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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돌풍 (188/270)
  • 되살아난 돌풍

    “얘네는 왜 하필 우리랑 경기하기 직전에 이런대. 신경 쓰이게시리. 진짜 돌아버리겠네.”

    몬머스 FC의 감독 라이언 펠트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 것은 바로 며칠 후 만날 상대인 베이포트 FC였다. 충격적인 EPL 데뷔를 하던 시즌 초반과 다르게, 최근에는 힘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4 경기 동안 승리가 없던 그들이었다. 언론에서도 힘이 빠졌다고 표현할 만큼 매섭던 움직임은 그 힘을 잃었고, 날카롭던 전술은 붕 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 베이포트 FC의 모습은 곧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라이언 펠트의 입장에서는 호재가 따로 없었다. 기세등등한 베이포트 FC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한풀 꺾인 상태로 상대하는 것이 더 편했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우리랑 경기를 앞두고 저 난리를 치고 있냐는 거지.’

    그는 짜증스러운 눈으로 베이포트 FC와 보스턴 레인저스와의 경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 속 베이포트 FC의 모습은 언제 그들이 슬럼프에 빠졌냐는 듯 힘 있고 날카로웠다. 상대의 강점인 튼튼한 중앙 수비를 측면부터 헤집어서 양옆으로 벌리는가 하면, 단순히 속도로만 따지면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빠른 보스턴 레인저스의 공격을 시작점부터 완벽하게 끊어내고 있었다. 시즌 초, 각종 전문가들과 언론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던 베이포트 FC의 모습 그대로였다.

    바로 전 경기까지만 해도 그런 특징적인 모습들을 잃은 채, 무색무취의 전술과 움직임이라며 혹평을 받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결국 그들은 보스턴 레인저스를 5 대 1이라는 큰 점수 차로 누르고 승리를 차지했다. 경기 양상부터 결과까지 모두 베이포트 FC가 완벽하게 압도한 경기였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에게 패배한 이후 꽤 오랫동안 제 컨디션을 못 찾는 것 같더니 결국 우리랑 경기를 앞두고 이렇게 되는 건가. 이거 골치 아픈데.’

    라이언 펠트는 씁쓸한 얼굴로 모니터를 끄고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베이포트 FC가 최근 경기에 비해서 잘한 것도 있지만, 동시에 보스턴 레인저스가 흔들린 게 많기도 했어. 베이포트 FC가 측면에서부터 흔들기 시작하자 패스 미스가 쏟아져 나오는 것부터가 스스로 자멸했다는 느낌도 컸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걱정을 밀어냈다. 겨우 한 번의 경기로 베이포트 FC가 완전히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경기 상대인 보스턴 레인저스가 스스로 자멸하면서 그들을 경기를 내주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지도 몰랐다.

    “그래, 너무 오버하면서 걱정하지 말자. 겨우 한 경기잖아. 아무리 시즌 초 중반에 대단한 모습을 보였던 베이포트 FC라도 겨우 한 경기로 다시 돌아왔다느니 생각할 건 아니야.”

    입 밖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심호흡을 하자, 걱정이 조금이나마 더 옅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손이 긴장과 초조함으로 인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몬머스 FC와 베이포트 FC와의 경기가 벌어지는 브리큰돈 스타디움, 라이언 펠트는 그때 자신이 했던 생각을 후회하고 있었다.

    ‘뭐가 오버하면서 걱정하지 말자, 야! 이건 완전히 잘못 생각한 거잖아!’

    그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스스로의 실책에 이를 갈았다. 베이포트 FC와 보스턴 레인저스의 경기가 5대 1로 끝난 것은 결코 보스턴 레인저스가 혼자서 무너져 버렸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베이포트 FC가 완벽하게 그들을 무너뜨린 것이다. 지금 몬머스 FC를 짓누르고 있듯이.

    ‘전반전에 이른 선제골이라… 거기에 문제는 골을 내줬다는 상황만이 아니야.’

    전반전 40분이 조금 넘은 시각인데 어느새 전광판은 1 대 0이라는 점수 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그의 마음을 꺾고 있는 것은 단순한 점수 차가 아니라 경기 내용이었다. 경기를 리드하다가 실수로 한 골을 내주었다면 더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만회하면 된다. 비등비등하게 경기를 주고받는 상황에서 나온 선제골이라면, 쉽진 않지만 골을 넣고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탄 공격 전개나 역습을 이용해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밀리고 있는 경기에서 먼저 허용해 버린 선제골을 따라잡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완전히 경기 내용에서 따라가질 못하고 있으니까……’

