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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포덴, 퍼스트 팀 데뷔 (192/270)
  • 필립 포덴, 퍼스트 팀 데뷔

    “필립, 수고했어. 오늘 패스도 진짜 좋았어. 특히 후반전에 윌리 쪽으로 찔러 넣어준 패스는 최고였고.”

    “뭘. 다들 제대로 했으니 이긴 거지.”

    필립 포덴은 경기가 끝난 뒤 동료의 칭찬을 들으며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U18 팀으로 올라온 지 1년 하고도 반, 어느새 그는 U18 팀에서도 가장 중요한 선수들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루이스 웰링턴이 공을 끊어내고, 그가 경기를 풀어내면서 좌우 측면으로 패스를 뿌리면 양 측면이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확실한 찬스를 만든다. 그것이 베이포트 FC U18 팀의 필승 전략이었다.

    필립 포덴은 U18 팀에 올라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자신이 그 연결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하다 보면 몇 년 안에는 퍼스트 팀에서 뛸 수도 있지 않을까? 욕심이 너무 큰 건가.’

    그는 얼마 전 보았던 베이포트 FC 퍼스트 팀의 경기를 떠올렸다. 상대의 약점을 찌르는 공격과 상대의 플레이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수비, 그리고 정신없이 변화하는 전술을 따라 움직이는 선수들까지.

    그에게 베이포트 FC 퍼스트 팀의 경기는 리그 최고의 선수들 모습처럼, 언젠가 따라잡고 싶은 목표점이 되어 있었다.

    스톡포트 시티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처럼 화려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은 아니었지만, 착실하게 상대에게서 우위를 점하는 모습은 그런 강팀들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승격한 시즌에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고 있는 저 팀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그가 베이포트 FC라는 팀에 가진 팬심이었으며, 동시에 언젠가는 이 팀에서 프로 데뷔를 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나도 곧 그 사이에서 뛰고 싶은데. 개개인의 능력으로 경기를 이끌어가기보다는 팀 전체가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상대를 압도하는 움직임 속에 내가 위치한다면…….’

    그것이 필립 포덴의 바람이었다.

    그는 몇 년 뒤에는 퍼스트 팀에서 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경기장을 나가려던 순간 누군가 옆에서 부르는 것을 들었다.

    “필립 포덴 선수, 잠깐 이야기 좀 가능할까요?”

    “네?”

    고개를 돌린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조금 전까지 그가 꿈꾸고 있던 퍼스트 팀의 감독인 강동민이 서 있었다.

    “퍼스트 팀예요?”

    눈을 빛내며 물어오는 필립 포덴을 보면서 동민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이 어린 선수는 생각보다 의욕이 대단한 듯했다.

    “일단은 퍼스트 팀 훈련에 합류하고, 거기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1군으로 콜 업 시키고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너무 큰 부담을 가지지는 말고요. 요즘 플레이가 좋다고 제임스 워든 감독에게 들어서 당신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네, 네. 부담이라니요! 반드시 감독님 눈에 들어서 1군 데뷔 기회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아, 말 끊어서 죄송해요. 제가 흥분하면 성격이 급해지는 바람에…….”

    1군 데뷔의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대답했다가, 사과했다가 하며 정신없이 이야기 하는 필립 포덴을 보면서 동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에 병렬의 밑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를 꿈꾸던 자신이 필립 포덴의 눈에서 보인 것이다. 선수로서의 꿈을 꾸던 자신이 지금은 병렬과 같은 위치에 있고, 그 앞에는 과거의 강동민이 서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여러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뇨, 상관없죠. 그러면 수락한 걸로 생각할게요.”

    “네!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동민은 거듭 이야기하며 신이 나 달려가는 필립 포덴의 모습을 조금 눈부시다는 듯 바라보았다.

    ‘저 어린 선수가 퍼스트 팀에서는 얼마나 해줄지… 아니, 내가 얼마나 잘 쓸지가 문제구나.’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해리 맥스웰이 빠진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선수는 이제 두 명이 되었다. 그러나 그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그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지는 감독인 동민에게 달려 있었다.

    ‘체력이 떨어지는 벤 로이터와 번갈아 가면서 공격을 맡도록 할수 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으면 함께 내보내면서 부담을 줄일 수도 있겠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일단은 훈련에서의 모습을 보고 판단해야겠어.’

    동민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필립 포덴이 베이포트 FC의 한 축이 되어 여러 가지 전술적인 움직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퍼스트 팀인가. 확실히 다르네. 내가 이 선수들하고 같이 훈련을 하고 있다니, 언젠가는 퍼스트 팀에서 뛰는 게 꿈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이야!’

    필립 포덴은 감탄스러운 눈으로 같이 뛰고 있는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퍼스트 팀의 훈련은 자신이 해오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자신들이 기본적으로 어떤 전술을 할지 어떤 움직임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당장 다음 경기에서 할 방식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벤치 멤버를 포함한 미니 게임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를 가장 감탄스럽게 한 것은 그 상황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민의 피드백이었다.

