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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8 팀과 어린 재능 (191/270)
  • U18 팀과 어린 재능

    ‘방법이 없을까…….’

    동민은 휴게실을 향해 걸으면서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닉 베손과 조나단 케인의 자리는 어떻게든 다른 선수들로 채울 수 있는 상황이다. 닉 베손이 있던 좌측 풀백은 불안하기는 하지만 후보 선수인 폴 타일러도 있고, 제임스 더커가 대신할 수도 있다. 또한 조나단 케인의 자리인 중앙 수비수 자리에는 키애런 허튼이 롭 코튼과 발을 맞출 수도 있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역할을 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해리 맥스웰과 박주현의 공백을 메워줄 선수가 마땅치 않다는 건데. 공백이 너무 커…….’

    두 선수 중 특히 해리 맥스웰은 베이포트 FC의 공격을 시작하는 선수로, 그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민이 가끔 해리 맥스웰이 아니라 이안 페트로프, 크리스 러셀, 아르센 디아라 등 다른 선수들로 중원을 구성할 때에는 반드시 벤 로이터나 박주현을 통해 그 역할을 나눠서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중원에서 공격을 지휘할 사령관과 좌우와 중앙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이끌어 나가는 돌격대장의 부재, 이는 공격 전개 자체가 힘이 빠지는 것을 의미했다.

    단순히 한 선수의 공백을 넘어서는 이 문제는 동민이라도 쉽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경기 정도는 벤 로이터에게 맡긴다고 해도 주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공격 진행을 그에게 전부 맡기는 건 부담이 너무 커.’

    벤 로이터가 아무리 나올 때마다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는 37세의 노장이다. 그가 언제까지나 계속 그런 활약을 보여준다는 보장도 없고,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언제 당장 폼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그런 것들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벤 로이터 혼자서 계속 공격을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이다.

    ‘체력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 1경기에 나서면 2경기 정도는 쉬거나 벤치에서 시작하게 했는데 2, 3경기를 풀타임으로 뛸 수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혼자서 공격을 다 이끌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껏 벤 로이터가 경기에 나설 때에는 언제나 박주현을 내리거나, 해리 맥스웰이 주가 되어 시작하는 공격 작업의 지원 역할을 맡기고는 했다. 그만큼 동민의 아래에서 벤 로이터가 혼자 공격의 시작점부터 마지막 패스까지 전부를 맡은 적은 없었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결국 동민은 최소한 해리 맥스웰의 복귀 경기로 예상되는 스톡포트 시티전 까지는 벤 로이터를 도울 수 있는 선수를 찾거나, 전술을 완전히 바꾸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아예 롱 볼이나 전달시키면서 로날드 조던의 스피드만 믿기에는 정확한 패스를 전해줄 선수도 애매하고, 무엇보다 가능성 낮은 복권을 긁는 거나 다름없는데… 벤 로이터와 아르센 디아라 두 명으로 어떻게든 해봐야 하나…….”

    동민이 중얼거리면서 복도를 걷고 있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어디에 가고 있어요?”

    “…그게 아니면 아예 측면으로만 승부를 보도록 양 사이드에서 최대한 빠르게 공을 운반시키면…….”

    “강?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야기도 못 듣고 있어요?”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느껴지고서야 동민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민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제임스? 무슨 일이에요?”

    베이포트 FC U18 팀의 감독이자, 한때 동민의 상사였던 제임스 워든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직접 와서 어린 선수들에 대한 보고서를 내달라고 했잖아요. 오늘 사무실에 찾아가겠다고 했었는데, 기억 안 나요?”

    “네? 어…….”

    제임스 워든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동민을 보았고, 그 표정에 동민은 급하게 자신의 기억 속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어렴풋이 무언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보스턴 레인저스와의 경기 후에 의욕이 넘쳐서 앞으로는 어린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고 했었지. 그래야 그 선수들이 퍼스트 팀에 들 수 있는 재능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내가 이야기해 놓고 정신이 없어서 깜빡 잊고 있었다.’

    게다가 사무실에 찾아오겠다고 한 것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주현의 부상이 확정되고 한참 머리가 복잡했던 상황에서 무슨 내용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전화를 받았던 것 같았다.

    ‘당장 다음 경기부터가 힘들어져서 그냥 대충 대답했던 것 같은데… 그게 제임스 워든의 전화였나.’

    동민은 한 번 생각에 빠지면 다른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스스로의 천성에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표정을 바꾸며 제임스 워든에게 대답했다.

    “아, 알죠. 그럼요. 어제 이야기했었죠? 지금 이야기를 듣기 전에 잠시 머리를 식히러 휴게실에 좀 가는 중이었거든요. 잊어버리거나 한 건 아니고요.”

    “…조금 전에 전화드렸었는데요. 좀 이따 가겠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지금 오라고 한 건 당신이었잖아요?”

    동민은 제임스 워든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전화가 또 왔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어… 미안해요. 지금 정신이 없어서요.”