    이번 경기를 앞두고 그가 가장 경계한 것은 베이포트 FC의 미드필더진이었다. 중앙에서 언제든 좋은 패스를 내줄 수 있는 해리 맥스웰이나, 측면에서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날카로운 침투패스를 찔러줄 수 있는 박주현과 같은 선수들은 몬머스 FC 입장에서는 경계 대상 1호에 가까웠다. 주전 중앙 수비수인 조 키튼이 부상으로 빠진 중앙이 헐거워질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라이언 펠트는 측면 수비수들을 안쪽으로 좁히면서 중원 싸움에 참여시키고, 선수들을 중앙으로 밀집시키면서 상대의 중원을 강하게 압박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베이포트 FC는 경기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몬머스 FC가 무엇을 노린 건지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경기 전체적으로 몬머스 FC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중원에서 공을 돌리면서 패스를 내줄 곳을 찾기보다는 측면으로 빠져서 침투해 들어가는 선수에게 후방에서부터 길게 공을 연결했고, 그 결과 몬머스 FC의 밀집된 중원은 본래 생각했던 것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를 압박하고, 그를 통해서 공을 뺏으려 중앙에 밀집한 선수들은 측면으로 빠지는 상대 공격수들과 후방에서부터 그들에게 향하는 패스에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앞으로 나가서 차단하기에는 패스의 시작점이 너무 깊었고, 뒤로 빠져서 공을 받는 선수에게 붙기에는 너무 멀었다.

    결국 이른 시간의 선제골 또한 그런 공격에서 나왔다.

    베이포트 FC의 해리 맥스웰이 센터백 바로 위쪽까지 내려와 좌측면으로 긴 패스를 넘겨주자, 그 공을 받은 박주현이 순간적으로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마크가 허술했던 에딘 페트로비치에게 짧은 패스를 내주었다. 그리고 에딘 페트로비치는 몸싸움으로 그 공을 지켜내면서 간결하게 골로 만들어낸 것이다.

    주전 중앙 수비수인 조 키튼 대신 나온 제임스 브라운의 허술한 마크와, 측면 공간을 내주었던 라이언 펠트의 전술, 그 두 자리를 모두 날카롭게 찌른 공격이었다.

    ‘베이포트 FC가 시즌 초부터 대응이 빠르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이 정도면 아예 처음부터 우리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던 게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야.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시즌 초에 있었던 베이포트 FC의 돌풍은 여러 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방식을 연구하려 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 한 명이었던 라이언 펠트는 당연히 베이포트 FC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베이포트 FC의 가장 무서운 점은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파고드는 움직임과 재빠른 변화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경기에서는 그들의 빠른 변화를 어떻게 상대해 낼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왔다.

    그러나 오늘 베이포트 FC의 반응은 그가 미리 알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빨랐다. 전반전 초반부터 이미 해리 맥스웰이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공을 측면으로 운반하기 시작했으니 그가 보기에는 처음부터 그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래서는 후반전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들겠는데……. 지금까지 터진 골이 단 한 골이라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정신없이 좌우로 흔들고 있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상황이 안 좋아.’

    라이언 펠트는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감독님 말이 맞았어. 확실히 측면으로 두드리니까 효과가 있네.’

    해리 맥스웰은 전반전이 2분 남았다고 알리는 대기심의 시계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전반전 시작 직후, 동민은 경기를 뛰고 있던 그를 불러내서 후방으로 내려온 뒤 측면을 노리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경기가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주려는 동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민이 그렇게 지시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상대는 풀백까지 중원에 밀고 들어오면서 강하게 미드필드 지역을 압박했고, 자신은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상대적으로 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시에 안쪽으로 좁힌 풀백이 남긴 공간을 이용해 측면으로 달리는 동료들에 의해 언뜻 보기에 단단했던 몬머스 FC의 전술은 완벽하게 무너져 버렸다.

    ‘근래 한 달 가까이 동안은 어딘가 빗나가기도 하더니 정말 자기 말대로 돌아온 건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를 포함해 지난 한 달 가까이 팀 전체가 흔들릴 때에는 동민의 판단도 어딘가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재빨리 변화를 주어야 할 때에 조금 더 시간을 두다가 이미 늦는 경우도 있었고, 혹은 이기는 상황에서 너무 조심스럽게 경기를 하려다가 분위기를 넘겨주고 뒤늦은 동점 골을 얻어맞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경기부터 동민은 달라졌다. 본인이 직접 저번 경기부터 다시 좋은 흐름을 만들어가자고 말했던 것을 이어가려는 듯 명확하게 상대를 분석하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지시를 내렸다.

    지난 시즌부터 보던 동민의 모습이 다시 살아나자 베이포트 FC의 선수들도 되살아날 수밖에 없었다.

    ‘저번 보스턴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도 그렇고 이제 완전히 돌아온 모양이네.’

    지난 한달가량, 무엇이 원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동민이 흔들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자신을 포함한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EPL 데뷔 시즌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고공 행진을 달린 만큼 연이은 패배와 무승부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EPL 경험 자체가 없는 베이포트 FC가 그런 위기에서 빠져나오기는 더욱 힘들었다.

    그러나 감독인 동민이 자신의 페이스를 찾은 이상,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해리 맥스웰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감독님이 말했던 대로 우리, 베이포트 FC가 시즌 초반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겠지. 충분히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지난 전반전이 그렇듯, 후반전도 마찬가지로.’

    지난 경기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잦아들었던 그의 마음속 희망의 횃불이 다시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은 그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경기에 이어서 베이포트 FC가 완벽하게 슬럼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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