    “그걸로는 안 됩니다. 신중한 것은 좋지만 너무 드는 시간이 많아요. 실전에서 그런 식으로 움직이다간 내줄 곳을 찾는 사이에 이미 둘러싸여 있을 가능성이 커요. 조금 위험하더라도 곧바로 연결시키지 않으면 너무 늦습니다.”

    “그렇지만 감독님, 보여주신 영상이나, 말씀하신 대로라면 여기서 측면으로 이어지는 패스는…….”

    동민은 선수들에게 어째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왜 움직임을 바꿔야 하는지 세세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했고, 선수들은 그런 동민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몸을 담고 있던 U18 팀과는 상당히 다른 광경이었다.

    그리고 필립 포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필립, 잠시만요.”

    “네!”

    “조금 전 전방으로 공을 보내려던 시도는 좋았어요. 하지만 무모했죠. 만약 당신이 조금 전과 같은 패스를 콜링험 와프를 상대로 한다고 해봅시다. 콜링험 와프의 중앙 수비수인 코너 호프와 닉 코바시치는 각각 195㎝, 191㎝의 장신이에요. 당신이 그런 패스를 시도한다면 그저 공을 내주는 상황에 불과할 가능성이 큽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까 전체적으로도 말했다시피, 급하게 나갈 필요가 전혀 없어요. 당신의 역할은 계속해서 위협적인 패스로 상대 수비수를 끌어오는 것이 주된 목표지, 마음이 급해서 그렇게 나서면 안 됩니다. 단순한 미니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부터 확실하게 누구를 상대하는지 알고 익숙해져야만 해요.”

    동민의 말에 필립 포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퍼스트 팀 선수들이 어떻게 계속해서 바뀌는 전술을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던 그는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퍼스트 팀에서의 훈련은 당장 다음 경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훈련 때의 움직임 하나부터 ‘상대 선수라면 이런 방식으로 움직일 테니, 그것에 맞춰서 저런 방식을 취하라’ 혹은 ‘네가 상대할 선수는 왼발잡이이니 의도적으로 우측을 공략하라’는 식으로 확실하게 타깃을 잡고 있었다. 그런 작은 것들부터 차곡차곡 쌓인 결과가 바로 경기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베이포트 FC의 모습인 것이다.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당장 다음 경기에 집중하는 방식이 차이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필립 포덴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휴식을 취하고. 필립, 당신은 잠깐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와주세요.”

    동민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훈련을 끝마쳤다. 평소와 같이 다음 상대인 콜링험 와프를 상정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춘 훈련이었다. 그러나 방금 있던 훈련에서 그의 생각을 사로잡은 것은 다음 경기에 대한 걱정이나 긴장이 아니라 필립 포덴이었다. 고작 17살의 그 어린 선수는 미니 게임에서 동민이 스테이터스를 보고 예상한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나, 달려드는 선수에게 조금도 겁먹지 않고 침착하게 공을 빼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17살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야.’

    물론 필립 포덴이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로 포텐을 가지고 있는 유망주라든가, 장점만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아까 지적한 것처럼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고 너무 모험적인 플레이를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스테이터스에 나온 것으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괜찮은 선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정도지, 세계 톱급의 유망주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단순히 스테이터스로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확실해. 퍼스트 팀 사이에서도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잘 어울리고 있어. 벤 로이터의 체력 관리 목적으로 후반 막판쯤에는 투입할 수 있을지 생각했지만 이렇게만 한다면 전혀 다르게 쓸 수도 있겠는데.’

    동민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계획을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연습에서 필립 포덴의 모습은 인상깊었다.

    “감독님,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아까 실수 때문에 그러신가요? 죄송합니다, 그 이후로는 조금 더 신중하게 하려고 했는데…….”

    동민에게 따로 불린 필립 포덴은 조금 전 훈련한 것 때문에 잔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걱정스럽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고 동민은 제임스 워든이 보여주었던 보고서를 떠올렸다.

    ‘U18 팀에서는 이런 성격 때문에 동료들 사이에서 장난을 많이 당한다고 했던가. 그야 이렇게 반응이 강하면 장난을 치고 싶을 수밖에 없겠어.’

    동민은 자신도 그를 놀려보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잠시 접어두었다. U18의 어린 선수들이 장난치는 것과 자신이 장난을 치는 것은 그 무게감이 전혀 다르다. 그것도 이 어린 선수에게는 더욱 심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동민은 짐직 화난 척하려던 굳은 얼굴을 풀고 입을 열었다.

    “아뇨, 그 이야기가 아니에요.”

    “다음부터는 경기가 잘 안 풀린다고 마음 급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신중하게… 네?”

    “오늘 보았던 당신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분명히 팀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거든요.”

    꼼짝없이 혼날 거라고 생각하던 필립 포덴은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로 동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 제가요?”

    “그럼요. U18 경기에서 본 것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이런 말을 경기 전에 미리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거기서 잠시 말을 끊었던 동민은 필립 포덴의 반응을 충분히 보고는 말을 이었다.

    “다음 경기인 콜링험 와프전에서 교체 선수로 당신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민은 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표정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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