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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의 악령 (190/270)

부상의 악령

리그 타이틀과 대륙 대회 진출권, 그리고 강등을 두고 벌어지는 레이스는 길다. 그만큼 리그 중간에 생기는 사고들이나,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그런 변수를 좋아할 리 없었다. 핵심 선수의 부상이나 퇴장, 경고 누적 등은 그들이 바라던 그림을 어그러뜨려 놓거나, 완전히 망쳐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독 자신의 계획에 없는 일들은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동민 또한 다르지 않았다.

“…얼마나 걸릴 것 같다고요?”

동민은 제발 자신이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이길 바라면서 되물었다. 이성은 방금 들은 말이 확실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그 이성에게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적어도 5주에서 6주 이상은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검사 결과 허벅지 뒤쪽의 햄스트링에 문제가 발견되면서 꽤 오랫동안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리하게 경기에 내보내다가는 아예 근육이 파열되어 버릴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동민의 간절한 바람을 알지 못한 채, 팀 닥터인 래들리 해먼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도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선수의 부상을 알리는 일은 아무리 베이포트 FC의 팀 닥터인 그라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이 팀의 핵심 선수로 손꼽힐 만한 선수가 긴 시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할 거라는 소식이라면 더욱 그랬다.

“…하아, 알겠습니다. 경기에 나서지 못해서 괴로운 것은 선수 자신이 가장 심할 테니 가능하면 잘 위로해 주세요. 저도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고생했고, 고마워요. 해먼드.”

동민은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고는 래들리 해먼드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래들리 해먼드가 나간 후, 동민은 창문을 열어 연초의 차가운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애써 냉정을 되찾으려 했다.

선수들의 부상은 불행하지만 축구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부상으로 인해서 선수를 그만두었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감독의 길을 걷기로 한 이후부터는 그런 상황에서 위기를 맞지 않고 잘 넘기는 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연달아 몇 명이야, 대체. 이건 너무 심하잖아.”

그렇게 푸념을 내뱉는 동민의 침통한 목소리에는 딱히 누군가를 겨냥하지 않은 원망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보스턴 레인저스전과 몬머스 FC전을 시작으로 빡빡한 박싱 데이 일정을 좋은 성적으로 마친 베이포트 FC였지만, 그 직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베이포트 FC의 주장인 조나단 케인이 트레이닝 중 등 근육 부상으로 한 달가량을 결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다. 주장이자 수비의 핵인 조나단 케인의 부상은 팀의 큰 문제이긴 했지만, 대응할 수는 있었다. 동민은 그 상황에서도 풀백을 좁히거나 다른 선수들로 조나단 케인의 빈자리를 채우며 베이포트 FC가 단순히 한 명이 빠진다고 흔들리는 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조나단 케인의 부상은 시작에 불과했다.

조나단 케인이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빠진 경기에서 닉 베손이 경기 중 위험한 보복성 태클로 3경기 정지를 받았고, 해리 맥스웰도 발목을 심하게 접질려 앞으로 2, 3주간은 뛸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거기에 어제 경기가 끝나기 직전부터 불편함을 호소하던 주현이는 햄스트링이라… 무슨 이상한 귀신이라도 들렸나. 한 경기에서 1명 퇴장에 1명 부상, 그리고 바로 그다음 경기에 1명 또 부상. 합치면 고작 2주 만에 주전 선수 4명이 이탈하다니. 하아, 진짜 미치겠네. 굿이라도 해야 하나.”

수비진에서의 조나단 케인과 닉 베손, 중원에서의 해리 맥스웰, 그리고 공격진에서의 박주현, 모두 베이포트 FC에서도 중요한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이 적어도 앞으로 2주, 길면 6주가량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은 동민과 베이포트 FC의 입장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확실하게 정해진 베스트 11이 없는 베이포트 FC의 방식이라고 해도, 4명이나 되는 선수들이 부상과 징계 등으로 빠진 상황은 치명적인 것이다. 상대에 맞춰서 전술을 짜기에도 쉽지 않고 전술의 폭도 좁아질뿐더러, 다른 선수들이 대신 그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그들만큼의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동민의 능력을 발휘해도, 다른 팀들처럼 베이포트 FC 또한 부상 악령 앞에서는 무력했다.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주전급 선수들 중에서 4명이 빠지는 건 너무 심각해지는데.’

슬럼프의 극복 이후 언제나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던 동민의 입가가 오랜만에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자신의 능력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선수들의 부상 문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포인트가 남아도 정작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문제지. 설마 이렇게 짧은 기간에 대량으로 선수들이 이탈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냐고.’

그는 그렇게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힘을 빼고 책상에 엎드렸다. 그러나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진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긴 하지만 별수 없지. 아무리 스테이터스를 보거나, 선수들 컨디션을 올리고 특성을 바꿔도 부상 자체를 낫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서 일단 주현이 녀석이나 위로해 줘야지.’

동민의 발걸음은 오랜만에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미안…….”