    결국 동민은 더 이상 둘러대지 못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두 명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하나 고민 중이었어요. 당장 오늘 오후에 있을 훈련 때부터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을 확인해 보려고 하는데, 그래도 완벽하게 채우기는 힘드니까요. 거기다가 해리 맥스웰과 조나단 케인의 복귀가 스톡포트 시티전까지 확실해질지도 아직 미지수고요.”

    동민은 제임스 워든과 함께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서 제임스 워든과의 통화와 오늘 이야기를 듣기로 했던 것들을 아예 까맣게 잊고 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미 상황이야 잘 알고 있지만, 역시 한 번 생각에 빠지면 제대로 신경 못 쓰는 버릇은 여전하네요.”

    그런 동민의 말에 제임스 워든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아마 전화로 대답하면서도 정신은 딴 곳에 있었을 거예요. 다시 한번 사과할게요.”

    “아뇨, 괜찮아요. 당신이 그런 버릇이 있다는 건 U18 팀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 U18 팀의 비디오 분석관이 코치가 되고, 퍼스트 팀의 감독이 되었다고 갑자기 휙 바뀌진 않잖아요.”

    그는 동민의 사과를 가볍게 웃으며 흘려냈다.

    동민이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U18 팀에 있을 때에도 이런 친절한 태도와 발언 덕에 비교적 평안하게 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뭐,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때도 지적했던 문제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거지만요.”

    조금 전 이야기했던 것과는 반대로, 웃으면서 다시 찔러 들어오는 워든의 말에 동민은 대답 없이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쩌면 제가 지금 온 이유가 당신의 고민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제임스 워든은 그렇게 말하면서 조금 전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얼굴로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동민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되물었다.

    그의 고민은 해리 맥스웰과 박주현의 부상으로 공격 전개에서의 날카로움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대신할 다른 선수를 정하거나, 아니면 다른 전술을 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U18 팀의 감독인 제임스 워든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해리 맥스웰 선수처럼 공격 전개를 해줄 선수가 필요하다는 말이잖아요. 여기요.”

    제임스 워든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동민에게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이건…….”

    “U18 팀의 전체적인 보고서예요. 감독인 제가 직접 보면서 확인한 거고요. 그리고 당신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 테고요.”

    동민의 그의 말을 듣고는 빠르게 눈을 돌려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저 선수인가…….”

    동민은 베이포트 FC U18 팀과 포트베리 FC U18 팀의 경기 중 패스를 받아 측면으로 벌려주는 한 선수를 날카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필립 포덴]

    17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5.4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1.9 / 20

    선호하는 플레이: 공을 잡고 템포를 조절

    특성:

    장점 - 플레이메이커, 침착함

    단점 - 깃털 몸, 부정확한 태클

    현재 컨디션: 6/10

    ‘확실히 스테이터스 자체는 제임스 워든이 추천할 만한데. 과연…….’

    U18 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필립 포덴에게 퍼스트 팀에서 기회를 주자는 주장을 한 것은 U18 팀의 감독인 제임스 워든이었다.

    동민은 어제 제임스 워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필립 포덴, 이 선수가 지금 U18 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지난 시즌에 막 U18 팀으로 올라왔던 선수인데, 올라올 때만 해도 그냥 그런 선수라는 평이었지만 단 한 시즌 반 만에 U18 팀 최고의 유망주로 자리매김한 상태죠.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이 선수한테 기회를 줘보는 건 어때요?

    지난 시즌이면 동민이 딱 U18 팀에서 퍼스트 팀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였다. 제임스 워든의 말대로라면, 동민이 U18 팀 비디오 분석관으로 일할 때에는 주로 U18 팀에만 집중했었기에 필립 포덴을 볼 수 없었고, 그 뒤에는 퍼스트 팀에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없던 선수였다.

    자신이 기억하기에 지금 상황에서 U18 팀에서 퍼스트 팀으로 올려 쓸 만한 선수는 없었고, 그 때문에 U18 팀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동민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워든과의 대화에서 튀어나온 필립 포덴이라는 카드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지난 시즌에 U18 팀으로 올라왔으면서 한 시즌 반 만에 이 정도로 성장했다니, 내가 왜 몰랐을지 머리로 이해는 가지만 믿겨지지가 않네.’

    달려드는 상대 미드필더를 한 번의 볼터치로 여유롭게 제쳐내는,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맞지 않은 침착함을 보면서 동민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기술적인 면이나 체력, 체격적인 부분은 분명 퍼스트 팀의 성인 선수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불리하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상대를 바보처럼 만드는 센스와 집중력은 동민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저 정도면 단순히 벤 로이터와 함께 공격 전개를 맡아줄 정도가 아니라, 조금만 더 성장하면 퍼스트 팀의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어.’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더욱 필립 포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생각지 못한 재능의 선수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경기는 필립 포덴의 활약에 힘입어 2 대 1로 베이포트 FC U18 팀의 승리로 끝났다.

    그것을 보면서 동민은 필립 포덴을 퍼스트 팀에 합류시키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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