머릿속에서는 스톡포트 시티의 중원을 막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베이포트 FC의 진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동민은 복잡해져 가는 머릿속을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고는 생각을 정리했다.

‘두 명밖에 해줄 수 없는 컨디션 강화를 누구에게 해줄 것인가. 1차전 때 크리스 러셀과 해리 맥스웰을 강화했던 것처럼 미드필더들에게 힘을 실어줄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지…….’

그날, 그는 여러 선수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지웠다 하면서 오랫동안 고민했다.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 전날, 동민은 숨을 고르고 스톡포트 시티전에 대한 기자회견장에 들어설 준비를 했다. 벌써 몇 번이나 해왔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꽤나 긴장하고 있었다.

‘대충 어떤 질문들이 올지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만… 겨우 기자회견인데도 이렇게 긴장되는 걸 보면 내가 신경을 많이 쓰긴 쓰고 있구나.’

지난 1차전에는 경기 전 기자회견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상대가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 중 하나이며, 베이포트 FC의 좋은 초반 행보를 망가뜨릴 수 있는 팀으로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어떻게 해야 상대의 약점을 노릴 수 있는지, 스톡포트 시티의 두 미드필더를 묶어놓을 방법은 무엇인지 정도밖에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스톡포트 시티의 감독인 다비드 페레즈가 얼마나 뛰어난 감독인지 직접 맞붙으면서 느꼈다. 게다가 아무리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면서 미이크 반 데부르와 레오나르도 다 실바를 틀어막았다고 생각해도, 단 한순간을 놓치면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아는 만큼 더 경계하게 된다는 거지. 그저 다른 경기를 보면서 정보로 아는 것과 직접 맞붙고 경험한 뒤에 아는 건 다르니까.’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섰다.

“저번 기자회견에서 이번 경기를 앞두고 팀의 주장인 조나단 케인과 부주장인 해리 맥스웰이 부상에서 복귀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내일 경기에서 선발로 볼 수 있을까요?”

기자들에게서 나온 첫 번째 질문은 역시 지금껏 부상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했던 조나단 케인과 해리 맥스웰에 관한 이야기였다. 베이포트 FC의 전력적인 부분이나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두 기둥 없이 스톡포트 시티전을 치르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경기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기자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민은 그 질문에 미리 생각해 두었던 답변을 꺼내 들었다.

“저는 언제나 마지막까지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몸 상태를 보고 결정합니다. 조나단과 해리 모두 동료들과 함께 팀 훈련에 참가할 정도로 회복되긴 했어요. 하지만 선발로 출전할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할지, 그도 아니면 결장할지는 내일까지 확인을 해봐야 할 거예요.”

두 사람의 경기 출전 여부는 동민 입장에서는 가능한 숨기고 싶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베이포트 FC의 입장에서 팀의 공수 모두에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불리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다비드 페레즈에게 최대한 정보를 내주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다비드 페레즈가 자신이 상대 전술을 카운터 치는 방향으로 전술을 짜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 또한 동민에게는 부담스러웠다.

‘그때 이야기했던 것 때문에 다비드 페레즈가 어떤 방식을 들고 나올지 제대로 감이 잡히질 않아.’

처음 맞붙었을 때는 상대는 동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반대로 동민은 예상 가능한 일방적인 관계였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그것이 바로 동민이 기자회견부터 긴장의 끝을 놓지 못하는 이유였다.

“콜링험 와프와 노리치 타운 AFC와의 경기에서 필립 포덴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요, 이번 경기에서도 그 재능 있는 선수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다음으로 들어온 질문은 두 경기 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준 필립 포덴에 대한 것이었다. 해리 맥스웰의 부상으로 공격 전개에 브레이크가 걸린 베이포트 FC의 궁여지책처럼 보이던 필립 포덴의 기용은, 어느새 언론에서 어린 스타의 탄생으로 비춰졌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내일 있을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선발로 나서고 어떤 선수가 벤치에 있을지는 모두 내일까지 선수들의 몸 상태를 확인한 이후에 결정할 겁니다. 경기는 내일 있을 것이고, 선수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제 일 중 하나니까요.”

이번에도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말로 넘어가는 동민을 보면서 기자들은 아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에도 조심스러운 답변이 대부분이었던 동민이지만, 이렇게 틀에 박힌 듯한 답변만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 동민은 철저하게 일정한 정보 이상은 공개하지 않겠다는 듯 조심스러운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 후 몇 차례의 질문이 더 나왔지만 동민은 그때마다 미리 준비했던 답변들로 일관하면서 완벽하게 불필요한 정보의 유출을 막아내고 있었다. 계속된 동민의 뻔한 답변에 지친 기자 한 사람이 약간은 가시가 돋친 말투로 물어왔다.

“지난번 대결에서 베이포트 FC는 선전했지만 결국 그 결과는 3 대 2의 역전패였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그 경기를 참고해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나요? 상대는 리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단 2패만을 기록한 스톡포트 시티 인데다 그때 활약했던 박주현 선수도 부상으로 출전할 수 없는 상태인데요.”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정보를 주지 않으려도 애써봐야 상대는 리그 1위의 스톡포트 시티가 아니냐, 는 베이포트 FC를 무시하는 듯한 시선과 짜증이 섞인 질문이었다.

꽤나 돌발적인 질문에 다른 기자들 또한 놀란 눈치가 역력했다. 그들은 동민이 이 질문에 뻔하게,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하겠다고 답변하거나 혹은 분노할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스톡포트 시티의 승리가 점쳐지는 경기라고 해도 이런 식의 질문은 그야말로 동민에게 하는 도발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장에는 잠시 긴장된 침묵이 흘렀고, 동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그러네요. 지난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에서 우린 충분히 좋은 기회들을 만들었고, 심지어 몇몇 순간에는 더 유리한 장면들을 만들긴 했지만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마지막까지 버틸 집중력이 부족했고, 결국에는 마이크 반 데부르가 결승골을 터뜨렸죠.”

동민의 반응은 그들이 생각한 반응과는 달랐다. 느릿한 말투로 그 질문을 던져온 기자의 말이 맞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의 100퍼센트 전력을 다했던 경기였고, 그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우리는 단순히 기세만으로는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하지만, 여러분들이 모두 그렇듯 저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한 번 졌던 상대를 상대로 또다시 패배하는 것은 굴욕이나 다름없죠.”

동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중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느릿하던 말투는 점점 속도가 붙었고, 그 속도에는 조금씩이지만 가시가 돋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비드 페레즈와 스톡포트 시티에게 반대로 지는 것을 알려주려고요. 이번 시즌에 단 2패밖에 안 했으니 한 번쯤 지는 걸 알려줘도 되지 않겠어요? 뭐, 우리 팀의 전력 중 박주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순히 가능성은 낮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전 오히려 우리 팀의 승률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 말은 리그 1위를 달리는 스톡포트 시티와 다비드 페레즈에 대한 동민의 도전장이자, 조금 전 무례한 질문을 던진 기자를 비꼬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가져올 파급력은 그 이상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리그 4위 경쟁을 이어가는 승격 팀이,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시즌 우승 팀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자부하는 말은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보기에는 제정신이 아닌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동민은 그 말을 시작으로 지난번에 성공하지 못했던 자이언트 킬링을 이번에야말로 성공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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