그것이 동민을 보자마자 내뱉은 주현의 첫 말이었다.

조금 전 전체적인 검사가 다 끝나고 쉬고 있던 그는 동민이 찾아오자 낯빛을 어둡게 하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나단 케인과 해리 맥스웰의 부상, 닉 베손의 징계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 자신까지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에 걸렸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네가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도 아닌데, 어쩔 수 없지. 그냥 이번 기회에 잘 좀 쉬다가 멀쩡하게 복귀해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노려보자고.”

동민은 사과하는 주현을 보면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내뱉었다.

선수들 중에서 다치고 싶어서 다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계속된 부상으로 커리어의 반 이상을 부상으로 신음하는 선수도, 튼튼한 몸이 장점이라며 부상 없이 시즌 내내 뛰는 선수도 모두 경기에 뛰고 싶어 하는 것은 같다. 그것이 선수라는 것을 동민은 여러모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야지. 그런데 지금 한창 조나단이나 해리의 빈자리 때문에 형이 골치 썩고 있는 걸 아는데 이렇게 되니까. 그게 씁쓸한 거야. 그리고 내가 거기서 무리하게 확 뛰지만 않았어도…….”

주현은 조용히 말했다.

경기 도중 상대의 측면으로 빠지는 공을 잡기 위해서 급하게 전력 질주를 하려던 주현은 갑자기 왼쪽 허벅지 뒷부분에서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그 통증이 바로 햄스트링 부상이었다.

“그게 예방할 수 있는 부상도 아닌데 뭐. 그렇다고 네가 평소랑 다르게 과하게 뛰던 상황도 아니잖아. 원래 뛰던 것처럼 뛰었는데 운이 나빴던 거지, 결국.”

동민은 조금은 씁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주현이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기 전 준비 운동을 소홀히 했던 것도,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 뛰던 것보다 조금 더 열심히 뛰었고, 평소보다 조금 더 지쳐 있을 뿐이었다. 겨우 그 정도의 차이였지만, 그 차이가 불러온 결과는 부상이었다.

만약 주현의 부상이 예방할 수 있는 종류의 부상이었다면, 혹은 주현 개인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면 동민도 뭐라 잔소리를 해댔을 것이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보복성 태클을 한 닉 베손이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던 것과 같이, 동민의 사무실에 불려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것과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 주현이 일부러 의도한 것도 예방할 수 있던 일도 아닌, 정말로 운이 좋지 못했다고 할 일이었다.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동민은 그저 씁쓸하게 주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만들었던 교통사고가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듯, 지금 주현의 부상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냥 쉬면서 몸 관리나 잘 해둬. 지금 네가 말하는 거야말로 네가 나한테 말했던 쓸모없는 걱정이니까. 설마 내가 너나 다른 녀석들 몇 명 빠졌다고 낭패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동민은 아무렇지 않은 척 주현을 도발하며 웃었다.

이걸로 주현이 속아 넘어갈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더 이상 사과하는 일 없이 넘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감독님. 불운한 부상에서 하루 빨리 회복되어서 복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숨을 내쉬면서도 동민의 어설픈 연기에 맞춰주듯 대답한 주현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돌아가서 쉬고 있겠습니다. 감독님 말마따나 얼른 복귀하려면 휴식이 필수니까요.”

“그래. 쉬면서 얼른 복귀하는 거나 생각해. 너 돌아올 때쯤이면 4위가 문제가 아니라 3위로 챔피언스 리그 직행 티켓을 노리고 있을 테니까. 너 없는 동안 다른 녀석들 활약하는 거나 보면서 응원하고 있으라고.”

그 말을 끝으로 동민도 주현에게서 등을 돌리고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큰일은 큰일이네.’

다시 혼자가 된 동민은 이마를 짚고서 고민에 빠졌다.

주현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면서 말했지만 적어도 다음 경기인 콜링험 와프전과 그다음 경기인 노리치 타운 AFC전 두 경기까지 주전 선수 4명이 없는 채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경기에서 징계가 끝난 닉 베손은 돌아오지만, 해리 맥스웰이나 조나단 케인은 불투명하고, 박주현은 아예 복귀가 불가능할 텐데 상대는 하필 스톡포트 시티라니.’

2월 초로 예정되어 있던 스톡포트 시티와의 맞대결은 동민에게는 반드시 이겨서 다비드 페레즈에게 되갚아주고 싶은 경기였다. 그런 경기에서 100퍼센트가 아닌 상태로 만나는 것이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때 나름대로 조언을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은데… 이거 상황이 영 좋질 않네.’

아무리 이번에는 홈경기라지만 선수들이 모두 건강한 상태에서, 컨디션을 높이고서도 졌던 상대를 이런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이기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었다.

‘확실하게 뭔가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해. 스톡포트 시티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뿐만 아니라, 그 전의 콜링험 와프와 노리치 타운 AFC와의 경기를 위해서도 말이지.’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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